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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어느 가정에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가족들과 집에서 저녁밥을 먹게 됐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녀석이 그날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그 식탁 앞에서 “감사히 먹겠습니다.”하면서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그 모습이 예쁘고 대견한지 가족들은 앞으로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감사인사를 하고 먹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식구가 모여서 밥을 먹는데 그 식탁 위에 오른 반찬이 달랑 두 가지였습니다.
그때 누구보다도 입에 튀어나온 사람은 그 집의 아빠였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불평도 못하고, 그렇다고 감사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죠.
그 순간 그 아빠의 입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말은 “간신히 먹겠습니다!”하는 말이었습니다.
(깨달음)감사가 몸에 베이지 않으면 감사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어떤 일을 겪었어도 감사를 입에 달고 살면 힘들고 짜증나는 상황속에서도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겠죠.
(예화2)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원자력 학자인 정근모 박사가 있습니다.
그가 쓴 〈나는 과학자보다 신실한 기독인이 되고 싶다〉라는 책을 보면 그분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근모 박사의 아들은 10살 때부터 만성신장염을 앓았습니다.
그 일로 정근모 박사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죠.
그 후 정근모 박사는 자신의 신장을 떼어 아들에게 이식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26년간 생과 죽음을 넘나들며 투병을 하던 아들이 자동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죠.
그러니 얼마나 많이 불평했겠습니까?
그런 와중에도 정근모 박사는 부인과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자 하나님께 실망하고 낙심하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신장염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짐으로 여겨 온 아들을 통해 너와 네 가족이 구원받지 않았느냐?”하시면서 말이죠.
그때 정근모 박사는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 제 아들은 효자입니다. 제가 예수 믿도록, 제가 겸손하도록, 저를 위해 무거운 짐을 져야 했던 아들에게 이제는 감사하겠습니다.”
2001년 그 아들은 뇌출혈로 죽어가면서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제 죽음을 축복해주세요. 힘들고 고통스런 여행은 이제 끝났어요.”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되니 감사해요. 얼마나 행복한가요. 저로 인해 절대로 눈물 흘리지 마세요.”
(깨달음)여태껏 6번의 대수술을 받았고, 온갖 비관과 절망 속에서 절규하던 아들이 죽어가면서 한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그 아들의 말에 정근모 장로 부부는 오히려 성령충만함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아들의 감사고백으로 정근모 장로 부부도 그때 이후부터 더 큰 감사의 삶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용)그래서 성경은 빌립보서 4장 6절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골로새서 4장 2절을 통해서는 이렇게 또 권면을 하죠.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 감사하며 살기를 바라시는 아바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배)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은 ‘테힐림’입니다.
그 뜻은 ‘찬양의 노래들’이죠.
시편의 대부분이 찬양하는 노래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150편의 시편 중에는 찬양시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율법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고, 비탄에 젖은 시도 있죠.
그러나 대부분은 감사의 찬양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 중에는 모세가 쓴 시도 있고, 다윗이 쓴 시, 솔로몬이 쓴 시, 아삽과 에단과 고라자손이 쓴 시도 있습니다.
물론 작자 미상의 시도 50편이나 됩니다.
그런데 150편의 시편들 중에서 다윗이 쓴 시가 73개로 제일 많죠.
물론 50편의 작자미상의 시편들 중에 다윗이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 시들도 많습니다.
시편 95-100편까지도 실은 작자미상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들은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는 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에 대해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하고 있는 시라는 점이 그것이죠.
그런 시를 향해 신학적인 용어로 신정시(神政詩)라고 부르기도 하죠.
오늘 읽은 시편 100편은 그 신정시, 곧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편들 중에 6번째 시편입니다.
오늘 읽은 1절 맨 뒤에 표제어가 ‘감사의 시’라고 돼 있죠.
이 시편은 감사를 드리는 예배 때 사용된 시편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특별히 2절에 나오는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4절에 ‘그의 문에 들어가며’,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등의 표현을 보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이른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릴 때 예물을 들고 성전 문을 통과하고 성전 뜰을 지날 때 불렀던 시라는 것이죠.
(본문)오늘 읽은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원해)여기에 ‘즐거운 찬송을 부르다’하는 히브리어는 ‘루아’(רוּעַ)입니다.
이 단어는 전쟁이나 행진을 할 때 ‘소리를 지르다’(raise a sound), ‘적들을 제압코자 승리를 외치다’(to shout in triumph)는 뜻입니다.
