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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어느 날 한 농부가 자기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습니다.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는 잡초를 뽑으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 몹쓸 잡초만 없으면 이런 고생을 안해도 되고 밭도 깨끗할 텐데!”
“하나님은 왜 이런 쓸모 없는 잡초를 많이 나게 하셨을까?”
그때 마당 한쪽 구석에 뽑힌 잡초가 농부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농부 아저씨는 우리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르고 있군요.”
“우리가 진흙 땅 속으로 뿌리를 뻗침으로 흙을 갈아주고 있는데, 우리를 다 뽑아 버리면 누가 흙을 갈아줍니까?”
“또 비가 내릴 때는 우리 잡초들이 바람이나 모래나 먼지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어요.”
“이렇게 우리는 당신을 잘 지켜 왔어요.”
“만일 우리 잡초가 없었다면 당신이 꽃을 키우려고 해도 비가 흙을 씻겨 내리게 하고, 바람이 흙을 날려서 당신을 더 곤란하게 했을 거예요.”
“그러니 꽃이 아름답게 피었을 때 우리의 공로도 좀 생각해 주었으면 해요.”
농부는 잡초의 말을 들은 후부터 마당에 있는 잡초를 소홀히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깨달음)그렇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만물 중에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블레셋,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 이방 나라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런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괴롭힐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바르게 세우기 위함이셨습니다.
(예화)들풀 7000점 표본을 만든 잡초박사가 있습니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인 강병화가 그 분입니다.
그분은 그와 같은 표본을 만들고자 36년간 전국을 누볐고 야외 현장조사만 4,900일 넘게 나갔다고 하죠.
평생 잡초를 공부한 그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다고 말을 합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그것이 잡초요 보리밭에 밀이 나면 그게 잡초가 된다고 하죠.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중심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 다 잡초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삼도 본래 잡초였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도 잡초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스스로를 불행의 감옥에 가둘 필요가 없는 것이죠.
(깨달음)마귀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마귀 사탄이 기웃거리지 않을까요?
두 가지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경탄하는 마음입니다.
그토록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봄비가 살랑살랑 내릴 때 내 마음도 괜히 좋아히고 ‘와 봄이 왔구나’ 경탄하는 마음 속에 사탄이 자리할 수가 없다 것입니다.
놀라운 자연 풍경이나 설경이나 순진무구한 갓난 아이를 보고 경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굳어버린 마음에는 사탄이 쉽게 침투한다는 것이죠.
사탄이 자리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하며 사는 마음입니다.
내 인생이 비록 잡초 같을지라도, 가시 같은 문제가 산적해 있을지라도, 내 자식의 미래를 보면 답답해 보여도, 그래도 자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신앙인에게는 사탄이 기웃거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들풀로 가득 차 있는데 유독 산삼이 있어서 그걸 잡초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감사의 마음이요 사탄이 자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용)하나님은 잡초 같은 인생속에서도 얼마든지 당신의 역사를 써나가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추운 겨울의 설경을 보고 감탄하고 봄비를 보고 감탄하는 모든 상황 속에 감사하며 사는 인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시는 분인줄 믿습니다.
내 삶의 환경과 토양이 비록 잡초 같고 가시 같은 문제로 가득 차 있어도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인생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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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그 언약을 기억하셔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 해방의 지도자로 삼고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죠.
본래 모세는 애굽의 파라오가 모든 히브리의 사내 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하던 시절에 태어났죠.
히브리 산파들은 파라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경외하는 이들이라 사내 아이들이 태어나도 죽일 수가 없었죠.
바로 그런 시절에 모세가 태어났고 모세의 엄마 요게벳과 아버지 아므람은 집에서 숨소리를 죽이며 키웠죠.
하지만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가 없어서 결단을 하죠.
이집트의 나일강에 아이가 떠밀려가도록 갈대상자에 역청을 발라 그 속에 넣고 나일강에 놔뒀죠.
때마침 파라오의 공주가 그곳에 시녀들을 데리고 목욕하러 왔고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갈대상자에서 꺼냈죠.
그때부터 자기 양아들로 키운 공주였는데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으로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죠.
물론 궁중에 데리고 가려고 할 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유모를 소개해줬고 그 유모가 바로 모세의 친어머니 요게벳이었죠.
그렇게 궁중에서 모세가 40년을 살아가면서 애굽의 정치문화경제 그 모든 것을 배웠고 군사학까지 다 습득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히브리 민족임을 교육받았습니다.
어느날 애굽 병사가 동족 히브리인을 못살 게 굴자 모세가 때려 죽이고 모레에 묻어버렸죠.
다음날은 동족끼리 다투고 있을 때 그 일을 중재하려고 모세가 나설 대 전날 행한 일들이 다 탄로났고 곧바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서 이드로를 만났고 빈털털이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딸 십보라와 결혼했고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낳게 되었죠.
그렇게 미디안의 양치기로 40년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이 어디입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산 호렙’ 일명 호렙산이었습니다.
