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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 중 오후 3시가 되면 마감을 준비한다.
오전 9시나 그 이전이나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 점심을 먹고 낮잠을 취했다가 오후 3시 술참을 먹는다.
그때부터는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제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 저녁이 되면 쉼을 얻고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쉼을 얻고 잠을 자야 모든 육체가 풀리고 생각도 비어낼 수 있다.
그래야만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의 일과는 일주일로 연장된다.
그 일주일의 7일째 되는 날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린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을 기억하며 주일예배를 통해서 영과 육의안식을 얻는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주님의 말씀을 새기며 위의 것을 향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새로 설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일생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임도원'처럼 갓난 아이가 태어나 뒤집기를 하고 아장아장 걷다가 '할아버지' '할머니'하면 얼마나 흐뭇할까?
그런 유아기를 지나 초중고를 거쳐 청년기에 이르고 결혼해서 자식을 키우다 서서히 노년에 접어드는 시간 말이다.
인생 60이 되어 직장을 정리하고 노년과 죽음이라는 안식을 바라보는 시기가 그렇다.
그렇게 해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안식의 나라 곧 영생의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런 안식의 날이 언제올까?
그런 영생의 나라에 입성하는 날이 언제쯤 올까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안식의 날 그 영생의 천국에 입성하는 날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 수 있다.
마치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했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았지만 불현 듯 도적같이 오시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가 되면 진짜로 ‘속히 오셨구나’하고 탄식하거나 감격해하지 않을까?
실제로 내가 힘들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27살 늦깎이 대학시절에 새벽이 되면 인력공사에 나가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때 별 별 일들을 다 했다.
그 중에서도 지하 물탱크청소라든지 빌라5층건물에 사모래를 지고 올라간 일 그리고 소가죽 염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겨울철 봉동읍에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 아시바를 해체하는 일도 위험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일을 하고 밤이 되면 대학교에 수업받으러 갔는데 그야말로 졸음반 수업반이었다.
그러니 낮 시간의 뙤약볕 아래에서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언제 이 날들이 지나갈까?'
'어쩌면 이 고된 인생이 끝나지 않는 것 아니야?'
'내게도 과연 행복한 날이 찾아오기나 할까?'
그렇게 힘겨운 생각들을 하면서 4년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도 힘든 나날도 때가 되니까 지나가는 것이었다.
마치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놓아도 지나간다고 하듯이 말이다.
언제 훈련병 시절을 마치고 이등병을 달까 싶은 '조세민'도 올해 9월이면 전역한다고 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그토록 힘들다고 생각되는 그 기간을 이겨내면 나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래도 잘 견디어 냈네?'
'그 어려운 기간을 잘 헤쳐나왔어'
그러면서 나 스스로 ‘잘 이겨냈다’고 칭찬하고 보상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모습은 신앙생활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초대교회에 로마황제의 핍박을 견디어 낸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애굽에서 300년 넘게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보냈겠는가?
애굽의 고센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라오를 태양처럼 떠받들며 파라오를 위한 국고성 라암셋과 비돔을 건축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매일매일 강제노동의 현장에 끌려다닌 것이었다.
일제치하 36년만도 우리에게는 너무너무 치욕스런 삶이었다.
그 기간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도 너무나도 수치스런 삶이었다.
군대에 강제징집된 젊은이들도 총알받이처럼 마지 못해 끌려갔다.
그런 모습처럼 애굽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강제노동현장에 투입된 것이었다.
그들도 언제 이 고통스런 기간이 끝날지 괴로움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았겠는가?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자자손손 전해들었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나님. 언제 우리를 이 애굽 땅에서 내 보내주실 것입니까?'
'언제 이 지긋지긋한 고된 노역에서 해방시켜주실 것입니까?'
'제발 하루 빨리 이 고통스런 강제노동현장에서 저희들을 건져주시길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그 유월절 밤에 그들이 애굽을 빠져나가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날이 도적처럼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게 된 것이다.
결코 통일될 것 같지 않던 동독과 서독도 어느날 밤에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로마 황제의 핍박과 회유를 받고 살던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하는 황제숭배사상이 만연했다.
그 당시 누구든지간에 로마 황제의 신상 앞에 절을 해야 했다.
사고 싶은 것도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는 상거래도 그래야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즉시 고발당하고 감옥에 들어가던 시대였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처지가 어떻겠는가?
누군가 밀고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감옥에 들어가거나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돼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며 그 모든 핍박과 고통을 믿음으로 이겨내며 살았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발각될까봐 그들만의 예배처소를 따로 만들었다.
카타콤 지하예배 처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초대교회 성도들도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겠는가?
'하나님.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부여해주신 것처럼 저희들도 로마의 황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이 기간이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요.'
'언제쯤 이 고통스런 믿음의 삶이 끝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토록 끝날 것 같지 않던 로마의 황제숭배사상도 하나님께서 어느날 갑자기 기독교를 공인케 하셔서 마음껏 주님을 경배하게 하셨다.
물론 지하에 있던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부터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관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로마 황제의 치세가 끝나고 모든 기독교인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을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 날을 바라보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환란과 핍박과 고통속에서 믿음을 지켰던 것 아니겠는가.
물론 북한이나 중국처럼 공산권 국가에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경배하는 것 때문에 지금도 많은 핍박과 회유를 받는다.
공산권 국가가 아니라 자유대한민국이라 해도 주님을 섬기는 때문에 정직과 신실로 인해 손해보고 또 다른 핍박과 유혹에 직면할 때도 많다.
그때마다 믿음으로 인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님께서 그때마다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마치 자식이 타국에 있거나 군대에 복무한다고 해도 부모는 늘 그 자식을 염려하고 기도로 함께 하듯 말이다.
종국에는 그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셔서 각 사람에게 줄 상급이 있음을 믿기에 지금 주어진 삶에 정직과 신실함으로 인내하며 사는 것이다.
'언제 주님이 오실까?'
'언제 이 핍박과 고통이 지나갈까?'
'그러나 주님은 곧 오실거야.'
그러니 나와 그대가 맞이하는 오후 3시는 특별한 시간이지 않을까?
그대가 맞이할 '인생 오후 3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인생을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그 시간은 속히 다가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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