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예화)이동원 목사님의 〈기적을 창조하는 자가 되라〉(2003·요단출판사)에 나온 내용입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지구촌교회를 목회하고 있을 때 알고 지낸 목사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순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생각지 않은 실수로 통일교에 연루가 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것이 무슨 일이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성지순례는 몇 백 만원 넘게 들어가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 그 순진한 목사님이 이십만 원이면 성지순례와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혹해서 그 여행을 주선한 단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않은 채 그냥 성지순례 여행에 따라나선 것이었습니다.
그 여행 코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돌아보는 코스였고, 또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도 방문하는 코스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몇 백만원에 해당하는 성지 순례 비용을 단돈 20만원으로 다녀왔으니 말이죠.
더욱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티인은 물론이고 뜻밖에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까지 둘러봤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행 끝무렵인가 그때, 어느 회합 석상에서 놀랍게도 그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여행이 통일교에서 주선 한 모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그 목사님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신 후에 통일교에서 엽서가 날아 왔습니다.
“목사님. 통일교회에서 모임이 있으니 나와 주십시오.”하고 말이죠.
그때 그 목사님은 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잠바 차림을 한 어떤 청년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하더라는 것이죠.
“목사님께서 통일교회 모임에 오지 못하신다면, 목사님께서 통일교 돈으로 세계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신이 통일교회에서 주최한 세계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교단에 알려지면 얼마나 창피하고 비난을 받겠습니까?
심지어 교단에서 퇴출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통일교가 주선하는 파티 모임과 호텔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도 그런 모임에 계속 끌려다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그 마음이 너무나도 괴롭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만 참석하고 다음부터는 않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 잠바 차림의 청년이 그 모든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다시금 으름장을 놓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계속해서 쫓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하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목사님은 마침내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그 목사님은 교단 모임에 나가서, 교단 산하에 속해 있던 모든 목사님들 앞에서 자신이 여태 행한 일들을 다 고백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통일교에서 주최한 성지순레와 세계여행에 따라다녔고, 그 후로도 통일교 주최 모임에 끌려나가다시피 했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그 목사님은 교단 산하 모든 목사님들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저를 목사직에서 쫓아내어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교단에서 어떤 징계를 가해도 저는 다 달게 받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목사님들 앞에서 자신의 불미스러운 일과 죄악과 연약함을 토해내자 여태까지 꽉 막혀 있던 가슴이 내려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또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합니다.
통일교 모임에 다시 참석하라고 연락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목사님은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잠바 차림의 청년이 또다시 찾아왔다고 합니다.
만약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과거에 함께 한 사실들을 다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말이죠.
그때 과연 그 목사님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때는 이미 그 목사님이 교단의 목사님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다 고백하고 용서받은 후였기에, 이렇게 담대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발하려면 해라, 이놈아. 나는 이제 자유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사건 같습니까?
죄의 유혹은 그렇게 교묘하게 파고든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사건이죠.
더욱이 죄를 짓고는 마음 편하게 살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죠.
어떤 죄든지 죄는 고백하고 용서받아야만 그 죄로부터 자유케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저에게 그렇게 유혹해 왔다면 저도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300만원 넘는 성지순례 비용에다,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까지 둘러보고 온다면 그야말로 600만원이 넘는 금액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든 비용을 단돈 20만원에 다녀올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느 누가 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적용)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 무엇이든지 간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없이 손쉽게 얻을 수 있게 하는 유혹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이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죠.
400년간 애굽 땅에서 종살이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애굽의 위쪽 지역인 블레셋 족속이 사는 땅을 통과하게 하셨다면 그들은 1-2주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겠죠.
그렇게 했다면 40년간 광야를 헤쳐나가야 했던 그 험난한 과정, 그 힘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1-2주면 도착할 코스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 40년 길목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토록 고통스런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어도 저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게 아니라 대가를 지불케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아담의 원죄 이후 모든 인류에게 죄와 사망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시는 것이면 충분한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니겠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 대신 피흘려 죽으신 숭고한 대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배)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40일을 금식하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장소가 광야였죠..
‘광야’란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로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의지할 게 없는 빈 들의 광야에 있을 때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때로 그런 광야로 몰아세우셔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한 첫 번째 유혹 첫 번째 시험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 주변에 있는 돌들로 떡덩이 곧 빵을 만들어보라는 것이었죠.
