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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 고난을 받고(마16:24-27)_2023년 사순절 둘째주일 설교

by 똑똑이채널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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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올라가다’는 말은 ‘내려오다’는 말의 반댓말입니다.

낮은 지대에 살던 사람이 높은 곳을 산을 향해 올라갈 때 쓰는 말이죠.

초야에 묻혀 지내던 사람이 조정에 들어가는 대신으로 일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저자거리에 살던 사람이 공직에 몸을 담고 일하기 시작할때나 더 높은 관직을 부여받을 때 쓰는 말이기도 하죠.

 

사람들은 대부분 올라가는 모습을 좋아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낮은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좋은 경치를 높은 곳에 올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낮은 직급으로서는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높은 직급에서는 더 많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갈릴리 변두리에 살던 사람들이 예루살렘 중심지에 올라가면 모든 게 색다르게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올라가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르막길이 있다는 것은 언젠가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을 예고하기 때문이죠.

한 없이 피어 오를 것만 같은 나무나 꽃도 때가 되면 꺽이고 떨어지기 때문이죠.

왕의 총애를 받아 높은 관직을 부여받는 게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때부터 수없는 경쟁과 음모에 시달리는 일이 기다리기 때문이죠.

말단 사원으로 들어간 사람이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면 더더욱 주변의 시선과 견제를 꿰뚫고 가야 할 장애물들이 많다는 뜻이죠.

그만큼 올라가는 것이 남부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숱한 난관과 고난과 기다리고 있는 법이죠.

 

(깨달음)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30세가 되기까지 주무대가 나사렛 촌동네였죠.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갈릴리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아버지 요셉의 이른 죽음으로 어머니 마리아와 야고보를 비롯한 네 명의 동생들과 여동생 2명까지 먹여 살려야는 맏이로 목수일을 하며 사셨죠.

 

30세가 됐을 때, ‘그때로부터’ 가정을 박차고 공적인 사역 곧 하나님의 나라의 공생애를 위해 당신의 몸을 던졌죠.

물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주무대는 갈릴리 변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눈먼 자는 눈을 뜨게 해주고, 사탄의 세력에게 매인 자는 풀어주고, 각색 병든 자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가치 곧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를 12명의 제자를 삼으셨고,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때로는 둘씩 둘씩 그들을 갈릴리 주변에 파송해서 병든 자도 고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죠.

 

3년의 공적 사역이 끝나갈 무렵, ‘그때로부터’ 이제 갈릴리 변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왜죠?

바로 ‘그때로부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만에 살아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니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어린 나귀를 타고 왕으로서 올라가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세상의 왕권을 쥐고자 올라간 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속내를 모르는 이들은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면서 이제야 우리 세상이 왔다고 열광했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올라간 것이었죠.

 

그만큼 예수님께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것은 세상의 출세나 명예나 성공을 위해 올라가신 게 아니었죠.

오히려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 놓고자 올라가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예루살렘에서 정치권력을 다스리는 자들과 맞서야 하는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시선과 견제와 고난을 꿰뚫고 나가신 것이었죠.

 

(적용)이것은 대한민국 시민권자지만 천국시민권자에 속한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에 두 발을 내 딛고 살기 때문에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이 다 있습니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자가에서 또 다른 집을 세 놓고 살기를 바라는 그런 높은 단계로 올라서는 것 말이죠.

말단 직원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직급이 올라가 종국에는 그 회사나 기업의 대표로 올라서길 바라는 마음 말이죠.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시민권자라면 무엇 때문에 높이 올라가길 바라는지 분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지 말입니다.

당신의 개인적인 성공이나 출세나 명예를 위함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올라가셨습니다.

그를 위해 불의한 자들의 시선과 견제와 공격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것을 맞서며 종국에는 십자가에 죽으셨죠.

 

이것이 바로 사순절 두 번째 주일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요,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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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마태복음은 세리 곧 세금징수원이었던 레위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후에 동족 유대인들에게 쓴 글이죠.

자신이 만난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이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시라고 말이죠.

그 사실을 동족 유대인들에게 알리고자 서론인 1-2장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하면서 유대인들이 중요시하는 족보를 밝혔죠.

결론부분인 26-28장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하시면서 그 예수님이 하늘의 세계와 이 땅의 모든 세계의 권세를 쥔 만 왕의 왕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만 왕의 왕이신 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나라 곧 천국의 시민권자라는 것이죠.

 

그것을 서론에서 밝혔다면 본론 부분인 3-25장까지는 예수님의 다섯가지 행적과 다섯가지 설교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왜 다섯가지 행적과 다섯가지 설교 말씀이겠습니까?

마태복음은 동족 유대인들에게 써 보낸 편지라고 했죠.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을 가장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태가 그래서 예수님의 다섯 가지 설교를 강조한 것이죠.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한 것처럼 예수님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다는 뜻이죠.

 

(깨달음)그렇기에 내게 찾아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군가에게 전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관심 분야와 공통분모가 있을 만한 것을 가지고 거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죠.

