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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나예)지난 주에 3층 공사를 끝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층 본당 강단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그 다음 주에는 음향공사를 하게 되죠.
일을 맡겨서 하다 보니까 느끼는 게 있습니다.
맡은 일을 자기 집 일처럼 성실하게 하는 분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로 감사하다는 것이죠.
이번에 3층 공사 일을 했던 목사님도 새벽 1시 30분까지 일을 하고 광주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다른 목사님과 함께 강단공사를 하게 되는데, 그분의 성향은 또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그분도 자기 교회 공사처럼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발췌)2020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가 아이 옷을 갈아입히다 아이 몸에 푸른 멍자국을 발견했죠.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그 엄마는 아이와 대화를 하다 유치원 선생에게 폭력을 당한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유치원에 설치된 CCTV 비디오를 확인해봤습니다.
20대 유치원 선생님은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점심을 늦게 먹는다고 주먹으로 때린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만약 그 아이가 우리 집 아이였다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만일 유치원에서 맞아 푸른 멍이 든 아이가 우리 집 손주였다면 어땠을까요?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겠습니까?
형사처벌을 원할 수도 있겠죠.
(발췌2)그런데 2021년도 나주의 한 어린이집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6개월 된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했는데 한 달만에 온몸에 멍이 들고 밤마다 울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겁니다.
그 역시 CCTV를 확인해봤습니다.
한 선생님이 아이의 옷이 마음대로 벗겨지지 않자 아이를 내동댕이치듯 밀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아이를 끌고 오더니 이번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팔을 흔들어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아이의 가슴을 토닥이는 것 같더니만 이내 ‘퍽퍽’ 내리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그 선생님이 그랬을까, 하고 그 어린이집 원장에게 취재원이 물어봤습니다.
그랬던 그런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의 그 교사는 어린이집 학급 수가 줄어들면서 한 달 전쯤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그게 서운해서 보복성 행위로 아이를 학대하지 않았나, 하고 말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자고 건의하는 것이죠.
그것은 병원의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불신과 불친절한 일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오늘날 세상은 무언가 맡길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않는 세상이라는 점입니다.
유치원 원장이나 병원장도 그렇고,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의 대표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이죠.
일을 맡겼을 때 자기 집 일처럼 성실하게 감당하는 직원이나 거래처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주인이 가게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가게의 책임자처럼 일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더 맡기려 들겠죠.
일이 없어서 그만둬야 하는 입장에서 보복행위를 하지 않고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한다면 다른 곳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겠죠.
남의 집 아이를 내 집 아이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 유치원 원장은 얼마나 더 신임하겠습니까?
한 가지 일을 하는데도 새벽 1시 30분까지 자기 집 일처럼 최선을 다하는 분을 만난다면 더 중요한 일도 맡기려 들겠죠.
(적용)일을 맡길만한 선생님이나 회사 직원을 만나는 것은 그 회사 대표에게 너무나도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길 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의 재능을 부여해주셨을 때 그것을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 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신뢰하고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이 2차전도여행 때 유럽대륙을 거쳐 고린도에 들어갔을 때 그 당시 고린도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당시 고린도는 로마 속주 중에 ‘아가야’라는 행정구역의 수도였고 인구 60만이 살고 있는 로마제국 네 번째 큰 도시였습니다.
더욱이 남북과 동서를 이어주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라 막대한 부를 누렸고 사치와 향락이 만연한 도시였죠.
해발 575m에 ‘아크로폴리스’ 성채 중심에 ‘아프로디테’ 곧 비너스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서 섬기는 여사제가 1천 명이었는데 낮엔 그녀들이 신전에서 봉사하고 밤엔 고린도 시내에 내려와 매음을 했죠.
그만큼 당시의 고린도는 향락과 사치와 음행과 우상으로 만연한 영적으로 어둠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린도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를 보내 고린도에서 1년반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하신 것이었죠.
물론 바울 일행이 거기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 출신인 유스도(행18:7)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인구 60만 중에 ‘유스도’를 영적인 핀셋으로 뽑아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터전을 이룬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린도교회는 유스도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요, 바울 일행과 함께 유스도는 하나님의 교회에 충직한 일꾼이었죠.
(깨달음)이것은 1892년 10월 18일 목포 장터에서 복음을 전한 유진벨 선교사도, 그 선교사를 도운 변창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30년전 목포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 그 선교사를 바울처럼 보낸 것이었죠.
그러나 그 선교사 홀로 감당한 게 아니라 당시 10만이 넘는 목포 사람 중에 변창연을 뽑아 충직한 일꾼으로 삼은 것이었죠.
그것은 32년전 자유로교회를 세우게 하실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시 김석오 목사님과 그분을 도운 변창연과 같은 조사들을 통해 자유로교회를 세우게 하신 것이었죠.
2022년 목포시 인구 216,994명 중에 저와 여러분을 영적인 핀셋으로 뽑아 하나님의 교회에 충직한 일꾼으로 삼으신 것도 마찬가지죠.
