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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예레미야

네가 너를 위해 큰 일을 찾느냐(렘45:1-5)

by 똑똑이채널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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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의 통치 13년, 다시 말해 왕의 나이 25살 무렵에, 그의 나이 16살,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20살 초반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때로부터 요시야 왕이 나머지 6년간 통치하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과 전투를 벌이다가 죽은 일들, 이어 요시야 왕의 아들 엘리아김이 아닌 그의 동생 여호아하스 다른 말로 ‘살룸’이라고 하는데 그가 왕 위에 오르지만 반애굽 정책을 펼쳐 전쟁을 벌이다가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애굽의 바로가 끌고가 감금시킨 까닭에 3개월 밖에 통치하지 못한 일들, 그 일로 인해 애굽의 느고가 요시야 왕의 아들인 엘리야김을 여호야김으로 명명해서 다시 왕으로 세운 일들을 다 지켜봤던 예레미야였습니다. 문제는 여호야김이 국외적으로 그렇게 애굽에 조공을 바쳐야 하는 처지라면 국내적으로 백성들을 잘 돌보고 신앙심으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11년간 통치 기간에 애굽에 바칠 고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호화로운 궁전을 짓기 위해서도 백성들의 혈세를 빨아내게 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온갖 애굽의 우상 숭배를 자행한 왕이었죠. 그러니 그런 여호야김 앞에 예레미야로는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지 않고, 아래로 백성들에게 압제하고 포악을 행하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너희를 바벨론 제국을 들어 심판하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그로 인해 예레미야가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시의 여호야김 왕은 물론이요 왕을 떠받들며 명예와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있던 고관들에게까지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그만큼 당시의 기득권층을 건드렸기 때문이죠.

 

물론 오늘 본문은 그런 예레미야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의 주류 인사들로부터 따돌림 받고, 제거돼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되는 인물이라면, 그런 인물 곁에 누가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괜히 나에게까지도 화가 미칠지 모르는데, 누가 감히 그런 인사와 함께 하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의 서기관 바룩은 달랐습니다. 바룩은 사람들의 편견과 비난 속에서도 예레미야와 기꺼이 동역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 그 바룩은 예레미야의 곁에서 예레미야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전달하는 서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바룩이라 할지라도 왜 고민이 없고,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오늘 읽은 본문 3절에는 그의 깊은 고뇌와 갈등이 드러나 있습니다 네가 일찍이 말하기를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바룩의 이 탄식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금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겪어야 했던 모든 고난과 핍박을 그도 함께 겪고 있는 처지입니다. 예레미야를 향한 당시 주류 사회의 경멸적인 시선은 고스란히 바룩에게도 꽂혔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동역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겪지 않아도 되었을 고난을 바룩이 예레미야와 함께 겪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가 구속된 상황에서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대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도륙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바룩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예언의 말씀들이 그대로 성취되는 역사의 현장을 똑똑히 목도했고, 그걸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었죠. 그 역시도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시대의 아픔과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가 받는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나갔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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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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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런 바룩에게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이 말씀은 비단 바룩에게만 말씀이 아니라 예레미야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타락이 극에 달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의 모든 잘못된 신앙과 관행과 패악을 무너뜨리고 다시금 세우는 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다가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았는데, 바룩에게 그 메시지를 다시금 새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룩이라는 인물을 얼마나 신뢰하며 사랑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죠. 하나님은 바룩에게 예레미야에게 주신 메시지의 중심 주제를 상기시켜 주심으로써, 예레미야와 함께 그 어둠의 시대를 밝혀나갈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본문 5절에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내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부분을 보면 바룩이 어떤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었는지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바룩은 사실 자신을 위해 큰 일을 찾고 있었던 사람임을 은연 중에 알게 해 줍니다. 그 큰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큰 일을 찾느냐하는 이 말씀은 이미 열왕기하 8장 4절에도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종 게하시가 너의 선지자가 행한 큰 일이 무엇인지 왕이 물었을 때, 그는 왕에게 그렇게 말합ㅎ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죽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하고 말이죠. 또 그 큰 일에 대해 예레미야 33장 3절을 통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내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네게 보이리라하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과연 바룩이 생각하는 그 큰 일, 바룩이 찾고 있던 그 큰 일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죽은 처지와 같은 이 나라에서 자기 이름과 유명세를 날릴 수 있는 그런 큰 일을 찾고자 한 게 아니었겠습니까? 한 낱 두루마리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떼우고 있기 보다 오히려 세상적으로 더 화려하고 잘 알려지고 유명세를 지닐 수 있는 그런 큰 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레미야 51장 59절에 나오는 바룩의 형제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 곧 ‘스라야’라는 자기 동생의 처지를 보면 더욱더 환히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동생 스라야는 그 시절 시드기야 왕의 병참감으로서, 모든 군대의 무기고를 도맡았던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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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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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지금 바룩이 내적으로 무슨 갈등을 겪고 있는지 환히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읽은 45장의 말씀의 상황은 44장 다음에 나와야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읽었던 36장 32절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호야김 왕, 여호야긴 왕, 시드기야 왕도 다 죽고 모든 고관대작들도 모든 백성들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 이제 남은 유다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살다가, 그들마저 애굽 땅으로 숨어들어간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에 본문의 서기관 바룩과 관련된 말씀은 이미 읽은 예레미야 36장 32절 말씀과 연결되는 것이죠.

그때 무슨 상황이 벌어졌습니까? 여호야김 왕이 통치하던 그 시절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왕과 고관대작들 거짓 선지자들이 가둬버렸고, 또 그 사실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왕 앞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낭독하는데, 여호야김 왕은 그런 두루마리 말씀을 읽어주는 족족 한 장 한 장 찢어서 불태워버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바룩으로서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찌 자신의 동생과 비교하면서 어찌 내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품은 뜻이 있다는 거죠. 비록 그는 내적으로 세상의 화려하고 유명세를 타는 그런 큰 일을 꿈꿀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바룩에게 맡긴 그 일을 가장 소중하게 보신다는 것이죠. 마치 그것은 초대교회의 다른 제자들이 세계 각처를 돌면서 유명세를 날리는데 반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에베소 자기 집에서 봉양하는 것으로 자기 사명을 다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명이지 않았습니까?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 하는 그 일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다시금 깊이 각인시켰고, 그 바탕 위에서 훗날 요한복음과 요한일이삼서와 요한계시록을 썼다는 것 말입니다. 두루마리를 기록하고 낭독하는 일이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소중한 직임이었습니다. 오늘 나를 부르신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에서 바로 이런 시각으로 살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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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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