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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바퀴벌레 두 마리가 각기 다른 식당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첫 번째 바퀴벌레가 간 식당은 입맛을 돋우는 것들이 아주 많은 ‘지저분한 식당’이었습니다.
두 번째 바퀴벌레가 간 식당은 밥알 하나 없는 ‘깨끗한 식당’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본 두 번째 바퀴벌레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잽싸게 첫 번째 바퀴벌레가 있는 식당으로 달려갔죠.
그리고는 헐떡거리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얘, 지금 내가 갔다 온 식당이 어떤 곳인 줄 아니?”
“기가 막히게 깨끗한 곳이야 파리가 낙상할 정도라구.”
그러자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던 첫 번째 바퀴벌레는 그를 바라보며 불쾌한 듯 말했습니다.
“야, 너는 내가 먹고 있을 때 꼭 그런 얘기를 해야겠니? 밥맛 없게 말이야.”
(깨달음)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깨담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겠습니까?
사탄도 우리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서 여행한다는 것 말이죠.
어느 심령에 더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 심령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 있다면 어떤 사탄이 다가왔다가도 자연스레 물러가고 말겠죠.
하지만 그 심령이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간다면 사탄의 세력은 자기 밥이라면서 달라붙으려 할 것입니다.
(적용)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어떤 환경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심령이 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길 원하는 자이게 감사와 기쁨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예화2)요즘 들어 애완견을 키우는 분들이 많죠.
결혼해도 자식을 낳지 않는 가정에서 자식처럼 여기고자 애완견을 많이 키운다고 하죠.
나이가 들어 쓸쓸함을 달래보고자 애완견을 키우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혼집이든 중년의 가정이든지 애완견을 잘못 길들이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죠.
내가 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개에게 끌려다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깨달음)내 인생도 그와 같지 않겠습니까?
내가 내 인생의 상황을 통제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 말읿니다.
그나마 작은 개와 같은 내 삶의 상황을 통제하지만 점점 더 커지는 문제 앞에서는 질질 끌려다니게 되죠.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죠.
내 인생의 시작점부터 작은 것 하나까지 하나님께 모두 내어맡기고 의탁하면 얼마나 평안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서도 하나님보다도 내 상황이 우선시되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게 많습니다.
그러다 그 상황이 점점 겉잡을 없이 통제 불능이 되고 그때부터 개처럼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 말이죠.
그때는 통제할 수 없는 개를 떠나보내야 하듯이 개같은 상황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죠.
(성화)우리가 아는 한나라는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가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았고 브닌나라는 첩을 들어왔는데 오히려 그녀가 자식을 낳은 것이었죠.
한나가 매몰찬 인간이었다면 그 첩을 내좇고 그 아들을 자기 아들로 키우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 자식을 낳은 첩은 더욱더 위세를 떨면서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그야말로 개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어떻게 합니까?
개같은 상황을 끊어낼 수 있는 길은 하나님밖에 없다면서 성소에 올라가 통곡하면서 기도를 하죠.
그때 엘리 제사장이 그녀를 보고 술 취한 여인처럼 생각하면서 ‘언제 술을 끊을 것이냐’하고 말했죠.
그때 한나가 대답한 말이 사무엘상1장 15절에 나옵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원해)그 말씀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그런 뜻이 됩니다.
“여호와 앞에 제 영혼을 쏟아부었을 뿐입니다.”
약간의 의역을 가한다면 “여호와 앞에 나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놓았을 뿐이다.”하는 뜻이죠.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컵의 물을 화분의 꽃에 쏟아 붓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 원통하고 애절한 상황을 감춘 것 없이 남아 있는 찌꺼기까지 다 부어드린 격이었죠.
지금 개처럼 질질 끌려가는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면서 의탁한 것입니다.
(깨달음)그러자 엘리 제사장이 대답했죠.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그 이후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셨고, 그녀에게 아들 사무엘이 태어나게 되었죠.
그때 그녀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아들을 또 다른 개의 상황으로 만들어 그 아들에게 질질 끌려다녔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식에 관한 부분을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께 내어맡기며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녀의 심령에 심령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던 것이죠.
그러니 그녀가 성소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그녀의 심령 속에 감사와 기쁨이 더욱 넘쳐났던 것입니다.
(적용)마귀는 나 스스로 정한 개같은 상황을 이용해 불평과 원망으로 내 인생을 탕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개같은 상황을 끊어내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은혜를 누린 영혼이 하나님께 예배할 때 어찌 그 심령에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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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은 ‘테힐림’입니다.
‘찬양의 노래들’이란 뜻이죠.
시편의 대부분이 찬양하는 노래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150편의 시편 중에는 찬양시도 들어있지만 율법에 관한 시, 비탄에 젖은 시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감사의 찬양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시편입니다.
시편 중에는 모세가 쓴 시, 다윗이 쓴 시, 솔로몬이 쓴 시 그리고 아삽과 에단과 고라자손이 쓴 시도 있습니다.
시편이 150개의 시편으로 돼 있는데 그 중에 다윗이 쓴 시가 73개로 제일 많습니다.
