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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1-5)_2023년1월넷째주설명절설교

by 똑똑이채널 2023.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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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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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학위증을 받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학위증을 받은 후 총장과 악수를 하고 지나갔죠.

그런데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 총장에게 악수도 받지 않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축하객들은 여기저기 수군거리기 시작했죠.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말이야.”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다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단 말인가?”

 

모두가 그렇게 혀를 차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재학생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분은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족을 한 채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분입니다”

 

그러자 보이는 대로 비난했던 축하객은 서로들 얼굴을 붉어지면서 함부로 말을 한 걸 부끄러워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따라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방하지 말라는 뜻이죠.

 

왜 그렇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죠.

사실과 진실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본 게 사실일지라도 그 판단은 저마다 다를 수도 있는 것이죠.

 

(적용)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신중해야 하는 법이죠.

더욱이 남을 판단하기 이전에 나 자신의 들보를 먼저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예화2)어떤 목사님이 새로 교회에 부임을 했습니다.

열심히 목회를 했고 교회는 90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부 예배도 드렸고 더 많은 예배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예배당도 신축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 무렵부터 여기저기 비판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목사님에 대한 비판은 대개 “사람들이 그러는데…”라는 말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말이 아니라 남이 한 말을 전한다는 식이었죠.

 

그 소리를 들을 때 그 목사님은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비판이 너무 혹독했기 때문에 사임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기를 다 싫어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목사님은 그 고민을 안고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마음의 평안을 구했죠.

그러자 성령님께서 깊은 깨달음을 안겨주셨습니다.

“얘야. 너를 비난하는 가정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교회 성도들 전부가 너를 비난한다고 생각하느냐?”

“너를 비난하는 이들은 겨우 네 가정 밖에 되지 않는단다.”

“그들은 네가 담임하기 전에 교회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이야.”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은 변화되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지.”

“그러니 그들의 비난에 대해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고 나를 바라보고 힘을 내도록 해라.”

 

그때 비로소 그 목사님은 교회 성도들의 비난에 대해 자유케 되었고, 더욱 겸손하고 성실하게 교회를 섬겼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이런 모습은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회사나 기업에서도, 또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내가 너무 열심히 일한 것 때문에 주변에서 만들어내는 비판과 비난의 소리들 말입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의기소침할 게 아니라 그 비난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과연 그 비판과 비난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과연 그 비판과 비난은 정당한 것인가? 모두가 나를 적대시하는가?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몇 명일까?”

“그들의 비판과 비난에 진실성이 담겨 있는가?”

“그들의 비판과 비난에 내가 진정으로 깨닫고 살아야 할 것은 없을까?”

 

(적용)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되게 정직하고 행했는데도 주변으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듣는다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겠죠.

오직 진실되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행했다면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일을 행할 때에는 주변의 싫은 소리를 듣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행하는 방식에 있어서 진실되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증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대로 심은대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상급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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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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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이 2차전도여행 때 일행과 함께 유럽대륙을 거쳐 고린도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죠.

당시 고린도는 로마 속주 중에 ‘아가야’라는 행정구역의 수도였고 인구 60만이 살고 있는 로마제국 네 번째 큰 도시였죠.

남북과 동서를 잇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라 막대한 부를 누렸고 사치와 향락이 만연한 도시였죠.

해발 575m에 ‘아크로폴리스’ 성채 중심에 ‘아프로디테’ 곧 비너스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서 섬기는 여사제가 1천 명이었는데 낮엔 그녀들이 신전에서 봉사하고 밤엔 고린도 시내에 내려와 매음을 했죠.

 

그만큼 그 고린도 시는 향락과 사치와 음행과 우상으로 만연한 영적으로 어둠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린도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를 보내 고린도에서 1년 반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했죠.

물론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 출신인 유스도(행18:7)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는 인구 60만 중에 ‘유스도’를 영적인 핀셋으로 뽑아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 삼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들이 에게해를 건너 들려왔죠.

음행의 문제, 파벌의 문제, 은사의 문제, 제사음식의 문제 등 여러 문제 말이죠.

그 문제들을 해결코자 바울이 직접 고린도교회를 찾아가기도 했고, 몇 몇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고, 디모데와 디도를 보내기도 했죠.

 

그 중에 우리가 읽고 있는 고린도전서 4장 부분은 파벌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권면의 편지 내용입니다.

이른바 고린도교회 내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있었던 것(고전1:12)입니다.

