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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SundaySermon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5:1-10)

by 권또또 2022.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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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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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한 김형석 교수가 현재 102세를 살고 있습니다.

엊그제 죽은 김동길 교수는 94세로 인생을 마감했죠.

의술이 발달해도 지금은 100세를 살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100세를 넘은 분들에게는 ‘100세인’이라는 호칭을 새롭게 붙여주기도 하죠.

 

크리스천인 김형석 교수가 쓴 〈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라는 책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인의 경험 이야기죠.

그 분의 아들이 중학교 때, 그러니까 85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 아들이 그 시절에 아버지인 자신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주일날 일하면 안 되는 것이죠?”

 

그때 김형석 교수가 뭐라고 이야기했을까요?

그 시절엔 주일성수를 신앙의 자랑으로 여기던 때고, 주일날 버스타는 것도 상거래 행위라면서 죄악이라고 여기던 시절이죠.

그때 김형석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예배를 마치고 오다 보는데, 감리교 목사님도 일을 하더라.”

“학생이 주일날 일하는 게 뭐가 잘못 된 것이겠니.”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는 주일날 일을 해야 하느냐, 일을 하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이분법적으로 갇혀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주일날 버스를 타면 안 돼, 돈을 쓰면 안 돼, 해서 버스를 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주일날 자장면 먹으면 안 돼, 주일날 돈을 쓰면 안 돼, 해서 주일날 자장면을 사 먹지 않는 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자장면을 먹고서는 월요일 날 돈을 지불한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다고 하죠.

 

(적용)우리는 주일날 일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구조에 갇혀 지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날,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아버지의 마음을 보아야 하는 게 더욱 중요하죠.

 

지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갈라놓는 일로 인해 누군가는 의롭다고 여기고 누군가는 정죄당한다면 오히려 벽이 더 세워지는 것 아닐까요?

 

과연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품으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서로가 담을 허무는 용기를 갖고 살기를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나의 옳음을 주장함으로 누군가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로 인해 담이 생긴다면, 주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죠.

그만큼 주변 사람과 화평하기를 원한다면 때로 나의 생각과 나의 옳음을 꺾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것이 평화를 일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와 같은 말씀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찬양)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역배)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 곧 팔복의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그만큼 팔복은 어중이떠중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맨 처음 선포하신 팔복의 첫 번째 말씀은 “복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기 가진 재물이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붙들고 의지하며 사는 자들이라고 했죠. 

그런 자들의 심령 속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선포하신 팔복의 말씀은 “복되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일 앞에 징계를 받을 때 참회하는 사람이요 누군가 고통에 처했을 때 함께 아파하는 이라고 했죠.

바로 그런 자들에게 주님께서 다가와 곁에서 격려해 주시고 다시금 세워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선포하신 팔복의 말씀 “복되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고 다듬어지는 순종적인 성품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처럼 머잖아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하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번째로 선포하신 팔복의 말씀은 “복되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자기 자아나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무릎을 꿇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갈망하고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생명수와 하늘의 산 떡으로 배부르게 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했죠.

 

예수님께서 다섯 번째로 선포하신 팔복의 말씀은 “복되도다. 긍휼이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휼을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긍휼’이란 나 스스로의 동정심이나 내 자비심을 말하는 게 아니라 죄인인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아버지의 긍휼하심으로 누군가를 품는 자비를 말한다고 했죠.

그렇게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로 품고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큰 긍휼로 감싸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섯 번째로 선포하신 팔복의 말씀은 “복되도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나 스스로 나의 마음을 깨끗케 할 수 없고 내 속에 온갖 더럽고 추하고 부패한 마음들을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주실 때에만 깨끗케 될 수 있다고 했죠.

주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된 자들은 하나님을 보게 된다, 곧 하나님과 소통하게 된다고 했죠.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모습 속에 살아가는 그 모습을 세상 사람들도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복된 제자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오늘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팔복의 일곱 번째 말씀입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역본)이 말씀 역시 헬라어 원본대로 직역하면 이런 말씀이 됩니다.

“복되도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해)여기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로 ‘에이레노포이오스’(εἰρηνοποιός)입니다.

