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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깨달음)우리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다 한다면 가장 미련하고 헛된 믿음의 삶을 사는 게 아니겠냐는 거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기에 주님을 믿는 우리가 가장 복되다고 말씀하는 것이죠.
그 부활의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 세계 모든 성자와 성현들에게는 죽음 이후에 무덤이 있지만 예수님은 빈 무덤을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이 그 무엇보다도 부활의 증거요 부활의 시작점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들이 참되다는 것이죠.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여인들과 제자들이 증언할 때 유대 당국에서 그들을 모두 잡아들였겠죠.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여인들과 제자들의 그 증언이 참되기에 지금까지도 성경에 남아 우리에게 그 사실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부활의 증거가 있다면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주님의 증인으로 살도록 하신다는 것이죠.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의 유대인 출신가운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이들의 수가 3만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을 구약의 메시아요 신약에 다시 오실 주님으로 모셔들였겠습니까?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이요,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 지금까지 서로서로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적용)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그 무덤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그만큼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에게 부활의 무덤, 부활의 산 흔적이 있는가는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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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예수님께서 금요일 오전 9시에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에 매달려 양손과 양팔에 대못이 박히셨죠.
정오 12시 어둠이 내리깔렸고 오후 3시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과 동시에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하시면서 숨을 거두셨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누군가 숨을 거두어 가신 것이요,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숨을 거두어 가신 것이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육신적인 숨을 거두셨지만 예수님의 영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영은 지옥에 내려가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말씀하고 있죠.
성부 하나님께서 온 만물의 주인이시듯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하늘과 땅과 음부의 세계까지 주관하는 분임을 밝힌 거죠.
그때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당장 유대인의 유월절이 다가오는 저녁 무렵이라 로마 군인들은 한시바삐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하길 원했죠.
그때 유대 관원 중 하나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이 나중에 죽으면 묻히려고 준비한 새동굴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를 안치하겠다고 빌라도에게 요청했죠.
그러자 빌라도는 어차피 시신을 빨리 처리하는 게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맞이하는데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죠.
그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염하고 세마포로 싸서 자신이 준비한 새 동굴무덤에 안치한 것이었죠.
어떻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유대 과원들은 대제사장을 뺀 70명의 산헤드린 의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국회의원과 같은 격인데, 산헤드린 의원들은 사회 지도층이고 재물이 많은 자였고,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권이 있는 자들이었죠.
그만큼 그들은 유대 사회에서 기득권 층에 속한 자들로서 예수님을 눈엣가시로 여긴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어떻게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에게 내어주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던 것일까요?
그도 다른 유대관원인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는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체험과 간증을 자기 심령 속에 지니고 살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이 죽으면 묻히려고 했던 동물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해드렸던 것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우리의 심령 속에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은 간증과 체험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70명의 산헤드린 의원들이 다들 눈치를 보며 예수님을 부정할 때 유독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른 제자였죠.
그런 체험의 흔적, 예수님을 만난 믿음의 체험이 있는가, 말입니다.
내 주변의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의 기쁨과 만족만을 위해 살지만 나는 요셉처럼 주님을 위한 삶의 중심을 갖고 있는지 말이죠.
예수님이 죽었을 때 모두가 조롱했지만 그만은 자신의 동굴 무덤을 주님께 내어드렸듯이 내게도 먼저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중심이 있는가, 하는 것 말이죠.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바로 그가 주님께 내어드린 동굴 무덤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자신이 주님께 내어드린 동굴 무덤에 그와 같은 역사적인 일이 일어날지 누가 생각 했겠습니까?
자신이 주님의 시신을 안치한 그 동굴 무덤에 하나님의 아들이 성자 하나님으로 부활하시는 대 기적의 장소가 된 것 말이죠.
그만큼 우리도 요셉의 동굴 무덤과 같은 부활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본문)그런데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인 오늘 새벽 미명에 그 동굴 무덤을 찾은 이들이 있었죠.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였습니다.
그 여인들이 그 동굴 무덤을 찾은 것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을 바르고자 함이었죠.
