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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가 허물어진 성벽과 성문을 재건코자 하는데, 외부적인 문제와 내부적인 문제에 봉착했죠. 외부적인 문제란 산발랏과 도비야와 암몬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 그리고 아스돗 사람들 등 유다의 동서남북 사방에서 조직적으로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등장한 점이었죠. 그때 느헤미야가 어떻게 해결해 나갑니까? 하나님께서 이전에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지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을 붙잡고 더욱 강한 믿음으로 나아가고 주문했죠. 그래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 공사를 하면서 한 손에는 병기를 한 손에는 일을 했죠. 그런 식으로 무리의 절반은 창을 잡았고 무리의 절반은 일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죠. 그렇게 외적인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지혜롭고 또 담대하게 헤쳐 나갔는데, 내적인 문제도 밀려왔죠. 이른바 유대 사회의 요동이었..
느헤미야가 자기 친동생과 동포들로부터 고국의 상황을 전해 들었죠. 예루살렘 성읍은 황폐화되었고, 성벽과 성문이 다 무너져 내렸다고 말이죠. 그때 왕 앞에 서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4개월이 지날 때 드디어 왕 앞에 술맡은 관원이 되어 알현할 수가 있었죠. 그때 느헤미야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아닥사스다 왕 앞에 섰고, 왕이 필요를 묻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왕에게 자기 계획을 이야기했죠. 말미를 주시면 자기 고국에 돌아가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고 돌아오겠다고 말이죠. 대신에 바벨론 지역의 강을 건너 유다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을 주시고, 또 성벽과 성문을 재건할 나무 벌목허가증까지 주라고 요청했죠. 그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드디어 ..
3차 포로귀환 인솔자인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쉼을 얻은 후에, 몇 몇 사람들과 나귀를 타고 성 주위와 성문들을 둘러봤습니다. 이른바 잠행에 나선 것이었죠. 그런 뒤 유다 사람들과 제사장들, 귀족들과 방백들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가 당한 곤경은 참으로 황폐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었고, 성문은 불 타버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루살렘 성을 쌓아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십시다.”(2:17)하고 말이죠.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이 처한 현실을 ‘곤경’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곤경’은 히브리어로 ‘라아’인데, ‘재앙’을 의미하죠.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않아 지금 심판을 당해 재앙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느헤미야는 지금 당..
오늘 읽은 느헤미야서 3장은 예루살렘 성벽 중수, 즉 성벽 보수공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루살렘 성과 성문들의 상태는 1장 3절에서 이미 읽은 바 있듯이,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타버렸죠. 포로귀환자들 가운데 자기 친동생과 몇 몇 사람들이 그런 상태를 보고 수산 궁에 있는 느헤미야에게 와서 이야기한 내용이었죠. 그만큼 성전은 재건했지만 성과 성벽은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였죠. 그런 상황을 전해 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아닥사스다 왕 앞에 섰죠. 그래서 2장 5절을 통해 기한을 주면 성을 건축하고 돌아올 것이요, 그에 따른 통행증도 내주시고, 벌목 허가증까지 달라고 계획을 세워 보고했죠.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의 허가를 받은 느헤미야는 3차 포로귀환자들 극소수의 귀환자들과 돌아왔고, 3일간 ..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즉위 20년 기슬르월에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산 궁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페르시아에서 자란 사람이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1, 2, 3차에 걸쳐 공격을 받았고 3차 공격 때 완전히 멸망당해 성전도 무너졌고 성벽도 허물어졌고 하층민만 남겨 둔 채 모든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갔죠. 그러나 그 바벨론도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에 의해 멸망당했죠. 그러니 바벨론 땅에 살고 있는 유다 민족은 자연스레 페르시아의 속국민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페르시아의 노예민족으로 살고 있는 유다의 부모 밑에 태어난 이가 느헤미야였습니다. 한 마디로 느헤미야는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유대 사회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그저 말로만 듣고 자란 세대였죠. ..
오늘부터 살펴볼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들 가운데 3차 포로귀환이 이뤄진 것, 그 인솔자인 느헤미야의 주도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일을 담고 있습니다. 이른바 B.C.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죠. 그로부터 117년 뒤인 B.C.605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의 통치 원년에 바벨론 제국은 남 유다를 정복하러 나섰고 그때 남왕국 유다의 제18대 왕 여호야김을 비롯한 젊은 인재들을 포로로 끌고갔죠. 그것이 제1차 바벨론 포로기였죠. 그때 다니엘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B.C.597년에 바벨론의 대왕 느부갓네살이 남왕국 유다를 공격했는데 그때 제19대 왕 여호야긴 곧 여고냐와 함께 많은 방백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때 에스겔 선지자도 끌려갔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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