작자 미상의 시가 50편 되는데 그것들 중에서도 다윗이 썼을 것으로 생각하는 시들이 있습니다.
시편 95-100편까지도 실은 작자미상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에 대해 찬양과 감사의 고백시죠.
일명 신정시(神政詩)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100편은 신정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찬양는 시들 중에 6번째 시편입니다.
이 100편의 시편 표제어가 ‘감사의 시’라고 돼 있습니다.
이 시편은 감사를 드리는 예배 때 사용된 시편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특별히 2절에 나오는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4절에 ‘그의 문에 들어가며’,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등의 표현도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릴 때 예물을 들고 성전문을 향할 때 불렀던 감사와 찬양의 시입니다.
(깨달음)그 중에 지난 시간에 살펴본 1절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힘을 다해 경배하라는 뜻이죠.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히브리어로 ‘루아’(רוּעַ)인데 광야행진할 때 나팔을 부는 소리와 같죠.
또한 광야 행진 때 대적을 맞아 싸우러 나갈 때도 큰 나팔을 불러 전열을 대비하는 소리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대신해 영적으로 싸울 때 승리자이신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만 왕의 왕이시고 전쟁에 능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을 향해 온 힘과 목소리를 다해 찬양하라는 것이었죠.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무디의 찬양사역자 생키가 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 대적자가 총구를 겨누다가 멈춘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 때문이었죠.
남왕국 유다의 4번째 왕 여호사밧도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에 맞설 때 온 군대가 전심을 다해 찬양할 때 전쟁에서 승리케 해 주셨죠.
바울과 실라도 지하 감옥에서 한밤 중에 감사와 찬양을 할 때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해 그 옥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위대하신 하나님, 영적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이 어찌 큰 소리로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큰 소리로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는 이들의 경배를 기뻐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찬양)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영광의 왕 뉘시뇨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에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왕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본문)시편 100편은 불과 5절로 구성되어 있지만 7개의 명령형 동사가 나옵니다.
그중에 본문 2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원해)이 말씀에도 두 개의 동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는 ‘섬겨라’, 다른 하나는 ‘나아가라’입니다.
그런데 이 ‘섬기다’는 히브리어가 ‘아바드’(עָבַד)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예배하다’는 뜻이고 ‘서비스하다’ ‘일하다’하는 뜻도 있죠.
섬기는 삶은 표면적으로 보면 고달파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 감사와 기쁨이 넘쳐납니다.
물론 개와 같은 상황을 만들고서 개같은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섬긴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야말로 그 개의 노예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깨달음)본문의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겨라, 하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분은 개 같은 상황을 말끔히 정리해주시는 그 능력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한나도 개같은 상황을 자의반 타의반 끌여들었지만 그것을 해결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쏟아부은 것이었죠.
그러니 상황을 해결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어찌 감사와 기쁨으로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설령 그 후에 또 다른 바퀴벌레나 파리떼같은 사탄의 세력들이 흔들고자 할 때도 결코 그녀는 개같은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죠.
(주문)그러니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개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께서 네가 감사의 기쁨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자꾸자꾸 바퀴벌레와 파리떼같은 사탄의 세력들이 좋아할 상황을 네가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얼마든지 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개에게 끌려다니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더냐?”
“한나가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녀는 하나님께 나아가 온 영혼과 마음을 쏟아붓지 않았더냐?”
“그때 하나님께서는 개같은 그 상황을 정리해 주셨고, 그의 심령에 감사와 기쁨을 회복케 해주지 않았더냐?”
“그런 은혜를 체험한 이후 그녀가 하나님께 경배할 때 감사와 기쁨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시기에 네가 개를 상전으로 모시는 그런 인생을 처음부터 싫어하는 분이지 않았겠느냐?”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세상에 다른 상황을 더 의지하다가 지금은 통제불능의 개같은 상황이 되지는 않았느냐?”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이 한나처럼 질질 끌려다니는 황이라면 주님께서는 그걸 끊어내길 원하지 않겠느냐?”
“그리하여 네 영혼에 감사와 기쁨이 회복되고 네 심령에 평안을 불어 넣어주길 원하지 않겠느냐?”
“그때마다 주님을 경배할 때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겠느냐?”
(찬양)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를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를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주만 바라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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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예전에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을 한 분이 현대아산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을 했습니다.
그때 그 분은 당신이 섬기는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수술한 후에 가스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배가 점점 부풀어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장로님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달했어도 의학으로 안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입니다.
방구는 의학으로 또 인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말이죠.
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한 지 보름이 되어 가는데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는 죽게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담임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교회 목사님이 와서 배에 손을 얹고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하죠.
“하나님 아버지! 이 가스가 나가는 길을 열어주십시오.”
“다 길은 있어도 지금 안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나왔는데, 얼마 후에 그 분에게 전화가 온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너무너무 감사해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가스가 나오는데 총소리처럼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나왔어요.”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어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방구 하나 끼는 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러나 병원에서 수술한 이후에는 그 방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분은 알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그런 은혜를 받았으니, 매사에 작은 것 하나도,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겠습니까?
