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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1-5)

by 똑똑이채널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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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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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 이솝 우화에 ‘팔려가는 나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장사꾼이 자기 아들과 함께 장에 나가 나귀를 팔려고 하는 도중에 그만 낭패를 본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 아버지와 아들은 나란히 나귀를 끌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귀를 두고도 걸어가는 바보들’이라고 수군거렸죠.

그 말이 일리가 있어서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나귀에 태웠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주변 사람들이 그런 핀잔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놈이 늙은이를 섬길 줄 모르네”하고 말이죠.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그 부자는 이번에는 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아들이 나귀를 몰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본 주변 사람들이 또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나귀를 타고 가고 아들은 걷게 한다면서 ‘지독한 늙은이’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그 아버지는 자기 뒤에 아들을 함께 태웠습니다.

 

이제 읍내 입구에서 들어설 무렵이었습니다.

그러자 읍내 사람들은 그 부자가 작은 나귀를 혹사시킨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부자는 나귀를 참혹하게 부리는 사람들이군. 차라리 나귀를 메고 가는 게 낫지 않겠소.”하고 말이죠.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와 아들은 나귀 다리를 묶어서 장대를 끼워 메고 갔습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날 때였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에 나귀가 놀라서 발버둥 치다가 장대가 끊어지면서 그만 나귀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귀를 잃은 그 장사꾼은 너무나도 원통하고 분통해서 이렇게 소리치면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다가 이렇게 귀중한 나귀마저 잃고 말았구나!”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 같습니까?

그 이야기 속의 장사꾼처럼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죠.

다른 사람에게 좀 더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도, 그래서 은연중에 마음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의 판단에 너무 마음을 쓰고 이러 저리 휘둘리다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소신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살다가는 한 사람도 마음에 들지 못한 삶을 살게 되고, 결국 나귀도 잃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적용)실은 크리스천인 우리도 다른 사람의 평가나 판단에 신경을 안 쓰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도록 하라”(롬12:18)는 게 하나님의 뜻이니 말입니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과 화평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시선와 판단에 신경을 쓰지 안 쓸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에만 치중하면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누군가 나를 비난하면 그것 때문에 소심해지는 것 말이죠.

그러다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로 전락한 채 하나님의 기쁨과는 거리가 멀어 하나님의 셈하시는 상급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하나님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주변 사람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사람의 시선과 판단을 의식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칭찬을 의식하며 사는 길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곧 천국의 심판대 앞에 우리에게 상급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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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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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이 2차전도여행 때 일행과 함께 유럽대륙을 거쳐 고린도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죠.

당시 고린도는 로마 속주 중에 ‘아가야’라는 행정구역의 수도였고 인구 60만이 살고 있는 로마제국 네 번째 큰 도시였죠.

남북과 동서를 잇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라 막대한 부를 누렸고 사치와 향락이 만연한 도시였죠.

해발 575m에 ‘아크로폴리스’ 성채 중심에 ‘아프로디테’ 곧 비너스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서 섬기는 여사제가 1천 명이었는데 낮엔 그녀들이 신전에서 봉사하고 밤엔 고린도 시내에 내려와 매음을 했죠.

 

그만큼 그 고린도 시는 향락과 사치와 음행과 우상으로 만연한 영적으로 어둠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린도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를 보내 고린도에서 1년 반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했죠.

물론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 출신인 유스도(행18:7)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는 인구 60만 중에 ‘유스도’를 영적인 핀셋으로 뽑아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 삼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들이 에게해를 건너 들려왔죠.

음행의 문제, 파벌의 문제, 은사의 문제, 제사음식의 문제 등 여러 문제 말이죠.

그 문제를 해결코자 바울이 직접 고린도교회를 찾아가기도 했고, 몇몇 편지를 써보내기도 했고, 디모데와 디도를 보내기도 했죠.

 

그 중에 우리가 읽고 있는 고린도전서 4장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권면하는 것입니까?

고린도교회 내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있었다는 것(고전1:12)입니다.

바울파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웠다고 여기기 때문에 바울을 떠받들고 추종하는 세력들을 말하는 것이죠.

아볼로파란 성경 대학자인 아볼로를 떠받들고 추종하는 이들로서 성경에 능통한 지식층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죠.

게바파란 곧 베드로를 추종하는 이들로서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죠.

그리스도파란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는 이들로서 어떤 인간의 파당에도 가담치 않는 경건하게 구별된 자라로 자처하는 이들입니다.

 

어떻습니까?

아무리 동기가 선하고 옳다 할지라도 남을 틀렸다고 비난하면 교회와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분란을 일으키기 마련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을 통해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비교하면서 설명을 했죠.

