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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2008년 4월 8일 30살의 이소연 씨는 한국인 최초로 우주를 여행했죠.
그녀가 탄 우주선은 카자흐스탄에서 쏘아올린 ‘소유스 TMA 12호’였습니다.
그 우주선을 타고 220km 지구궤도에 진입했고 이틀 후 지상 380km 국제우주정거장과 도킹했죠.
그곳에서 11일간 과학실험을 수행한 후에 우주인 2명과 4월 19일 무사 귀환했죠.
그녀는 지구로 귀환할 때 자신이 탄 우주선이 불덩이로 변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귀환캡슐이 지구 상층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공기 마찰로 우주선이 불덩이가 되는 거였죠.
그 당시의 상황을 회상한 이소연 씨의 인터뷰 내용이 이와 같습니다.
“그 불꽃이 너무 뜨거워서 유리창을 까맣게 그을려요.
그리고 조금씩 불꽃이 사그라들면서 유리창이 다시 깨끗해지는 데 진짜 신기해요.
진짜 무슨 쇳덩이도 태울 것 같은 하얀, 가운데가 하얀 화염이고, 진짜 딱 보면 정말 뜨거울 것 같은 불 있잖아요! 그게 바로 제 눈앞에 30㎝ 앞에 펼쳐졌어요.
유리창이 바로 제 눈 옆에 있었으니까요.”
(깨달음)우주선에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그 틈으로 뜨거운 불기가 스며든다는 거죠.
그 틈 하나가 우주비행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죽음을 불러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도 지난 30년간 5대의 개량된 우주왕복선을 바꿔가며 130번 이상 운행했죠.
그 운행 중에 두 번의 사고가 우주선의 단열재 틈 때문에 생긴 폭발사고였죠.
챌린저호는 발사직후 73초 만에 폭발해서 7명의 우주인들이 사망했죠(1986.1.28.)
컬럼비아호는 지구 귀환 도중에 폭발해서 7명의 우주인들이 사망했죠(2003.2.1.)
그러니 우주선을 만들 때 틈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체크하는 게 너무 중요하죠.
그런데 그것이 우주왕복선 뿐이겠습니까?
물 속을 돌아다니는 잠수함도, 물 위에 떠다다니는 선박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잠수함이든 배든 틈이 생기면 곧장 물에 전복돼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적용)물론 그 틈이라는 게 우주선이나 잠수함이나 선박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배도 마찬가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영적인 틈을 보이면 사단의 세력들은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죠.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인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 보혈로 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생각하는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 인간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고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고자 홍수심판을 결행하셨죠.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사명을 부여하신 것도 바로 그런 차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노아가 죄가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명을 부여한 건 아니었죠.
노아도 홍수 후에 술에 취해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죄의 부패성이 있었죠.
그렇지만 노아는 할아버지 므두셀라가 죽음을 맞이하는 때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때임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무드셀라’란 ‘창을 던지는 자’이자 ‘그가 죽으면 끝이 보인다’는 이름의 뜻이었죠.
노아는 그런 할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뒀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노아가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부여받은 건 아니었죠.
노아가 방주의 사명을 부여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도 하나님의 선택이듯이 말이죠.
그런데 노아는 그 방주를 얼마간 지었다고 했습니까?
노아는 500세 되던 해에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홍수심판이 시작된 때는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였죠.
노아의 세 아이들이 차례로 태어나 결혼을 했다면 방주는 80-90년간 지었겠죠.
만약 500세부터 방주를 짓고자 했다면 노아는 방주를 지을 나무를 그 심령에 새기면서 살았겠죠.
그만큼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채 100년에 걸쳐 완성했던 것입니다.
그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주변에서 미친 노인이라고 비난하고 야유를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노아와 그 가족들은 정성을 다해 지었겠지만 품삯을 받고 일하는 무슨 정성을 쏟았겠습니까?
