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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것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님의 복음을 전한 갈리디아교회의 성도들이 유대 율법주의 거짓 교사들의 침투로 인해 혼란을 겪고, 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 거짓 교사들을 베어내라고, 철저하게 차단하라고 했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을 쫓아내도록 한 것과 같다는 측면이었죠. 대신에 너희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사라를 통해 태어난 이삭의 후예와 같이 참된 자유의 자녀들이다, 하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어제 읽은 말씀도 그런 거짓교사들을 끊어버리도록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양들과 노략하려는 이리 떼와 같은 자들이기 때문이었죠. 다만 너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영생의 자유를 얻었다면, 너희 몸을 순전한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성도들 간에 비난하거나 헐뜯지 말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이자 성화의 삶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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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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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연장선상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에 대해 권면해 줍니다. 16-17절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이 나오는데, 이때의 육체란 살과 피로서의 육체를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육체’로 번역된 헬라어 ‘사르크스’는 ‘몸’을 가리키는 ‘소마’가 아닙니다. ‘죄 성’ 곧 ‘부패성’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해도 ‘죄의 부패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육체의 욕심 곧 육체의 소욕이죠. 바울도 그 두 마음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하고 로마서 7장 24절에서 탄식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겨낼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과 이끄심 속에서만 이겨낼 수 있고, 자유할 수 있다고, 로마서 8장 1절에서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지금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 18절 말씀처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매일 매일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갈 때에만 육체의 소욕을 이겨내며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율법 아래에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때에만 율법에 정죄를 받지 않는 참된 평안과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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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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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울은 성령의 소욕과 반대되는 육체의 일에 대해 차례로 이야기합니다. 19절에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육체의 일 첫 번째는 음란입니다. 전통사본에는 ‘음행’ 앞에 ‘간음’이라는 말이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등은 다 ‘성적인 죄악들’입니다. 세상의 많은 죄악들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두드러진 죄악이 ‘음란’입니다. 음란은 부부관계를 벗어난 모든 육체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의 성(性)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룩한 성입니다. 오직 부부관계를 통해서만 생명이 잉태되는 신비로움을 허락하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그와 같은 성적인 죄악들을 범하고 있습니다.
20-21절에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여기에서 ‘우상숭배와 주술’은 육체의 두 번째 부류입니다. 우상숭배죠. 우상숭배는 음란보다는 더 근원적인 죄악이지만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서 모세를 기다리면서 만든 황금송아지 우상도 실은 하나님을 그렇게 빚어 만든 것이었죠. 황금송아지는 우상이 형상화된 것이고, 이미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탐욕이 우상숭배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 안에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눈에 띄는 우상숭배도 있습니다. 차를 샀을 때 고사를 지내거나, 결혼과 취직과 승진을 앞두고 점이나 궁합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것들이죠. 그것들이 눈에 띄는 우상숭배 행위죠.
육체의 일 세 번째 부류는 원수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입니다. 이런 것들은 ‘싸움’과 관련된 것들이죠. 이웃을 미워하는 데서부터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싸워야 할 것은 진리와 생명을 위해서 싸워야 할 영적인 싸움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네 번째 육체의 부류는 술취함입니다.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죠.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사람이 방탕하게 됩니다. 마약도 마찬가지죠. 술취함이나 마약은 사람의 바른 정신을 빼앗고, 비현실적 환각 상태에 빠뜨립니다. 그로 하여금 책임 있는 인격자가 되지 못하게 만들죠. 노아의 술취함도 그했고, 구약의 제사장들에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도록 한 것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네 부류에 해당하는 육체의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죠? 아무리 구원을 받았어도, 그 안에 부패성 곧 육체의 소욕을 좇으려는 마음과 성령의 소욕을 좇으려는 마음이 갈등하는데, 그때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른다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에 그런 유혹 앞에 넘어졌을 때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하는 것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고 주님께 구하면서 살아가는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바울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22-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에 ‘열매’로 나오는 헬라어 ‘카르포스’는 단수명사입니다. 아홉 가지 열매들이 따로 떼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한 열매의 여려가지 면이 붙어 있는 형국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분리된 것들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연스럽게 맺어가는 요소들이라는 점입니다.
‘사랑’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자체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최고 덕목입니다. ‘희락’ 곧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화평’, 곧 화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평화를 일구는 자 곧 피스 메이커가 되는 것이죠. ‘오래참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비’ 곧 친절함입니다. ‘양선’ 곧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려는 선한 마음입니다. ‘충성’ 곧 모든 일에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온유’, 교만함과 반대되는 부드러운 마음을 뜻합니다. 마지막 ‘절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내 육체의 소욕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열매들이 성령의 열매요, 함께 어우러지는 요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갈 때 사실상 율법의 성취를 완성해가는 것이고, 주님 안에서 온전한 성화의 삶을 이루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이 왜 그런 열매를 맺어가야 하는가?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에게 있는 육체의 소욕들까지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우리 속에는 그런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하는 삶이 지속적으로 갈등하고 싸우지만, 주님과 함께 이미 죽은 자임을 기억한다면 세상의 헛된 영광 곧 육체의 소욕을 좇는 데서 죽은 자로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입니다, 하는 것 말입니다. 그때에만 육체의 소욕을 이겨내며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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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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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그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 것,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친절, 선함. 신뢰, 온유, 절제의 덕성 말이죠. 아무쪼록 세상 영광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열매 맺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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