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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 순교당한 분입니다.
그분은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 이름이 주기복이었죠.
그의 집안이 넉넉해 웅천면의 개통학교를 세울 정도였습니다.
아버지 주현성 장로도 신교육에 눈을 떴던 터라 유교사상이 만연한 그때도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웅천면 개통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이승훈 장로가 세운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곧장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는데 안질환으로 그만 중퇴를 했죠.
그 후 고향 웅천에 돌아와 청년운동을 하며 후배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와중에 김익두 목사의 복음을 듣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부산 초량교회에서 6년, 마산 문창교회에서 6년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평양 산정현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는데, 그때가 일제강점기 시절로서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상황이었죠.
일본의 신사란 도꾸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물러나고 천황이 통치할 때 그를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숭배하게 만든 게 일종의 통치이념이었습니다.
그러니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같이 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범죄요,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다”하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이었죠.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이 속한 평북노회는 신사참배를 해야 한다면서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죠.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산정현교회에서 물러나야 했죠.
그 일로 일제는 주기철 목사님의 뜻을 꺾기 위해 감시와 탄압과 구속과 고문을 수차례 가했죠.
그 때 다섯 번이나 투옥되었는데 그 일로 그 분은 안질과 폐병과 심장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면회 때 주기철 목사님은 그의 아내에게 그렇게 작은 소원을 말하기도 했다고 하죠.
“여보. 나 따뜻한 슝눙 한 그릇 먹고 싶은데...”
그러면서 그 분은 1944년 4월 21일 밤 9시 30분경 49세의 일기로 옥중에서 순교를 당했죠.
그분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설교가 이와 같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리이까?”
“‘너는 내 영광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떤 말로 대답하리이까?”
(깨달음)주기철 목사님은 온갖 백해 속에서도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하나님의 의를 고수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2천년전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던 그 시절에 믿음을 지킨 순교신앙인들과 같습니다.
그 시절 로마는 모든 종교를 공인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했죠.
그 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신론자란 소리를 듣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것 때문에 죽임당하거나 카타콤에 들어갔죠.
그 시절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형제자매라고 불렀는데, 그 일로 세상 사람들은 근친상간하는 패륜아란 욕을 먹고 살았죠.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기 위해 떡과 잔을 나눌 때 “너희들은 식인종이다”하면서 돌을 들어 치려고 했었죠.
그 때문에 그들은 카타콤 지하 동굴에 들어가 더 깊은 신앙심 가운데 나아가게 됐던 것이죠.
(깨달음)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그와 같은 핍박이나 박해를 받고 있습니까?
그 시절의 핍박과 박해는 없어도 예수님처럼 사는 것 때문에 지금도 세상의 핍박과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격려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처럼 사는 것 때문에 핍박과 박해를 받는 걸 자기 의로움으로 생각한 채 그렇지 못한 이를 정죄한다면 더욱 큰 하나님의 의는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엔또 슈사쿠의 〈침묵〉에 나오는 모습처럼 예수님의 성상을 밟고 지나간 그리스도인들조차 품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아버지의 더 큰 의를 이루는 길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런 핍박과 수모를 견딜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말이죠.
(찬양)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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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나아왔죠.
그때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 곧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는데 맨 처음 팔복의 말씀을 선포하셨죠.
팔복은 세상을 살아가는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죠.
이 세상의 가치를 좇아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좇아 사는 대변혁의 말씀이었습니다.
맨 처음 선포하신 말씀은 “복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기 능력이나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며 사는 자들이죠.
그런 자들의 심령 속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선포하신 말씀은 “복되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일 앞에 징계를 받을 때 참회하는 사람이요 고통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자죠.
그런 자들에게 주님께서 다가와 곁에서 격려해 주시고 다시금 세워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죠.
세 번째 선포하신 말씀은 “복되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고 다듬어지는 순종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었죠.
그런 자들에게 머잖아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선포하신 말씀은 “복되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무릎을 꿇는 자를 말한 것이죠.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생명수와 하늘의 산 떡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죠.
다섯 번째 말씀은 “복되도다. 긍휼이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휼을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긍휼’이란 인간의 동정심이나 자비심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긍휼이죠.
그분의 긍휼로 누군가를 품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더 큰 긍휼로 감싸주신다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복되도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나 스스로 깨끗한 게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내 속의 더러움을 씻어주시는 것이죠.