(적용)그런데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왜 바울이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칭한 것이었습니까?
당시 고린도교회에 음행문제 파벌문제 은사문제 제사음식문제 등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파벌문제때문이었죠.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웠지만 그 후 아볼로가 들어가 양육했고, 또 베드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교인들도 많았고, 그리스도파로 나뉜 교인들도 있었죠.
바로 그런 파벌문제를 바라보면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각각의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모두가,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지 않냐는 것입니다.
서로 교회를 세워가면서 일할 때 그 주된 역할과 재능이 다른 것 뿐이지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것이지 않냐는 뜻이었죠.
그래서 바울 자신도 고린도교회를 세우면서 세례를 베푼 이들이 몇 몇 있지만 결코 자랑할 수가 없다고 했죠.
왜냐하면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한 뿐이기 때문이죠.
그 분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실 분이지, 우리 모두는 이름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교회를 섬겨야 하는 일꾼들이지 않냐는 거죠.
그런데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는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underrower)이라고 했습니다.
로마 제국시절 거대한 함대의 밑창에서 자기 주장도 없이 오직 갑판에서 두드리는 북소리에 맞춰 노를 젓는 사람들 말이죠.
그 북을 치는 사람이 빨리치면 빨리 노를 저어야 하고 늦게 치면 늦게 저어야 하고 좌우방향도 그에 의해 결정되죠.
그만큼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자기 주장도 자기 영광도 없이 모든 권한과 그 공로를 선장이 취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른 우리 자신도 그런 훼페레테스처럼 구원의 방주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교회라는 방주 아래에서 주님께서 이끄시는 방향대로 묵묵히 순종하며 노를 젓는 주님의 일꾼들 말입니다.
노아의 방주처럼, 모세의 갈대상자처럼, 우리가 그렇게 순종하여 노를 젓다보면 어느새 아라랏 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친히 당도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말씀인데 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원해)여기에 ‘비밀’은 국어사전에서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비밀로 번역된 헬라어 ‘미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은 ‘숨겨진 것’ ‘감춘 것’(a hidden purpose)을 뜻하는 말이죠.
영어의 ‘미스테리’(mystery)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원성)과연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할 때 그 ‘비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 27번이나 사용됐습니다.
그 중에 골로새서 1장 26-27절과 골로새서 2장 2-3절을 통해 그 비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주죠.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줍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만세전부터 감춰졌지만 이제는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그분이 구원의 소망이요 영광의 소망이라는 거죠.
바로 그 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춰져 있지만 이제는 모든 성도들에게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다 드러나 있는 것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 목적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금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이 실은 성경의 총체적인 핵심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섬기는 이유 아닙니까?
물론 이 세상 사람 중에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비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한 번이라도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비밀이 될 수 없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비밀’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셔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 아닙니까?
그 사실을 이제는 세상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적인 비밀로 남아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적용)아침에 먹는 사과 한 조각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건강에 최고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흡연은 백해무익이요 막걸리 한 잔은 몸을 이롭게 하지만 습관적인 음주는 몸을 해친다는 것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잇몸이 아플 때 치과 치료보다 ‘가는 소금’을 사용해 칫솔질하면 잇몸이 아플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몸을 1도만 따뜻하게 해도 몸의 면역기능이 좋아진다는 것도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이렇듯 육신의 몸에 관한 정보도 좋다는 것을 다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몸을 이롭게 하는데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하물려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 밖에 없고 영벌의 심판을 피할 길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영생의 복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영원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사실입니다.
(전개)그런데 바울이 왜 하나님의 비밀을 이야기한 것입니까?
그리스도 일꾼인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원해2)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입니다.
‘집의 관리자’(the manager of household) 또는 ‘집안 일의 조력자’(household affairs)를 뜻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에 이 단어가 10회 사용되었습니다.
때로는 ‘청지기’(눅12:41, 갈4:2, 딛1:7, 벧전4:10)로 번역되기도 했고 ‘재무관’(롬16:23)으로 번역되기도 했죠.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은 ‘청지기’죠.
바울이 고린도에서 주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일할 때 당시 귀족 집에서 주인이 가정 사무를 직접 관장하지 않았습니다.
하인 중에서 지혜로운 자를 선택해 가정 경제 전반을 책임지도록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경영인은 하인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 맡기지만 그에게는 그만큼의 큰 권한을 부여했죠.
그는 그 집안의 가정 경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있었죠.
그 조건이란 주인이 명령한 지침에 따라서 경영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원성)구약시대에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사람을 예로 든다면 바로 요셉과 같은 인물이죠.
요셉은 17살에 애굽의 상단에 팔려 보디발 장군의 집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요셉이 주어진 일에 책임감 있게, 마치 자기 일처럼 성실을 다하자, 그 모든 가정 경제 전반을 맡게 되었죠.
