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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스바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습3:1-20)

by 권또또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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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바냐 마지막 3장입니다. ‘스바냐’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에 의해 감추어지다’ 바꿔 말해 ‘여호와의 심판에 날에 구원받는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라고 했죠. 그도 그럴 것이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 시대는 7살에 왕위에 오른 남왕국 유다의 제 16대 왕 요시야가 통치할 때라고 했죠. 물론 그가 왕권을 잡기 전에는 온 유다 백성들이 죄악과 우상숭배에 빠져 살았다고 했죠. 그의 아버지 아몬의 2년 통치기간은 물론이요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의 55년간의 악행도 다르지 않았다고 했죠. 특히 그 할아버지 므낫세는 하나님의 성전 문과 제단을 다 허물어버린 장본인이었고, 심지어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게 한 악한 왕이었죠.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요시야였는데, 그가 7살에 왕위에 올랐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런 시기에 스바냐가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을 선포하면서 요시야 왕의 통치와 함께 정말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행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도록 선포했던 것이죠.

그래서 1장에서는 새로운 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죄악과 우상과 탐욕 속에 빠져 살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의 날’ 곧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선포하고 있었고, 어제 읽은 2장에서는 그런 죄악의 수치를 모르는 유다 백성들은 물론이고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하고 비웃고 억압하는 이방 세력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선포하고 있었고, 오늘 읽은 3장에서도 유다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의 날’ 곧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선포하고 있는데, 3장의 후반부에서는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베푸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온갖 죄악과 우상과 탐욕에 빠져 그 수치를 모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여호와의 날’에 분명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코자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숨겨주신다, 다시 말해 ‘스바냐’란 이름의 뜻처럼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숨김’을 받고 그 끝날에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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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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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읽은 스바냐 3장의 서론 격인 1-5절까지도 여전히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여기에서 포학을 행하는 성읍이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도 않고 교훈을 받지도 않는 자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곳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 성읍에 사는 백성들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3-4절을 보면 그들은 단순한 일반 백성들이 아니라 ‘방백’ 곧 지도자들이라고, ‘재판장들’이라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그들을 ‘이리’라고 칭하고 있죠. 뿐만 아니라 그 성읍에 사는 ‘방백’과 ‘재판장들’을 비롯해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까지 언급하고 있고, 그들이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급에 속하는 자들을 말하고 있고, 그들이 사는 곳은 성전과 관련돼 있고 왕궁과 관련돼 있는 ‘예루살렘 성읍’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성읍에 사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불의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수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제 읽은 2장 1절에서도 “수치를 모르는 자들아”하고 하나님께서 큰 호통을 치셨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도자들도 죄악과 탐욕과 우상숭배와 종교혼합주의에 빠져 살면서도 자기 수치를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화 있을진저하고 심판을 말씀하시는데, 6-8절에 그 심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죠.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그렇게 자기 죄악과 교만과 패역과 탐욕과 우상숭배와 혼합주의종교심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 수치를 모르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질투의 불’ 곧 ‘당신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아붓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성읍은 황폐하게 되고, 그들의 거리는 지나다니는 자도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죠.

결국 이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너희들이 이전에 요시야 왕의 아버지 아몬의 시대나, 요시야 왕의 할아버지 므낫세의 시대에 악행을 자행하고 온갖 탐욕과 우상을 좇아 살았는데, 그 삶을 청산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공의와 정의를 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이방 세력의 칼날에 다 진멸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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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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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당신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아부겠다고’ 그래서 그들의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게 될 것이라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 9-2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을 전해주신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여호와의 날’ 곧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을 의탁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자 곧 ‘남은 자’가 있을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본문 13-14절을 통해 그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모두가 다 악을 좇고 불의를 좇고 우상과 탐욕에 빠져 살지만, 그렇게 모두가 짐승처럼 이 세상에 속한 자로 이 세상만을 끝으로 여기며 살지만, 그 중에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으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을 알고자 힘쓰며 살아가는 자들이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스바냐란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에 의해 숨김을 받는다’ ‘하나님에 의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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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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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온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만을 향해 살아가는 시대에 그 속에 깨어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알고자 힘쓰는 자들, 곧 하나님의 생기로 충만하길 원하는 자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본문 17절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구별된 자들을 보시고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결국엔 심판 속에서 구원하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것이 실은 ‘스바냐’란 이름의 뜻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구절이죠.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의 스바냐와 같은 남은 자, 생기를 공급받는 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 자녀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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