40일을 굶주린 예수님이셨기에 허기진 배를 채울 빵을 만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마귀는 먹음직스런 육신의 정욕, 그 물욕적인 부분을 통해 유혹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지닌 분으로서 얼마든지 돌들로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분 아닙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그 유혹에 농락당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마귀는 예수님이 지닌 신적 능력을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 사용하기보다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사용토록 유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원대한 목적, 곧 구속사의 사역을 왜곡시키고자 예수님을 유혹한 것이었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그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면서, 물리쳤습니다.
(깨달음)그것은 모세가 광야 40년을 지나온 후에 요단강 강둑에서 출애굽 1.5세대와 2세대를 향해 설교한 고별설교 말씀이죠.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광야 40년간 만나를 먹이면서 가나안 목전까지 이끌어 오신 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빵으로만 사는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자녀임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광야를 헤쳐나오면서 주린 날도 있었고 풍족한 날도 있었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심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로 살기 바랍니다.”
(적용)바로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유혹을 기꺼이 물리치신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신적 능력을 개인적인 물욕을 채우는데 사용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고자 자신을 기꺼이 내리드린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깃들어 있으면 개인적인 물욕보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나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 심령에 말씀이 숨쉬고 있으면 사사로운 내 정욕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나를 복종시킬 수 있다고 말이죠.
(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상황으로 마귀의 2차 유혹의 말씀인데, 5-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깨달음)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서 뛰어내리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예수님을 유혹했을까요?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유대인들의 정치와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만큼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모신 곳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처럼 신성시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성전 꼭대기에서 예수님이 뛰어내렸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군중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그 능력으로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떠받들지 않겠습니가?
마귀는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내다보고 예수님을 유혹한 것이었습니다.
1차 유혹은 물욕적인 부분이었다면 2차 유혹은 예수님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자 한 유혹이었죠.
그만큼 마귀는 예수님의 명예심와 허형심을 자극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십자가에 피흘림을 통한 대속의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 인류를 구원할 수 있고 부활의 주님으로 승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참된 메시아의 모습인데, 마귀는 그 고귀한 대가를 지불치 않고서도 메시아로 등극할 수 있다고 꼬드기는 것이었습니다.
(본문2)이때 예수님께서는 본문 7절 말씀을 통해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으니라”
(깨달음)예수님께서는 이때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6절은 모세의 고별설교 중 하나인데, 모세는 출애굽기 17장 사건을 떠올리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고 신광야를 지나 므리바에 당도한 때였죠.
그런데 므리바에 당도해 마실 물이 없을 때 또다시 모세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한 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생생하게 동행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데도, 눈에 보이는 것만 만족하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주시도록 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사건을 떠올리며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시험치 말고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길 당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친 것이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십자가의 피흘림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메시아가 되는 것임을 예수님은 잊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통해 바라신 하나님의 뜻일진데, 어찌 그 뜻을 놓고 하나님을 시험하겠냐면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것이었죠.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생명의 길을 여는 메시아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2절에 피흘림이 없이 어찌 사함이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받은 메시아의 모습이요, 그를 통해서만 영광의 부활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적용)No cross no crown,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대가 없이 어찌 만 왕의 왕으로 등극할 수 있겠냐는 말이죠.
No blood no bless, 십자가의 피 흘림이라는 대가 없이 어찌 축복의 길이 열릴 수 있겠느냐는 말이죠.
No pain no gain, 고통의 대가 없이 어찌 귀하고 값진 것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리신 대속의 대가를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겁니다.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단돈 20만원으로 성지순례를 갈 수 있다는 그 유혹에 빠진 그 목사님의 모습이 너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 세상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귀한 것을 얻을수 있는데도, 세상은 너를 그렇게 유혹하지 않겠느냐?”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 40년 길이 아니라 1-2주면 도착할 수 있는 블레셋 땅으로 통과하길 원하지 않았겠느냐?”
“마귀는 예수님이 지닌 신적 능력을 알아보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천사가 붙들어줄 것이라고 유혹하지 않았더냐?”
“그런 능력이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아도 얼마든 유대 군중들이 메시아로 떠받들 것이라고 말이다.”
“너도 네가 지닌 이 세상의 능력으로 너의 명예심와 허영심을 드러내 보이라고 마귀는 지금도 너를 유혹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세상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귀한 것들을 얻고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너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있는 것 아니더냐?”
“너의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게 될 수 있는 길은 죄사함을 받을 때만 가능하지 않더냐?”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의 연단을 받았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몇십년 동안 말씀을 좇는 백성으로 살지 않았더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어도 곧바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가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빚으시는 훈련의 대가가 필요한 법 아니겠느냐?”