 

(적용)누군가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경우, 나도 넘기 힘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올라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그 구원의 주님을 전해주는 것 말이죠.

누군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자 하는데, 나도 자식이 없어서 힘들 때 주님의 은혜로 자식을 얻게 된, 그 구원의 주님을 전해주는 것 말이죠.

누군가 입찰에 참여해 일을 따 내고 싶어할 때, 나도 수주받기 힘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따낼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신, 그 구원의 주님을 전해주는 것 말입니다.

누군가 세상의 방탕과 술취함과 자포자기 속에 살고 있을 때, 나도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그 구원의 주님을 전해주는 것 말이죠.

 

그 주님께서 나를 구해주시고, 끌어올려주시고, 지옥백성에서 천국시민권자로 올려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사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구원의 주님을 전하면서 사는 길이지 않겠습니까?

세금징수원이었던 레위가 자신을 천국시민권자로 삼아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동족들에게 전하고자 마태복음서에 그런 내용을 담아서 써 보낸 것이죠.

 

(전개)그런데 마태복음을 구분하는 중요한 문장이 있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이때로부터”라는 단어라고 했죠.

‘이때로부터’란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때’로 새로운 전화점을 알려주는 말씀이죠.

헬라어 ‘아포 토테’(Ἀπὸ τότε)는 ‘그때부터’(From that time forth)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에 세 번 사용(마4:17, 마16:21, 마26:16)됐는데 가롯 유다의 경우를 빼면 예수님의 행적과 관련해 두 번 사용됐습니다.

 

처음 ‘이때로부터’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던 개인적인 일에서 이제는 하나님나라의 공적 사역을 위해 떠날 때였죠.

나머지 ‘이때로부터’는 오늘 본문에 사용된 것처럼 공적인 사역을 위해 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나설때입니다.

 

(적용)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애에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 했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처럼 내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허락해주시는 분이라고 했죠.

 

이 세상 것에 허우적대던 내게 주님께서 찾아와 참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만나주시는 터닝포인트 말이죠.

누군가를 넘고 올라서는 게 정말로 어려운 일인데 그 사람과의 관계가 잘 풀릴 수 있도록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터닝포인트 말이죠.

이전에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매사의 일들을 세상 중심으로만 풀려고 했지만 ‘그때부터’는 주님 중심으로 해결케 하시는 터닝포인트 말입니다.

그 전에는 내게 물질이 생길 때 세상 것을 다 처리하고 하나님께 드렸지만 ‘그때부터’는 먼저 하나님나라를 위해 구별해 드리는 삶의 터닝포인트를 갖게 하시는 것 말이죠.

그 밖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개인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터닝포인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믿음의 결단을 행하게 하시는 터닝포인트 말이죠.

 

(본문)오늘 본문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두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원해)갈릴리를 주무대 삼아 공생애 사역을 하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모습을 ‘올라가다’라고 표현하죠.

우리말 ‘올라가다’는 헬라어 단어 ‘아페르코마이’(ἀπέρχομαι’)로서 ‘-로부터’를 뜻하는 ‘아포’(ἀπό)와 ‘오다’ 혹은 ‘나타내다’는 ‘에르코마이’(ἔρχομαι)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단지 갈릴리 저지대에서 고지대 예루살렘을 위해 올라가셨다는 뜻이 아니죠.

이제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기 위해 나아가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한 당신의 목적을 나타내기 위해 나아가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갈릴리 변방을 벗어나 성공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죠.

그전까지는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돌본 삶에서 이제부터는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 것은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죽는 목적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 가신 것이죠.

 

(원해2)바로 그것을 더 명확하게 해주는 표현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라는 말씀이죠.

‘고난을 받다’는 헬라어 단어는 ‘프라스코’(πάσχω)로 ‘고통을 겪다’(suffer passion)을 뜻하는 말입니다.

‘죽임을 당하다’는 단어는 ‘아포크테이노’(ἀποκτείνω’)로 ‘죽이다’,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은 고통을 겪으면서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온갖 비난과 조롱과 멸시를 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로마 군사들의 채찍에 맞고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으면서 맞이하는 죽음을 위한 길이라는 거죠.

바로 그 고통과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내가 이 세상을 향해 올라서려고 하는 모습,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고 하는 모습과 전혀 다른 예수님의 모습 아닙니까?

 

나는 이 세상에 더 높은 지점을 향해, 이 세상에 더 좋은 위치에 무조건 올라서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설교하고 싶고, 더 많은 회중을 향해 복음을 외치고 싶은 심정 말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더 높은 고층빌딩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나,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마음껏 누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그를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를 위해 변방 갈릴리를 떠나 호화로운 예루살렘 한 복판에 올라서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 놓는 고통과 죽음을 위한 길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목적으로 삼으신 예루살렘과 오늘 내가 목적으로 삼고 있는 예루살렘의 방향이 전혀 다른 것 아닙니까?

