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떠나(행15:36-41)

by 똑똑이채널 2021. 5. 25.
728x90
반응형
SMALL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떠나.hwp
0.08MB

 

(설교열기)(성화) 의료보험공단에서 제게 경고장이 날아왔어요.

대사증후군 전단계라고 말이죠.

 

그 때문에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6시 10분까지 기도하고 난 뒤에, 곧장 옷을 갈아입고 유달경기장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7시 10분까지 걸으면서 또 기도를 하죠.

 

그리고 7시 20분 경에 예배당 사무실로 와서, 성경을 읽고 새벽기도회 말씀을 다시금 정리하여 티스토리에 올리죠.

이런 과정 속에서 성경을 읽은 게 42독째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구약 욥기서, 신약 디모데후서를 각각 읽었습니다.

구약 욥기서가 어떤 내용인지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욥은 동방의 의인이고 거부였죠.

그 까닭에 그의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죠.

 

하지만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 때, 욥의 재산 다 날라가고, 그에게 악창까지 들끓었죠.

그때 그의 주변 친구들, 대표적인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욥에게 말한 것은 한 마디로 그것이었죠.

“친구여, 아니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소. 당신이 이런 징계를 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게 있기 때문이요.”

 

그런데 그것을 한 두 번만 말한 게 아니라, 계속 쪼아대듯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욥은 그때마다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했었죠.

 

(깨달음) 그와 같은 욥과 세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친구는 돈으로 맺어진 친구도 있고, 정치 권력으로 맺어진 친구도 있다는 점입니다.

 

욥이 갑부였고, 아주 잘 나갔을 때는 그 세 친구가 욥을 함부로 정죄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겠죠?

오히려 욥에게 재정적인 지원이나 도움을 받으려고 욥 곁에 더 붙어서 아부를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욥이 빈털터리에다 질병까지 앓고 있는 마당이라 완전히 돌아서서 정죄하고 나선 것이죠.

 

이런 모습은 정치인들이 많이 보여줍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는 그 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이 대통령에게 아부를 떨죠.

그러다가 정권 말기에 레임덕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다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심한 경우에는 대통령과 차별전략을 쓰죠.

 

왜죠?

대통령의 권력에 빌붙어 자기 권력을 찾고자 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이 힘을 잃었다고 판단하면, 너도나도 등을 돌리죠.

바로 그 모습도 욥과 세 친구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돈의 고리로 엮여 있거나, 정치 권력의 고리로 엮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고리가 느슨해지거나 약해졌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돌아서서 정죄하고 비난하기 일쑤죠.

 

(적용) 그러나 신앙의 고리를 어떻습니까?

믿음의 고리는 자기 자신에게 돈이 생기지 않아도, 자기 자신에게 정치 권력이 없어도, 끝까지 함께 하는 고리죠.

 

주일날 살펴봤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제자들에게 격려하신 장면도 그것 아니었습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죽자, 자신들의 세상 권력이 날아갔다고 생각한 그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버렸죠.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과 달리, 다시금 그들을 찾아가 격려해주시면서 다시금 사명의 고리를 강화시켜주셨죠.

그때 그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내주하신 역사를 통해, 이 세상의 돈이나 정치권력과는 무관한 진리와 생명의 고리를 엮어 나갔던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역배) 사도행전의 제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이었지만, 실은 그 과정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죠.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 때 만났던 주님의 사람들을 다시금 격려하러 가자고 할 때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바나바가 요한 마가를 데려가자고 한 일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이 생겨 갈라서게 되었죠.

 

물론 그때 다투다는 헬라어 ‘파록쉬스모스’(παροξυσμός)는 ‘다투다’는 뜻과 함께 ‘격려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죠.

비록 두 사람의 견해 차가 생겨 다투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갈라서게 되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해 격려했다는 뜻이죠.

 

그래서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브로로 향했습니다.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 때 중간에 이탈한 요한 마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어 그를 청해 데리고 갔던 것이죠.

이른바 바나바는 그 한 영혼을 깊이 세우는 주님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그와 맞물린 상황에서 바울 일행이 향한 곳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40-4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났다”, 이게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새번역성경은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번역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실라를 택하고, 신도들로부터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인사를 받고서, 길을 떠났다.”

 

이른바 바울이 실라를 택했을 때,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인사를 받고 떠났다는 뜻입니다.

무슨 인사입니까?

“바울과 실라 선생님, 2차 선교여행 길에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하는 것이죠.

 

(깨달음) 그런데 여기에서 바울이 실라를 ‘택했다’는 헬라어 ‘에필레고’(ἐπιλέγω)입니다.

그 뜻은 ‘-에서 고르다’, ‘-상태에서 부르다’, ‘-에서 소환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지금 2차 전도여행을 떠나고자 실라를 부르고 소환해 낸 상태였던 것입니다.

대체 실라가 어디에 있는 상태였던 것입니까?

실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다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교회까지 와서 며칠간 머물다가,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안디옥교회에서 바울이 그를 소환해내자 기꺼이 2차 전도여행에 함께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대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실라가 바울과 함께 하면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까?

실라가 바울을 따라가면 정치권력이 생기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죠.

바울이 실라를 부른 것은 오직 주님의 생명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실라가 바울을 따라 동행한 것은 돈이나 정치권력을 바란 게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만 바라봤기 때문이죠.

