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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애굽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의 지도 하에 출애굽할 수 있었습니다.
애굽을 빠져 나온 그들이 홍행 앞에 섰을 때는 하나님께서 폭 32km의 홍해를 갈라주셔서 마른 땅처럼 통과하게 되었죠.
수르 협곡을 지나 사흘간 물을 마시지 못한 채 마라의 쓴물을 만났을 땐 나무를 던져 단물로 바꿔주셔서 마시게 해 주셨죠.
엘림에 이르렀을 땐 종려나무 70주가 있는 그 근처에 장막을 치게 하셔서 목마르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 15일이 돼 신광야 당도했을 때 먹을 게 없다며 광야에서 죽어간다고 모세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죠.
그때 하나님께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저녁에는 빈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공급해 고기 대용으로 먹게 해 주셨고, 아침에는 이슬과 함께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게 하셨죠.
광야에서 처음 먹어본 만나라 그들은 “이것이 무엇이냐?”하면서 히브리 말로 ‘만’(מָן)하고 물었을 때 모세는 그렇게 대답했죠.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출16:15)
하나님께서는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같은 만나를 하루하루 가족분의 분량대로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내려주셨죠.
다만 안식날에는 그걸 주울 수 없도록 아에 내려주지 않았고, 그 전날 안식일 것까지 주워서 삶든지 굽든지 해서 먹게 하셨죠.
안식일 날이 아닌 날에 더 많은 것을 주워서 집안에서 쌓아 놓거나 쟁여 놓으면 그것들이 다 부패해서 썩게 만드셨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하늘에서 공급해주셨던 것입니다.
(깨달음)왜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간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까?
그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들 인생의 주관자가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셨죠.
더욱이 그들은 떡 곧 빵으로만 사는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말씀으로 사는 백성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적용)그만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은 너희 인생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살라는 거죠.
너희들이 40년간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힘도, 기운도, 육체의 건강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라는 거죠.
그러니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너희들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애굽과 같은 이 세상의 죄와 사망의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가나안 땅 곧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기까지 이 세상의 광야를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매일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내가 일해서 먹고 사는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 힘과 능력을 공급해주셔야 숨쉬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거죠.
그만큼 우리가 숨쉬고 손과 발을 쓰며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이 모든 근원이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을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죠.
(성화2)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말씀을 좇아 순종하며 살도록 하신 율례와 법도는 그것이었습니다.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신14:22)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26:12)
하나님께서는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 땅을 경작하고 동식물들을 키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산의 십일조를 바치도록 했습니까?
그것들은 본래부터 그들의 땅이나 그들의 소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고 맡겨주신 것임을 기억하며 살라는 뜻이었죠.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해주시고 그들에게 살아갈 거처와 능력을 베풀어주신 주권자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방식이었죠.
(깨달음)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루를 일하고 1주일을 일하고 한 달을 일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는 이유 말이죠.
내 힘과 능력으로 벌어들인 소득 같지만 그 모든 건강과 능력을 베풀어주신 주권자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살라는 뜻이죠.
그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하나님 앞에 드려서 하나님의 주권을 올려드리는 뜻이죠.
자유로교회에 속한 권속들이 다 그렇게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드린다면 목회자 가정은 물론이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향한 구제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토지 소산의 곡물을 거둘 때 한 가지 잊지 말고 실천하도록 명령하신 게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집과 전답을 얻게 될 텐데 그것을 소출할 때 모조리 베지 말고 남겨두라는 게 그것이죠.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23:22)
(깨달음)왜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까?
광야 40년 시절에는 너희들이 먹고 사는 것이 하루하루 힘겨웠지만, 가나안 땅에는 집도 있고 전답도 있지 않냐는 것이죠.
