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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요엘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욜1:1-20)

by 권또또 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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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이제 요엘서를 살펴보게 됩니다. ‘요엘’이란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 그의 이름이 11번 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그의 아버지 이름이 나오죠.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부두엘’이란 이름은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뜻하는데 70인역(LXX)은 ‘바두엘’(Bathouel)로 기록돼 있습니다. 요엘의 아버지가 브두엘로 읽히든지, 바두엘로 읽히든지, 그의 부친은 그만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요엘의 신앙정서는 부모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요엘은 남왕국 유다의 제 9대 왕인 요아스의 재위 기간인 B.C.835-796년까지 사역한 선지자로 추정을 하죠. 동시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외쳤던 호세아나 아모스 선지자처럼, 요엘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를 향해 외쳤던 선지자였습니다.

그 당시 남왕국 유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주도로, 제 7대 왕이었던 아합의 딸 ‘아달랴’ 왕을 몰아내고, 7살 밖에 안 된 어린 요아스를 제 8대 왕으로 옹립했죠. 그 뒤 요아스는 그때까지 온통 물들어 있던 바알 신상들을 다 철폐시켰고, 굳게 닫힌 성전의 문도 열었고, 여태 지키지 않았던 각종 절기와 제사도 복원시켰죠. 그야말로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성전도 수리했죠.

그런데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은 뒤에, 아람 왕 하사엘이 쳐들어와서 가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까지 치고자 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때 그는 하나님께 의탁치 않고 아람 왕 하사엘에게 왕궁에 있는 금과 성전 곳간의 금들을 모두 주면서 달래고 말았죠. 그것이 부패한 시점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요엘 선지자가 등장한 것이죠. 그토록 선하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종교개혁도 단행하고 성전도 수리했던 그 요아스 왕이 마지막에 이방 신상들을 허용하자 온 백성들이 그렇게 물들어 버렷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엘 선지자가 유다 백성들에게 메뚜기 떼에 관한 심판, 외적의 침략에 관한 심판, 먼 미래에 있을 침략과 약탈에 관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그 날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란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는 그 어린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했던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로 활약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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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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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엘서에는 ‘여호와의 날’ ‘그의 날’이란 말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심판의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여호와의 날’, ‘그의 날’이 다가온다는 것은 메뚜기 떼와 같은 자연 재해를 통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징조를 보여주신 것이고, 또 이방 세력들의 침략도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라도 하루 속히 하나님 앞에 바로 ‘돌아와’ 회개하기를 요청하는 메시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호세아서를 통해 읽어봤을 때, 하나님께서 음탕한 고멜을 끝까지 사랑하여 아내로 삼는 그 모습처럼, 영적인 신부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랑되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품는 그 모습을 보여주셨죠. 그래도 안 되겠으니까 심판의 메시지, 멸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는데 그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 하루 속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 회개하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북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의 구애와 인애하신 그 사랑을 보여줘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B.C.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을 받고 말았죠.

그렇다면 남유다는 어떻게 했는가? 요엘 선자가 선포한 메뚜기 떼의 재앙 곧 자연재앙과 이방 세력들의 침략 곧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이 남유다를 향해 처들어 올 때, 그때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모두가 재를 뒤짚어 쓰고 참회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었죠. 그래서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면했었죠. 하지만 문제는 그 뒤였습니다. 그로부터 115년이 지나, 다시금 바벨론 제국이 쳐들어왔는데, 그때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애굽을 의지하며 그들과 결탁하려고 했죠.

그렇기에 요엘서의 전체적인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하나님이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품으시는데, 당신의 백성들이 어긋난 길을 걷고, 우상과 탐욕을 좇아 살면 심판의 날을 맞이한다는 것이죠. 그 심판의 날이 임하기 전에, 곧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한시라도 바삐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라는 요청이 바로 전체적인 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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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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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읽은 1장 1절에는 요엘 선지자의 가정적인 배경을 소개해 주고 있는 말씀인데, 그가 남왕국 유다의 어디 출신인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사야나 예레미야처럼 왕족이나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그 출신지와 가문의 배경까지 기록할 필요가 없지 않았냐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렇게 유명한 왕족 출신과 유능한 가문을 배경으로 한 선지자들도 있지만, 호세아나 아모스나 본문의 요엘 선지자처럼 유명하지도 유능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와 하나님의 메신저 역할을 당당하게 해 낸 선지자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과연 요엘 선지자가 무슨 메시지를 선포했는가? 본문 2-4절까지는 선전포고와 같은 메시지입니다. 이전까지 이런 날이 없었는데, 앞으로 팥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가 먹을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본문 4절의 재앙을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밝혀놓고 있습니다. 풀무치가 남긴 것은 메뚜기가 갉아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누리가 썰어 먹고, 누리가 남긴 것은 황충이 말끔히 먹어 버렸다.” 풍요로운 이스라엘 땅에 온갖 자연재해와 병해충과 벌레들이 득실거리며 온통 기근이 임하게 될 것이란 선전포고죠.

본문 5-13절까지는 그런 재앙으로 인해 ‘울게 될 것이라’고, 여태까지 먹었던 ‘단 포도주가 쓰게 될 것이라’고, ‘약혼한 처녀가 결혼할 날을 기약하지 못해 울게 될 것이라’고, ‘농부들은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고 곡식이 떨어져 거둘 게 없으니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더욱이 ‘포도나무도 시들었고 무화과나무도 말랐고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도 다 말라버렸으니 어찌 즐거움이 임하겠느냐’하면서, 온 백성들이 그런 고통과 기근과 수치 속에 살아가는데, 본문 13절에서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야말로 온 백성들은 물론이고 제사장들도 슬픔과 고통에 처하게 되는, 그런 날을 맞이할 것이다, 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온 백성들을 불러모아 ‘금식일’을 정해 여호와의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그런데 15절에서는 다시금 ‘슬프다’고,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다’고, 전능자 하나님께로부터 ‘멸망’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16-20절까지, 다시금 온 백성들이 처할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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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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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같은 ‘여호와의 날’, 곧 ‘전능자의 심판의 날’을 선포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너희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성전을 수리하던 그때 그 심정으로, 다시 돌이키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너희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바알과 같은 이방 신을 숭배하고 자기 쾌락과 욕망만을 숭배하면서 살면, 이런 심판의 날이 신속히 임할 것이란 뜻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에도 이런 메뚜기 떼와 같은 상황이 찾아온다는 점이죠. 암사자의 어금니와 같은 원수의 공격과,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의 울음처럼, 내가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현실 앞에 반창고만 붙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프지만 그 썩은 살을 도려내고 불순물을 제거여 하나님 바로 서는 것,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그런 은총의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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