‘호렙’이란 ‘호레브’(חָרַב)로 ‘광야’(desert)라고 했습니다.
그 원형동사 ‘하라브’(חָרַב)는 ‘황폐하다’ ‘말랐다’ ‘끝났다’는 뜻이라고 했죠.
호렙산은 그야말로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허허벌판이요 벌거숭이 산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할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그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무리 봐도 평범하고 다른 산처럼 돌로 가득찬 황무지라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후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 40일간 머물면서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받고 내려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세가 더디 내려오자 황금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우상을 만든 일이 있었죠.
그때 하나님께서 그 주동자를 칼로 처단토록 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도록 했는데 레위 지파가 나서서 헌신했습니다(출32:26-28).
바로 그 칼이 히브리어로 ‘헤레브’(חֶרֶב)요 호레브의 원형동사 ‘하라브’와 똑같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새롭게 헌신할 때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산’이 된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호렙산이 시내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말 ‘시내산’의 ‘시내’는 히브리어로 ‘시나이’(סִינַי)로 ‘가시’(thorny)를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 모세의 인생도 가시 같은 상황이요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도 가시 같은 문제로 가득찬 상황을 빗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일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며 순종할 때 그곳이 하나님의 산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깨달음)그렇기에 삶의 환경이 황무지와 같고, 가시 같은 난제들로 가득차 있어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산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고 일하는 현장이 그 어떤 곳이든 간에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자 순종하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산이 되는 줄 믿습니다.
내가 목포 유달산 노적봉에 있을지라도 일등바위에 있을지라도, 내가 그 어떤 곳에 있을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자 한다면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이 처소 곳곳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산으로 모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말씀은 본문 2절인데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3:2)
(원해)우리말 ‘떨기나무’는 히브리어로 ‘스네’(סְנֶה)입니다.
신명기 33장 16절에서는 ‘가시 떨기나무’로 기록돼 있습니다.
상형문자인 그 단어의 히브리어를 파자하면 ‘가시 씨앗’입니다.
작고 날카로운 촉이 있는 씨앗은 사람들이 꺼리기가 쉽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잡초같이 보잘 것 없는 게 떨기나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인생 속에 친히 찾아오신 것이죠.
(깨달음)그 하나님을 ‘히브리인의 하나님’(창5:3)이라고 소개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עִבְרִי)란 말이 ‘떠돌이 민초’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변방을 지나 강을 건너 온 것입니다.
그것이 떠돌이 인생입니다.
애굽의 고센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양을 치는 족속이라 냄새가 났고 그 까닭에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싫어해서 애굽의 변방 고센에 살도록 한 것입니다.
누가 냄새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요 그것이 떠돌이 유목민의 특성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잡초 같이 미미한 그들의 인생(신7:7, 고전1:27)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쓰신 분입니다.
그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 천하에 입증해 보여주셨고 그 민족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민족을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셨고 그 민족을 통해 지금도 세계사 속에 모든 경제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말 구유통에 태어나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죠.
로마 황제가 천하를 호령하던 그 때에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 통에 태어나셨습니다.
모두가 로마를 주목하고 모두가 예루살렘과 헤롯의 황실을 주목할 뿐 그 누구도 베들레헴 땅 말 구유통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작고 초라한 말 구유통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의 역사를 써 내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적용)우리의 삶도 실은 잡초요 지렁이같은 야곱이요 보잘 것 없이 작고 미미한 존재들 아닙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찾아오시면 모세를 통해 새롭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하시듯이 얼마든지 우리 인생도 새롭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까?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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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은혜)주님께서는 잡초 같은 인생이요 가시 같은 인생이라도 얼마든지 주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사용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잡초가 있어서 바람과 모래와 먼지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해주고 잡초가 있어서 꽃을 키워내는 것 아니겠느냐?”
“인생이 잡초 같고 가시 같은 문제가 있어도 늘 경탄하고 감사하며 산다면 어찌 사탄이 그 속에 자리잡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잡초같이 미미한 이스라엘 민족, 고센 땅에 냄새나는 그들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써내려가신 분 아니더냐?”
“잡초 같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입증해 보여주셨고 그들을 통해 새 역사를 보여주지 않았더냐?”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도 잡초 같은 그를 통해 새 역사를 써내려신 것 아니었더냐?”
“작고 보잘 것 없는 말 구유통에 태어나신 예수님도 인류를 구원하시는 영생의 역사를 써내려가셨듯이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떨기나무가 밤에 내리는 이슬로 기운을 얻어 살듯이 그 연약한 나무가 모세요 이스라엘 백성의 인생이지 않겠느냐?”
“그야말로 이집트의 파라오 눈에는 모세의 인생도 이스라엘 백성의 인생도 변방에 냄새나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떨기나무 같은 그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지 않았더냐?”
“언제 타버릴지, 언제 사라질지 모를 잡초같은 인생이라도, 하나님께 붙들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구원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게 하지 않겠느냐?”
“너의 구주 예수님께서도 비록 말구유통에 잡초 같은 모습으로 태어났어도 너를 구원하신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듯이 말이다.”