바울파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웠다고 여기기 때문에 바울을 떠받들고 추종하는 세력들을 말하는 것이죠.

아볼로파란 성경 대학자인 아볼로를 떠받들고 추종하는 이들로서 성경에 능통한 지식층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죠.

게바파란 곧 베드로를 추종하는 세력으로서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을 존중하고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죠.

그리스도파란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는 무리로서 자기들은 그 어떤 인간적인 파당에도 가담치 않고 스스로를 구별되고 경건한 자라고 자처하는 무리를 말하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아무리 동기가 선하고 옳다 할지라도 남을 틀렸다고 비난하면 교회와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분란만 일으키기 마련이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을 통해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비교하면서 설명을 했죠.

어떤 일이든 분쟁은 사람을 따르고 추앙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요, 사람을 따르는 일은 결국 헛된 뿐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바울 자신은 심은 자에 불과할 뿐이고 아볼로는 물을 준 것 뿐이요,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죠.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두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잊지 말라고 권면(고전3:22)했죠.

 

그래서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4장에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했죠.

‘일꾼’이란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 한 마디로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노예라는 뜻이죠.

자기 주장 자기 권리 자기 영광이 없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을 추종하는 이들도 아볼로파도 게바파도 스스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그리스도파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거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 밑창에서 노를 젓는 일꾼에 불과할 뿐 어떻게 우리 스스로 파당을 지어 자기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느냐는 거죠.

 

이어서 바울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죠.

하나님의 비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밀을 말하는 것이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더이상 비밀일 수 없지만 그 구원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구원의 비밀로 남아 있는 것이죠.

그만큼 바울파나 아볼로파나 게바파나 홀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그리스도파도 실은 그 구원의 비밀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죠.

그것조차 어찌 우리 능력으로 자랑할 수 있는 일이냐, 는 것이죠.

우리는 단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청지기일 뿐이요, 그 너머에 역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하는 바울의 권면을 우리가 나누었죠.

‘충성’이란 ‘피스토스’로서 온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지지하며 나아가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배 밑창에서 노를 젓고 복음을 전하는 청지기로 살아가는 삶은 오직 말씀을 붙들고 지지하는 삶이라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 없이 자기 열심 자기 노력 자기 의로움만 내세우면 파벌이 생길 수밖에 없고 교회에 분란이 생긴다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은 오직 충성하되 말씀을 붙들고 지지하는 삶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본문)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본문 3-4절인데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역본) ‘메시지 성경’은 오늘 본문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이 내게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좋은 안내인이 되기에 어긋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판단을 내리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까?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추종하는 이들은 바울을 칭송하며 따랐지만 아볼로파나 게바파나 그리스도파는 달랐던 것이죠.

 

왜 그렇게 판단했겠습니까?

바울이 다른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전에 교회를 잔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더욱이 아볼로파가 보기에 바울의 언변실력은 빈약했고 게바파가 보기에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무시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울 자신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바울파의 추종이나 칭송도, 자신을 헐뜯는 비하하는 아볼로파나 게바파나 그리스도파 사람들의 판단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죠.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의 평가는 모두가 자기 좋을 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그에 대해 아무리 나쁘게 말해도 좋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와는 달리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평가해도 개인적인 악감정이 들어 있는 사람은 결코 좋게 평가할 리가 없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의 평가나 판단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내면이나 살아온 환경 같은 것들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고려하지도 않는 채로 판단해버리죠.

마치 졸업식장에서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는 그 학생을 향해 모두가 수군거리고 비난하듯이 말입니다.

그가 팔 한 쪽을 잃고서도 의수로 4년간 고군분투하여 졸업한 그 환경을 생각지도 않는 채 말입니다.

그 목사님이 성실하고 신실하게 목회하여 교회가 부흥해 신축하는데도 그것을 두고 뒤담화하는 이들이 있듯이 말이죠.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기까지 많은 핍박과 죽을 넘겼는데 그 과정을 모르는 이들은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이란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한 적도 없기에 사도라고 부를만한 자격도 없고, 유대인의 할례와 전통을 무시하는 자라고 말이죠.

그러나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이방인과 임금들과 유대인을 위한 그릇이라고 직접 사명을 받았고, 누구보다도 유대인의 구원을 바란 자였죠.

그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자는 아볼로파의 견해나 게바파의 견해나 그리스도파의 견해만 따라서 바울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이죠.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평가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왜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구원에 인도하는데 좋은 안내인이 되기에 어긋난 삶을 산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만큼 신실하고 진실되게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을 섬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 스스로 자랑스럽다거나 의롭다는 걸 주장하는 게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는 거죠.

