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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아이의 치유와 극복
첫 번째 단계는 과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 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버렸노라’는 헬라어 ‘카타르게오’는 ‘to put away’(그것을 처리한다,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서 그것을 극복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먼저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오늘날 나의 가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기능적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나의 부모가 어떤 부모였는가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부모의 역할 수행 방법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기만 해도 대략적으로 나의 인격 형성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가 특별히 이혼한 사실이 있는지, 이혼했다면 어렸을 때 나 자신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나의 부모는 애정 표현이 없이 거의 남남처럼 산 것은 아니었는지, 유전적인 질병이나 무속적 관습, 학대적 습관은 없었는지, 도벽이나 거짓말은 심하지 않았는지, 특별한 중독 성향은 없었는지 등등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다음 두 번째 단계로 조상의 범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내가 직접 범한 죄는 아니지만 나에게까지 파급이 미쳐왔던 그 죄를 자복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6장 42절 이하에 보면 “너희 열조의 죄를 자복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속적인 고백입니다.
내가 대신해서 고백하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세 번째로 조상을 용서하십시오.
부모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 히시면서 우리들을 용서하실 때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사실 많은 경우 우리의 부모들도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준 것은 아닙니다.
부모들이 몰라서 그러기가 십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부모의 무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 단계로 기억의 치유를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과거를 부인하지도 도피하지도 말고, 단지 과거를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괴롭혔던 문제에 대해서 자기의 부모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렸을 줄 압니다.
그런데도 용서가 안 된다는 고백을 왕왕 듣습니다.
왜 그럴까요? 의지적으로는 용서했지만 감정적인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어두운 현장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어렸을 때 경험한 모든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내십시오.
내가 너무너무 섭섭했고, 우리 부모에게 너무나 가슴 아프게 느꼈던 일들을 생각해내십시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이 상황에서 너무 아팠어요, 괴로웠어요.”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아팠던 그 순간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부모님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저는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라면 우리 예수님은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우리가 아팠고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의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분이라고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해방되십시오.
이런 기도를 드릴 때 점차 그 감정적인 상처에서 자유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것이 아프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작업이 이루어지고 나면 ‘현재를 수용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현재 상태에서의 나의 책임을 수용하라는 말입니다.
현재 내 삶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나의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영향을 받아서 현재와 같이 된 데에는 나 자신의 책임도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신명기 24장 16절을 보면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하실 때 “아비의 죄 때문에 너도 멸망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결정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는 아버지의 죄 때문이 아니고 내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줍니다.
그 아버지가 내게 준 고통을 잘못 처리하고, 잘못 수용하고, 잘못 반응했던 내 책임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 곧 ‘미래를 향해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엡4:13-14)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떤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성숙한 인간의 삶을 추구해 야 한다는 명제에 접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성숙한 인간이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하반부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만약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부분에다 ‘사랑’ 대신 ‘어린아이’란 말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린아이는 오래 참고 어린아이는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어떻습니까?
설득력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면 ‘오래 참는’ 사랑은 어린아이가 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어린 아이란 말 대신 ‘성숙한 사람’이란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성숙한 사람, 장성한 사람은 오래 참고 장성한 사람은 온유하며 장성한 사람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런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어린 아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인아이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바로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자라나가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인아동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어린아이를 벗어버리고 어른 되기를 추구하는 행동 목표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때 자신이 무엇을 안 하겠다는 결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엇을 해야만 합니다.
그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대치적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나치게 성취 지향적인 어린아이는 완전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사람은 아무도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빚어주신 데 대해 자기를 좀더 높이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하는 어린아이는 자기를 강압해오던 권위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의존적 어린아이는 일의 성취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 일하도록 해야 하며 무절제한 어린아이는 충동적 삶을 계획적 삶으로 바꿔야 합니다.
고독한 어린아이는 능동적으로 교제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자학적 어린아이는 자신을 용납하는 것 혹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꾸준히 배워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한순간에 되지 않더라도 노력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서서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수용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변화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14:20)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75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내 성숙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과 똑같아지는 결과를 빚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거기에 집중의 힘이 쏠리게 됩니다.
계속 그 사람을 생각하고 묵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 사람의 영상에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그 사람만 생각나고 주야로 그 사람만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묵상하다보면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성숙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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