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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외국에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한 아가씨가 앵무새 가게를 지나가는데 선전을 하려고 했는지 새장 하나가 밖에 내걸려 있었습니다.
한 아가씨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새장 안에 있던 앵무새가 영어로 말을 하며 아가씨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 당신 되게 못생겼다.”
앵무새의 말이었지만 아가씨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후에 다시 그 길을 지나가는데 앵무새가 또다시 그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할까?”하고 아가씨는 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앵무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 당신 되게 못생겼네.”
그 말을 듣는 아가씨는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가게 주인은 왜 앵무새를 밖에 내놓고서 지나가는 사람을 괴롭히게 하도록 내버려둘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그 아가씨는 또 참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세 번째였습니다.
그 길을 아가씨가 지나가는데, 아가씨는 전방 10m부터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앵무새는 아가씨를 또다시 불러 세웠습니다.
“헤이 아가씨, 당신 되게 못생겼네.”
그 말을 들은 아가씨는 정말로 열받았습니다.
그래서 앵무새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 주인 아저씨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앵무새를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함부로 모욕하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깍듯이 사과하며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가 잘 교육 시키겠습니다.”
그 후에 아가씨가 다시 그 길을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안 그럴까 하는 마음으로 지나가는데, 전방 20m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 만 더 그러면 아예 고발하고 말겠다는, 각오로 지나가고 있었죠.
그러자 앵무새는 “헤이, 아가씨?”하면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가씨가 앵무새를 쳐다보자 앵무새는 막 웃더랍니다.
그리고서 하는 말이, “아가씨. 알지? 알지?” 하더라는 것입니다.
(깨달음)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유머 같습니까?
이 유머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누군가 나를 지적하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를 바르게 일깨워주는 일도 필요한 법이죠.
그래야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쯤 깊이 생각하며 성찰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적용)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음받은 존재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찬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베드로 사도가 출애굽기 19장 말씀을 인용하여 소아시아 성도들과 우리에게까지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시로 날개로 없듯이 품어서 광야를 헤쳐나가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언약의 말씀을 좇아 살면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계 민족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제사장 나라로 삼겠다고 말이죠.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죄와 사망의 자녀로 살고 있던 우리에게 독생자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자녀가 되도록 부르신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정체성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찬양)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모두 무릎 꿇고 경배해
거룩하신 주님 보좌 앞에 엎드려 절하세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리
(역배)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앞두고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죠.
본래 마귀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 하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천사들의 우두머리였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들의 우두머리격인 가브리엘처럼, 하나님을 보위하는 천사들의 우두머리격인 미가엘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는 자신을 따르는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서 이탈해 자기 영광을 독차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배반하여 마귀 곧 사탄이 된 것입니다.
그만큼 그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천사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할 때 타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죠.
마귀와 그 세력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며 세 가지 시험을 벌였는데, 첫 번째 유혹이 무엇이었습니까?
40일을 굶주린 예수님에게 주변의 수 많은 돌들로 떡덩이 곧 빵을 만들어보라고 유혹해 왔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워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마귀의 유혹에 농락당하지 않았습니다.
신적인 능력으로 얼마든지 빵을 만들 수 있었지만 결코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고자 하지 않은 것이었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대우주적인 구원사역을 위해 자신의 신적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자신을 보내신 뜻이요, 자기 정체성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깨달음)이런 유혹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여 불러주신 자녀들에게 개별적인 은사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죠.
세상은 유명 정치인과 재력가와 연예인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어린아이까지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죠.
그런 어린아이까지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셨다면 그에 합당한 은사와 능력과 재능을 부여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우리 자신을 향해서도 내 성품과 체질과 능력에 맞는 재능을 부여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시죠.
그런 재능과 능력을 부여해주신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게 하신 목적도 있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마귀와 추종 세력은 그 재능과 능력을 오직 개인의 물욕을 채우는데만 사용토록 유혹한다는 거죠.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다,라면서 그 정체성을 굳게 지키길 원하시는 아버지시죠.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배2)두 번째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곳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군과 천사들, 하나님을 보위하는 미가엘과 수많은 천사들이 붙들어 줄 것이고 다치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그 유혹 앞 결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십자가 죽음의 길을 통해 메시아가 되는 것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메시아가 되라고 유혹한 것이었죠.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처럼 신성시하던 곳이니, 그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다치지 않는다면, 모두가 슈퍼스타 메시아로 떠받들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명예심과 허영심의 메시아가 아니라 십자가의 대속의 메시아 길을 걷는 것, 그것이 메시아의 정체성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죠.
