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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20:4-7)

by 똑똑이채널 2022.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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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발췌)김기석 목사님의 ! 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새벽에 욥기서 묵상을 마무리할 즈음에 다른 목사님은 어떻게 욥기서를 정리하고 있는가, 하고 김기석 목사님의 책을 읽었죠.

그 책에 가수 조영남 씨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습니다.

새벽기도회 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조영남씨의 어머니는 남편이 중풍으로 눕자 조그만 집을 마련해 세를 내주고 월세받아 살았다고 하죠.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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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 든 분 중에 가짜 꿀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조영남이 보는데 자기 어머니가 가끔 가짜 꿀을 만들어 파는 분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는 것이죠.

그 꿀을 만들 때 조청을 넣어서 젓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런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으면 그런 찬송을 매번 불렀는지 알 수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찬송을 부르며 그 일을 돕는 어머님이 하도 이상해 보여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권사인데, 어떻게 가짜 꿀을 만드는 걸 십 년이나 도와줄 수 있어요?”

그것도 맨날 주여 주여 하면서 말예요

 

그러자 조영남의 어머니는 숨도 안 쉬고 곧바로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안 그러면 방세가 안 나오잖아.”

 

(깨달음)어떻습니까?

산다는 게 그토록 처절한 것임을 깨닫게 해 주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먹고 살아갈 생계 때문에 가짜 꿀벌을 만드는 세입자를 도와줘야 했던 형편 말입니다.

 

이 땅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모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누가 그런 크리스천을 향해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때로 비굴할 때도 있고, 거짓으로 위장할 때도 있고, 모욕과 굴욕도 참아야 할 때도 있죠.

그 스스로 진리 앞에 결단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게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함부로 정죄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마치 세리를 향해 비난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죠.

세리는 가난한 유대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둬서 일부를 로마에 내고 나머지는 자기 주머니로 착복했던 사람이죠.

그도 살아가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이 있었죠.

그래서 그가 기도할때마다 감히 주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죄인임을 자복하며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비해 세리는요?

세리는 일주일에 금식도 하고 박하와 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드리고, 모든 게 남부끄럽지 않는 떠떳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도 자기 자랑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며 기도한 그였죠.

그 때문에 그는 자기 들보는 봇지 못한 채 남의 티와 허물만을 들춰내기에 급급한 그였습니다.

 

(적용)누가 과연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세리나 창녀도 결코 잘한 게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기도하고 간구하는 그런 사람보다,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혀 자신을 과시하려는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인이지 않겠습니까?

 

 

(예화2)그렇다면 이런 크리스천이 있다면 어떨까요?

몇 해 전에 남아시아를 휩쓴 지진와 해일이 일어났을 때, 그때 그 일을 두고 하나님을 거역한 무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크리스천 말입니다.

그것도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어떻게 할까요?

 

피해를 본 그 지역은 모슬렘과 불교도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기독교를 박해한 지역었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세계 휴양지인 그곳은 사람들이 몰려와 향락과 마약을 즐기는 곳이라고 이야기를 했죠 .

바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깨달음)과연 그런 말을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 그것도 대형교회 목회자가 그런 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말이야말로 괴물로 변해버린 오만한 자의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정죄하는 말은 참된 말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무지와 완악함 앞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설교했지만 고통과 슬픔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 곁에 머물며 그들의 희망이 되고자 하셨죠.

 

(적용)어떻습니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차이 아니겠습니까?

크리스천이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들이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그릇되게 갖다 붙이는 경우입니다.

크리스천이 슬픔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희망을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경우죠.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자가 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50일만에 시내광야에 당도했죠.

이미 애굽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린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더욱이 홍해를 건너 신광야와 르비딤을 경유해 시내광야에 당도하는 50일에 걸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그들이었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심으로 하나님께서 바다의 주관자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신광야의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하늘의 주관자이심을 그들에게 알게 해주셨죠.

하나님께서 르비딤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해주심으로 하나님께서 땅의 주관자이심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체험하고 목격한 후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쌍방간에 언약식을 체결하셨죠.

이제는 애굽의 백성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아버지가 되자고 말입니다.

 

그때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하나님의 제단에 뿌렸고 절반은 백성들에게 뿌림으로서 피의 언약식을 맺었죠.

