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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아프리카의 자이르 공화국에서 선교를 하는 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죠.
그 아이는 앞마당에서 낡은 가구를 손보고 있는 아버지 곁에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위에 있는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주으며 놀았죠.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필립 빨리 땅에 엎드려!”
그러자 어린 필립은 영문도 모른 채 땅바닦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다시 아버지가 말합니다.
“얘 아빠 보이지? 이쪽으로 기어와라. 천천히. 조용조용 이쪽으로 와. 어서!”
필립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이번에도 기기 시작했습니다.
필립이 아버지 곁에 왔을 때 비로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해줬죠.
“네가 있던 나무 위에 독사가 있었단다. 자, 저 나무가 보이지?”
그 나무 위에 있는 독사를 본 아들은 그때서야 아버지의 품에 안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이야기 속에 소중한 깨달음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그 아들을 살렸다는 것이죠.
만약 아버지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아들이 “아빠,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인데요?”하고 따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했다면 그 아들은 독사에게 물려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아무 이유를 몰라도 아버지의 말씀에 대꾸 없이 무조건 순종했을 때 자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죠.
(적용)우리가 알고 있는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차이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울은 베냐민 족속으로 사사 시대 때 큰 죄악으로 인해 12지파 중에 가장 작은 족속의 후손이었죠.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족속의 사울을 왕으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때 사울도 자기 지파의 연약함을 알고 있고 자기 자신도 내세울만한 가문이 아니라 선뜻 왕으로 나설 수가 없었죠.
심지어 왕으로 지명하는 그 날에도 사울은 숨어 있을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왕이 된 뒤에는 자기 왕권에만 눈이 먼 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죠.
아말렉과 전투를 치를 때도 광야시절 이스라엘 민족의 후미를 공격하여 약탈한 아말렉 족속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진멸토록 명령하셨죠.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전리품 중에 살진 소와 살진 양은 취하고 하찮은 것만 진멸할 뿐이었죠.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 말하니까, 그 살진 소와 살진 양은 하나님께 번제뮬로 바치기 위해서 남겨 놓은 것이라고 변명했죠.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죠.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는 그 불순종으로 인해 결국 왕에서 추락했고 그 생명도 장수하지 못했습니다.
그에 반해 다윗은 어땠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배다른 8번째 막내 아들이었을지라도, 양치기에 내몰렸어도, 그는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기면서 순종하고 공경했죠.
그가 30대에 왕이 되고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고 이제 50대가 되어 평안할 때 큰 죄악을 저질렀죠.
자기 신하의 아내를 범한 죄악이었죠.
그때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 죄악을 지적할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는 사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지 않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 죄악을 하나님께 토해내며 회개했죠.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케 하셨지만 그의 왕위를 굳게 세워주셨고 그 생명이 장수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셨죠.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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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은 60세 때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처하게 되었죠.
로마에서 자기 셋집을 빌려 그곳에서 밖을 나가지 못한 채 2년간 지냈죠.
물론 몸은 감옥처럼 얽매여 있었지만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네 개의 편지를 써 보낼 수 있었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가 그것이었죠.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역시 그 시절에 써 보낸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53살 때 3차전도 여행을 통해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죠.
바로 그 교회를 향해서 그리고 소아시아 7교회를 향해서 에베소서라는 편지를 로마 가택연금 상태에서 써 보낸 것이죠.
에베소서 전반부인 1-3장까지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그 은혜에 대해서 써 내려갔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더 강건하기를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써 보냈죠.
에베소서 후반부인 4-6장까지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면하죠.
서로가 한 몸 한뜻이 되어 받은 은사와 달란트대로 봉사와 섬김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해가라고 말이죠.
더욱이 이전에는 어둠과 방탕과 우상숭배를 좇아 살았다면 이제는 그 길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서 살도록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늘 읽은 6장 말씀도 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합당한 삶에 대한 권면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녀에 관한 권면이 나오고, 종과 상전에 관한 권면,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는 권면이 이어지죠.
그 중에서도 6장 초반부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가정의 부모와 자녀가 어떤 관계 속에 살아야 하는지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본문)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원성)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 그런 자녀는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할 것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으로서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으로 약속해주셨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을 통해 십계명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십계명은 613가지가 되는 모든 계명의 근간이요 핵심 아닙니까?
그 십계명은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에 대해서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길에 대해서 밝혀주고 있죠.
그 십계명 중에 사람 사랑에 대한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요, 그런 자녀는 이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원해)그런데 오늘 본문에 ‘순종하다’는 헬라어 단어가 ‘휘파코우오’(ὑπακούω)입니다.
그 단어는 ‘-아래에서’를 뜻하는 전치사 ‘휘포’(ὑπό)와 ‘듣는다’는 ‘아코우오’(ἀκούω)의 합성어입니다.
그렇기에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할 때 순종하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겠죠.
‘순종’이란 아래에서 듣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밑에서 듣는 걸 말하죠.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게 아니죠.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듣는 태도가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도 바로 그런 자세와 태도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부모님이 설령 자식보다 배운 게 적고 무식하다 해도 자식은 그 부모 밑에서 듣는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죠.
자식이 부모님보다 재산이 많고 좋은 집에 산다 할지라도 그 부모 밑에서 듣는 태도를 취하는 게 순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식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만 하면 잔소리한다고 핀잔을 주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씀을 하느냐며 도리어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순종은 부모님 말씀을 귀담아듣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 순종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엔 퀴리오’(ἐν κυρίῳ) 곧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예수 믿지 말고 조상신을 섬겨라’, ‘우리 집안 대대로 불교 집안인데 너도 그 길을 좇아야 하지 않겠냐’한다면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내 영혼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십계명을 통해 사람 사이에 가장 먼저 요구하신 계명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부모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 하나님의 대리자이다”하고 말이죠.