“예수님께서도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려 슈퍼맨의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든지 유대 군중들로부터 메시아로 칭송받지 않겠느냐?”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길이 아니라 십자가에 피흘려 죽는 대속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영원한 메시아가 부활승천할 수 있었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그러니 마귀가 지금도 호시탐탐 너의 마음을 노리면서 이 땅의 명예심과 허영심을 부추길 때 기꺼이 말씀으로 물리치며 너에게 부여한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완수하길 원한다.”
(찬양)영광의 길 너 걷기 전에 갈보리길 너 걸으라
내 모든 것 주께 맡긴 후 하늘 문을 바라보라
하늘 가는 다른 길 없네 오직 예수 오직 한 길
갈보리 길 걸어가신 주 그 길 따라 너 걸으라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길이 있네
죄에 빠진 영혼을 위해 주님께서 피 흘렸네
못 박힌 손 날개 펼치사 나로 그 그늘에 쉬게 하며
부드러운 사랑의 음성 날 오라 부르시네
(예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란 책이 있습니다.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사랑받은 그의 작품입니다.
그 책은 범죄를 저지른 장발장과 끊임없이 그를 추격하고 정죄하는 자베르 경감이 나옵니다.
자베르는 일명 법의 수호자로서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코자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쉼도 평화도 없죠.
끊임없이 장발장을 정죄하고 끈질기게 추적을 한 인물입니다.
그만큼 자베르는 율법의 정죄자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와는 반면에 배고픈 조카를 먹이기 위해 빵을 훔쳤던 도둑 장발장은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장발장은 빵을 훔친 죄로 3년 형을 선고받고 홀로 남은 조카가 걱정돼 탈옥을 시도했었죠.
그러다가 체포돼 19년 형을 선고받고 13년을 복역한 이후에댜 만기 출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조카가 세상을 떠난 뒤였죠.
더욱이 그때의 장발장은 오갈 데 없는 신세였습니다.
누구 하나 범죄자인 장발장을 맞이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장발장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리엘 신부였죠.
그런데 장발장은 그곳에서 또다시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은촛대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다시금 그 신부에게로 끌려왔습니다.
그때 그 신부가 어떻게 합니까?
장발장이 들고 있던 그 은촛대는 자신의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은촛대는 자신이 장발장에게 선물로 주었다면서 장발장을 감싸주었습니다.
장발장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장발장이 어찌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자 미리엘 신부는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다시 내어 주면서 이렇게 속삭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장발장. 내가 그대의 영혼을 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죄인인 장발장의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다시 사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장발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겠습니까?
무지렁이요 범죄자인 자신을 한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해주었으니 말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그것으로 장발장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까?
실은 그때부터 장발장은 죄와 싸워나가야 했습니다.
더욱이 자베르 경감의 추적과 정죄는 그 이후로도 계속 장발장을 조여왔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 자베르 경감이 장발장의 변화된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됩니까?
도둑 장발장이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하지 않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그토록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것임을 깨달은 이후에야 비로소 은혜의 빚진 자로 장발장이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적용)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 정말로 큰 대가를 치르신 일임을 깨달은 자만이 그 은혜에 빚진 자로 참된 삶을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빅토르 위고가 그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일 뿐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만이 그 이후의 인생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장발장이 그 이후부터 은혜를 나누줘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음성)그러니 우리가 오늘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실은 형편없는 죄인임을 압니다.”
“그런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대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어요.”
“제가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이라는 그 고귀한 대가를 잊지 않고, 일평생 은혜에 빚진 자로 살게 해 주세요.”
“마귀의 세력들은 내 마음을 흔들어대며 내 허영심과 명예심을 부추기며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라고 유혹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일수록 주님의 고귀한 피흘림의 십자가 값을 기억하며 은혜의 빚진 자임을 잊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그럴 때일수록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 새기면서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언제 어느 때라도 마귀의 유혹이 다가올때마다 주님의 골고다 언덕의 길을 기억하며 살 게 해 주세요.”
(찬양) 하늘가는 다른 길 없네 다만 한 분 나의 예수
부활의 주 말씀 하시네 갈보리 길 너 걸으라
고난의 길 앞서가신 주 가시관에 머리 찔렸네
그 십자가 날마다 보네 내 모든 죄 다 씻겼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제물 삼는 가장 고귀한 대가를 지불케 하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는 것만이 영원한 메시아의 길임을 아셨기에 마귀의 유혹을 기꺼이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인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그 발자취를 따라 사는 은혜의 자녀가 되도록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귀의 세력들은 지금도 내 심령에 명예심과 허영심을 불어넣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도록 유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도 장발장보다 더 추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자가 나 자신임을 기억하며 이런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새기면서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마귀의 세력들이 그렇게 나를 유혹해 올 때, 오직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는 은혜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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