이 단어는 ‘평화’를 가리키는 ‘에이레네’라는 단어와 ‘만들다’(make) ‘행하다’(do)는 ‘포이에오’(ποιέω)의 합성어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란 ‘평화를 일구는 자’(a peacemaker)입니다.

그래서 윌리엄 마운스는 이 단어의 의미를 그렇게 정의내린 바 있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란 ‘평안과 화목을 구축하는 사람’(one who cultivates peace and concord)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이 단어는 본문에서 복수형으로 씌였습니다.

물론 신약성경에서 본문 외에는 어디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왜죠?

주님께서는 이 단어를 복수로 사용하신 것은 팔복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나온 제자들 복수였기 때문이죠.

화평이란 홀로 이루는 게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기억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원성)그래서 바울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 곧 에베소 지역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그렇게 권면한 바가 있죠.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1-3)

 

(깨달음)무슨 말씀입니까?

‘에베소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이여. 너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함께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교회 성도가 되었느냐?’

‘그렇다면 너희들은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서로를 깍듯이 대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들 서로가 오래 참으면서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서로가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적용)하나님나라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뜻을 받드는 것은 서로 겸손하지 않으면, 서로 깍뜻이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죠.

예수님의 뜻과 가치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서로 참아야 하는 일이요 서로 용납해야 하는 일이란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평화의 띠로 묶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것은 오늘 우리 자신들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역본)그래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그가 쓴 〈메시지 성경〉을 통해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음)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줘라, 왜죠?

제자들끼리 서로 키재기하고 가치를 선호하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사람은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모두 자신만의 메커니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들 때문에 서로가 갈등하며 불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서로가 성향도 다르고 이해하는 폭도 다르고 때로는 자기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고, 목회자들 사이에도 그렇고, 목사와 성도 사이에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남편은 아내가 자기 말을 잘 들어주길 바라고, 아내는 남편이 자기 말을 따라주길 바라고 말이죠.

저는 여러분이 제 말을 다 따라주길 바라고,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의 말에 잘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 말이죠.

 

그런데 ‘화평케 하는 자’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저 사람과 어떻게 협력하며 살 것인가, 바로 거기에 화평이 깃든다는 것입니다.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서로 옳다고 내세우는 바가 다르지만,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묵묵히 협력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화평을 일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같이 돋보이는 제자들도 있었지만 티내지 않고 묵묵히 협력하는 제자들 때문에 화평을 일구지 않았느냐 하는 뜻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화평을 일구는 자, peace maker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네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놓고 누군가를 이분법적으로 담을 친 적은 없었더냐?”

“주일날 버스타는 것, 주일날 자장면 먹는 것, 주일날 일하는 걸 죄악으로 여긴 채 너 스스로를 의롭게 여긴 적은 없었더냐?”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셨고 양이 구덩이에 빠져 있으면 건져주지 않겠느냐 하시지 않았더냐?”

“네가 의롭다고 여기고 옳다고 여기는 너의 생각과 메커니즘 때문에 너와 함께 하는 이들이 힘들어한 경우는 없었더냐?”

“예수님의 제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이름값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묵묵히 협력하는 제자들 때문에 그 공동체가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주님께서는 네가 화평하게 하는 자, 평화를 일구는 자가 되는 걸 무엇보다 바라시지 않겠느냐?”

“주님께서는 네가 의롭고 옳다고 여기는 가치, 남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너의 메카니즘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존중하며 용납하며 살기를 원치 않겠느냐?”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고 담을 치고 싶어도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묵묵히 협력했던 그 제자들처럼 너도 그런 Peace maker가 되면 좋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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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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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복되도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 가운데 ‘화평’이란 두 가지 차원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막힌 담이 없이(엡2:14, 골1:19-20)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국가 간의 상태도 다른 나라와 전쟁이나 다툼없이 잠잠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문제없이 평온하게 지내는 모습이 그렇죠.

