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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고린도후서

자신을 깨끗하게(고후6:14-7:1)

by 똑똑이채널 202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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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1절부터 사도 바울은 자신이 부여받은 사도직의 본질적 목적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 고린도후서 6장 3-13절까지를 통해 바울은, 화목케 하는 그 직무를 담당키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헌신하는 자세로 살아왔는지를 설명해 주었죠. 9가지 실례를 밝히면서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또 9가지 덕목으로 지켜온 것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밝힌 것은 너희들이 나를 비록 음해하고 모함할지라도 나도 똑같이 옹색한 자로 대응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서 너희들을 자녀로서 품고자 하는 까닭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너희들도 ‘마음을 넓히라’하고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라면 그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활짝 열라는 뜻이었죠.

 

그런데 오늘 읽은 14절 말씀은 우리를 굉장히 당혹스럽게 하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3절에서는 마음을 열라고 했는데,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닫아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비판하고 성경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 구절이 좋은 빌미거리가 되는 것이죠.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순인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겠느냐고 공격을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13절과 14절에서 전혀 모순된 내용일까요? 우리의 입장, 곧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이 말이 모순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바울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일례로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지 않습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에서 소극적인 사랑과 적극적인 사랑이 있다고 했죠. 그런데 가족공동체 안에서 알콜 중독자가 행패를 부린다면, 일터와 직장에서 불한당이 찾아와 동료를 괴롭힌다면, 적군이 쳐들어와 민간인을 살상하고 부녀자들을 괴롭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해야 한다면서 무릎꿇고 기도만 해야 할까요? 그게 사랑일까요? 그때는 모든 힘을 써서 불의한 자와 적군을 격퇴시켜야 하죠.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과 멍에를 메지 말고 빛과 어둠이 사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바울과의 관계로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고린도교회 사람들의 수준은 고린도전서 3장 1-2절을 통해 젖을 먹는 수준이었죠. 그런 그들을 향해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3절을 통해 자녀에게 하듯이 내가 너희들에게 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을 했죠. 그런데 신앙의 초보수준에 있는 사람, 곧 입문단계에 있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행여라도 자기 말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할까봐, 지금 고린도후서 6장 14절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이것은 신명기 22장 10절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너는 소와 나귀를 결이 하여 갈지 말라.” 이른바 ‘한 멍에를 매지 말라는 뜻이죠. 소 한 마리와 나귀 한 마리는 같이 멍에를 매고 밭을 갈 수 없기 때문이죠. 이것은 믿지 않는 자와 밥도 같이 먹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멍에를 매지 말라’는 것은 인생의 동역자로 삼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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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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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뜻을 전하는 것입니까? 2천 년 전 고린도는 그리스 도시 중에 가장 타락한 도시였죠. 그래서 고린도교회 내에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행음한 자가 있었죠. 그런 자는 몸은 예배당 안에 있지만 그 삶은 예배당 밖의 사람들과 똑같은 것이죠. 바로 그런 자들과 멍에를 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부연설명합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또 15-16절 상반절에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여기에서 ‘벨리알’은 ‘무가치함’ 곧 ‘악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사탄’으로 통칭됩니다. 빛과 어둠이, 그리스도와 사탄이 어찌 심포니 곧 교양곡을 연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리스도와 사탄이 한 무대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심포니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본문에서 사용한 단어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며’, ‘사귀며’, ‘조화되며’, ‘상관하며’, ‘일치가 되리요.’ 이 말들은 상종치 말라는 게 아니라 동역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마태복음 18장 15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믿는 자가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잘못을 저지르면, 아무도 모르게 가서 일대일로 앉아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라고 하죠. 상대가 않 듣는다면 증인을 데려가서 이야기하고, 그런데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 성도들이 가서 이야기하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같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교회에도 발도 붙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동역자’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좇던 사람이 이방인과 세리처럼 변해버렸는데, 어떻게 함께 믿고 맡기는 동역자가 될 수 있겠느냐는 뜻이죠.

본문 16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뇨?”하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기념관이거나 유적박물관이란 뜻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내 속에 들어와 계신 것이죠. 그것은 내 의지나 능력이나 의로운 해동으로 인함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어 주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행적인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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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에 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므로’ 곧 나를 택해주시고, 당신의 자녀 삼아주셨고, 성전 삼아주셨기에, 그러므로 ‘따로 있고’가 중요하죠. ‘아포리조’(ἀφορίζω)는 ‘선을 긋는다’는 의미입니다. 선을 그어서 구별한다는 것이죠. 택해주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성전 삼아주셨다면, 이제는 믿지 않는 세상과 선을 긋고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17절 하반절에서 18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바울은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하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기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고, 또 하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7장 1절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 약속’이 무입니까? 16절 하반절에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는 것이죠. 또 18절에서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곧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삼가야 될 것을 삼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마음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자는 것이죠. 우리의 안팎을 성결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전된 너희가 믿지 않는 자, 곧 벨리알, 그 사탄과 어찌 함께 멍에를 멜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만큼 복음은 전하되 선은 지키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에덴동산의 울타리와 같은 격입니다. 에덴동산은 그냥 뜰이 아니고 울타리가 쳐진 뜰입니다. 울타리가 없으면 에덴이 될 수가 없는 것이죠. 그 선을 구별할 때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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