내 삶의 방향이 예수님의 방향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뜻을 좇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한 단계 높이 올려주시는 것은 그 자리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자리임을 알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그 귀한 자리에 세워주시는 것은 그 자리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섬김의 삶을 베풀도록 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그 자리에 합격시켜주시고 그 자리를 대표하게 하시는 것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생명을 전하도록 말이죠.

그것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이요, 그것이 고통스럽고 때로는 넘기 힘든 일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을 친히 지켜주시는 줄 믿습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우리가 세상의 성공을 위한 오르막길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좇는 오르막길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해 올라가는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면 세상의 성공을 위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느냐?”

변방에서 중심부로 올라가는 것은 왕으로 등극하고자 그 세상의 주름을 잡고자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로부터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출세나 성공이나 왕의 자리가 아니라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나타내고자 올라가신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주님께서 수많은 경쟁자가 있는데도 너를 뽑아 그 자리에 앉히실 때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부족함 가운데서도 너를 그 자리에 올려 세우신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운발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이지 않느냐?”

너의 성공과 출세만을 위한 게 아니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십자가와 고난을 짊어지도록 말이다.”

너를 그 자리에 심어주시고 더 높은 자리에 올려주신 것은 예수님처럼 사랑을 심고 생명을 심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자리에 너를 올려주신 하나님의 뜻에 더 복종하고 섬길 때 주님은 더욱 너를 귀한 자리로 올려주지 않겠느냐?”

그러나 한 순간에 교만하고 주님 뜻과 어긋난 길을 걸을 때 추락할 수 있다는 걸 놓치지 말고 겸손하길 원치 않겠느냐?”

주님께서는 너를 끌어올려주시는 것은 세상에서 겸손하게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니 말이다.”

 

(찬양)죄악에 썩은 내 육신을 주님이 쓰시려했네 죽음에 덫에 걸려있는 몸 주님이 쓰시려했네

속죄하는 손 치료하시고 속죄하는 발 치유하셨네 새 생명 얻어 이 몸 다 받쳐 주님께 영광돌리리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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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한 여성이 첫 독주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를 “나는 리스트의 제자입니다.”하는 광고를 붙였습니다.

그녀는 리스트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사람을 모으려고 그렇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독주회가 열리기 전날 리스트가 그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리스트가 마을에 온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는 리스트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습니다.

“저는 어려운 처지에 피아노를 공부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만 독주회를 열어 주목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귀한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사죄하는데, 리스트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죄를 지었군요.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렇게 울지만 말고 이쪽으로 와서 한 곡 연주해보세요.”

 

그러자 그 여인은 리스트가 보는 앞에서 한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 연주한 곡을 듣고 있더 리스트가 말합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연주하면 좋겠네요.”하고 말이죠.

그 뒤로도 몇 가지를 더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리스트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당신을 가르쳤습니다.”

“이제 당신은 내 제자라고 말해도 됩니다. “제가 당신을 가르쳤으니까요.”

“그러니 내일 당당하게 연주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세요.”

“마지막 곡은 제 스승되는 리스트 선생께서 해주시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한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이런 은혜가 내게 일어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그렇게 고백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말이죠.

“이 연약한 자를 이토록 멋진 자리에 올려주셔서 연주하도록 세워주시다니요.”

그러나 그 은혜를 우리가 받았다면, 왜 그런 은혜를 부어주셨는지, 우리는 알 수 있죠.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나를 세우신 것은 내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라는 뜻이구나”하고 말이죠.

 

(내기도)그래서 우리가 오늘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게 하시옵소서.”

아무런 실력도 배경도 없는 저를 그 자리에 세워주신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제 일생 다하도록 주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저를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더욱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해 주세요.”

때로 그 자리에 올라선 게 힘들고 고달파도 묵묵히 십자가 지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해주시옵소서.”

 

(찬양)먹물로 칠한 내 육신을 주님이 희게 하셨네 십자가 보혈 증거하라고 주님이 살리셨네

기도할 때에 음성 주시고 찬송 할 때에 기쁨 주시네 내 작은 입이 내 작은 몸이 주님의 붙들린 자라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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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주님은 세상 사람이 보기에 출세와 성공의 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위한 길이셨습니다.

죄악에 썩은 내 육신을 살려주신 것은 세상의 죄악에 빠져 있는 영혼을 건져올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실패 속에 있는 나를 새로운 자리로 올려주신 것은 실패 속에 빠져 있는 누군가의 생명을 건져올리도록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무명의 피아니스트인 나를 유명인을 통해 새로운 무대로 세워주신 것도 그 유명인을 자랑하듯 나를 세워주신 주님을 자랑하도록 하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주님의 뜻도 당신의 영광이 아니라 인류의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자 함입니다.

주님께서 그 뜻을 받들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맞이할 때 하나님께서는 만 왕의 왕으로 더욱더 우뚝 세워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어떤 자리를 올려주시더라도 십자가의 발자취를 따르는 은혜가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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