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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2:1-6)

by 똑똑이채널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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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회개하는 모습. 출처 https://www.pilgrimlc.org/sermons/2018-02-21/snapshots-of-repentance-job

 

(설교열기)(성화)엊그제 새벽기도회때 역대기에 들어갔지만, 그 전까지 열왕기하서를 읽었죠.

우리교회에 부임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 번을 읽었고, 두 번째 그렇게 하고 있는 셈이죠.

 

열왕기하서는 열왕기상 12장부터 쭉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최초 이스라엘의 왕은 사울이었는데, 그 뒤에 2년간 내전을 겪은 후에 다윗이 왕이 되었죠.

그 뒤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는데, 왕이 될 때만 헤도 일천마리 번제를 드릴 정도로 겸손한 솔로몬이었죠.

하지만 중간에 타락했고, 통일왕국 이스라엘은 그의 사후에 남과 북으로 나뉘였죠.

그때가 B.C.931년이었죠.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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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으로부터 마지막 19번째 호세아까지 하나님께 등을 돌렸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요나,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 회개토록 했죠.

하지만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아버렸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제국을 통해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했죠.

그때가 B.C.722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패망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보면서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잠시 종교개혁을 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욕망을 갈아엎진 못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요엘, 이사야, 미가, 나훔, 스바냐, 하박국, 오바다, 예레미야 선지를 보냈죠.

하지만 그들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온갖 우상숭배자들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B.C.586년 바벨론 제국을 들어 남왕국 유다를 진멸케 했죠.

 

그때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 비참한 상태를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탄식이 있습니다.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예레미야애가2:10)

그 당시 힘없는 어른들이 유다 땅에서 티끌을 뒤집어쓰고 베옷을 입고 고개를 떨군 것입니다.

왜요?

우리나라가 완전 끝장나버렸구나, 이제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떵떵거렸던 그들 아닙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이죠.

 

(적용)그것은 모세도 마찬가지 아니였습니까?

모세는 물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의 딸이 왕궁에서 키웠죠.

그로부터 40년간 애굽의 정치종교문화철학군사력까지 다 마스터했죠.

그렇게 모세는 최고 권력의 정점에 섰는데,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민족을 돌본다는 생각으로 애굽 병사를 쳐죽였는데, 그것이 다음날 탄로가 났죠.

그로자 모세는 그 즉시 애굽 궁궐을 빠져나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야 했죠.

애굽의 최정점에 서있던 그가 한순간 추락해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가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야말로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을 절감하지 않았겠습니까?

 

(예화)이중표 목사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천국으로 떠났지만, 한국기독교장로회 곧 기장측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섬긴 분이셨죠.

1938829일에 태어난 그분은 스스로 한일합방국치일에 태어났다고 말한 분입니다.

 

어렸을 적 너무나 가난해 초중고 12년 동안 한 번도 도시락을 싸 가본 적이 없었죠.

배가 고프면 우물가로 달려가 물로 배를 채운 후 잔디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살았죠.

그런데 한창 나이인 18살 때 그만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맙니다.

피를 토하며 쓰러져 폐병 3기를 받았는데, 3-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죽어야 하나, 온갖 절망감이 밀려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의 무가치함에 빠져 있을 때, 그때 친구 하나가 찾아와 말하죠.

상서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데. 혹시 아냐. 네 병이 나을지?”

그 말을 듣고 가을 찬바람을 맞으며 4km 떨어진 상서교회로 나갔습니다.

부흥회 때 하나님, 하나님을 잘 모르지만, 살려만 주신다면 믿겠습니다.”하고 고백했죠.

물론 부흥회 당시에는 어떤 역사도 안 일어났지만, 그로부터 6개월간 새벽기도회를 쫓아다녔죠.

그런데 어느날 뚫렸던 폐의 구멍이 막혔고 각혈도 그때부터 멈춰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으니, 그때 그가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 이 쓸모 없는 자. 티끌과 재같은 자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구나.“

, 하나님의 은혜란 이런 것이구나.”

 

(찬양)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적용)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건강하고 내가 뭔가를 부여잡고 살 때는 그게 내 능력인 것마냥 교만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갑자기 건강이 안 좋거나, 계획한 일이 틀어지면,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하죠.

더욱이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데 힘든 고통에 처한다면 연약해지는 우리 자신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겠습니까?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끌려갈 때 그들 스스로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말입니다.

모세가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는 것 말입니다.

폐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절망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중표 목사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욥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욥은 고대 동방의 우스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죠.

