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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죠. 인생은 예측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인생을 살다보면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때 문제에만 집중하면, 어려움에만 집중하면 그 부분을 주관하고 계시는 주님을 볼 수가 없게 되죠. 상황과 형편만을 바라보면 반석이시오 요새이신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반석이신 주님을 볼 수 없는 사람은 그래서 계속해서 흔들릴 수 밖에 없게 되죠.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든지,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는,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반석이요 우리의 요새이심을 굳게 믿기 때문이죠.
보통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야 철이 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힘든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죠. 저도 의정부 보충대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아침6시에 기상해서 저녁10시에 취침에 들어갈 때까지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를 외치며 정신없이 훈련을 받았었죠. 훈련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유격훈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kg가 넘는 군장을 짊어지고, 어깨에 메고 소총을 메고 15시간씩 걷는 것은 그야말로 강행군 중의 강행군이었죠. 온 몸에는 비오듯 땀이 쏟아졌는데, 그 사이 엠블런스는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죠. 누군가 탈진해서 쓰러지기 때문이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나도 저렇게 실려 가면 좋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풀려서 곧장 쓰러질 것 같은데, 혹시라도 내 다리가 삐끗해서 나도 쓰러지지 않나, 싶은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힘없이 꾸역꾸역 길을 걷는데, 도저히 지칠 때 논두렁에 주저 않게 되었습니다. 훗날 제 옆에서 함께 지쳐가던 동기생 한 명도 함께 주저 앉았는데, 갑자기 새 힘을 내더니만, 그가 뛰기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물어봤더니, 그 시각이 새벽 5시오, 그의 부모님이 새벽에 기도할 것을 생각하다보니, 그로부터 솟아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서, 유격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는 것이죠. 그 친구는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을 때마다 군대에서 훈련받던 그 시절의 경험을 떠올린다고 하죠.
본문 1-2절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편은 그 표제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만 돼 있습니다. 이 시가 어떤 상황이나 배경에서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모든 성경학자들은 이 시가 다윗의 쓴 시인데, 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급히 왕궁에서 도망 나와 피신 가던 때에 쓴 시이지 않나 추정을 하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아끼고 사랑한 아들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추격해 오는데, 그 아버지로서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겠습니까?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떻게 억누를 수 있겠습니까? 억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고,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은 그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사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윗만 아니라 누구나도 이런 고백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럴 때 우리들도 과연 다윗처럼 이 위대한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하고 말입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입니까? 사람이 자기 욕망이나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 움직임이 없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걸 뜻합니다. 내가 뭔가를 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일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없죠.
좀 전에 부른 찬송가 539장처럼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그런 마음과 자세처럼, 우리의 마음을 잠잠히 하나님께 쏟아놓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내 인생, 내 궁핍함, 내 답답함, 내 원통한 사정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곧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아니겠습니까?
그렇듯 주어진 상황과 문제에만 집중하면, 그 너머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 가 없는 법입니다. 만약 다윗도 지금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죽이려고 쳐들어오는 그 상황만 보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면, 어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심정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의 대항에 맞서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분주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대비책을 갖추기 위해 혈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하는 자세였기에, 그 피난길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나아갔다는 점입니다. 상황과 형편만 바라보면 반석과 요새로 든든히 서 계시는 주님을 볼 수 없지만, 다윗은 그 반대였던 것이죠. 반석이신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와 지하 음부의 세계를 통틀어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자세가 반석이시오 구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것이죠. 그것이 곧 좇기는 상황에서도, 드러난 문제의 상황에서도 그 문제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게 된 비결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드러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되는 때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바르게 인식할 때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가볍고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면, 결코 자기 자신의 힘이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게 되죠.
그래서 본문 9절에서 다윗이 그렇게 고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다윗은 인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인간의 영화가 들의 꽃과 같고 시들어 말라버리는 안개와 같음을 깨달았던 다윗입니다. 그것이 입김보다 더 가볍다고 묘사할 정도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생은 속임수처럼 허망한 것이라고 고백하죠. 다윗이 그런 인생의 연약함, 인생의 허망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께 두었던 것이죠.
계속해서 다윗은 10절을 통해 그렇게 고백합니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포악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걸 말합니다. 그런 방법으로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재물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죠. 왜 그런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은 다윗이었기에, 압살롬과 자신의 친구요 책사였던 아히도벨이 계략을 꾸며 자신을 죽이려온다 해도, 다윗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이죠.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느꼈을 참담함과 억울함과 부끄러움과 같은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지만, 그 모든 감정을 누르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랐던 이유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그 믿음 말입니다. 그러니 악한 자들이 궤계를 꾸미고 위협해오고, 추격해온다 할지라도, 오직 선으로 악을 대하고자 했던 다윗이었죠.
그렇기에 오늘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이 닥쳐올 때, 우리는 그 반석이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며 그 분께 조용히 나가 우리의 속 사정을 터놓는 것이죠. 그것이 곧 반석이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역사하심, 심은 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는 자가 취할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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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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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홍수처럼 쏟아지는 문제들 앞에 우리는 쌓여 있습니다. 그 문제에만 집중하면 반석이시오 요새이신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잠잠히 하나님 앞에 서서 주님만을 바랄 때, 내 앞에 쌓여 있던 모든 문제가 사라지게 됨을 체험케 하옵소서. 오늘도 그런 믿음으로 하루를 살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사오니, 성령님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역사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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