그저 돈 때문에, 생계 때문에, 방주를 짓는데 참여할 뿐이었겠죠.
바로 이것이 사명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나예)1994년 군 전역한 저는 6개월 후에 신학교 1학년에 복학해 장흥 안디옥교회 선생으로 섬겼습니다.
직함이 선생으로 중고등학생들은 가르치는 것은 물론 차량 운행도 해야 했습니다.
장흥안디옥교회는 개척한지 얼마되지 않아 1년 365일 철야를 하는 교회였죠.
더욱 힘든 것은 그 당시 교회 건물을 짓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전주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날이 오히려 행복할 정도였죠.
금요일날 수업을 마치고 장흥으로 내려가는 일은 고생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금요일저녁부터 토요일아침까지 철야기도를 하고 토요일 아침부터 시멘트를 비비며 날랐죠.
그 삶이 6개월 넘게 진행이 됐으니 실은 공사현장의 잡부와 다를 바 없었죠.
힘든 공사를 마치고 2층 외벽을 드라이비트로 마감할 때 너무나도 기뻤죠.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예배당 헌당식과 임직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때 신학교 동료들이 와서 찬양대석에 앉아 찬양을 했습니다.
그때 임직자들도 울었고 저도 찬양대석에서 울었습니다.
(깨달음)이유가 뭐였을까요?
이렇게 완공될텐데 왜 적극적으로 헌신하지 못했을까 하는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그때 안수집사와 권사취임 하는 분들도 저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분들 역시도 회개의 눈물이 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적용)내가 사명자의 관점으로 일을 하는가, 세상 일의 관점으로 하는가,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사명자로 방주를 지었기에 주변의 비난과 조롱에도 기꺼이 헌신했던 거죠.세상 사람들의 관점처럼 방주를 지었다면 대충하거나 불평속에서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사명자의 자세로 직분과 임직을 감당하는 자들을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면서 안팎에 칠하라는 말씀을 합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14절)
(원해)방주의 재료로 쓰인 고페르 나무는 히브리어로 ‘코페르’(גֹ֔פֶר)입니다.
그 안팎에 칠하라고 하는 ‘역청’은 히브리어로 ‘코페르’(כֹּפֶר)입니다.
그리고 ‘칠하다’는 히브리어는 ‘카페르’(כָּפַר)입니다.
모음만 다를 뿐 자음은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발음만 사용해서 문장을 작성해 보면 이와 같죠.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코페르로 안팎을 카페르하라”말이죠.
언어유희와도 같은 이 문장은 ‘카파르’라는 원어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어 ‘카파르’(כָּפַר)는 ‘죄를 대속하다’(make an atonement), ‘덮다’(to cover), ‘깨끗케하다’(purge)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103번이나 나오는데 레위기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짐승의 피로 대속받는 경우가 그것이죠.
출애굽할 때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르게 하셔서 그 피를 보고 죽음의 심판을 대속받은 것도 그것이죠.
(깨달음)그렇다면 왜 코페르 방주를 만들고 ‘코페르’로 ‘카페르’하게 했습니까?
나문의 재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는 것까지가 사명이죠.
그래야 구원의 방주가 완성되고, 틈이 발생치 않고 1년 17일간 방주 안에 있어도 물이 새지 않는 거죠.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대속받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기 때문이죠.
연약한 인간의 허물을 감싸주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인간의 죄를 씻어주고 깨끗케 해 주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이죠.
(원성)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적용)그만큼 이 세상에서 폭발하고 난파당하는 배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대속받아 그 분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의 안팎을 칠하며 사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 시대에 진정한 역청이요 그 분의 보혈로 영원한 생명선에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 자신의 인생 선박의 틈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칠하면서 사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주음성)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이소연이 탄 우주선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생겼다면 그 우주선은 불타 없어지지 않았겠느냐?”
“노아의 방주도 틈 하나만 생겼다면 실은 그 방주도 구원의 방주일 수 없지 않았겠느냐?”