어떤 일이든 분쟁은 사람을 따르고 추앙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요, 사람을 따르는 일은 결국 헛된 뿐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바울은 나는 심은 자에 불과할 뿐이고 아볼로는 물을 준 것 뿐이요,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죠.

그만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일이나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것(고전3:22)이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을 통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강조한 것ㅇ닙니다.

‘일꾼’이란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 한 마디로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노예’라는 뜻이죠.

노예에게는 자기 주장이나 자기 권리나 자기 영광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울을 추종하는 바울파도 아볼로를 따르는 아볼로파도 베드로를 추종하는 게바파도, 스스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그리스도파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 밑창에서 노를 젓는 일꾼에 불과할 뿐이요 그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죠.

‘하나님의 비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밀을 말하는 것이죠.

구원얻은 우리에게는 더 이상 비밀일 수 없지만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구원의 비밀인 것이죠.

그만큼 바울파나 아볼로파나 게바파나 홀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그리스도파도 실은 그 구원의 비밀을 전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부름받은 주님의 청지기일 뿐이요, 그 너머에 역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비밀을 전하는 자로 부름받은 자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했죠.

바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하고 말이죠.

‘충성’이란 헬라어로 ‘피스토스’인데 온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지지하며 나아가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배 밑창에서 노를 젓고 복음을 전하는 청지기로 살아가는 삶은 오직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기 열심 자기 노력 자기 기도 자기 의로움은 결국 인간의 파벌을 만들고 인간의 행위만 자랑거리로 삼기 때문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은 오직 충성하되 말씀을 붙들고 받들며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나눈 말씀은 바울을 판단하는 이들에 대해 바울은 자유할 것이요, 오직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 신경쓰며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고백한 것이었습니까?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죠.

바울을 추종하는 이들은 바울을 칭송하며 추종했지만 아볼로파나 게바파나 그리스도파는 모두 바울을 판단하고 비난한 것이었죠.

 

왜 그렇게 바울을 판단한 것이었습니까?

바울은 다른 12사도들처럼 예수님의 직접적인 부름을 받은 적도 없고 3년 동안 따라다닌 경험도 없기 때문에 사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전에 교회를 잔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전력이 있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성경의 대학자출신인 아볼로를 따르는 이들이 보기에 바울은 언변실력은 빈약하기 그지 없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게바파 곧 베드로를 지지하는 이들이 보기에 바울은 할례와 같은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무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대머리에 안짱다리요 그리고 간질과 안질이라는 병이 있어 자주 쓰러지고 거품을 품지 않냐는 것이었죠.

어떻게 그런 자가 사도일 수 있겠으며, 어떻게 우리가 그런 자를 따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바울이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바울은 자신을 칭송하고 추종하는 이들의 판단에 기뻐하지 않을 것이요, 자신을 헐뜯는 아볼로파나 게바파나 그리스도파 사람들의 판단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만큼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사람들의 판단은 모두가 겉모습에 치중한 판단이요 자기 좋을 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적도 없고 3년간 따라다닌 적도 없다고 여기는 이들은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지 않는 이들이죠.

바울이 이전에 교회를 잔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감옥에 넣는 앞잡이였다고 하는 이들은 자신의 옛 삶의 부끄러운 들보를 생각지 않는 이들이죠.

바울을 아볼로와 비교하고 대머리에 안짱다리에 안질과 간질을 앓는 자라고 수건거리는 이들은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자들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일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 말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복음의 비밀과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신비를 알기에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거죠.

자신은 그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신실한 안내인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자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 스스로 자랑스럽다거나 의롭다는 걸 주장한 게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바울은, 나 자신의 삶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나도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듯이, 여러분들도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판단을 바라며 성실한 일꾼으로 사십시다, 하는 뜻이죠.

 

(본문)오늘 본문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는 마지막 말씀인데, 본문 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원해)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까?

앞선 구절에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하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왜죠?

사람의 판단은 겉모습에 치우친 판단이요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판단하심, 하나님의 셈하심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는 감춘 것들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마음의 속까지 다 꿰뚫어보실 터요, 그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죠.

 

여기에 ‘칭찬’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파이노스’(ἔπαινος)는 칭찬(벧전1:7), 찬송, 그리고 ‘포상’(벧전2:14)이란 뜻도 있죠.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아무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죠.

그만큼 이 땅에서 받은 사람의 칭찬과 사람의 비난은 모두가 상대적인 것이요 절대적인 칭찬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의 칭찬과 그 분의 상급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가라는 뜻이죠.

 

(깨달음)비행기를 타면 ‘스튜어디스’가 있습니다.

스튜어디스라는 단어가 바로 본문에 나오는 ‘맡은 자’ 곧 ‘청지기’라는 뜻입니다.