(전개)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인이 또 하나의 동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하는 게 그것이죠.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기쁨의 환호를 지르며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나가라’ 하는 뜻입니다.
이것은 축구국가대표선수나 월드컵대표선수가 골을 넣고 카메라 앞에 나아가 세레모니를 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때 골을 넣었다면 밋밋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나서겠습니까?
아니죠.
최대한 소리를 지르며 기쁨으로 세레모니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자들, 개같이 상황에 끌려다니는 삶을 청산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자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찬양하며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방구 소리가 그렇게도 그리웠던 그 분도 그 방구 소리에 저절로 하나님께 감격하며 나아가지 않았겠습니까?
(예화)지난 9월 6일날 덮친 태풍 ‘힌남노’로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많은 목숨이 사라졌죠.
그때 함께 실종된 가족 중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50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오천제일교회를 다니는 김은숙 집사님이 그 분입니다.
그날 그 집사님은 구조됐지만 함께 지하주차장에 나갔던 아들은 끝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날의 모습속에서 겪은 그 집사님의 간증이 다음과 같습니다.
태풍이 불어닥친 그날 아파트 관리실에서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량을 옮기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차를 빼러 나가는데 중학생이던 아들 주영이도 함께 가겠다면서 따라 나섰죠.
“엄마, 내가 지켜줄게, 내가 엄마 보호자 해줄게”
그러니 그 집사님은 아들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강한 바람에 자신이 밀려 넘어지는 걸 본 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봐 엄마. 엄마는 내가 지켜줘야 한다니까”
지하 주차장에 들어간 그 집사님과 아들은 이제 차를 몰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차장 입구로 갑자기 폭포수 같은 물이 들이닥치는 것이었습니다.
키 큰 장정들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집사님과 주영이는 차를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차장 뒷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불이 껴졌고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문 앞에 도착했지만 수압때문에 도저히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은 ‘이렇게 하나님 품에 가는 구나’하며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의 아들 주영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러자 엄마인 그 집사님은 주영이에게 “아들, 지켜주지 못해서 엄마가 미안해”라고 답을 했죠.
그러면서 아들은 먼저 회개기도를 시작했고 그 집사님도 그 기도를 따라서 같이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더욱이 함께 갇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지하에 갇힌 분들이 모두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가 끝나갈 무렵 물은 천장까지 차올랐고 그 집사님의 코와 눈까지 물이 들어어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막힌 채로 한 손으론 소방벨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론 벽과 전선을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영아’, ‘주영아’하고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질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물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선가 불빛이 비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조를 받았는데 3시간 정도 지난 줄 알았지만 나중에 들으니까 14시간이 지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졌는데 그러면서도 애타게 아들 주영이를 찾았습니다.
그때 그분의 남편이 중환자실에 들어왔고, 그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하는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여보. 살아줘서 고마워. 주영이는 천국 갔어.”
그러자 그 집사님은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집사님이 아들 주영이의 얼굴, 시신이 된 얼굴을 본 때는 입관식 날이었습니다.
그때 자신의 아들은 어느때보다도 편히 잠자는 모습이었고, 얼굴에서 빛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그 집사님은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었다고 하죠.
왜냐하면 주님께서 자기 아들이 하나님의 품에 안아주셨다는 확신이 들게 해 주셨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그 집사님은 지금까지 슬픔을 이겨내면서도 주님을 더욱더 신뢰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깨달음)만약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지금껏 그 슬픔과 고통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겠죠.
그리고는 정부를 욕하고 지자체를 비난하고 그 아파트 관리인을 향해 불평과 원망으로 정죄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집사님은 그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자기 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방구 하나 낄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감사한 일임을 알게 되었네요.”
“제가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한나처럼 개같은 상황을 정리해주셨기 때문만은 아님을 알았어요.”
“태풍 힌남노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어도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네요.”
“개같이 끌려가는 상황을 정리해 주실 때도 감사와 기쁨이 충만케 하시고, 아들을 잃는 슬픔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며 해 주시네요.”
“신앙은 어떤 상황을 맞이하든지 믿음의 해석을 갖고 감사하며 살 때 사탄의 세력이 떠나가는 줄 믿습니다.”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믿음으로 해석하며 나아가게 해 주세요.”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도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게 해 주세요.”
(찬양)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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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어려분.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관자로 모실 때부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탁하는 자들을 더욱더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바퀴벌레나 파리떼가 들끓는 심령, 그런 심령을 개처럼 질질 끌고 가려고 할지 모릅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한나처럼 주님 앞에 온전히 심령을 쏟아붓는 길인 줄 믿습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개처럼 끌려다니는 상황을 온전히 해결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를 체험할 때 얼마나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때로는 방귀 하나 뀔 수 있는 것 때문에 감사할 수 있고 물 한 모금 커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태풍 힌남노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을지라도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믿음으로 해석하는 자는 그 속에서도 감사하며 주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것이죠.
주님. 저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고 고백과 다짐의 기도를 드리도록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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