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막15:33-41)_2025년 3월 16일 사순절 둘째주일 설교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막15:33-41)_2025년 3월 16일 사순절 둘째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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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다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버림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하죠.

자기밖에 없는데 둘째가 태어나면 그 둘째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 말이죠.

 

결혼 후에는요?

아내는 남편에게 또 남편은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죠.

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요?

직장에서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자신을 아껴주고 칭찬하던 부장님이 이제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가까이 할 때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늙어서는 어떤 버림받음의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잘 키워놓은 자식에게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돈 없는 돈 갖다 줬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부모를 버림받은 노인네 취급할지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 말이죠.

 

(깨달음)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면 어떻게 하나 하고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응답하지 않으실 때 혹여라도 내가 버림받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도 힘들고 지쳐 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지 않은 것 같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나 하고 두려워할 때가 있죠.

 

그래서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거장인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고난의 진짜 쓰라림은 불행 그 자체도 아니고 고통이나 그것의 부당함도 아니다.”

“바로 그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고통은 참을만 하지만 외견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무관심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적용)그렇죠.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견디기 힘 드는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고통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는 그것이 가장 힘든 것이죠.

아무리 불행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쉽게 하나님의 자녀를 버리지 않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이사야 41장 9-10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스라엘 백성에 바벨론에 패망해 포로로 끌려갈 때 모두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녀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버리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죄악 때문에 징계하는 것이지만 너희들을 버린 게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다시금 너희를 세우려는 뜻이니라, 하면서 말이죠.

 

그렇기에 부모가 자기 자식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자녀들을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피치 못할 사정 가운데 징계가운데 두는 경우는 있어도 결코 당신의 자녀를 버리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오히려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다시금 세우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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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코자 함이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비천한 말 구유통에 태어나신 것도 그렇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위해 죄로 물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요단강에 내려가신 일도 그렇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와 연약한 자를 고치고 치료하고 어루만져주신 모습도 그랬습니다.

그 공생애 기간 동안 12명의 제자를 불러 당신과 함께 공고동락하며 천국의 가치를 일깨워주신 것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제자강화의 시간을 통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랬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물로 그 전에 성찬식을 거행할 때 가롯 유다에게 떡을 주면서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죠.

그때 가롯 유다는 주님 앞에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은전 삼십 양이라는 그 마음속에 깃든 탐욕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 고난의 잔이 엄청난 고통임을 알기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할 동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고난과는 거리가 멀게 잠에 빠져들었죠.

그 기도가 끝날 무렵 가롯 유다가 이끌고 온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나타났고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의 인사를 할 때 그 군사들이 곧장 체포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자기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한 베드로는 물론이고 요한과 야고보도 함께 줄행랑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날이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까지 예수님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녀야만 했습니다.

맨 처음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자 실세였던 안나스의 법정에 끌려가셨습니다.

이후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으로 끌려가셨죠.

당시 모든 의사결정엔 70명의 산헤드린 의원이 있어야 했지만 그 밤엔 23명만 모여 있어도 결의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죄를 고발한 사람들은 아무런 죄목을 발견치 못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그 어떤 죄목도 찾지 못했고 곧바로 헤롯 대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헤롯 대왕 역시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목을 발견치 못하자 다시금 빌라도의 법정으로 예수님을 보내버렸죠.

그렇게 예수님은 새벽녘부터 날이 환하게 밝은 아침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닌 것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법정에 선 예수님은 유대 군중들의 요구를 이기지 못한 빌라도의 판결로 십자가 처형이 확정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할 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중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자신은 로마의 황제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사람들에겐 버림받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 버림받는 일임을 생각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

 

그날 아침 예수님은 자신이 매달릴 육중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갔습니다.

하지만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날이 밝기까지 다섯 번의 법정에 끌려다녀야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래서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는 동안 수차례 쓰러졌고 그 모습을 본 로마 군사가 그 길목에 있던 구레네 출신의 시몬을 지목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게 했습니다.

 

그렇게 골고다 언덕까지 오른 예수님은 유대인의 시각으로 제3시 곧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대못이 박힌 채 매달렸습니다.

그로부터 3시간이 흐른 정오 12시에 온 땅에 흑암이 내리깔렸고 무려 3시간 동안 흑암이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십자가상의 일곱마디 곧 ‘가상칠언’을 하셨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깨달음)지난 시간에 살펴본 그 어둠 그 흑암이 대체 어떤 어둠이요 어떤 흑암이었습니까?

