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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빌립보에 들어가는 여정과 빌립보서를 쓴 배경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자신이 계획했던 소아시아의 에베소서를 비우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마게도냐 곧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죠. 그곳의 해안가 네압볼리에서 로마제국이 건설한 포장도로 ‘에그나티아 도로’(Via Egantia)를 따라 빌립보까지 들어갔죠. 그곳에서 자주색 옷감 장사 루디아와 그 집안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세례를 받게 했죠. 또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쫓아낸 일로 감옥에 갇혔는데, 그곳의 간수장과 그 집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죠. 그렇게 해서 세운 교회가 빌립보교회였고 그 교회는 루디아의 가정집에서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그때가 A.D.51년 곧 바울의 나이 51세의 일이었죠. 그로부터 3년에 걸친 2차 전도여행이 끝나고, 또 A.D.53년에 시작한 제3차 전도여행을 57년에 끝마쳤을 때,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에베소의 유대인들에게 체포당해 가이사랴에서 2년 구금당했고, 이제 배를 타고 로마에 압송돼 60세에 가택연금에 처해졌죠. 그로부터 2년간 그 속에 머물며 4개의 옥중서신을 써 보냈는데, 그 중 하나가 빌립보서죠.
빌립보서 1장 1-2절은 인사말을 하는데 ‘디모데’를 함께 언급하죠.
신약성경 중에 바울이 쓴 편지가 13개인데, 그 중 2개의 편지는 디모데에게 직접 쓴 것이고, 6개의 편지에는 맨 앞에 ‘디모데’의 이름을 언급한다는 사실이죠. 왜죠? 가장 믿음직스럽고 가장 신실한 동역자였기 때문이죠.
그렇게 바울이 디모데와 함께 인사말을 하면서 뭐라고 말을 하는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립보교회 모든 성도들, 감독들, 그리고 집사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죠. 그런데 여기에 ‘감독들’이 있고, 집사들도 있죠. 이미 어떤 조직이 세워진 교회로 성장했던 것이죠. 특별히 ‘감독들’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스코포스’(ἐπίσκοπος)인데, ‘위에서 두루두루 살펴보는 자’란 뜻입니다. 이른바 모든 성도들을 두루두루 관심을 갖고 헤아리며 살펴보고 이끌어주는 자입니다. 모름지기 교회의 감독 곧 리더자들은 그런 마음과 자세로 성도들을 헤아리고 살펴보며 이끌어주는 자라야 하는 것이죠.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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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절은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왜죠? 빌립보교회를 세울 때부터 옥에 갇힌 지금까지 그 교회가 물심양면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바울의 옥바라지를 위해 에바브로디도까지 보내줬기 때문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너희들의 그런 선한 일을 주님 재림할 때까지 끝까지 주님의 뜻 안에서 완성해갔으면 한다고 말하죠. 9-11절은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위해 기도한다고 밝혀줍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너희들이 사랑이 더 풍성하길 바란다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신실하기를 바란다고, 너희들의 모든 일들이 주님 안에서 의의 열매를 맺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이죠.
오늘 읽은 말씀은 그 연장선상에서 쓴 것인데 12-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현재 갇혀 있는 상태, 곧 가택연금 상태에 처한 모습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19-26절은 바울이 앞으로 풀려나서 너희들과 함께 할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 27-30절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의 은혜를 따라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고난도 함께 받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12-14절입니다.“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바울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밝혀주는 고백이죠. 나는 메여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감옥 속은 아니지만, 가택연금 상태로 갇혀 있다는 것이죠. 집을 얻어 셋집에서 살고 있지만, 밖을 나갈 수도 없고, 차꼬에 채워져 있지 않지만,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신세죠. 그런데 자신이 당한 일로 오히려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돼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당한 일이 오히려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이 갇혀 있는 그 일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왜죠? 거기에는 시위대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도 들을 수 있고, 또 로마 사람들이 그곳에 드나들며 복음을 접할 수 있고, 그리고 복음을 들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5-18절을 보면 그렇게 전하는 일을 선한 마음으로 갖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시기심으로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 가운데 전파되는 것은 주님의 복음이라면, 기뻐한다고 고백하죠. 비록 바울을 헐뜯고 비방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 일을 통해 주님이 전파된다면, 주님의 복음이 전파된다면, 오히려 자신은 족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도 바울의 비움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19-26절은 머잖아 자신이 풀려날 것을 알고 있다고 써 나갑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매여 있든지, 혹은 풀려나든지, 오직 중요한 것은 그것이라고 고백을 하죠. 20절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는 것” 그러면서도 26절에서 이렇게 밝혀줍니다. 새번역성경에 “그래서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게 되면 나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여기 있든지, 앞으로 풀려나든지, 내 몸에서 존귀케 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또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영광 받으실 분은 주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풀려나 여러분들에게 가면 여러분에게 주님 안에서 자랑스런 기쁨이 되지 않겠냐고 고백을 하는 것이죠.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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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몬 27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권고입니다. 도대체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엇이라고 바울이 권면합니까?
첫째로 27절 하반절에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 한 마음, 한 뜻으로 신앙안에서 협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함께 빌립보교회를 이루고 있는데 다른 말, 다른 뜻,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죠 실제로 다른 말, 다른 뜻,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이 빌립보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4장 2절의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성들이었죠. 그녀들은 초창기 창립맴버와 같은 이들인데 지금은 다른 뜻, 다른 말, 다른 마음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너희들은 복음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고 협력하라는 것이죠. 그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들의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28절에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이른바 주님의 일에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멸망의 증거일 뿐이고, 너희들은 그 속에서 오히려 더 구원의 증거를 얻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과연 빌립보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이 누구일까요? 바울이 빌립보에서 겪었던 것처럼 그런 외부 세력을 말하는 일일 수도 있겠죠. 복음의 핍박자들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교회 안에 침투한 내부세력들, 곧 할례를 빙자한 율법교사들일 수도 있죠. 바울은 그들을 향해 ‘개들’이라고 ‘행악자들’이라고 빌립보장 2절 3에 밝혀주죠. 그런 대내외적인 대적자들 앞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살라고 권면하죠.
셋째로 29-30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합당한 삶이란 고난도 함께 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너희들에게도 어떤 고난이 닥쳐오든지 기뻐하라는 것이죠. 왜요? 그 속에서 존귀케 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이라고 말이죠.
[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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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내가 감옥에 있든지 혹은 풀려나든지, 내가 일이 꼬여 뒤틀려 있든지 혹은 술술 풀리든지, 내 몸과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되는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요? 그 삶이 구원받은 은혜의 자녀들이 취할 자세이기 때문이죠. 살든지 죽든지 오직 존귀케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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