 

하지만 그것은 얼핏 보면 피상적인 화평이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깊은 단계의 화평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부지간에 뭔가 막힌 문제가 있다는 걸 서로가 아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지낸다면 그것을 어찌 화평한 상태라 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가로막힌 게 있는 걸 아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이나 징계도 없이 조용히 넘어가신다, 그게 어찌 화평일 수 있겠냐는 것이죠.

 

그래서 때로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져 파동이 생기거나, 태풍이 불어쳐서 온갖 더러운 쓰레기들을 들춰내고 정화시키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는 화평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그런데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말씀합니다.

이것은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화평케 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이 맞물려 돌아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이 화평해야 하고, 더 나아가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과도 화평하는 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이 화평이라는 것은 평생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화평은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해주시고 나를 먼저 믿어주셨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랑에 대해 불신이 생긴다면 하나님과의 화평의 관계도 깨지게 되고, 세상 사람에 대한 화평도 깨지게 되는 것이죠.

 

(발췌)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이 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입니다.

 

어느날 저녁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이 부엌으로 와서 엄마에게 자기가 쓴 글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앞치마에 손을 닦은 다음에 그것을 찬찬히 읽어내려갔죠.

거기에는 그런 글이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잔디 깎은 값 5달러. 

이번주에 내 방 청소한 값 1달러. 

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50센트.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동생 봐준 값 25센트. 

쓰레기 내다 버린 값 1달러. 

숙제를 잘한 값 5달러.

마당을 청소하고 빗자루질을 한 값 2달러. 

전부 합쳐서 14달러 75센트”

 

그 글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보상을 바라면서 흐뭇하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죠.

그때 엄마가 아들의 얼굴을 쳐다봄녀서, 연필을 가지고 와서 그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세워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 무료

너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해 동안 힘들어 하고 눈물 흘린 값, 전부 무료

이 모든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은 무료

너 때문에 불안으로 지낸 수많은 밤들과 너에 대해 끝없이 염려해야 했던 시간들도 모두 무료

장난감, 음식, 옷, 그리고 심지어 네 코를 풀어 준 것 까지도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진정한 사랑은 무료”

 

아이가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엄마 사랑해.’하는 것이죠.

그리고 아이는 자기가 받으려고 했던 돈 액수 밑에 그렇게 적는 것이었죠.

“전부 다 지불되었음”

 

(깨달음) 엄마의 사랑을 깨닫고 났을 때 비로소 그 아들에게 평화가 찾아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나와 관계 맺는 성도들, 나와 관계맺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아가는 진정한 신뢰와 평화 속에 사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내기도)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네요.”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들과 관계도, 그저 잠잠한 호수같은 상태를 원하지만 주님은 그것 이상을 원하고 계셨네요.”

“뭔가 추하고 더럽고 복잡한 게 있으면 태풍을 불어서라도 정화되길 원하시는 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깊은 단계의 화평이셨어요.”

“주님, 제가 그런 화평을 구하며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주님, 주님께서 저를 먼저 사랑해주시고 저를 먼저 믿어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알아요.”

“그런데도 그 아이가 엄마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처럼, 제가 그런 모습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화평을 원하는 자였어요.”

“주님, 어떤 보상이 없어도 나를 무한히 사랑하시고 무한히 믿어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화평으로 저를 감싸주세요.”

“주님의 그 사랑과 화평으로 성도들도 감싸며 살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그 사랑과 화평으로 이해하며 살게 해주세요.”

 

(찬양)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내게 주노라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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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교보문고] 꿈을 키우는 세상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POD도서 > 소설 POD도서 > 어린이 1년 365일, 일곱 분야의 지식을 두루 탐색하는 교양서!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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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여 선택한 게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 선택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허물과 죄악이 있지만 주님께서 품으시는 그 사랑과 화평으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 수 있는 거죠.

하나님의 아들 딸로 살아가는 날 동안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고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과 화평하며 사는 걸 주님께서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그를 위해 주님의 사랑하심 속에서 주님의 그 화평하심 속에서 서로에게 양보하고 용납하고 협력하여 살 때 더욱 선한 화평이 우리의 삶에 임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바라보시고 기뻐하실 것이요 주님의 참된 제자로 더욱더 선한 은총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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