아들 일곱에 딸 셋을 둔 아버지요, 7천마리, 낙타 3천마리, 1천마리, 암나귀 500마리를 두고 종들도 많이 거느렸죠.

자기 생일날이면 여동생 셋을 불러, 온 가족들이 잔치를 벌였고, 잔치가 끝나면 자기 자식들 수대로 번제를 드렸던 그죠.

 

그런 그를 시샘하기라도 하듯, 천상의 어전회의를 하고 있는 하나님께, 사탄이 욥을 고발하죠.

하나님, 괜히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 아십니까?”

그에게 온갖 부귀영화를 주셔서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사단은 시험을 해 보겠다고 했죠.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은 욥의 재산, 소유물, 종들, 그의 자식들까지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때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로다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죠.

 

그러자 사단이 또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이번에는 그의 몸을 쳐 보겠다고 하죠.

그래서 하나님께 허락을 받은 사단이 욥에게 악창이 들끓는 고통을 가져다주죠.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죠.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를 받은 것도 당연하지 않겠소.했죠.

그때 그의 세 명의 친구들이 와서 욥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7일간 함께 지냈죠.

 

그토록 신앙 중심을 잘 잡던 욥이 3장에 넘어가면서 자기 생일을 부정하고 살아 있는 것 자체를 저주하게 되죠.

왜 그렇게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너무나도 가혹하고, 그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면 고통이 이해가 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더욱 괴로워한 것이었죠.

 

그렇게 자기 의로움, 자기 자아의 완벽함을 주장할 때, 그 세 명의 친구들이 공박을 벌입니다.

그때마다 욥은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며, 그 친구들의 공박을 자기 논리로 맞받아치죠.

그들이 욥을 당해내지 못할 때, 또 한 명의 후배 엘리바스가 찾아와 욥을 공박하죠.

 

그런데 그런 과정 속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고백을 한 모습이 나옵니다.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 구나.”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30:17-19)

 

무슨 고백인지 이해가 되시지 않습니까?

자신의 예전 모습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어서, 도저히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티끌과 재처럼 만들어버린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가치하고 쓸모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38장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66가지나 되는 질문을 41장까지 이어나가셨습니다.

그때 욥이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고백을 하는데, 지난 4주간 동안 살펴본 본문이 그것이죠.

 

그래서 깨달은 게 무엇이었습니까?

알 수 없는 고통이 내게 찾아올 때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내 아둔한 머리로 쉽게 판단하려 한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고통의 상황에 주님의 임재속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해석하게 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고백인데, 본문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기도할 때, 그때서야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왜 자신에게 그런 고통과 괴로움이 일어나게 됐는지, 그때서야 자기 머리로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여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그것 자체가 자아의 교만인 것을 깨달은 거죠.

남들보기에는 상대적인 의로움이 될지 모르지만,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내세울만한 게 못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어떤 인간도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자기 머리로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의로움, 자기 자아와 교만을 거두어드리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한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원어해설) 여기에 티끌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파르’(עָפַר)인데, 그 뜻은 먼지’(dust)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땅의 흙으로(2:7) 지으셨다고 할 때 바로 흙이 아파르, 정확하게는 먼지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먼지와 같이 무가치한 존재였다는데,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살 수 있는 존재, 가치 있는 존재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소돔 성읍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 그렇게 기도했죠.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18:27)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티끌과 먼지와 같은 존재라며 겸손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티끌먼지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 110회 쓰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궁을 빠져나갈 때 사울가의 한 사람이 그렇게 표현하죠.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삼하16:13)

 

시므이라는 사울 왕가의 친척이 그렇게 다윗에게 저주하고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린 것이죠.

그만큼 다윗은 이제 끝장났다는 것닙니다.

이스라엘에서 더 이상 쓸모 없는 자요, 무가치한 자라는 뜻입니다.

 

(원어해설2) 그런데 티끌이라는 표현과 함께 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아파르’(אֵפֶר)로서 방금 말씀드린 티끌과 첫 글자만 다를 뿐 같죠.

이 단어 역시 인간의 무가치함’, ‘인간의 쓸모없음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중보기도할 때 자신의 무가치함을 표현한 단어가 티끌였죠.

그 중에 는 고통과 환란을 겪을 때, 재를 뒤짚어 쓰고 회개할 때 쓰인 단어이기도 합니다.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할 때 바벨론에서 유다 민족이 포로생활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2인자 하만이 유다 민족을 몰살시키려고 했는데, 그때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이 재를 뒤집어 쓰고(4:1,3) 기도한 모습이 있었죠.

