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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질문대답BibleQ&A/사도행전

Q.오순절날 임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by 권또또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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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오순절날 임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이 궁금해요.?

성령충만 가운데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A. 구약의 오순절은 유월절 해방을 맞은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곧 시내산 언약의 날이죠.

그 과정에 홍해, 수르 협곡, 마라의 쓴물, 신광야 만나와 메추라기, 르비딤 전투, 그리고 시내광야에 당도했죠.

그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쌍방간에 피의 언약식을 맺었고, 그때 율례을 수여해주셨죠.

 

그것이 구약의 오순절날에 일어난 일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강림절이라 할 수 있죠.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40일간 머무시다 하늘로 승천하셨죠.

그로부터 10일째 되던 날 곧 50일째 되던 오순절날에 성령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하셨죠.

 

그때 120명의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았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불의 혀처럼 갈리지는 것을 듣고 봤죠.

주관적인 체험으로서, 성령세례 때 몸이 진동하고, 눈물이 나고, 음성을 듣고, 방언을 받고, 환상을 보는 것과 같죠.

더욱이 힘들긴 하지만 말 할 없는 기쁨이 샘솟아 오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감동이 일어나기도 하죠.

그때 비로소 내가 죄인이라는 걸 인식하고, 주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게 믿어지죠.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게 아니라 성령세례(고전12:3)의 특징이자 체험입니다.

 

물론 그것은 신앙생활의 제 2단계로, 주님이 믿어지는 단계 곧 걸음마 단계를 뛰어넘은 단계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거쳐 갖가지 체험들을 하면서 주님과 언약식을 하는 단계가 그것이죠.

그것은 남남이던 사람이 각자 알음알음 알아가고 교제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고자 결혼식을 올리는 단계이기도 하죠.

 

다만 그 2단계의 신앙생활이 끝이 아니라 제 3단계 곧 성령충만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죠.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고 저절로 행복한 부부생활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듯이 말이죠.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언약식을 맺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셔서 40년간 삶을 지켜보셨죠.

그리스도인도 바로 그런 것처럼 성령세례를 통해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했다면, 성령충만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죠.

 

오순절날 성령충만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한 데(행2:4) 있죠.

그것은 고린도교회에 임한 방언 곧 천사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아는 인간의 언어(행2:8-11)였죠.

왜 그런 언어들을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을까요?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때 그들이 그 언어를 유창하게 하느냐, 못하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언어를 주신 목적이 소통에 있었죠.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갈릴리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소통의 장을 열도록 말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권면을 한 적이 있죠.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14:19)

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런 권면을 했을까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방언과 예언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긴 채 성도들과의 소통에 등한시했던 것이죠.

물론 방언을 하면 1-2시간 기도는 거뜬히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런 방언기도는 자신에게 유익할 뿐, 교회의 성도들이나 다른 모임의 소통을 위해서는 결코 유익이 되지 않죠.

그래서 바울은 방언을 하려면 통역을 하라고 권면할(고전14:26) 정도였죠.

 

결국 사도행전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강림의 특징 곧 성령충만 속에서 행한 다른 언어들도 소통에 방점이 있는 셈이죠.

그리고 고린도교회에 임한 일만마디의 방언도 개인적인 유익을 넘어 보다 더 깊은 소통의 장을 열어나도록 함이죠.

결혼생활을 시작한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반지나 선물이나 돈도 좋지만 더 깊은 소통이 훨씬 소중하듯이 말이죠.

"내가 사람의 방언(인간의 언어)과 천사의 말(천사의 방언)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13:1-2)

 

그렇기에 일만마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바깥에 나가 자기 속감정을 싸지르거나 싸움닭처럼 산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결코 성령충만 속에 살아가는 3단계의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아직도 영적으로 어린 아이의 단계죠(고전14:20).

하지만 비록 유창한 방언이나 1-2시간 기도를 못한다 해도, 지금 남편의 모습에 자족하며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다섯마디 지혜로운 말을 하는 아내가 있다면, 그녀야말로 성령충만한 아내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부부지간에도, 부모자식간에도, 일터의 동료사이에도 결코 다르지 않는 성령충만의 삶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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