(깨달음)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마귀와 그 세력들은 우리가 힘들고 고달픈 길을 걷기보다 쉽고 넓은 길을 택하라고 유혹하죠.
누군가 너를 비방하고 조롱할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라고 유혹해 옵니다.
주일이면 다들 육신적인 쾌락을 좇아 흥청망청 사는데, 너도 그렇게 즐기라고 유혹하지 않습니까?
불의한 방법을 동원하면 초고속 승진을 하고 부를 검어쥘 수 있는데 굳이 십자가의 길을 가냐고, 보다 쉽고 넓은 길로 들어서라고 유혹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마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 길을 좇아 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정체성을 잃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마귀가 세 번째로 예수님을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8-9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깨달음)‘지극히 높은 산’은 이스라엘 최고봉 헬몬산(2,814m)이나 느보산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높은 산이라기보다는 환상 가운데 설정된 산으로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간 것으로 보죠.
그 높은 산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유혹합니까?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신에 엎드려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노라고 유혹한 거죠.
과연 그 모든 만국과 그 영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거기에는 죄나 질병이나 가난이나 비참한 인간의 모습들은 가려져 있는 반쪽 상태의 영광이죠.월가의 금융탑과 마천루는 보여주지만 지하도의 행려병자들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마귀는 그런 부와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면서 그것들을 모두 누리게하겠다면서 엎드려 절하도록 유혹한 거죠.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신5:7)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
이 세상에 금은보화와 그 모든 주권도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자신에게 그런 주권과 능력이 있다면서 자신에게 경배하도록 유혹한 것이었죠.
(본문2)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단의 유혹을 물리쳤습니까?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절)
(역본)이 말씀을 새번역성경에서는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장 13절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은 모세가 광야 40년을 통과한 출애굽 1.5세대와 2세대를 향해 고별설교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을 애굽 땅 종된 집에서 인도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여러분들의 정체성입니다.”하고 말이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말씀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한 메시아의 길이지, 마귀에게 절해서 얻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마귀가 아무리 유혹해도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걸어가야 할 정체성을 잃지 않으셨던 거죠.
(적용)지금도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유혹해오지 않겠습니까?
마귀는 지금도 내 정체성을 흔들어대며 주님을 섬기는 방식에서 이탈하도록 부추기지 않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 돈과 명예와 권력을 섬겨야 하지 않겠냐면서 말이죠.
금과 은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물질의 청지기로 살아 가는데도, 너 자신이 물질의 주인이 되어 살라고 유혹하는 것 말이죠.
의와 진리의 길을 좇아 살아야 하는데도, 불의와 거짓된 길을 좇아 살라고 마귀가 유혹하는 것 말이죠.
우리가 그런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이겨내길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원성)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4)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주문)그렇다면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마귀의 유혹 앞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네가 어떤 마귀의 유혹 앞에서도 너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굳게 지켰으면 좋겠구나.”
“앵무새가 그 여성에게 ‘알지, 알지’하고 말할 때, 그것은 기분 나쁜 소리가 아니라 네가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음성이야.”
“마귀가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을 할때 예수님은 구속사역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지 않느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손쉬운 메시아가 되라고 유혹할 때도 십자가 대속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았지 않더냐?”
“자기에게 경배하면 천하 만국과 영광을 준다고 유혹할때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메시아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았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마귀가 너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로 유혹할때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라.”
“마귀가 쉬운 방법으로 예배하고 기도하라고 유혹할 때 지성소로 나가는 십자가길을 잃지 말도록 해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알아주기나 하냐면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신처럼 경배하라고 할때도 너의 정체성을 잃지 않더록 해라.”
“물질의 청지기로 살아가는 너를 흔들어대며 네가 물질의 주인이 되라고 유혹할 때도 하나님 소유라는 정체성을 놓치지 않도록 해라.”
“성령의 소육을 좇아 사는 너에게 육신의 생각을 좇으라고 부추길 때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굳게 지키도록 해라.”
“마귀가 언제 어떤 상황으로 흔들어댈지라도 하나님의 소유요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킬 때 주님께서 독수리처럼 날개쳐 올라가도록 너를 붙들어주지 않겠느냐?”
