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저편을 볼 수 없지만 죽음 저편에 대한 이해는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젊은 시절에는 무신론자였다가 훗날 성공회 신자가 된, 20세기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인 C.S.루이스가 한 말처럼 말이다.
어두운 헛간에 들어갔을 때,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을 옆에서 바라보면 빛줄기 속에 날아다니는 먼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빛이 비치는 곳으로 걸어가서,
그 빛줄기 속에서 창문을 보면 장면은 완전히 달라진다.
즉 빛줄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창문 밖에 있는 나무와 태양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까 빛줄기를 옆에서 바라보는 것과 그 속에 들어가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현대인들은 빛을 옆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것은 축소주의다.
황명환의 〈죽음 인문학〉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암투병으로 3년 동안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던 그 시절에 죽음에 대한 모든 내용을 연구하고 정리하고 비교하고 평가한 결과물이다.
이 책에는 네 가지 죽음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첫째는 무신론적 죽음 이해,
둘째는 비세속적 죽음 이해,
셋째는 범신론적 죽음 이해,
그리고 넷째는 유신론적 죽음 이해다.
첫 번째 무신론적 죽음의 이해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 그리고 유물론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죽음 너머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세상만을 바라보며 산다는 뜻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판을 듣고자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자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다.
둘째로 비세속적인 죽음 이해를 갖고 있는 이들은 누구일까?
무교, 유교, 도교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들을 통해 후대에 정신으로서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죽음을 내다본다고 한다.
셋째로 범신론적 죽음의 이해를 갖고 있는 이들은 누구일까?
힌두교와 불교권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범신론에는 실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시신을 뿌리는데, 실은 그들이 윤회를 믿고 있다고 한다.
죽은 자들은 계속 떠돈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윤회를 믿는 자들은 제사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범신론적인 죽음 이해를 갖고 있는 자들은 제사는 원한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신론적 입장에서는 인간이 기계이거나 자연의 부속물이다.
범신론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신이다.
그러나 유신론적 입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 앞에서 응답해야 하는 청지기적 존재이며, 세상을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다.
이것이 유신론적 인간 이해다.”
넷째로 유신론적 죽음 이해는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가 속한다.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에게 근간을 둔다고 한다.
다만 이슬람교는 아브라함과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에게 종교의 뿌리를 두고 있다.
유대교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태어난 이스라엘 민조의 출애굽 사건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
기독교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영적인 이스라엘 모두가 기독교에 속한다고 여긴다.
이슬람과 유대교는 율법의 행위에 초점을 두지만 기독교는 오직 믿음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불멸한다는 것(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 속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영혼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과 부활 사이에서 몸을 떠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잠자고 있으면서 몸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다.
누군가 고대하는 상태에 있으려면 먼저 존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상태의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에 인간의 몸이 부활할 때 우리의 몸은 완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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