“노아가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명으로 여겼기에 불평치 않고 온갖 비난에도 순종하며 지은 것 아니더냐?”
“코페르 나무로 코페르로 카파르하라고 한 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네 인생의 배에 틈을 메우며 살라는 뜻이지 않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우주선이든 함선이든 작은 선박이든 틈 하나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느냐?”
“그 틈이 새면 순식간에 불타 없어지거나 물에 잠겨 전복될 수 있으니 말이다.”
“네 인생의 배가 구원의 방주가 되는 길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너의 죄와 허물을 메워주시기 때문이지 않느냐?”
“주님께서 너에게 구원의 방주를 짓고 그 안팎을 보혈로 칠하라고 할때도 사명자로 순종해야 하지 않겠느냐?”
“임직식때 저마다 눈물을 흘리지만 노아처럼 사명으로 알고 헌신한 자들은 훗날 천국의 상급대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겠느냐?”
“노아는 100년간 조롱과 야유를 받았어도 잘 참고 인내했으니 너의 직분과 임직을 사명으로 알고 순종할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감싸주시고 덮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이지 않겠느냐?”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성화) 예수님께서 이 세상 말세와 재림을 생각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죠.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17:26-30)
(깨달음)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종말의 때가 닥쳤는데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조차 사람들이 장가가고 시집가듯 자기 쾌락과 욕망을 좇아 산다는 것이죠.
소돔 땅에 불과 유황이 빗발치는 날조차 흥청망청 죄악을 탐하며 살았다는 거죠.
(적용)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으로 사망자가 2만명이 넘고 잔해더미에 있는 사람도 20만명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죠.
그 때문에 일본열도도 긴장하고, 백두산도 100년 주기설 때문에 2025년에 폭발할 거라면서 두려워하죠.
그러나 정작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사실이 무엇입니까?
민족과 민족이 전쟁을 치르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죠.
그런 모습보다 더욱 두려워하며 경계해야 할 것은 내 인생의 배 안팎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역청으로 칠하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원성) 요한계시록 12장 15절은 말세의 현상을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깨달음)여기에서 말한 여자란 성별로서의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될 하나님의 자녀들, 인생의 배 안과 밖을 보혈로 칠하며 사는 자들이죠.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옛 뱀이 곧 사단이자 마귀는 지금도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틈을 보이면 곧장 달려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연약한 틈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매일매일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역청을 바르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만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좇아 사는 죄악된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기도)오늘 이 시간에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 걸까요?
“그래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역청으로 매일매일 내 연약함을 칠하며 살 게 해주세요.”
“지금도 사탄의 세력들은 내 허점과 틈을 엿보고 사망의 구렁텅이로 나를 몰아넣고자 기를 쓰고 있습니다.”
“주님. 부족하고 연약한 제가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롯의 소돔성 사람들처럼 멸망하지 않도록 매일매일 구원의 방주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역청을 바르며 무장하며 살게 해주세요.”
“내게 직분을 주신 것도, 내게 임직을 허락해주신 것도 이 땅에 마지막 사명 구원의 방주를 만들고 보혈의 역청을 칠하며 살라는 사명을 주신 줄로 알고 헌신하며 살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천국의 상급대 앞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해주세요.”
(찬양)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4,400여년 전 노아의 시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불과 유황으로 멸망한 롯의 소돔성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쾌락과 욕망이라는 죄악을 좇아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방주를 만들고 역청을 칠하며 사는 길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대속의 핏값으로 구원받았어도 세상의 유혹과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는 연약한 자들 아닙니까?
그렇기에 매일매일 나의 영적인 틈, 부족하고 연약한 죄의 틈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역청으로 칠하며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이 시간 다짐의 기도를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매일매일 구원의 방주를 짓는 사명자로서 그직분자로서 그 임직자로서 주님께 헌신하며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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