물론 요셉은 보디발이 원하는 것과 보디발이 명령한 지침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고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그것이 가정의 경제를 총괄하는 청지기의 자세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자기 일처럼 성실하게 감당하자,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도 보디발은 온갖 일을 다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런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30살이 되었을 때 애굽이란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총리로 세워주셨던 것이고요.
(적용)몇 년 전에 교회 집사님 남편이 근무하는 사업장에 심방간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성도님이 하신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는데 제 가슴에 평생 남아 있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회장님은 이 일 외에 다른 것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돈이 생기고 삶의 여유가 생기면 골프도 치고 놀러도 가고 다른 사업에 투자할 것도 같지만 그렇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평생 그 일에 오이코노모스처럼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믿는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주님께 하듯 하는 분이지 않나 싶었죠.
성경은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엡6:5-8)
우리 각자가 맡은 일이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든 그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께 하듯이 성실을 다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로부터 그대로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죠.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부르시는 은혜를 부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너의 참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느냐?”
“너는 네가 누리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너의 동료에게 전하며 살고 있느냐?”
“너는 네가 맡은 일을 네 집안 일처럼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청지기로 살고 있느냐?”
“너는 고용된 사장으로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았을 때 그 일에 당장이라도 맡을 수 있는 실력과 성실함을 감당하고 있느냐?”
“요셉도 보디발의 집안 경제를 맡았을 때 주인이 있든 없든 밤낮없이 주어진 일에 성실을 다한 청지기였지 않겠느냐?”
“바울도 하나님의 교회를 맡았을 때 자기 영광을 위해 파벌을 만들지 않고 이름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청지기였지 않더냐?”
“우리 회장님은 이 일 외에 다른 것은 신경도 안 쓴다고 하는데, 너도 너에게 주어진 일에 올인하며 살고 있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2023년에 주님께서 너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2023년 주님께서 네게 부여한 세상에 일에 대해 누구보다도 요셉처럼 성실을 다한 청지기로 살기를 원하지 않겠느냐?”
“2023년 주님께서는 네 일터의 동료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자로 살기를 원치 않겠느냐?”
“2023년 한 눈으론 이 세상에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바라보고, 한 눈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일에도 주님의 맡은 자로 사는 것 말이다”
“2023년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굴 대하든지 주님께 하듯 성실을 다하고 주님의 생명을 전하며 살 때 어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지 않겠느냐?”
(찬양)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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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록펠러의 전기를 보면 그가 가장 신임했던 ‘아치볼드’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는 록펠러가 경영하는 스태더드 오일(Standard Oil)의 말단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한 통에 4달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성실과 열정을 가진 그는 어디에 가든지 자기 이름 옆에 ‘한 통에 4달러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문구를 써 넣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런 그의 행동을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작은 이 일이 반드시 회사에 큰 도움을 주리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죠.
어느 날 아치볼드는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로 출장을 갔습니다.
일을 보고 밤늦게 자신이 묵을 숙소로 돌아왔는데 숙박부에 이름만 쓰고 온 것이 생각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금 내려가 ‘한 통에 4달러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문구를 썼습니다.
그때 한 신사가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다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런 문구를 거기에 써 넣는 것이요?”
아치볼드는 그때 그 신사에게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희 회사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치볼드는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의 회장이 초청한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회장이 바로 그 호텔에서 만났던 신사 록펠러였던 것입니다.
그를 만난 록펠러는 그의 열정을 칭찬하며 본사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경영일선에 나선 아치볼드는 스탠더드 오일을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사명감과 자긍심으로 최선을 다했을 때 회사의 오너도 인정해주고 큰 일을 맡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성실과 자긍심을 갖고 일하는 청지기로 살 때 어지 더 큰 은혜를 부어주지 않겠습니까?
(기도)그러니 2023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요 주님. 제게 부여한 세상의 일에 대해 아치볼드처럼 책임감과 자긍심으로 일을 하며 살게 해 주세요.”
“제게 부여한 일터에서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동료를 섬기게 하시고 그들에게 영생의 비밀인 예수님을 전하는 통로로 살게 해 주세요.”
“아치볼드처럼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 더 큰 일을 맡겨주셨듯이 2023년에 어떤 일을 맡았든지 성실과 자긍심으로 일하며 살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요셉을 더 큰 주님나라의 도구로, 바울을 더 놀라운 주님의교회에 통로로 삼아주셨듯이, 저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2023년을 살게 해 주세요.”
“그 무엇보다도 한 눈 팔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가슴 뛰는 일, 칭찬받는 청지기로 살게 해 주세요.”
(찬양)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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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각자를 세상의 일터 속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곧 영생의 비밀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 영생의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아직도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2023년 우리 각자를 부르신 일터 속에서 누구를 대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성실을 다하여 섬기길 바랍니다.
2023년 각자에게 부여한 세상일을 통해서 주님께 하듯 성실을 다하여 살고, 영생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에게 그 비밀을 전하는 도구로 살 때 주님께서 더 귀한 일들을 맡겨주시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로 살때 더 큰 은총을 부어주시는 한 해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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