즐거운 찬송을 부르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뻐서 소리를 질러 귀가 먹을 정도로 찬양하는 것이죠.
일례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진할 때 그 회중들을 모을 때 불렀던 나팔 소리가 ‘루아’(민10:7)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대적을 치러 나갈때도 그 나팔 소리를 크게 부르도록 했죠(민10:10).
그러니 모든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고 행진하게 하려면, 또 전쟁을 준비하게 하려면 얼마나 크게 불렀을지 알 수 있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행진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 앞에 섰을 때였죠.
그때 그 성읍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 제시해주셨죠.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하루 한바퀴씩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그 성을 돌게 하셨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는 그 성을 7번 돌되,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불되 온 백성들도 큰 소리를 소리를 치도록 했죠.
‘성아 무너져라’하고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법대로 엿새동안 한바퀴씩 아무 말도 없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돌았죠.
그리고 일곱째날에는 일곱바퀴를 다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크게 불 때 온 백성들이 큰 소리로 소리를 쳤고 그 성읍이 무너져 내렸죠.
바로 그때 큰 소리로 소리친 것이 본문에 기록된 ‘루아’(수6:5, 수6:10)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루아’라는 단어는 왕이자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때도 백성들이 환호하며 소리친 모습(슥9:9)이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치시 나가실 때도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사42:13)입니다.
어렸을 때 복싱선수가 해외에 나가 세계 챔피언이 돼서 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한다든지, 국제 기능 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 승리의 주역들은 오픈카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벌이죠.
그러면 시미들은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그를 보고 열렬히 환호했죠.
바로 그 모습처럼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그렇게 열광하고 환호하고 소리치는 모습으로 예배하도록 하라는 것이죠.
더욱이 이 ‘루아’라는 단어가 명령형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유명한 가수,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그 공연장에서 청중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분위기를 띄우고자 하는 말이 있죠.
‘소리 질러’하고 외치는 게 그것이죠.
바로 그런 모습처럼 청중들 모두가 공연장이 떠나갈 듯이 소리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루아’입니다.
그만큼 오늘 본문의 작자미상의 시인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갈 때 그렇게 소리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큰소리로 하나님께 소리치면서 찬송을 올려드려야 하는 사람들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본문 1절에 ‘온 땅이여’라고 말하죠.
‘온 땅’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모든 나라 모든 백성 모든 사람들,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시편 100편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예물을 들고 성전 문을 통과하고 성전 뜰을 지날 때 부른 시편이었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예배당 문턱을 통과하여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 전심을 다해 큰 소리로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내 마음이 즐거울 때는 물론이요 힘들고 어려울 때도 모든 전쟁에 능하신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이 자리에서 그런 마음과 자세로 예배드리고 계십니까?
우리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던지 상관없이 온 땅 모든 만민들이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하는데 그런 예배자로 주님께 예배드리며 찬양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주님을 향해 전심으로 찬양하고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그 분이 만 왕의 왕이시기 때문이죠.
그 분은 어떤 전쟁에서도 능하신 분이시오, 그 분은 모든 대적들 모든 원수들을 모두 제압하시는 승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이 어렵고 힘들 때도 그 분을 바라보며 찬양하는 자들에게는 승리케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게 찬양하는 이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감사의 고백들이 더욱더 넘쳐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든 전쟁에 능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큰 소리로 찬양하는 감사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 밥상 머리의 식탁에 반찬이 없는 것처럼 네 인생의 식탁에 먹거리가 없는 것 같아 힘들다고 생각하느냐?”
“정근모 박사도 그 아들이 10살 때부터 만성신장염을 앓고 26년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 때 왜 원망하지 않겠느냐?”
“너의 인생에도 뭔가 빠져나가고 뭔가 없어지는 것 때문에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느냐?”
“그래도 네 인생에 찬양과 감사가 빠질 수 없는 것 아니더냐?”
“그러나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인생의 어려운 삶 속에서도 너를 격려하시고 너에게 새 길을 열어주신 주님께서 너와 함께 하지 않았더냐?”
“그 주님은 모든 전쟁에 능하신 주님이지 않더냐?”
“그 주님은 모든 대적들을 제압하시는 승리자이지 않더냐?”