‘어둠’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코토스’(σκότος)는 ‘그늘’을 뜻하는 ‘스키아’(σκιά)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했죠.

‘흑암’과 ‘그림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스코토스’가 히브리어로 ‘호세크’(חשֶׁךְ)인데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창1:3∼5,사45:7)이요 생명과 반대되는 사망의 어둠(요8:12)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전에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을 애굽 땅에 일으켰는데 그때 흑암이 3일간 지속된 일(출10:22)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요엘서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질 것(욜2:31)라고 예언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만큼 애굽 땅에 임한 3일의 어둠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명한 해방의 빛을 맞이하기 전에 일어난 어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일어난 3시간의 어둠 역시 3일간의 죽음 너머에 부활의 빛을 알리는 어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다보시고 그 어둠과 흑암 속에 당신의 영혼을 갈아 넣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둠과 흑암의 현장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의 영혼도 기꺼이 갈아 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광명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은총의 길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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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본문 34절 말씀인데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원해)자연계의 7분짜리 일식과는 비교가 안되는 초자연적인 어둠이 3시간 동안 계속 된 것이었습니다.

그 끝무렵에 예수님께서 죽어가면서 큰 소리로 외친 음성이 있었죠.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었죠.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는 아람어인데 예수님께서 생생한 육성으로 외친 음성이었습니다.

‘사박타니’(σαβαχθάνι)는 ‘떠나다’ ‘홀로 두다’는 ‘쉐베크’(שְׁבַק)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탄식어린 육성입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말 구유통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때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도, 변화산에서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될 때도 하나님은 한결같이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마17:5)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지금 어둠이 내리 깔린 3시간 이후에 마지막 숨을 거둘때조차 아무런 음성이 없자 마치 버림받은 것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십자가 아래에 있던 이들은 엘리야를 부른다고, 엘리야가 와서 건져주나 보자, 하고 웅성웅성거리죠.

 

(깨달음)그렇다면 정말로 이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신 것이었습니까?

사실 이 장면은 구약성경 시편 22편의 전반부와 같은 울부짖음과 똑같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의 칼날에 피해 10년 동안 광야로 도망쳐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음받은 왕으로 세워주셨는데도 계속 도망쳐야만 했으니 어떻겠습니까?

다윗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아닌가’하고 말이죠.

바로 그런 탄식처럼 다윗도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간구하는 내용이 시편 22편의 전반부 내용입니다.

 

하지만 시편 22편 후반부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22:16-24)

 

(적용)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다윗이 10년간 도망자 신세로 살고 있어서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은 줄 알고 탄식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간구에 응답해주시는 아바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결코 버리지 않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예수님도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외로워서 버림받은 것 같은 탄식어린 육성을 들려주고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독생자가 십자가에 죽어야만 모든 인류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음을 아셨기에 잠시 고개를 돌린 것 뿐이지, 결코 버림받도록 내버려두신 분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을 때 바벨론을 들어 다시금 세우시고자 징계가운데 두셨지만 그들을 결코 버린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에게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셔야 했지만 결코 버리신 게 아니라 독생자의 죽음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하고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난 속에 그 고통속에 친히 함께 하시는 아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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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죠.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은혜로 감싸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인간은 태어나서 부모에게 또 남편과 아내와 회사에서 그리고 자식들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존재가 인간이지 않더냐?”

하지만 당신의 자녀들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림받도록 내버려두는 분이 아니지 않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갈 때 그들은 버림받은 자녀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버린 적이 없지 않았더냐?”

지금 예수님께서 어둠과 흑암의 3시간 후에 서서히 죽어가면서 외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그 음성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여태껏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고 말씀셨지만 그 어떤 음성도 없자 급기야 버림받은 것처럼 탄식했지만 하나님은 대속의 공의를 위해 잠시 고개를 돌린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사람은 너를 외면하고 친한 친구나 동료도 너를 배신하듯 너를 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 분임을 네가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너무나도 답답하여 괴로운 지경에 처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버린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말이다.”

그 모든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니 분명코 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응답으로 너를 버리신 게 아니라 당신의 때에 가장 선한 길로 너를 인도하시는 분이지 않겠느냐?”