바로 그 직후에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살아갈 지침을 하나님께서 친수로 써 주신 게 십계명이었죠.

 

그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유효한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계명이죠.

세상 가운데서 죄와 사망으로 치닫는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죠.

 

(깨달음)그 계명 중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근간이 되는 계명은 나는 너희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니라.”였죠.

그 계명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 상실되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그들이 애굽의 노예와 죄악된 삶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신 게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너희에게 두지 말라는 계명이었죠.

왜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하나님 외에 그들을 사랑하는 신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내 낸 것으로 끝이 아니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난 시간에 나눈 말씀은 너희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이었습니다.

왜죠?

나무나 돌이나 쇠붙이를 깎아서 만든 그런 우상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죠.

더욱이 집을 이사하거나 차를 새로 사거나 배를 띄울 때 돼지머리를 놓고 절하는 모습도 실은 우상숭배와 같은 격이죠.

그러나 그런 세상의 우상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상이 있다고 했죠.

하나님은 나만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 우상,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일은 기필코 성공케 하신다는 하나님 우상이 그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나만을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웃도 사랑하시는 분이시죠.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일을 성공케 하셔서 세상의 증인으로 삼으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실패를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빚으시는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본문)오늘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갖다 붙이는 경우에 대한 부분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원해)이 구절 역시 부정문 무사 로우’(לֹא)가 맨 앞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니다’, ‘안된다하는 뜻이죠.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안된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된다.”하는 말씀이죠.

 

여기에서 망령되게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바’(שָׁוְא’)입니다.

그 뜻은 ()’(emptiness), ‘헛됨’(vain), ‘거짓됨’(falsehood)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른다는 뜻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된 데 같이 붙이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문성경(NIV, NLT)오용하다’(misuse)로 번역하기도 하고, 다른 영문성경은 헛되게’(vain)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깨달음)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말씀이겠습니까?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있는 동안 시내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붙이를 불에넣어 황금송아지를 만든 일이 있죠.

그 황금송아지를 일컬어 뭐라고 말합니까?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라고 부른 일이 있죠.

 

여태껏 400년간 애굽 땅에서 살아온 애굽의 습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죠.

눈에 보이는 탐욕을 황금송아지로 빚어 만들어서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이름하는 모습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는 모습이죠.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해 갈 때 엘리사가 그 뒤를 잇는 선지자가 되었죠.

그때 하늘로 승천해가는 엘리야의 겉옷이 땅에 떨어졌을 때 엘리사는 그 겉옷으로 요단강물을 쳤죠.

그러자 그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여리고 동네의 먹을 수 없는 우물물에 소금을 넣어서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일도 행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벧엘로 올라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대머리인 엘리사를 향해 대머리여 대머리여하고 놀래댄 일이 있었죠.

그때 엘리사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왕하2:24)했고, 그 일로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42명을 찢어죽인 일이 일어났죠.

 

어떻습니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할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앞날이 창창한 어린 아이들이 자신을 놀려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곰을 불러 찢어 죽게 하는 걸 기뻐하시는 분이시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남아시아를 휩쓴 해일과 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그 일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심판하신 일이라고 선포한 대형교회 목회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는 행위죠.

물론 엘리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 대나 갖다 붙이는 것임을 깨달았는지, 그 후엔 그와 같은 일은 벌이지 않죠.

 

그것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때 나이든 엘리 제사장은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했고,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죠.

그 법궤만 있으면 그 어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주실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했고, 그 법궤조차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고자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그 전쟁에 이용하려고 하는 헛된 탐욕 때문이었죠.

 

(주문)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사용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주님은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먹고 살기에 힘겨워 가짜 꿀을 만들어 파는 그 엄마를 향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

먹고 살기에 힘겨워 세리 짓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을 향해 누가 정죄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일주일에 두 번씩 금씩하고 온갖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면서도 자기 들보는 못지 못한 채 남의 티와 허물만 들춰내는 그런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사람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애굽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채 황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만든 채 그걸 하나님이라고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함이 너에게는 없느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누군가 재앙을 당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크리스천이 있는데,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게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네 삶 가운데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네 앞에 두지 말도록 해라.”

너는 세상의 우상이나 하나님 우상을 섬기지 말도록 해라.”