 

그만큼 바울과 실라는 돈이나 정치권력으로 엮은 고리가 아니라 진리와 생명의 고리로 엮은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런 고리로 엮여지지 않았다면, 예루살렘에서 240km나 되는 거기를 실라가 호명받았어도 왔겠습니까?

결코 그럴리 없었죠.

 

(적용)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함께 주님의교회를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유로교회에 모여들면 돈이 생기는 것입니까?

자유로교회에 모여들면 정치권력이 생기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그런데도 우리가 함께 자유로교회 속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주님의 진리와 생명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돈의 고리로, 정치권력의 고리로 연결된 것과는 전적은 다른 차이입니다.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깨우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죠?

(은혜) 주님은 우리가 돈이나 정치권력의 고리가 아니라 생명과 진리의 고리를 엮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게 어떤 고리로 엮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너의 성도들과 어떤 고리로 엮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욥이 부자였을 땐 세 친구가 곁에 있었지만 욥이 가난하고 악창이 들끓 때는 다들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았더냐?”

그만큼 그들은 돈을 바라보고 욥을 좇아디닌 격이지 않았더냐?”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고 레임덕이 오면 그 주변의 사람들도 다들 등을 돌리지 않겠느냐?”

그것은 그만큼 정치권력 때문에 대통령 주변에 기생한 것 아니었겠느냐?”

 

그러나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에게 생명과 진리의 고리로 엮여있길 원한다.”

너는 너와 함께 하는 성도들과도 그런 고리로 엮여 있길 원한다.”

바울이 240km나 되는 그 먼 거리의 예루살렘에 있는 실라를 호출했을 때, 왜 그가 바울과 함께 떠났느냐?”

실라가 돈을 바라보고 나갔더냐? 정치권력이 있을 것을 바라보고 바울과 함께 선교대열에 합류한 것이더냐?”

실라가 바울과 함께 떠난 것은 오직 주님의 진리와 생명의 나라를 바라보고 떠난 것 아니었더냐?”

오늘 네가 엮어나가는 고리들이 바로 그런 생명과 진리의 고리가 되길 원한다.”

 

(찬양) 성령하나님 나를 만지소서 상하고 깨어져 지친 나를

새롭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시들은 내 영혼 살리소서.

성령하나님 이 땅 고치소서 죄악의 어둠 속 헤매는 우리

태워 주소서 성령의 불로 세상 헛된 맘 태우소서.

임하소서 성령 하나님이시여 지금 이 곳에 임하소서.

바람처럼 불처럼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화) 그런데 바울이 왜 그렇게 2차 선교여행을 떠난 것이겠습니까?

왜 실라가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정치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도, 바울의 호출에 기꺼이 나선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그 본을 보여주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천지만물의 주관자로서, 금도 내 것이고 은도 내 것인지 그 주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친히 내려오신 것 말입니다.

 

왜요?

이 땅에 죄로 물든 심령들을 구원코자, 기꺼이 자기 내려놓음, 자기 비움의 삶을 사신 것 말입니다.

 

(원성) 그 말씀이 바로 빌립보서 2장 5-8절에 나와 있는 말씀 아닙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깨달음)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본래 하나님의 자리, 동등된 그 자리에 눌러 앉아계셨어도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오직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을 구원코자 하심이죠.

 

바로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코자 말입니다.

그를 위해 기꺼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자신을 쳐 십자가 죽음의 복종을 이루신 것이었죠.

 

(적용) 바로 이와 같은 주님의 모습을 바울과 실라가 본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가만히 있어도 대접받고 존경받을 수 있었죠.

실라도 예루살렘교회의 선지자 곧 지도자였기에 그곳에 가만히 있어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에게 대접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과 실라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난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닙니까?

주님께서 먼저 그 본을 보여주신 것을, 그들도 좇아 살고자 한 것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들 두 사람을 생명의 고리로 엮어 그 길을 좇도록 감동감화 주신 것이었죠.

 

(내음성) 그래서 우리도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받으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주님, 저희들도 바울과 실라처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게 해 주시옵소서.”

보혜사 성령님, 이 시간에도 저희의 마음 속에 내주하셔서, 이 세상 돈과 권력을 좇이 않도록 굳게 붙잡아 주세요.”

주님께서 하늘 보좌에 그냥 계셨어도 될텐데 저희를 구원코자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가 그 발자취를 따르게 해 주세요.”

나에게 어떤 이권도이나 권력이 없어도, 바울과 실라처럼 생명과 진리의 길을 뚜벅뚜벅 걷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천하보다도 귀한 한 영혼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은혜를 성령님 부어주시옵소서.”

 

(찬양) 성령하나님 나를 만지소서 상하고 깨어져 지친 나를

새롭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시들은 내 영혼 살리소서.

성령하나님 이 땅 고치소서 죄악의 어둠 속 헤매는 우리

태워 주소서 성령의 불로 세상 헛된 맘 태우소서.

임하소서 성령 하나님이시여 지금 이 곳에 임하소서.

바람처럼 불처럼 성령이여 임하소서.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돈의 고리, 정치권력이 고리로 연결된 그 길만을 좇아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처럼 오직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생명과 진리를 좇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에게 돈이나 정치권력이 생기지 않아도, 오직 바울과 실라처럼 한 영혼을 건져올리는 그 길을 좇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빛난 하늘의 면류관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씌워주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 하셨으니, 모든 주권의 영광이 그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