스튜어디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손님들을 위해 시중을 들죠.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책이나 담요도 갖다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튜어디스가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 그저 전달하는 자일 뿐이죠.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이, 그와 같은 스튜디어스처럼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자기 파벌을 만들거나 자기 의를 내세우거나 사람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충성하라는 것이죠.

 

(원성)그래서 바울도 로마의 메마르틴 감옥에서 마지막 죽음을 앞둔 시점에 그렇게 고백한 것 아니겠습니까?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적용)바울이 그토록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며 지금까지 걸어 온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 날에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의 면류관을 바라본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바울에게만 주시는 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그 분 앞에 설 것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신다는 것이죠.

바로 그런 마음과 자세로 사람의 판단보다 우리를 셈하시고 우리를 칭찬하시고 상급을 주실 그 분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라는 것이죠.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사람의 평가나 판단보다 하나님의 셈하심을 바라보며 더욱더 충성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장터에 나귀를 팔러가던 아버지와 아들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이러지리 흔들리다가 결국 나귀까지 잃지 않았더냐?”

때로는 사람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네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할 판단자는 네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지 않더냐?”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 때 주변 사람의 칭찬에 기뻐하고 비난에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네가 주님 앞에 성실하고 겸손하게 충성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느냐?”

바울도 고린도교회 많은 파벌을 추종하는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비난을 받았지만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지 않았느냐?”

오직 바울을 셈하시고 판단하실 분은 아버지 하나님 한 뿐이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상급을 주실 것을 바라봤기 때문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충성할 때 사람의 칭송이나 판단에 너무 들뜨거나 주눅들지 않았다면 좋겠구나.”

사람의 판단에 치우치게 되면 바른 길을 걷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람의 기쁨에 치우친 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지지 않겠느냐?”

어떤 경우에도 성실과 겸손으로 하나님의 일꾼답게 충성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너를 칭찬하고 격려하시지 않겠느냐?”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지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너의 속 중심을 보고 상급을 주시지 않겠느냐?”

“2023년 한 해 동안 네가 맡은 일에 충성스런 일꾼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더욱 귀한 일들을 맡겨주지 않겠느냐?”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활짝 피는 백합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피어나는 꽃 되리라

오 하나님 이 꽃 바쳐 주의 재단 밝히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예화)루돌프 켐페(Rudolf Kempe, 1910년-1976년)는 독일 드레스덴 출신으로 훗날 유명한 지휘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더욱 알려진 것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그의 지휘와 함께 음반을 녹음했기 때문이죠.

물론 켐페가 처음부터 지휘자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드레스덴 음대에서 오보에를 전공했습니다.

그러다가 1929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오보에 주자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죠.

그때 지휘자가 브루노 발터였고, 샤를 뮌슈가 콘서트마스터로 제1바이올린 수석이었고 프란츠 콘비츠니가 비올라 수석이었죠.

모두가 거장 지휘자 반열에 올랐던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켐페는 자신의 소망했던 작품을 들고 무대에 올라 오보에를 연주했습니다.

유명한 무대였으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연주했는지 누구나 알 수 있는 모습이었죠.

이제 그의 연주가 마치자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켐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객석의 구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루돌프, 수고했다. 정말 잘했어. 아주 훌륭한 곡이었다”하고 말이죠.

그때 비로소 켐페는 눈물을 글썽이며 울음을 터트렸다는 것입니다.

 

(깨달음)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왜 그 노인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훌륭한 연주였다고 칭찬할 때, 비로소 그가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 노인이 바로 가장 존경했던 그의 스승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용)일꾼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 주인에게 인정받는 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도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스런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이 세상 그 누구의 판단보다도 오직 나에게 상급을 주실 나의 주인이신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충성하길 원합니다.”

“2023년 그 어떤 푯대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를 바라보며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교회에 충성하는 일꾼으로 살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잘했다고 칭찬받고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베푸시는 그 은혜의 주인공으로 살게 해 주세요.”

주님, 2023년에 주님나라와 주님의교회에 향내나는 제목으로 바쳐지게 해 주시옵소서.”

 

(찬양)주님 예수 나의 동산 내 맘속에 동녘 하늘

아침햇살 가득 안고 자라나는 나무 같아

그 안에서 이 생명도 귀한 재목 되겠어요

오 하나님 이 재목 바쳐 주의 재단 쌓으리니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늘 평안 내리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하나님나라의 충성된 일꾼들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칭송에 기뻐하고 사람들의 판단에 힘들어하지만 오직 우리를 판단하고 셈하실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하고 아무리 비난할지라도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칭찬하고 상급을 주시면 그것으로 끝이지 않겠습니까?

2023년 한 해 동안 사도 바울처럼 더 겸손하고 더 신실한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2023년에 더 귀한 일을 맡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주님재림하시는 날 절대적인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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