너는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거나 하나님 이름을 남용하거나 아무 데나 갖다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였으면 좋겠구나.”

 

(찬양)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 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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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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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미국 사람 하나가 프랑스 여행을 하다가 프랑스 시골 가게에서 목걸이 하나를 봤습니다.

그는 그 목걸이가 너무나 특이하고 재미 있어서 관심을 갖고 살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목걸이를 파는 사람은 그리 비싸지 않은 저렴한 가격으로 그에게 팔았습니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공항에서 세관 통과를 할 때 목걸이에 대한 의외의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거 비싸지도 않은 물건인데 왜 그렇게 높은 세금을 매기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세관이 하는 말은 이것은 손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가의 물건입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세금을 지불하고 나온 그는 보석상에 가서 보석 감정사에게 그 목걸이의 값어치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확대경을 가지고 한참 동안 그 목걸이를 들여다보던 감정사가 놀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 손님이 가지고 온 이 목걸이는 보통 목걸이가 아니네요

손님. 여기 좀 보시지요?”

 

그래서 그가 확대경에다 얼굴을 들이밀고 그 목걸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그런 글자가 새겨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죠세핀에게보나파르트 나폴레옹.”

 

그 목걸이는 나폴레옹이 죠세핀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습니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나폴레옹의 싸인이 그 목걸이에 새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세관은 그 목걸이의 값을 그토록 훌륭하게 쳤던 것이죠.

 

(깨달음)어떻습니까?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싸인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이 새겨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중한 작품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기대하심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토록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기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며 엉뚱한 데 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싸인이 새겨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화2)히브리 사람들이 읽는 민화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아브라함이 저녁 무렵 텐트 바깥에 나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80세가량 되는 노인이 터벅터벅 찔뚝거리면서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남루한 옷차림에 피곤한 표정으로 거지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무척 배가 고파 보였고, 얼굴은 아주 찌들은 모습이었죠.

 

80세된 노인이 아브라함에게 오더니 그렇게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보시오 주인장. 당신 장막에서 하룻밤 쉬어갈 수 있겠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흔쾌하게 허락했습니다.

그러세요. 들어오세요. 저희 장막에서 쉬어 가시죠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노인장의 발을 정성스럽게 물로 씻겨 주었습니다.

이후에 식사까지 준비해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기도를 하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노인장의 태도에 화가 난 아브라함은 그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노인장.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를 해야 하죠?”

그때 그 노인은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요? 나에게는 음식이 바로 하나님이요

 

그러자 화가 난 아브라함은 이렇게 소리치며 그 노인장을 쫓아내버렸습니다.

노인장,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도 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단 말이오

나는 노인장 같은 사람은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지 않으니, 당장 나가시오.”

 

그렇게 그 노인은 아브라함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자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말씀하셨죠.

아브라함아!”

, 하나님.”

오늘 저녁에 너희 집에 손님이 왔지

, 그랬습니다.”

왜 쫓아냈니?”

, 하나님도 보셨군요.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하나님을 모독하고 음식이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말이야 그 노인을 80년이나 참아왔는데, 너는 하루 저녁, 그 한 시간도, 참을 수 없었더나?”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자 그 노인장을 몰아부쳤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 고통당한 자 굶주린 자에게 베풀고 섬길 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자, 고통 당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그저 베풀고 나누는 것 자체를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는 일이란 바로 그와 같은 삶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내음성)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주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갖다 사용할 때가 너무나 많았네요.”

때로는 내 욕망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기도 하고, 내 이름값을 높이고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때로는 남을 정죄할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고, 세상 사람을 판단할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였어요.”

그런 나 자신의 티와 들보를 보지 못한 채 남의 허물만 들춰내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가 저 자신이었요.”

주님. 고통당한 자 억울한 일 당한 자 힘들게 사는 자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말 없이 나누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일인 줄 믿어요.”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제게 주어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찬양)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 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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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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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제물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천국가는 그날까지 인도해주실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만을 진실되게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누군가 살아보려고 애를 쓰면서 불의한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자가 되기보다 긍휼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일인 줄 믿습니다.

누군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기보다 함께 아파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일인 줄 믿습니다.

황금송아지를 새기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나그네와 같은 이들을 오른 손이 한 일 왼손이 모르게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길인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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