이 땅의 모든 부모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사실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부모를 대리자로 보내주셨기에 이 땅의 모든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내주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렇기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아프리카 정글 속에서 아들에게 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를 할때는 그만큼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않겠느냐?”
“그 아들의 나무에 위에 있는 독사를 바라보고 독사를 피하도록 빨리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기어 오라고 말이다.”
“이 땅의 모든 부모도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뼈아픈 소리도 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대리자로 이 땅에 부모를 보내셨으니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지 않겠느냐?”
“다만 엔 퀴리오, 주님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할 때 그 삶이 잘 되고 장수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리자로 너에게 보내주신 너의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하지 않겠느냐?”
“네 부모님이 너보다 배운 게 없고 무식하게 보일지라도 네 부모 밑에서 듣는 자세를 취하며 순종하여 사는 걸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네 부모님이 가진 게 없고 가난할지라도 네 부모를 업신여기지 않고 오히려 부모님 아래에서 듣는 태도를 취하며 순종하는 주님께서 원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대리자인 네 부모 밑에서 순종하는 그 삶을 살 때 네가 이 땅에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테니 말이다.”
(찬양)낳으시고 기르시며 손등 야위신 내 어머니
그 모든 슬픔 삼키시어 눈가에 주름이네
마구 놀던 어린시절 종아리 걷어 꾸짖으사
그 사랑 속에 나의 가슴 정의로 가득 찼네
말로 다 할 수 없어라 어머니 그 사랑
주님의 축복 내리시라 사랑 깊은 어머니
어리던 날 푸른 꿈도 그 사랑 속에 익어오고
가녀린 팔뚝엔 자랑스런 새 힘이 자라났네
말로 다 할 수 없어라 어머니 그 사랑
주님의 축복 내리시라 사랑 깊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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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그런데 오늘 본문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에 대해 또 하나를 권면합니다.
본문 2-3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원해)‘공경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티마오’(τιμάω)입니다.
그 뜻은 ‘경의를 표하다’(held in honou)는 말입니다.
그런데 티마오라는 단어가 구약에서는 ‘카바드’(כָּבַד)로 쓰이는데 그 뜻은 ‘무겁게 여기다’입니다.
이 ‘카바드’라는 단어가 명사형으로 쓰임녀 ‘심장’을 가리키는 말읿니다.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자기 심장처럼 대하라는 뜻입니다.
심장이 없는 생물은 죽은 존재와 같은 것 아닙니까?
심장이 뛰어야 오래 살 수 있는 것이죠.
그 심장처럼 너의 생명이 이 땅에서 잘되고 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고 심장처럼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죠.
물론 그또한 ‘엔 퀴리오’(ἐν κυρίῳ) 곧 주님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고 부모님을 자기 심장처럼 존귀하게 여기도록 말씀하는 것이죠.
그것이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한 청년 개미가 큰길 건너편에 사는 아가씨 개미를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큰길을 건너기로 결심했죠.
그 큰길은 오래되어 낡고 험한 아스팔트 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 개미는 무척 염려했습니다.
그때 아버지 개미는 아들 개미에게 건너갈 때 쓰라고 아주 기다란 지푸라기 두 개를 등에 업혀줬죠.
아들 개미는 그걸 왜 가져가야 하느냐고 하면서 아버지 개미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이라, 무럽게 여기면서, 어쩔 수 없이 따랐습니다.
이제 그 청년 개미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투덜거리며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 보니 아스팔트에 상당히 넓어 보이는 갈라진 틈새가 보였습니다.
그 틈새는 그에게는 깊은 벼랑과도 같은 난관이었습니다.
그는 낙담한 채 등에 업고 있던 지푸라기 두 개를 팽개치면서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푸라기가 어느새 틈새 사이로 떨어져 그곳을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했던 그 지푸라기가 구원의 다리가 된 것이죠.
그로 인해 아들 개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가씨 개미와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인생의 경륜 속에서 말하는 아버지의 말씀에는 그만큼의 지혜가 숨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설령 부모님이 못 배웠어도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고 자기 심장처럼 여길 때 자식들은 그 인생의 금은보화와 같은 소중한 것을 얻게 된다는 뜻이죠.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요, 주님. 저도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내주신 제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겠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고, 부모님을 제 심장처럼 존귀하게 대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부모님이 저보다 배운 게 적고 저보다 어렵게 살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대리자로 공경하며 살겠습니다.”
“아들 개미의 인생을 내다본 아버지 개미의 그 지혜는 인생의 경륜 속에서 나온 것이니 그렇게 부모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살게 해 주세요.”
“오직 엔 퀴리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 안에서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하며 살 때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어머니의 넓은 사랑귀하고도 귀하다
그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기뻐 웃을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아침저녁 읽으시던 어머니의 성경책
손때남은 구절마다 모습 본듯합니다
믿는자는 누구든지 영생함을 얻으리
들려주신 귀한말씀 이제힘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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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부모님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을 향해 주 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계명을 통해 그것이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 안에서, 부모님의 위에 서지 않고 부모님의 밑에서 듣는 자세를 취하며 살도록 하십시다.
내가 많이 배웠어도 내가 잘 났어도 부모님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며 공경하며 사십시다.
주님 안에서 그렇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인생에 복을 주시고 이 땅에서 장수하는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 속에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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