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18 )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18 )

반응형

 

오늘은 갈라디아서 마지막장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왜 자신이 갈라디아서를 급히 써야 했는지 밝혀주었죠. 자신이 갈라디아교회에 뿌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흔들어 놓는 자들, 곧 유대 율법주의 교사들이 침투해 들어와서 할례와 같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현혹하고 있었고, 자신의 사도성까지 부정하고 있었기에, 펜을 들어 갈라디아서를 썼던 것이죠.

 

2장에서는 이야기한 내용은 그것이었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복음이 참 생명과 참 자유의 복음이라는 것, 자신의 사도직이 주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이자 많은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아라비아 광야 3년 경건훈련을 거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 사도와 함께 15일간 머물렀고, 고향 다소로 7년간 칩거하다가 바나바에 의해 안디옥교회의 공동담임목회자가 되어 3년간 섬긴 뒤,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의해 1차 선교여행을 떠나 3년에 걸쳐 갈라디아교회를 세우고 돌아왔는데,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차 14년 만에 예루살렘교회를 다시 밟았는데, 그때 예루살렘교회의 유력자들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주님께 부름 받은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줬다는 것이었습니다.

 

3장에 바울이 무엇을 이야기했습니까? 율법과 복음의 관계, 곧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립해주었습니다. 그를 위해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주었죠.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할례를 받은 시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을 때였다고 말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네 가지 약속을 하셨는데,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해 주겠다, 네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겠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창22:18) 하는 것이었죠. 그 중 ‘네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 ‘아브라함의 씨’는 단수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언약이라고 했죠. 그것 역시 율법이 주시기 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음이라는 것이죠. 바울은 그래서 율법은 아브라함으로부터 430년 뒤에나 나온 것이라고 했죠. 더욱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도 그들을 구원해 내신 뒤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지침서 격으로 주신 것이었죠.

 

4장에서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다시 짚어주었습니다. 때가 되어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전의 율법은 초등교사 곧 초등학문과 같은 것이라고 했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예법과 음식과 예절을 가르친 초등교사 말이죠. 그러나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초등교사가 필요치 않는 것이죠.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된 생명과 자유를 주는 복음이기에 더 이상 율법의 구속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했죠. 그래서 갈라디아교회에 침투한 유대 율법주의 교사들을 단호하게 내치라고 했는데, 그 모습을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통해 예로 들었죠. 몸종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 정실부인 사라를 통해 태어난 이삭으로 말이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괴롭힌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했듯, 너희도 율법교사들을 내좇으라는 것이었죠.

 

5장에서 바울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들이 다시 할례와 같은 율법의 멍에를 메는 삶으로 돌아간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이죠.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게 하듯이, 그 전에 너희들은 그들을 차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너희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주님안에서 참된 생명과 자유를 얻게 되었다면 이제는 너희들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고, 성도들 안에서 비난하거나 헐뜯지 말고 사랑의 삶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곧 자기 육체의 소욕을 좇는 삶이 아닌 성령을 좇는 삶이기 때문이죠.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면 음행이나 우상숭배나 원수 맺는 것이나 술 취함과 같은 판단력이 흐려지는 죄악들을 좇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대신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친절, 선함. 신뢰, 온유, 절제와 같은 덕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했죠. 그것이 바로 자기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곧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008532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오늘 마지막 6장입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실제적인 적용에 대해서 권면하고 인사말로 마무리합니다. 1-5절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이리떼와 같은 율법주의 교사들은 베어버려야 하지만, 같은 교인들 사이 곧 같은 주님의 양들 안에서 범죄한 경우에 온유한 심령으로 권면하고 서로 짐을 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시험받아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뭔가 된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교만하지 말라고, 권면하죠. 그래서 무엇이든 자랑치 말고 자기의 짐을 짊어지라고 말합니다. 2절의 ‘짐’(βάρος)은 가혹하여 감당하기 힘든 일이나 인생의 좌절을 의미는 짐이지만 5절의 ‘짐’(φορτίον)은 한 사람의 짐을 말하는 것이죠. 감당하기 힘든 짐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하지만, 마땅히 내가 져야 할 짐을 이웃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는 거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product.kyobobook.co.kr

 

6-10절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아교회 내의 성도들 사이, 또 말씀으로 가르치는 진리의 교사들에게는, 좋은 것을 나누고 선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왜죠?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선을 심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함께 신앙생활하는 이들에게, 더욱더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사는 실제적인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11절에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헬라어 원문은 ‘에이도’(εἴδω) “보라”하는 말이 맨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새번역은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직접 이렇게 큰 글자로 적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이제 남은 몇 마디를 직접 자기 자필로 써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더욱더 눈여겨보라는 뜻입니다.

무슨 내용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까? 12-17절의 말씀이죠. 그 핵심은 14절과 17절에 있듯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게 없다는 것이죠. 내 몸에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고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흔적’이란 ‘스티그마’(στίγμα)입니다. 2천년 전 로마 사회에서 주인이 자기 노예들에게 주인의 이름을 새긴 불도장을 찍었는데, 그걸 말한 것이죠.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위해 불도장을 찍은 ‘주님의 노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 외에 어찌 율법주의자들의 교리에 끌려다닐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너희들도 그러니 휘둘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말을 남깁니다. 18절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큰 글자를 새겨 넣으면서 ‘형제들아’하고 부릅니다. ‘형제’란 ‘아델포스’(ἀδελφός)로서 한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말하는 뜻입니다. 나나 너희들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라는 자궁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 분의 은혜가 너희들의 심령을 굳건하게 하기를 기원한다는 것이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008532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이와 같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성령님께서 깊이 새기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죠. 나의 육체의 소욕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더불어 그 분의 흔적을 내 몸에 지니고 살라는 것이죠. 그것이 진정 복음 안에서 자유하는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사는 자들의 삶은 그 안에서 주님께서 사시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