그것은 다말도 그랬고(삼하13:19), 다니엘도 그렇게 했습니다(9:3).

예수님의 고난을 기리는 사순절 첫날이 수요일에 시작되는데, 그 날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욥이 하나님 앞에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합니다하고 고백한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자기 의로움, 자기 자아, 자기 교만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고백이죠.

자기보다 율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그것조차 내세울 게 못 된다는 걸 깨달았다는 고백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온전히 설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한 것입니다.

 

(주문)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 주님은 우리가 티끌이요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자각케 하셔서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닥칠 때 너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남들보다 의롭고 정직하게 산 욥에게 그런 고통이 닥쳤는데, 너는 이해할 수 있겠느냐?”

최정점에 서 있던 모세를 미디안 광야의 빈털터리 양치기로 내 모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세가 그때 이해했겠느냐?”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때 그들이 이해했겠느냐?”

이중표 목사가 18살에 폐병 3기로 몇 개월 못 산다고 할 때 그때 그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겠느냐?”

 

하지만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의 임재 앞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는 달라지지 않았더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고통과 고난도 주님의 임재 앞에서 욥이 이해하고 해석하지 않았더냐?”

자신의 의로움, 자기 자아, 자기 교만을 꺾으셔서 더욱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시려는 그 은혜말이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 빈털터리로 내 몰았을 때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하셔서 다시금 세워주지 않았더냐?”

이중표 목사도 그런 죽음의 무기력 앞에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삶을 살게 되지 않았더냐?”

욥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이 티끌과 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더 큰 주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느냐?”

주님은 너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서 새로운 회복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양)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실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오직 예수 뿐이네

 

(예화) 폐병 3기에서 주님의 은혜로 살게 된 이중표 목사님이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 후 전봉준의 동학혁명발상지 고부교회에 부임을 했는데 성도들이 많지 않았죠.

그런데 그 교회에 정 집사님이란 분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합니다.

그분은 불신가정에 시집을 왔고, 시아버지는 사사건건 며느리를 못마땅해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닌다고 손찌검까지 한 분이었죠.

그런데도 정 집사님은 매를 맞으며 교회에 다녔고 목사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시아버지가 노인정을 다녀오다가 중풍을 맞고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그때 정 집사는 더욱더 정성스럽게 시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 뒤에는 그 시아버지가 치매로 대소변까지 못 가렸다고 하죠.

그러니 벽에 똥칠을 하고 여기저기 소변을 봐놓기가 일쑤였고, 방 안이 똥 냄새로 진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 집사는 일단 학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 무엇보다도 시아버지의 방문 앞에서 무릎부터 꿇었다고 하죠.

온갖 악취가 진동하는 그 앞에서 5분간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이중표 목사님처럼,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주님. 이 여종을 별세시켜 주옵소서 별세시켜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나면 똥오줌 악취도 신기하게 장미 향기로 변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자기 자신을 구박하던 그 시아버지도 불쌍한 마음이 들고 사랑스럽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널린 똥오줌을 불평하지 않고 청소하면서 정성을 다해 시아버지 병수발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이중표 목사님이 앉아 있는데, 그 정 집사님 남편이 그 목사님에게 다가오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정말로 존경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뜬금없는 그 말에 이중표 목사님은 내심 자신을 존중한다고 한 줄 알고, “, 하며 하며 기다렸습니다.

목사님 저는 별세의 사람을 한 사람 알고 있는 데요. 그 사람에게 절을 하고 싶어요.”

별세라는 그 말에 이중표 목사는 더욱 기가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여태껏 자신이 외치고 가르쳤던 바로 그 별세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죠.

 

목사님. 제 집사람 정 집사는요. 정말 별세의 사람이에요. 저는 그 사람에게 절을 하고 싶습니다.”

그때서야 그간의 사정을 다 알게 된 것이죠.

시집살이를 하면서 얼마나 눈물과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아내였는지,

치매로 똥오줌 싼 시아버지의 방을 온갖 정성을 다해 섬긴 그 아내야 말로,

별세의 삶을 산 산 증인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이중표 목사님도 그 남편과 함께 정 집사를 향해 절을 하려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는 목사님과 자기 남편이 절을 한다는 사실 앞에 겸손하게 그 자리를 떴다고 하죠.

 

(깨달음) 어떻게 그 집사님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겠습니까?

이중표 목사님이 늘 설교를 통해 우리는 별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하고 강조했기 때문이죠.