주님의 보혈로 정결함 받는 자들은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과 소통케 되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죠.그렇게 하나님과 소통하는 모습을 세상의 누군가 보고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복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일곱 번째 말씀은 “복되도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경쟁과 다툼이 넘치는 곳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협력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직장이든 기업이든 심지어 교회든, 그 공동체에서 저마다 가치관과 주관이 다 다를 수 있죠.
하지만 공동체가 화평한 공동체가 되려면 서로 용납하고 협력해야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로 주님께 인정받는다고 했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팔복의 마지막 여덟번째 말씀인데 10-1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원해) 여기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란 어떤 자를 말하는 것일까요?
‘의’란 헬라어로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김받는 상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인간의 의로움이나 깨끗함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을 때도 제가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왜 제게 세례를 받고자 하십니까, 하고 물었죠.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5)하고 말씀하셨죠.
죄 없는 예수님께서 인간인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을 이유가 없지만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모습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처럼 성경에 나오는 ‘의’는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 할 때 ‘박해를 받다’는 말은 헬라어로 ‘디오코’(διώκω)입니다.
‘디오코’란 ‘내몰림 당하다’(drive away), ‘압박을 받다’(to persecute)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 있는 바울에게 찾아와 말씀하실 때도 그랬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때까지 사도 바울은 주님을 본 적도 없고 주님을 핍박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바울이 박해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걸 말한 것이죠.
마치 멧돼지가 포도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모습처럼 길길이 날뛰는 그 모습이 그것입니다.
(깨달음)‘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란 주님과의 관계 때문에 세상에서 고통과 수모를 당한 걸 말합니다.
본문 11절에서도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곧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한다면 그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역본)그래서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을 통해 본문을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박해로 인해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그뿐 아니다.
사람들이 내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너희를 깔보거나 내쫓거나 너희에 대해 거짓을 말할 때마다 너희는 복을 받은 줄로 알아라.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진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들이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너희는 기뻐해도 좋다.
아예 만세를 불러도 좋다!
그들은 싫어하겠지만 나는 좋아하니 말이다!
온 천국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또한 너희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라.
내 예언자와 증인들은 언제나 그런 고생을 했다.”
(깨달음)예수님을 믿고 헌신한 것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더 깊이 들어간 줄 알라는 거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불편을 느낀다면 기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진실되게 사는 걸 싫어하겠지만 천국에서는 천군천사들이 박수를 보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들만 그런 게 아니라 예언자들과 증인들이 이미 그런 고생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적용)주기철 목사님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그런 핍박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오셨죠.
2천년전 그리스도인들도 로마의 핍박과 고통 속에서 카타콤에 들어가 그 삶을 견뎌내며 살았습니다.
주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는 므낫세 왕의 톱으로 죽임당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사는 삶 때문에 핍박과 고통을 겪고 있다면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격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더욱더 응원하시고 천군천사가 박수를 보내주지 않겠습니까?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는 것 때문에 핍박과 고통을 당한다면 주님은 가장 기뻐하시고 격려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주님께서 오늘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주기철 목사가 왜 일제강점기때 신사참배를 거부했는지 너는 알고 있지 않더냐?”
“일본의 신사란 황제를 국가신처럼 떠받들게 만드는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만 참 신이심을 의로 여겼기 때문이지 않더냐?”
“이사야 선지자가 므낫세 왕에게 톱으로 켜서 죽음당한 것도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이지 않았더냐?”
“네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 때문에 핍박과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또한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예수님께 헌신한 것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더 깊이 들어간 줄 알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진실되게 살아가는 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너를 불편하게 여긴다면 더 겸손히 주님의 격려하심을 바라보며 인내했으면 좋겠구나.”
“세상 사람들은 네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걸 싫어하겠지만 천국에서는 너희를 향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지 않겠느냐”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네가 포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이니 말이다.”
(찬양)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있네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겠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저희 배부를 것이요
긍휼이 여기는 자는 긍휼이 여김 받겠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 천국이 저희 것이라
내게도 주소서 내가 복을 받기 원하네
오 내 주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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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C S 루이스가 쓴 책 중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있습니다.
그 책은 삼촌 마귀 ‘스크루테이프’가 편지 형식으로 그의 조카요 초보 마귀 웜우드를 코치한 내용이 나오죠.
