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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93편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시입니다. “다스린다.”, “통치한다.”는 것은 우리 생활 속에서는 행정기관, 정치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고, 역사 속에서는 “임금, 왕에 의한 통치”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라도 우리나라 정부의 통치의 손길이 닿는 곳이면 그곳은 대한민국이 됩니다. 그러나 같은 한국 영토 안이라도 우리 주권이 미치지 아니하면 그곳은 대한민국이 아니죠. 일제 식민주의 36년은 우리 땅에 우리가 살면서도 우리의 주권을 상실한 채 지냈고, 8.15 광복을 맞아 겨우 주권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우리 영토 안에 있지만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대사관이나, 일본대사관 경내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어도,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그곳은 미국 그리고 일본의 주권이 미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손길이 미치는 곳이면, 그곳이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며, 아무리 화려하고 살기 편하다 해도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곳이면 그곳은 평화를 찾기 어려운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 살아도,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며, 그분의 다스리심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와는 달리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맛보지도 못하거나 아예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이 이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으며, 처음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통치는 계속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한 이래 무질서와 혼돈, 사망과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가리워 지고,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 밖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무관한 것처럼 오해하면서 살고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는 곳이면, 그곳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신앙의 주제였죠.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 바리새인들의 하나님 나라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그렇게 답한 말씀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여러분 안에도 그리고 제 안에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정도, 여러분의 사정도 환히 알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 이것이 가장 복된 소식, 복된 복음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사람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계나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고,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인간이 누구든지 그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겐 주님이 좌정하시고 다스려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열지 아니하면 주님은 강제로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임으로, 예수님이 다스리심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어떻게,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시편 35편 23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하고 말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나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간섭하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 아침 우리가 주 앞에 나와 기도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속에 분쟁이 있거나, 관계의 어려움이 있는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기대하는 것, 그 분의 통치에 기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여호와여 큰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여섯 번이나 큰물, 큰 물결, 파도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면서도, 우리 인생의 삶 가운데에는 다양한 물결들이 파도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 대통령의 시대라며 대단히 환호했고, 나라가 바뀔 것처럼 떠들어대지 않았습니가? 그런데 세금 제도를 개편해서 엄청난 세수를 거둬들이니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고, 여론도 좋지 않았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나라가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죠. 그만큼 세상풍조는 변화무쌍하다는 것입니다. 인생 풍조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인생도 실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3절과 4절에 나오는 ‘큰 물’, ‘홍수’, ‘파도’란 실은 이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악의 세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노아 홍수 때 세상에는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죄악을 심판하시는 속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으로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셨고,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며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편 46편 1-3절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세상의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빠지고, 솟아나고 뛰놀고 요동칠지라도 그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7장 2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결코 세상 것으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말씀으로 다스리십니다. 시편 93편 5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 무궁하시리이다.” 거기에서 ‘주의 증거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들”, “하나님의 약속들”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통치하시며, 이 말씀, 곧 그 증거들은 확실하고 합당하다는 것이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인생의 부귀영화는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 영원하다는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결코 흔들림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법이죠.
오늘 이 아침에,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붙잡고,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땅이 변하고, 세상이 요동칠지라도,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은 변함이 없이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을 품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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