그때마다 그 집사님의 심령에 나는 티끌이요 먼지와 같은 존재다.”하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온갖 구박받고 손지껌을 당해도, 치매로 똥오줌을 싸 대도,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그 모든 삶을 별세하며 산 것이었죠.

 

(예화2)그 후 이중표 목사님이 고부교회에서 옥구교회로 부임했습니다.

그 교회는 교인들이 두 패로 나뉘어 있어서, 몇 달간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했죠.

그때 주님의 은혜로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권사님은 60세가 넘으셨는데, 목사님의 말씀에 늘 은혜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권사님은 목사님 심방 때 따라다녔고, 점심 도시락까지 싸오시는 분이었죠.

그 분이 폐렴으로 군산 딸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죠.

딸 한테 교회에 봐야겠다고 할 때, 딸이 택시비를 줬는데, 그 돈으로 피로회복제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8km를 걸어서 목사님께 드렸는데, 피 같은 그 음료수를 마실 수 업어서 강단에 엎드려 기도를 했죠.

 

그때 주님의 음성이 그렇게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 마셔라. 너는 성도의 피를 마시고 사는 자다.”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이 바로 피의 헌금이 아니더냐?”

성도들이 네게 주는 것은 모두 자기 피를 말려서 주는 것이다.”

마셔라. 너는 성도의 피를 마시고 사는 사람이다.”

 

그 음성을 듣고서, 이중표 목사님은 더욱더 겸손하게 기도하며 성실하게 목회를 했다고 하죠.

저도 우리교회 성도님들도부터, 권사님과 집사님들로부터 그런 은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 앞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예화3)그 후에 그 목사님이 그 후에 300명이 모이는 서울 관악교회에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500, 1천명까지이 부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전과 달리 자신이 먼지요 티끌이라는 그런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자기 능력, 자기 열심, 자기 권한을 강화하는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장로 피택자도 이미 뽑아놨는데, 그것조차 없던 일로 처리해버렸습니다.

그 일로 교인들이 다투고 설교 때도 성가대에서 떠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성경책을 집어던졌고, 경찰서에 불려갔고, 13개월만에 사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그때 성령님께서 그의 모습을 조명해주지 않았겠습니까?

왜 너는 별세한다면서, 정작 너 자신은 죽이지 못하느냐?”

왜 네 자랑, 네 교만, 네 열심, 네 의로움을 성도들 앞에 내세우는 것이냐?”

너는 본래부터 폐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티끌과 같은 자요 먼지와 같은 자이지 않았더냐?”

 

바로 그런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다시금 신반포 아파트에서 개척을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자기 자신을 티끌이요 재와 같이 여기는 그 목사님에게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한국기독교장로회측에서 제일 큰 교회로 주님께서 세워주셨다는 고백입니다.

 

(깨달음) 물론 그 목회과정에서 그 분은 7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깨달은 것이 있었죠.

하나님께서 절대로 자기 의로움, 자기 교만, 자기 능력, 자기 자아에 사로 잡히지 말도록 말이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은 티끌이요 먼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라는 신호로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교만치 말도록, 자고하지 말도록, 나를 깨트리실 때가 있다는 사실 말이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티끌이요 먼지임을 자각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도록 말입니다.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주님께서 은혜로 더욱 회복시켜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욥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갑절의 소유물을 주셨고, 아들과 딸도 다시 낳아 키우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죠.

 

(내음성)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실은 티끌과 재와 같은 존재에 불과한 자예요.”

주님이 건강을 주지 않으면 하루도 숨 쉴수 없고, 일할 수도 없는 존재예요.”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시면 어떻게 그 집사님처럼 시아버지와 가족을 섬길 수 있겠어요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그 권사님처럼 헌신적인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겠어요.”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이토록 은혜로운 성도들을 만날 수 있겠어요

주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제 의로움과 제 교만과 아집을 꺾을 수 있겠어요.”

주님, 저는 오직 주님 앞에 티끌이요 재와 같은 존재임을 잊지 않고 일평생 살게 해 주세요.”

 

(찬양)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실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오직 예수 뿐이네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고난과 역경을 통해 참된 믿음의 길을 걷게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욥이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것 같아 친구들에게 자 의로움을 항변하지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그 어떤 의로움도 자기 자아도 주장할 수가 없었죠.

인간의 의로움이란 모두가 상대적인 관점일 뿐이요,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허물많고 죄인임을 절감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욥은 비로소 자신이 티끌이요 먼지임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욥에게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통해 욥은 더욱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났고, 그때 갑절의 회복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유다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요, 모세에게, 정집사님과 그 권사님에게, 그리고 이중표 목사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그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충만한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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