조카 마귀는 교회 성도들을 공격하여 넘어뜨리고자 여러번 애를 씁니다.
그런데 번번히 실패하고 말죠.
조카 마귀가 교회 성도들을 공격하면 할수록 성도들은 더 기도하고 하나로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기 때문이죠.
일제 대 주기철 목사님도 일본 경찰이 핍박하고 회유하고 협박해도 넘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로마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의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더욱 꿋꿋하게 카타콤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조카 마귀는 삼촌 마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죠.
그러자 삼촌 마귀는 조카 마귀에게 묘책 하나를 알려주는데, 그것은 “가만히 두라”하는 것이었죠.
(깨달음)왜요?
교회 성도들은 가만히 두면 영적으로 무기력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왠지 편안하고 일이 잘 풀리면 무릎 꿇은 시간조차 짧아지고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삼촌 마귀가 오랫동안 성도들을 지켜 본 바가 그것이라는 것이죠.
성도들은 핍박과 환란이 닥치면 더 간절히 기도하고 영성이 깊어지는데 가만히 내버려두면 신앙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적용)어떻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 때문에, 예수님이란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것 때문에, 세상에 핍박을 받고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자 애쓰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힘겨운 수모를 겪고 있습니까?
그 삶은 오히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요 마귀가 가장 경계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제껏 무늬만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이제는 형식적인 틀을 깨고 예수님처럼 좀 더 살고자 애쓰고 계십니까?
주님 나라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이전과 달리 더욱 헌신하고 충성되게 살고 계십니까?
이전에는 내가 주님을 거래의 대상자로 여겨왔지만 이제는 내 목숨과 재물까지도 전적으로 주님께 의탁하며 헌신하며 살고 계십니까?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마귀가 가장 놀라면서 경계할 대상이요 우리 주님께서는 더욱더 기뻐하시고 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화) 어느 시골에 사는 자매가 몹시도 힘든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으로 이겨가고 있었지만 그 동네에 믿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죠.
“주님. 너무도 힘이 듭니다. 주님. 너무 힘들어요.” 그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그녀는 커다란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은 목수이시 않습니까? 이 십자가를 잘라주세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십자가를 잘라주셨죠.
그러자 그 자매는 꿈속에서 세 번씩이나 자신의 십자가를 잘라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니 그 십자가는 한결 더 가볍고 편안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요단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뒤에 오던 사람들은 커다란 십자가를 강에 턱 놓더니 그 십자가를 다리 삼아 하늘나라로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짊어졌던 십자가는 이미 손 아래 들어올 정도로 너무나도 작았습니다.
그때 그녀는 강가에 털썩 주저 않아 울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꿈에서 깨어났고 주님의 음성이 그렇게 들려왔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그때서야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쁨으로 ‘아멘, 아멘’ 하며 소리를 쳤다는 것입니다.
(내기도)우리가 팔복의 주인공으로 살고자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난의 현장임을 알게 돼요.”
“무늬만 기독교인이 아니라, 형식적인 기독교인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자에게만 핍박과 고난이 뒤따르네요.”
“마귀는 그런 그리스도인을 가장 경계하고 가장 주시하고 있네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자들이 핍박과 박해를 받지만 그런 자들에게 하늘 상급으로 주시는 분이셔요.”
“주기철 목사님처럼 살지 못해도, 로마 카타콤 성도들처럼 살지 못해도, 오늘 내게 짊어지도록 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천국을 향해 살게 해주세요.”
“주님, 제가 예수님처럼 완벽하게 살지 못해도 예수님처럼 사는 흉내라도 낼 때 세상에 핍박과 박해를 받을 때 저에게 힘과 용기를 부어주세요.”
“그러나 그걸 나의 의나 자랑거리로 삼지 않게 주시고, 주님의 더 큰 의로 품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찬양)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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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일제 강점기나 로마의 압제 같은 그런 핍박과 박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세상의 핍박과 박해는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경계하는 세력이 마귀요 사탄의 세력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흉내만 내는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도 내버려둘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시겠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더욱 충성하고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마귀도 경계하고 주님도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이 주신 말씀으로 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이 주신 힘과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받는 핍박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예수님을 좇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런 제자들을 더욱더 격려하시고 하늘의 상급을 베푸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총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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