(찬양)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 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예화) 초대교회 시절 서머나 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서머나 교회에 ‘치아파닉’이라는 12살 먹은 남자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는 황제숭배 사상으로 인해 황제를 신성시하여 황제상을 만들고 제단에 절하게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절하지 않고 서서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내 생애에 가장 귀한 분이고 오늘까지 나를 살리신 분이시기 때문에 내가 절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 말로 인해 그 아이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도화선이 되어 그 교회 지도자인 폴리캅을 잡아오도록 로마 당국에서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총독이 그 지역에 가보니 폴리캅 감독은 지역주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감독을 죽인다면 지역주민들에게 반발을 살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폴리캅 주교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폴리캅 주교. 로마 황제 가이사가 나의 주인입니다,하는 한 마디 말만 하시오, 그러면 죽이지 않겠소.”
그때 폴리갑 감독은 그런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보시오 총독. 지난 86년 동안 주님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주님을 내가 어떻게 배반하고 황제를 내 주인으로 숭배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절대로 나의 주님을 배신할 수가 없소.”
결국 A.D.155년 2월 23일 토요일, 폴리캅 감독은 화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영원토록 주님의 품 안에서 존귀한 사랑을 받고 있지 않겠습니까?
(성화)그런 모습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죠.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는 유다왕국이 망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유다 왕은 물론 대신들과 백성들과 제사장들까지도 영육 간에 완전히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예레미야아, 유다 왕과 대신들과 온 백성들이 타락하여 이방 신을 떠받들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우상으로 떠받들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멸망시킨다고 심판을 선포하도록 해라.”
그때 예레미야가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왕과 대신들과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저를 향해 조롱하고 침뱉고 심지어 감옥에 가둬버리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유다 왕 앞에 자살꼴을 넣으러 가는 것과 같은 일이라, 예레미야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자기 정체성을 놓치지 않았던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을 하죠.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8-9)
(깨달음)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러 가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지만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유다 백성들이 육적으로 죽어야만 다시금 영적으로 살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하게 태어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죠.
예레미야는 비록 죽음의 사지로 들어가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자기 사명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는 것이기에 순종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그때 마귀와 그 세력들이 얼마나 예레미야를 흔들어대고 유혹했겠습니까?
“예레미야야, 네가 왜 죽음의 사지로 들어가려고 그래. 거기는 모욕과 수모를 당하는 길이잖아.”
“차라리 그 길은 회피하고 하나님 세상에 넓고 편안한 길을 좇아 살아. 왜 그렇게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려고 그래.”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길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명의 길이자,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지키는 길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내음성)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는 길거리에서 앵무새가 못생겼다고 해도, 저는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이런 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피흘림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 너무 감사드려요.”
“이전에는 죄와 사망의 자녀요, 마귀와 지옥의 자녀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얻게 해 주시니 감사해요.”
“지금도 마귀와 그 세력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십자가를 좇아 사는 저의 정체성을 흔들어대고 유혹해 와요.”
“그때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마귀와 그 세력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은혜로 품어주세요.”
“서머나교회의 치아파닉과 폴리캅처럼, 예레미야처럼 살지는 못해도, 제 체질과 성정에 맞게 주님을 제 주인으로 온전히 섬길 수 있도록 저를 붙잡아 주세요.”
“이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를 좇아 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만 제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살게 해 주세요.”
“그때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듯이 붙들어 주시고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시고 주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매일 나의 삶에 주뜻 이뤄지록 새롭게 하소서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본래 죄와 사망의 자녀들이었습니다.
마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권세 아래 놓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피흘림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주셨고, 구원의 자녀로 품어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정체성에 걸맞게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드립시다.
이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고자 하는 마귀와 그 세력들은 지금도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어대며 유혹하고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이 세상의 부귀영화의 것들로 하나님을 등지고 다른 것들을 세상 신으로 숭배하게 유혹합니다.
그때도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길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서머나교회의 12살된 치아파닉도 주님을 배교하라고 유혹할 때, 그 아이도 사자굴에 던져질지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86년 동안 주님의 사랑과 인도함을 받은 폴리캅 주교도 한순간 목숨을 놓고 흔들어댈 때 그도 주님만을 왕으로 섬겼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죄로 물든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일이 죽음의 사지로 들어가는 길이지만 그걸 외면치 않았습니다.
오늘 마귀 사탄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흔들어댈지라도,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길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드리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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