때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네가 부르짖어도 응답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너머에 가장 귀한 선물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이니 말이다.”

당신의 독생자가 십자가에서 죽어가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외쳐도 잠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던 하나님의 그 심정이 너를 향한 심정일 수 있으니 말이다.”

 

(찬양)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내 마음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일세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스러질 수 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잘 아심일세

어두운 밤 어둠이 깊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내 신앙 부여잡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리니 하나님을 내가 믿음일세

 

지금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너무 많아서 너무 멀리 가물가물 어른거려도

운명이여 오라 나 두려워 아니하리 만사를 주님께 내어 맡기리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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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하루는 어떤 부인이 성 빈첸시오 신부를 찾아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더이상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의 신경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도를 넘어섰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까요?”

 

빈첸시오 신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부인, 울 수도원 앞뜰에 작은 우물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그곳을 관리하는 수위에게 가서 그 우물물을 좀 얻어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그 물을 얼른 한 모금 입에 머금으십시오.”

“그 물을 목으로 삼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이제 일어날 겨예요.”

 

그 부인은 신부님의 말대로 수도원의 물을 얻어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 늦게서야 귀가한 남편은 어느때와 다르지 않게 부인에게 불평과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같았으면 부인도 마구 달려들었을 것인데 그녀는 빈첸시오 신부의 가르침대로 성수를 얼른 입안 가득히 물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새지 않도록 입술을 꼭 깨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떠드는 소리가 점차 잠잠해졌습니다.

그날 밤 그들 부부는 더이상 다투지 않고 무사히 하룻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부인은 남편이 신경질을 부릴 때마다 그 성수를 입안 가득히 머금곤 했습니다.

그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안 남편의 행동은 눈에 띄게 변했습니다.

신경질도 줄어들었고, 오히려 부인을 향해 친절로 대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달라진 태도에 무척이나 놀라 신부를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빈첸시오 신부는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부인. 그 기적을 일으킨 것은 수도원 앞뜰의 우물물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로 당신의 침묵이예요. 당신의 침묵이 남편을 부드럽게 한 것뿐입니다.”

 

(깨달음)우리의 신앙생활도 그와 같지 않겠습니까?

내가 바라는 게 다급히 응답되기를 바라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소리치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침묵만 들려오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하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하심 속에서 나를 교정해 가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남편이 소리칠 때 내가 맞서는 마음으로 소리친다면 똑같은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지만 나의 침묵으로 남편의 아름다운 침묵이 들려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듯이 말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림받은 것 같은 그 외침에 곧장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건져주셨다면, 어찌 인류를 향한 대속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그 외침에 침묵하신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확실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자 침묵으로 응답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하심을 통해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십자가 죽음을 완성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내 남편이 소리치고 내 아는 동료가 소리칠 때 내가 침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기보다 내가 침묵함으로 인해 상대방도 변화될 수 있네요.”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소리치고 탄식할 때 하나님께서 곧장 응답해주셨다면 공의로운 대속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하나님의 침묵하심의 격려를 통해 인류를 향한 영원한 생명의 역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었네요.”

주님. 누군가 내게 소리치고 언성을 높일 때 그와 맞서지 않고 때로는 침묵으로 대하게 해 주세요.”

나의 침묵이 상대방을 새롭게 하는 놀라운 촉매제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침묵하심을 통해 예수님의 그 십자가 죽음을 완성하셨듯이 나의 부족한 침묵을 통해서도 역사하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해 주세요.”

 

(찬양)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나는 없어도 당신이 곁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나는 있어도 당신이 곁에 없으면 나는 언제나 없습니다

당신이 계심으로 나는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묾으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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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의 핏값으로 사신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은 버리신 게 아니라 그들을 징계가운데 다시금 세우시고자 하신 뜻이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탄식하신 예수님의 울부짖음 앞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신 게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게서는 침묵하심으로 독생자를 격려하셨고 그 침묵을 통해 예수님은 끝까지 십자가 죽음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주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은 그분의 침묵을 통해 내가 변화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누군가 변화되기를 바란다면 내가 소리치고 요구할 게 아니라 나의 침묵을 통해 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선한 촉매제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침묵을 통해 우리를 격려하시고 더 선한 길로 응답해주시는 아바 아버지신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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