이제는 너희들이 먹고 살아가기에는 넉넉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던 광야의 시절이 끝났고, 이제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보다 안전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의 먹을 거리를 쌓아놓고 더 많이 저장하려고 안달하지 말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며 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요 너희들과 함께 섞여 살아가는 나그네와 이방인들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적용)왜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나와 광야를 살아가는 40년 삶의 방식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던 때요, 가나안 땅 정착해서는 주권자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웃에게 베풂의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애굽의 방식 곧 죄와 사망의 방식이 아니라 영생의 방식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사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이요, 그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삶의 방식이라는 거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사도들에게 당신의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당시 이방 종교인들처럼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었기에 바로 잡아주고자 기도를 가르쳐준 것이었죠.
우리가 여태 살펴 본 주님의 기도는 그것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상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에 모시고 기도하라’는 게 초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 인생의 주관자이시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 땅에 받들며 살도록 말이죠.
(본문)오늘 살펴볼 말씀은 본문 11절에 나와 있는데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깨달음)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도록 기도하게 하셨을까요?
그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위해 집과 전토와 그물을 버려두고 길을 떠나는 삶을 살았죠.
마치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들어가기까지 광야 40년 길을 떠나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입장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과 제자들은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입을 옷도 매일매일 걱정하며 살아야 할 처지였죠.
그것 때문에 하루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도록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일깨워주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광야 인생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제자들의 인생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관하고 계신다는 걸 알도록 하신 것이었죠.
그래서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죠.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1-34)
너희들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탁발승처럼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로 사는 하루하루가 고달프지 않겠느냐?
그러니 그 하루하루의 고달픈 삶, 먹을 끼니 때문에 걱정하며 근심하겠지만, 그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맡기며 살라는 것이죠.
그 하나님께서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신 것처럼, 너희들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들이 먹고 입는 것을 사람을 통해 역사하지 않겠냐는 것이죠.
마치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다가 기진맥진해진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먹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나예)예전에 서울에서 목회할 때 참 힘들게 살았죠.
모으고 있던 적금통장도 깨트려 예배당을 짓는데 드렸고, 개척을 한다고 은행돈을 빌려 상가를 계약했죠.
그때 빌린 돈을 지금도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개척을 했으니 너무나 힘들었는데, 택시운전이라도 해서 살아가려고 택시면허시험을 본 적이 있었죠.
법규 문제는 외우면 되겠는데, 대교를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나뉜 서울의 지리와 건물은 도무지 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르는 날 시험지를 받아봤는데 대각선 너머의 한 분이 술술 푸는 것 같아, 대교와 건물 문제는 그분 것을 다 보고 썼습니다.
저는 보여달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마치 “제 것을 보십시오”하는 것 같아서 잘 적었죠.
간신히 2문제 차이로 합격을 했는데, 그 뒤로 세번 교육을 또 받아야 했고, 그때 택시면허증이 나왔죠.
그런데 그 면허증을 가지고 마천동 택시운전회사로 갔는데, 무슨 서류를 7가지나 떼어오라는 것이었죠.
그때 갈등을 했는데, 이렇게 할 바에는 더 기도하고 더 전도하고 더 열심히 해 보자, 하고 다짐을 했죠.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만난 적도 없는 인천의 의류업체 사장님이 집사님인데 어느 목사님의 소개로 그때부터 매달 50만원의 선교비를 보내주셨죠.
그때 깨달았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 지치고 힘들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걸 말이죠.
(적용)지난 시간에 나이지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주노동자가 우리나라에서 일한다면 일거리를 찾아야만 하루하루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처지죠.
그가 주기도문을 읽어나가며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며 살겠습니까?
이역만리 나그네와 같은 삶 속에서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어디 이주노동자 뿐이겠습니까?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이들 모두가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되,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개)그것이 육신과 관련된 일용할 양식의 기도라면, 또 하나 일용할 양식을 구할 게 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며 사는 기도가 그것이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51)
(깨달음)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육신의 양식만 간구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위해서도 구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왜요?
육신의 양식에만 치우쳐 살면 영혼의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거리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고 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죠.