 

결론적으로 바울은, 나 자신의 삶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그리스도의 심판대, 곧 상급의 심판대에 세우실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평가에 따라 나의 삶이 판단받는다는 거죠.

역으로 말하면 나도 여러분들을, 각각의 파벌을 형성하는 이들을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나 나나, 더 이상 사람을 추종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충성되게 섬기되, 그 날에 상급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말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가 사람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셈하심을 바라보며 충성을 다하도록 하는 그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성령의 음성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너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 판단하는 일이 있을 때 일희일비하지 말도록 하려무나.”

누군가 너를 바울처럼 떠받든다고 기뻐하지도 말고 누군가 사도권이 없다고 바울을 무시한 것처럼 너를 무시할 때 너무 슬퍼하지도 말려무나.”

대학 4년 동안 한 쪽 팔 없이 의수를 써가면서 고군분투하며 졸업장을 받은 그가 한 손으로 받는 걸 조롱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속사정은 오직 그만이 아는 것 아니겠느냐.”

교회를 성실하게 목회하여 부흥해서 예배당 공간을 신축할 때 비난하는 이들이 있어서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신 것 아니었더냐?”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기까지 눈물을 흘리고 많은 고통과 죽음의 고비까지 넘나들었는데 전후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판단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어떤 일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사람과 일을 가리지 말고 주어진 일에 주님을 대하듯 신실과 성실로 그리스도의 일꾼처럼 직무를 감당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고서도 누군가 너를 추켜세울 때 결코 자만하지도 말고 누군가 너를 판단하고 비난할 때 위축되지도 말아라.”

사람의 판단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이해관계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니 오직 너는 하나님의 셈하실 그 날을 바라보고 네 마음 중심을 지키도록 하려무나.”

네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자 온 마음 중심에 말씀을 모시고 충성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너를 판단해도 하나님께서는 너를 기뻐하며 지지하지 않겠느냐?”

 

(찬양)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 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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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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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어떤 장님이 밤길을 나서기 전에 등불을 마련하여 길을 갔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길은 보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한참 걸어가다 어떤 사람과 정면을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장님은 마주친 사람에게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니시오!”

 

그 소리에 화가 난 나그네도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길에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데 왜 당신은 눈을 뜨고 다니지 못하시오!”

그러자 장님은 화가 치솟듯 이렇게 다그치며 말했습니다.

“난 소경인데, 당신은 이 등불이 보이지 않소?”

 

그러자 그 나그네가 뭐라고 말했을까요?

“이보시오. 당신의 등불은 이미 꺼졌구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까?

그 장님은 자기 등불이 꺼진 것도 모른 채 상대방 탓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님이니 자기 등불이 도중에 꺼진 것을 알 리가 없었던 것이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지 못하면 우리도 눈먼 장님처럼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이 우리 심령에 꺼져버리면 그 장님처럼 내 의로움에 사로잡혀 함부로 판단해버릴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런 상태로 아무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긴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 의와 자기 공적만 내세울 뿐이죠.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충성을 다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우리 심령에 말씀의 등불을 켜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나 자신의 들보를 보며 겸손한 하나님의 영광된 종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때 비로소 사람들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직 그날에 셈하실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며 충성을 다하는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긴다고 하지만 사람의 판단에 치우칠 많았어요.”

그 장님처럼 내 심령의 말씀의 등불이 꺼진 채 내 의로움에만 사로잡혀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의 들보를 비추지 못한 채 남의 허물과 티끌을 들춰내며 나를 내세우고자 할 때가 많았어요.”

주님. 2023년에는 사람들의 판단보다 오직 주님의 셈하실 날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신실한 일꾼으로 충성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 살아가는 저를 바라보시고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는 음성을 듣고 사는 2023년 한 해가 되게 해 주세요.”

 

(찬양)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서 어찌 자기 기준으로 자기 의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대로 하나님 앞에 충성스런 일꾼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체로 기뻐하시고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고린도교회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를 내세우며 자기 의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저울질하고 판단했죠.

그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이 사라진 채 자기 자랑 자기 공적만을 내세운 까닭이었습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방주 밑창에서 노를 젓는 일꾼으로서, 내 의나 자랑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충성스런 일꾼으로 섬기길 바랍니다.

온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을 모시고 충성할 때 사람들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셈하심만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고 상급을 받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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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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