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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욥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욥9:1-35)

by 똑똑이채널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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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수아 사람 빌닷, 곧 아브라함과 혈족의 관계에 있는 빌닷이 욥을 공박한 내용을 살펴봤죠. 빌닷 역시 첫 토론자요 논쟁자였던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닷도 엘리바스처럼 인과응보식의 논조를 유지하고 있었죠. 아니 뗀 굴뚝에 어찌 연기가 나겠냐?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 까닭 없이 너에게 고통을 가하시겠느냐? 네게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잃고 네 몸에 악창이 들끓게 된 것, 그로 인해 네 아내까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실은 네가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했기 때문이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돌아서서 하나님을 찾으면 네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나중은 창대케 되지 않겠느냐? 하고 빌닷이 욥에게 이야기했죠.

그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왕골이 진펄 곧 부드럽고 질퍽한 땅에서 왕골이 잘 자라듯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이라는 진펄 속에 심겨 있어야만 잘 살 수 있다는 그의 주장과 같기 때문이죠.

사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직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곧 하나님의 긍휼하심 밖에 없습니다. 그런 십자가의 진펄 속에 들어가야, 그런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들어가야, 인간이 의롭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죠. 빌닷은 그렇게 기독교적인 핵심 교리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죠. 그런데도 빌닷의 논박이 욥을 고통스럽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공의만 내세웠을 뿐 하나님의 긍휼하심, 곧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보지 못했던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도 그것이었죠.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하는 그 말씀 말입니다. 욥이 고통당하고 있다면, 설령 그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우선은 그의 고통에 동정심을 품고 위로하는 게 우선시해야 할 일이죠. 그런데도 빌닷은 욥을 향해 정죄하는 자세로 욥의 심령을 후벼 파고 있는 것이었죠. 그것이 빌닷의 어리석은 모습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고 있어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빌닷에게 필요한 것은 욥을 향한 이해심 곧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욥을 품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그런 빌닷의 논박에 대해 욥이 답변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욥은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두려운 마음으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여기서 이 일’이란 8장에서 말한 빌닷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을 욥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욥도 악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임을 알고 있죠.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한 가지로 죄로 치우쳐 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만큼 우리 인간들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욥이 하는 이야기는, 그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오는 자, 곧 자신의 죄인 됨을 시인하고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자는 위로부터 새롭게 되는 날이 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13절은 하나님과 변론할 수 있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욥이 진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3절에 나오는 ‘변론’을 새번역 성경에서는 ‘논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그와 맞서볼 생각이 있다 하여도”라고 번역하고 있죠.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논쟁하거나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종종 스스로 높이는 사람,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 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자기 스스로의 지혜와 지식만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 자기 스스로의 돈과 명예만 있으면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스스로의 건강만 있으면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죠. 그처럼 스스로 잘났고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은 스스로 미련하는 길에 들어서는 길이고, 스스로 하나님의 은총과 기회를 상실케 되는 것이죠.

 

바울도 한때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잖습니까?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서 자기 스스로의 출신과 가문을 자랑했던 자였죠.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한 자로서 최고의 자기 스스로의 지식을 자랑하던 자였죠. 유대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던 자였죠. 그 정도로 바울은 자기 스스로의 것들에 대해 최고의 자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 어떻게 고백을 합니까? 빌립보서 3장 5∼8절을 통해 그렇게 고백을 하죠.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에는 자기 스스로 의롭게 여긴 것들을 모두 배설물 곧 똥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생명에 대해 참된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그러니 여태껏 자기 스스로의 것을 제일로 여기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 14∼35절은 욥이 하나님에 대해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 부분 중에 16∼20절을 새번역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비록 그분께서 내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해도,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귀기울여 들으실까? 그분께서 머리털 한 오라기만한 하찮은 일로도 나를 이렇게 짓눌러 부수시고, 나도 모를 이유로 나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시는데, 숨 돌릴 틈도 주시지 않고 쓰라림만 안겨 주시는데, 그분께서 내 간구를 들어 주실까? 강한 쪽이 그분이신데, 힘으로 겨룬다고 한들 어떻게 이기겠으며, 재판에 붙인다고 한들 누가 그분을 재판정으로 불러올 수 있겠느냐? 비록 내가 옳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내 입을 시켜서 나를 정죄하실 것이며, 비록 내가 흠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분께서 나를 틀렸다고 하실 것이다.”

또 27∼28절은 이렇습니다. 온갖 불평도 잊어버리고, 슬픈 얼굴빛을 고쳐서 애써 명랑하게 보이려고 해도, 내가 겪는 이 모든 고통이 다만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것임을 압니다.”

또 30∼33절은 이렇습니다. 비록 내가 비누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닦아도, 주님께서 나를 다시 시궁창에 처넣으시니, 내 옷인들 나를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같은 사람이기만 하여도 내가 그분께 말을 할 수 있으련만, 함께 법정에 서서 이 논쟁을 끝낼 수 있으련만,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할 사람이 없고, 하나님과 나 사이를 판결해 줄 이가 없구나!”

하나님께 항변하는 욥의 표현들입니다. 하나님께 실망감을 드러내는 모습이죠. 왠지 지금의 상황을 억지로 굴복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죠. 어떤 면에서 보면 이전에 자기 의로움을 나타내던 바울과 같은 모습이죠.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기 의로움이 다 헛되다는 것을 알았죠. 그런 것처럼 욥이 이 고난의 터널을 지나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자기 의로움이 헛되다는 걸 깨닫게 되죠.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내 요구와 하나님의 뜻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죠. 그러나 인생의 먼 뒤안길에서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머리와 지식으로 알기보다 철저한 순종과 믿음의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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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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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저희는 연약하고 무지합니다. 그런 저희를 사랑으로 품어주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는데, 저희는 앞길의 불투명 때문에 주님을 의심하고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저희의 목자이신 하나님께 인생을 의탁하며 살기 원합니다. 친히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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