“비록 너를 힘들게 하는 모든 상황이 너를 더욱 겸손하게 빚으시고 너를 연단케 하시는 주님의 방법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네가 힘들고 어려울수록 여리고성과 같은 무너뜨리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더욱더 주님을 찬양하여 경배해야 하지 않겠느냐?”
“올림픽에 매달을 따고 올 때 예전에 카퍼레이드를 했는데 우리 주님은 그보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월등하신 분이지 않더냐?”
“그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온 마음과 목소리를 다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예배자가 되길 원치 않겠느냐?”
(찬양)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영광의 왕 뉘시뇨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에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왕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9805
(예화)부흥사 D.L.무디 목사님이 집회할 때마다 찬송가를 불렀던 생키가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에서 그의 사진을 자주 본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작곡한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여’를 불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생키는 그 찬송가를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해 찬송가를 불렀고, 이제 끝마칠 즈음에 한 사람에 생키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생키 선생님 남북전쟁 당시 북군으로 참전한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생키는 “네, 있습니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쭉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남군으로 참전했는데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북군의 파란 군복을 입고 있었고 그 날 밤이 만월이었는데 제 사정거리 안에 들어 있었죠.”
“제가 당신을 겨냥해 방아쇠를 막 당기려고 하는데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죠.”
“오늘밤에 부른 바로 그 찬송이었죠.”
“그런데 제 어머니께서 그 찬송을 자주 부르셨거든요.”
“당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자 저는 도저히 당신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생기는 옛날의 적을 가슴 깊이 끓어안았다는 것입니다.
(원성)시편 28편 7절은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깨달음)내 인생의 승리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온 힘을 다해 찬양할 때 주님께서는 선한 역사를 베푸시는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내가 죽음의 수렁에 빠졌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란 사실이죠
(예화2)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쌍둥이 빌딩이 붕괴된 다음에 그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비슷한 구조 작업을 한 일이 있죠.
구조 대원들이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무엇일까요?
생존자의 소리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잔해 속에 만약 생존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의식이 있다면, 비록 다리가 부러졌어도 몸이 상했을지라도 뭔가 소리를 낸다는 것이죠.
그 잔해 속에서 “똑 똑똑 똑똑”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그 잔해 속에 누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그것은 구약의 남왕국 유다의 4번째 왕인 여호사밧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아합과 연합군을 꾸려 아람 왕 벤하닷을 치다가 패하자 그 다음 전투에서는 전쟁방식을 바꿨죠.
자기 힘과 군사력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 찬양하며 나아간 모습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 앞에서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 주신 것이었죠.
그것은 신약의 바울과 실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찬양하거나 기도할 기분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처한 지하 감옥은 건물의 잔해더미에 갇힌 상황이었죠.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그들이 기분이 괴롭기 힘들지라도, 건물의 잔해더미에 깔린 것과 같은 지하 감옥의 환경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들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해 그들의 옥문을 열어주셨던 것이죠.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내가 처한 상황이 생키처럼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의 대적과 대치하는 상황일 수도 있겠네요.”
“내가 처한 환경이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잔해더미 속에 깔린 상황일 수도 있겠어요.”
“내가 마주한 상황이 여호사밧 왕처럼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을 이겨내야 하는 환경일 수도 있겠어요.”
“내가 지금 처한 역경이 바울과 실라가 지하 감옥에 갇힌 그런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나의 왕이시오 영광의 승리자이신 주님, 제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보다도 오직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해 주세요.”
“주님 은혜로 이 역경의 굴레 속에서 더욱더 큰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며 신뢰하게 해 주세요.”
“건물의 잔해더미 속에서도 살아 있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구조대원이 구조하듯이 저의 찬양소리를 들으시는 주님께서 역사해 주실 줄 믿어요.”
(찬양)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영광의 왕 뉘시뇨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에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왕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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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만 왕의 왕이시고 모든 원수와 대적들의 승리자이신 줄 믿습니다.
이 땅의 모든 전쟁은 무기력과 군수물자에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수에 달려 있지만,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들에게 승리하는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이십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이는 하나님밖에 없다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이들에게 말입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도, 바울과 실라도, 무디집회의 찬양사역자 생키도, 정근모 장로 부부도, 건물의 잔해더미 속에 깔린 이들도, 주님을 신뢰하며 찬양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친히 역사하시는 분이시죠.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의 왕되심을 선포하며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목소리 높여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 때 지금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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