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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1절 이후의 내용은 사도직의 본질적 목적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데 있음을 밝혔죠. 오늘 읽은 말씀은 그 전체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끝마치고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바나바와 다투었는데, 두 팀으로 갈라졌죠. 또 뜻하지 않게 유럽대륙의 문을 열어주셔서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데살로니가로, 뵈레아로, 아네테로, 그리고 고린도까지 와서 1년 6개월간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죠,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죠. 그런데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3년간 체류하면서 고린도교회에 좋지 못한 문제를 접하고 바울이 방문했지만 해결이 안 됐고, 돌아와서 첫 번째 편지를 썼지만 그도 해결이 안 됐죠. 대신 그들이 써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하는데 먼저 디모데를 보냈고 그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보냈는데 둘 다 해결이 안 됐죠. 바울이 그래서 두 번째 전격 방문을 했는데 그도 해결이 안 됐죠. 이제 세 번째 편지를 디도 편으로 보냈는데, 그가 오지 않죠. 바울이 직접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갔죠. 그때까지도 바울의 심령은 침울한 바닥상태였죠. 그것이 고린도후서 7장 5절의 말씀이었죠. 바울 같이 위대한 사도도 마음과 몸이 편치 못했고, 내적인 초조와 불안 속에 사로잡혔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디도가 오면서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해결됐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바울의 심령이 어떻게 됩니까?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바울의 심령에 기쁨과 위로가 부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하고 밝혔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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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문 8절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디도를 만나는 순간에, 고린도교회가 바로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왜 예전에 사도 바울이 내적불안과 초조를 갖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을 때에도, 또 디모데를 보냈을 때도 효과가 없었는데, 오히려 내가 디도 편으로 써 보낸 글로 더 문제가 커진 것은 아니었는지, 그때는 그것 때문에 후회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때는 디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혹시 내가 잘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후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8절 하반절에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그 편지로 인해 고린도교회 교우들이 실족한 게 아니라 나아졌다는 것이죠. 그만큼 그때 했던 후회는 이제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바울의 근심의 편지를 받고, 비로소 고린도교회 교우들이 회개하게 됐다는 뜻입니다. ‘회개’란 ‘메타노이아’인데 ‘가던 길을 돌아선다’는 뜻이죠. 길을 바꾸는 것, 손에 들었던 걸 놓는 것이죠. 자백은 입으로 하지만 회개는 행동을 수반합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행위 말이죠.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고 행동까지 고쳐먹은 것이었습니다.
9절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자신들의 삶과 행위를 뒤돌아보는 근심이죠. 바울의 그 편지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들을 비췄더니, 형편없는 실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근심이죠. 내가 이렇게 살고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죠. 그래서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비추고 돌아서서 나아가는 자가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이란 하나님이 없는 근심, 신앙과 무관한 근심이죠. 그것은 결국 절망, 좌절, 분노, 증오심, 불안, 초조로 몰아넣고, 끝나버리는 것이죠.
11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간절하게’하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것을 수식하는 부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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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첫째로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변증하다’는 ‘아폴로기아’(ἀπολογία)는 하나님 앞에서 변명한다는 뜻이 아니라 잘못한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얼마나 분하게 하며. ‘분하다’는 것은 의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한 것, 내가 20년을 살았어도 고작 이것 밖에 안 되는 것인가, 매일 매일 나에게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주셨음에도 내 정욕만을 위해서 쓰는가, 하는 의분을 말하는 것이죠. 셋째로 얼마나 두렵게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빠졌을 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거룩한 근심에 빠져서 두려움을 회복했을 때 하나님의 참된 사모함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 공의의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사모함을 주신다는 뜻이죠. 다섯째로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그 사모함을 알면 열심히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공로가 아니라 그 분의 공로죠. 여섯째로 얼마니 벌하게 하였는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잘못한 것에 대해 치리하고 징계했다는 것이죠. 그것은 상대를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세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거룩한 근심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신앙고백, 하나님 앞에서 의분, 사모, 열심, 스스로 자기 자신을 세우는 치리가 회복됐다는 것입니다.
11절의 마지막 부분에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런 과정을 통해 성결로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케 된다는 것은 일대일의 동등이 아니라 피조물이 제위치를 찾는 것이라고 했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새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 말입니다.
12절에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것은 1차적으로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 2차적으로는 그들에게 흔들려 교회를 흔들었던 사람들인데, 그들을 꾸짖거나 불의를 당한 자를 변호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너희들이 품고 있는 순수함, 그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열매로 너희들 앞에 되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이제는 이 편지를 쓴 목적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로 서게 되었고, 서로 하나님 앞에서 화목하기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만약에 디도가 갔는데도 고린도교회 교우들이 회개하지 않고 몰매를 맞고 왔다면 부끄러운 일이었겠지만, 이제는 다 회개하고 화목하게 됐으니, 자랑할 만하고 참되다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심정’이란 ‘애정’, ‘긍휼’을 뜻하는 말입니다. 디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애정을 갖고 나아갔는데, 오히려 그들이 디도를 긍휼로 받아주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애정이기도 하죠.
결론입니다.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바울의 기쁨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성공하거나 출세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신뢰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범사에 말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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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근심, 신령한 번민을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날로 바르게 세워가는 은혜를 덧입길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도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급이 있겠는가, 내가 이렇게 살고도 뿌린 대로 거둘 수 있겠는가, 하는 번민과 고민들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매일 성화를 이루는 은혜안에 거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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