그런데 그 동굴 무덤을 찾았을 때 벌써 그 동굴 무덤의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죠.
그녀들은 혹시라도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갔는지, 다른 데로 누가 숨겼는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물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도 그 동굴 무덤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었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낸 천군 천사가 그 동굴 무덤의 문을 열어제쳤기 때문이죠.
그 모습을 본 여인들도 그 병사들처럼 벌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 천사가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본문 5-7절 말씀인데, 다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시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원해)그 천사는 그 여인들에게 말할 때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죽은 자’로 번역된 헬라어 ‘네크로스’(νεκρός)는 ‘생명이 없는 시체’(deceased)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체란 부패하기 때문에 곧장 냄새가 진동하죠.
그래서 옛날에는 병풍으로 산 사람과 죽은 시체를 분리시켰죠.
3일이 지나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염을 하고 수의로 싸서 무덤에 묻게 되죠.
시체가 된 상태로는 이 세상에 놔 둘 수 없기에 ‘죽은 자’를 그렇게 이 세상과 분리시키는 것이죠.
그렇듯 예수님도 이 세상과 단절된 죽은 시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는 시체가 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하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단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άνάστασις)인데, 본문에 ‘살아나셨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게이로’(ἐγείρω)입니다.
‘에게이로’란 단어는 ‘일어나다’(to arouse)는 말입니다.
왜 부활이란 단어가 엄연히 있었는데도 왜 ‘일어나다’는 단어를 사용한 걸까요?
2천년 당시나 그 이전 시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 일은 신화에나 있을 법한 일이거나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래서 천사는 그 여인들과 제자들이 그 당시에 이해할 수 있는 ‘에게이로’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말한 거죠.
예수님께서 시체 가운데서 ‘일어났다’는 말 자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임을 알게 하신 것이죠.
(깨달음)그 천사가 알려준 대로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께서 나타나 주셨기에 그녀들과 제자들이 온전히 믿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까지 알려주고 있는 성경말씀을 통해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사는 것이죠.
만약 주님의 부활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자요 가장 비참한 자일지 모릅니다.
여태껏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는 소망을 갖고 살았는데 그것이 없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신 동굴 무덤이 있고,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과 제자들이 있고, 그들이 증언한 성경말씀이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는 행복한 자들이죠.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 너머 부활의 세상 곧 천국에서 영원한 부활의 몸으로 살 것이기 때문이죠.
(적용)그 부활의 시작, 부활의 현장, 부활의 감동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준비한 동굴 무덤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무덤이 없는 부활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있고, 주님의 무덤이 있기에 부활의 현장이 존재한 것이었죠.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가 가장 복되고 행복한 자들 아닙니까?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이 있는가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죄와 사망에서 나를 건져주신 분이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그곳이 부활의 현장이죠.
찢기고 상처투성이인 나의 육신과 영혼을 싸매어주신 주님의 은혜가 바로 내 몸에 지닌 부활의 흔적 아니겠습니까?
여태껏 주님의 부활하심을 만난 적이 없는데 어느날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찾아와 나타나신 그것이 부활의 감동이죠.
그것이 동굴 무덤에서부터 시작되었듯이, 우리의 동굴 무덤, 우리의 육신의 것들이 주님과 함께 죽을 때 비로소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동굴 무덤처럼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 속에 살기를 원하시는 은혜죠.
(주음성)그렇기에 오늘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부활이 없다면 너는 얼마나 비참하고 미련한 자이겠느냐? 그런 너를 세상은 얼마나 조롱하고 비웃겠느냐?”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있기 때문에 너는 가장 행복한 자 아니겠느냐?”
“예수님이 부활하신 동굴 무덤이 있다는 것, 여인들과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고, 그것을 증언하여 성경으로 남겼으니, 너는 얼마나 복된 자 아니겠느냐?”
“그 동굴 무덤에서부터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이 시작된 것처럼 너에게도 그런 현장 그런 흔적, 그런 감동이 일어나길 주님께서 바라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자는 이 세상을 끝으로만 알고 사는 자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부활 너머의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지 않겠느냐?”