“그 주님이 잡초 같은 네 인생에 찾아오시고 너를 만나주시고 네 영혼을 깨우면 얼마든지 너를 통해 새 역사를 써나가지 않겠느냐?”
(찬양)언제나 내 모습 너무나 부끄러워
무릎으로 주님께 기도로 가오니
나 홀로 서 있는 죽은 내 영 깨우사
주님만 나를 세워 내 영 살게 하소서
주님 내 안에 주님 내 안에 내 안에 계시고
주님 내 안에 주님 내 안에 나를 세워 주소서
(예화)공주대학교 음악대학 백기현 교수가 있습니다.
그 분은 성악가이면서 오페라 단장입니다.
1998년도에 오페라 ‘이순신’을 제작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끼친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2살 때 높은 데서 떨어져서 척추를 다쳤고 곱사등이 된 분입니다.
얼마나 많은 열등감 속에서 세상을 한탄하며 살았겠습니까?
늘 자기 등을 사람들이 볼까 봐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했고 숨어있기를 좋아했고 소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 열등감을 떨쳐버릴 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악을 전공해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7살엔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사이에 ‘이순신’ 오페라 공연을 했는데 너무나 잘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까지 가서 공연을 하는데 도리어 13억의 빚을 지고 낙심에 빠졌습니다.
그때 목숨을 끊으려고 주변정리를 하는데 2005년 2월 4일에 아내가 부흥회 간다고 해서 같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55살 때였죠.
그런데 그 부흥회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찾아와주셨고 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무언가 툭 터져버린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성령님의 음성도 듣게 되었습니다.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굽은 등을 폈다”
그때부터 그의 몸은 불같은 성령님에 이끌려 비틀대는 현상이 계속됐고 5일간 성령님이 더 뜨겁게 그분의 등을 만졌습니다.
새벽 6시 눈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보니 그의 굽은 등이 완전히 펴진 걸 알게 됐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된 것입니까?
2살 때 높은 데서 떨어져서 척추를 다쳤고 곱사등이 된 그분의 인생은 누가봐도 쓸모 없는 떨기나무 같은 인생이지 않았겠습니까?
누가 봐도 가시 같고 잡초 같은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생에게도 찾아와 성령의 불로 치료하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같은 내 인생에도, 잡초 같은 내 인생에도 친히 찾아와 만져주시고 새롭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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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2)미국 메릴랜드 주의 존스 홉킨스 의대는 세계최고의 의료시설을 바탕으로 명의를 많이 배출하는 명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1980년대 신경외과 전문의였던 벤 카슨은 최고의 명의로 꼽힙니다.
그는 1987년에 몸이 붙은 삼쌍둥이를 분리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20시간이 넘는 집도 끝에 수술에 성공한 벤 카슨을 당시 언론에서는 ‘기적의 손’이라고 부르며 칭송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카슨은 ‘기적의 손’을 가진 의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벤 카슨이 나중에 자서전을 낼 때도 사람들은 책 제목을 ‘기적의 손’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서전의 제목은 ‘선물 받은 손’이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에 대해서 카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이 기적의 손이라고 부르는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손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기적의 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깨달음)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비록 내 삶이 모세처럼 가시 같고 잡초 같은 인생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양을 치는 냄새나는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인생을 살면 기적이 손이 되게 하신다는 것 말입니다.
내 인생은 떨기나무요 잡초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손이 임하면 얼마든지 기적의 손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백기현 교수도 2살 때 척추를 다쳐 곱사등으로 우울한 생을 살았지만 55살 때 성령의 불을 보내서 치유케 해 주셨습니다”
“존스 홉킨스의 벤 카슨 교수가 1987년 삼쌍둥이를 분리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하여 기적의 손이라 불렸지만 그는 하나님께 선물받은 손이라고 했습니다.”
“내 삶이 떨기나무 같고 내 자녀의 환경이 잡초 같을지라도 성령이 불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손에 불들리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탓하기보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경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게 하시고 모든 상황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게 해 주세요.”
“하나님은 1987년에만 2005년에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잡초 같은 내 인생에 친히 역사하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나 약해 있을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시고
나 소망 잃을 때에도 주님은 내게 오시네
나 시험당할 때에도 주님이 지켜주시고
나 실망당할 때에도 주님이 위로하시네
주님만이 내 힘이시며 오 주님만이 날 도우시네
오 나의 주님 내 아버지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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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떨기나무같은 내 인생도 잡초 같은 내 인생에도 얼마든지 역사하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애굽의 고센 땅에 냄새나는 인생을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고 미미할지라도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민족으로 삼으셨습니다.
물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모세요 광야에서 빈털터리로 양치기로 전락한 모세를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새로운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50년 넘게 곱추로 살아온 백기현 교수도 주님께서 만져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고 벤 카슨 교수도 하나님께 선물받은 손으로 쓰임받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성령님이 임하고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고 능력이 임할 때 얼마든지 하나님의 손길에 붙들리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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