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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7장은 멜기세덱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에 관한 성경의 언급은 히브리서를 제외하고 구약에 두 번 나옵니다. 창세기 14장 18-20절, 또 시편 110편 4절에 나옵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멜기세덱을 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시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고 주장한비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멜기세덱의 부모도, 조상도, 출생도 기록돼 있지 않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천사나 혹은 예수 그리스도였을 것으로 추정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멜기세덱이 ‘한 인간이었다’는 것 외에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7장을 주의 깊게 읽다보면, 바울의 관점은 멜기세덱이 인간이냐 혹은 천사냐 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정말로 집중하고 있는 것은 멜기세덱과 방불한 한 존재, 곧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멜기세덱에 실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얼마나 온전한 것인지, 그리고 그분을 통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본문 1-2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멜기세덱을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이라고 논증합니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의 ‘평강의 왕’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순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의’ 다음이 ‘평강’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자신의 ‘의’로 여겨진 자들만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에서 밝혀주었습니다. 로마서 3장과 4장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이죠. 그것이 신학적인 용어로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죠.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자들에게 어떤 환경속에서 참된 ‘평화’를 맛보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하며 삽니다. 청년들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막막함과 걱정에 사로잡혀 살죠. 어디 그 뿐입니까? 중년의 사람들도 자식에 대한 걱정과 언제 닥쳐올지 모를 건강의 적신호에 불안해하며 삽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며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으로부터는 그 어떤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들이기 때문이죠. 우리의 참된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 곧 하늘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평강의 관계 속에 있을 때에만 미래에 대해 불안하지 않고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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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그래서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본문의 후반부에서 하나씩 밝혀주고 있습니다. 16절에 “그는 육체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또 19절에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그리고 22절에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에 기초한 제사장이 아닌 불멸의 생명으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새 언약의 보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소망, 더 좋은 언약은 어떤 언약 입니까? 바울은 8장 10절에서 이렇게 밝혀줍니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그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예레미야 31장 31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성취된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아닌 생명의 능력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신 그 십자가 사건을 말하는 것이죠. 그 십자가 사건을 경험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마음 속에 심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 곧 율법이 모세의 돌판이 아닌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새겨지는 놀라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굳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선하게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진 그 계시된 말씀을 순종하며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육신으로는 지킬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우리 심령에 깊이 새겨주신다는 뜻입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소망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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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25절을 통해 새 언약의 보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힘입을 때에만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성경은 구원을 세 가지 다른 시제로 표현합니다. 이미 받았다는 과거적 의미에서 구원 곧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현재적 의미의 구원 곧 ‘성화’(Sanctification)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을 이룰 것이라는 미래적 의미의 구원 곧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과거적 의미에서만 국한시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곧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단계를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죠. 본문을 통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과거적 의미에서 구원(칭의)을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현재적 의미의 구원과 미래적 의미의 구원 곧 성화와 영화를 이루어갈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서 2장 12절을 통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7-28절을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구약의 제사는 한 사람의 죄에 대해 한 번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대제사장도 속죄일에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려야했습니다. 그 역시 불안전한 인간으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단 한 번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하루 한 장 역대기서 읽고 묵상하기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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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로움을 덧입고, 화평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 안에서 어제의 구원, 오늘의 구원, 그리고 내일의 구원, 칭의와 성화와 영화를 이루어가는 은혜가 넘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곧 겸손하게 주님을 바라보며 살때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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