이 땅에 먹고 입고 쓸 것만 구하고 찾아다니면 영혼의 양식을 등한히 하기 때문에 영생의 떡이신 주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그 기도를 통해 우리 인생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천국을 향한 나그네 인생 광야 인생을 사는 자답게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며 살고 있느냐?”
“네 힘과 네 능력으로 일하며 벌어먹고 살아가는데 하나님 아버지게 구하고 의지하며 살 필요가 있어요, 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네가 숨 쉬고 물 마시고 팔다리로 움직이며 일하는 그 모든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시오 모든 육체의 삶을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본문 속의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도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았더냐?”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도 하루하루 먹을 게 필요하니 주권자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도록 말이다.”
“더욱이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기도하라는 게 육체만을 위한 게 아니라 생명의 떡이신 주님의 말씀을 구하도록 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광야와 같은 삶이라면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의탁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너도 너의 육체만을 위한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너의 영혼을 위한 양식 곧 생명의 떡이신 주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고 말이다.”
“네 삶의 방식이 가나안 땅의 방식이라면, 안정된 집과 전토와 일거리가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느냐?”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모퉁이 소출의 여분을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육체를 위한 일용할 양식과 함께 영적인 양식인 주님의 말씀을 구하며 사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더더욱 기뻐하지 않겠느냐?”
(찬양)내게로 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렴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페한 땅 한 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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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섬기며 일할 때였습니다.
그때 부유하게 사는 한 귀부인이 힘들게 사는 이들을 보는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얘야. 너도 저들처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 그 귀부인이 테레사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수녀님. 나도 이들처럼 싸구려 옷을 입고 살 수 없을까요?”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그 귀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보다 조금 싼 것을 입으시면 그것으로 충분할 거예요.”
“그래도 혹시 불행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저들과 비슷해지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조금 더 낮추시면 됩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까?
살 집이 있고 하루 세 끼 걱정하지 않아도, 잘 사는 이들을 향한 주님의 음성이지 않겠습니까?
그 귀부인처럼 사는 이라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사는 이들에게 모퉁이 소출을 나누며 사는 걸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죠.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곧 나와 더불어 사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맡긴 양식을 나누며 사는 길이죠.
그렇다고 그 귀부인이 현재의 삶을 다 포기하고 살라는 뜻입니까?
아니죠.
현재 살아가면서 과하다고 생각하는 옷과 먹거리와 쇼핑들을 과소비하는 걸 줄이며 살라는 뜻이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이들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삶’이란 과소비를 줄이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헤아리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죠.
(내음성)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가?
“그래요, 주님. 주님께서 제 인생의 주권자이심을 잊지 않도록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제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십일조를 드리고 어려운 이들에게 모퉁이 소출을 나누며 살게 하시옵소서.”
“제가 너무 배불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게 하시고 너무 가난해 도둑질하며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게 하시옵소서.”(잠30:8-9)
“젊을 때 힘 다해서 성실하게 일하며 살게 하시고, 나이 들어 남에게 베풀고 나눌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부하게 하시면 그 주권을 더 올려드리며 살게 하시고, 가난한 이들 앞에서 과소비하지 않고 살게 하시옵소서.”
“이 땅의 육신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양식인 주님의 말씀을 늘 먹고 살게 해 주세요.”
“그것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하고 아버지께 간구하는 기도의 삶이 되게 해 주세요.”
(찬양)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보배 세상 것과 난 비길 수 없네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광야 나그네 인생을 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의 만나 일용할 양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의 소출을 주신 주님의 주권을 기억하도록 십일조를 드리게 했고, 모퉁이 소출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위해 사는 제자들에게도 그처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도 하루하루 육신의 삶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주권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뜻으로 십일조를 드리고 가나한 이들에게 내 모퉁이 것을 나누는 삶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더욱이 육신의 양식 뿐만 아니라 내 영혼의 양식인 주님의 말씀을 먹고 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내 삶이 남들보다 부유하게 살게 하셨다면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과소비하지 않는 삶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일용할 양식의 주인이신 주님의 주권을 올려드리고 순종할 때 놀라운 은총의 복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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