“지금 네게 사는 삶의 현장이 부활의 현장이 되도록, 네 몸과 영혼에 부활의 흔적을 지니도록, 네 삶이 부활의 감동이 묻어나도록 주님께서 원하고 격려하지 않겠느냐?”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무덤이 슬픔의 현장이었지만 도리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셨고 죽음이 영생의 관문임을 알게 하셨으니, 너에게 그런 기쁨과 영생의 소망을 주님께서 불어넣어주길 원하시지 않겠느냐?”
(찬양)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시어서 나의 주가 되셨네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의 목자 되시어서 나를 항상 인도하니 주만 따라가리라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서 나의 주가 되셨네
고마우신 주의 사랑 내 어이 다 노래하리 나의 사는 그 날까지 주만 위해 살리라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주 오시면 천국에서 주님과 살리라 영원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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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죠.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 땅을 향해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더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는데,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조선땅의 파송을 자원한 것이었죠.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주일날.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그것은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단순한 외국선 한 척의 입항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이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조선 땅에 복음을 들고 온 날이었습니다.
그날을 회상한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번째 선교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깨달음)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조선에 입항하던 그 날을 통해 주님께서 동굴 무덤과 같은 조선 땅을 열어 제친 것이었죠.
(적용)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감격이 있었기에 황무지와 같은 조선 땅에 주님의 부활하심을 알리는 통로가 된 것이었죠.
주님은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을 지닌 저와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용하길 원하지 않겠습니까?
(예화2)조지 부시가 부통령 시절에 소련 부레즈네프 수상의 장례식에 미국 대표로 참석한 일이 있죠.
장례식은 소련 공산당의 관례대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색이나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었죠.
이제 장례식 말미에 달했을 때 고인을 위한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때 고인의 부인이 관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녀는 품에 간직했던 백합 한 송이를 꺼내어 관 위에 놓았죠.
백합은 전통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망인은 남편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순간 식장은 정적에 휩싸였죠.
그때 그녀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일어난 그녀는 러시아정교인 답게 십자가 성호를 그었죠.
그 순간 여기저기서 미망인을 따라 성호를 긋는 사람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그것은 충격이었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지 부시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얼어붙은 소련 땅에 기독교 신앙은 완전히 죽어 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부활 신앙이 부활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까?
공산권 치하의 소련 땅에서 만인 앞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드러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소련 공산국의 수상이었던 남편이 죽자 그 죽음 앞에서 부활 신앙을 과감하게 고백하며 만인 앞에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쉬쉬하며 신앙인으로 사는 것을 감추고 살 때 그녀만큼은 주님의 자녀임을, 머잖아 자신도 부활케 될 것을 믿는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한 것이었죠.
(적용)저와 여러분들에게 그와 같은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주님의 자녀가 돼야 할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래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에게도 이 세상에 줄 수 없는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을 갖고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황무지와 같은 조선 땅에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부활의 복음으로 갖고 조선땅의 무덤을 열어제쳤는데, 저도 주님의 부활의 통로로 사용되길 원합니다.”
“모두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는 걸 쉬쉬할 때 그 수상의 아내는 담대하게 부활의 소망을 표현하며 살았는데, 저도 부활의 기쁨을 담대하게 전하며 살게 해 주세요.”
“저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이 아리마대 요셉처럼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동을 지닌 현장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찬양)선포하라 부활하신 영광의 주 아름다운 영광의 주를 보라
보좌에 앉으신 그 어린양 예수 다 무릎 꿇고서 주 경배하리라
선포하라 부활하신 영광의 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주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영원 영원토록 받아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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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부활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자일테지만 주님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가장 복된 자요 행복한 자녀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동굴 무덤에서 시작되었고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부활하심을 그곳에서부터 보여주셨고 그 소식을 지금 우리에게까지 성경을 통해 전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부활의 현장 부활의 흔적 부활의 감격이 드러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그와 같은 부활을 은혜를 누린 자답게 누군가의 죽음의 무덤을 열어제치는 부활의 도구로, 모두 쉬쉬할 때 담대하게 부활하심을 선포하는 부활의 통로가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그와 같은 주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이 시간 함께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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