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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16:21-27)_2023년 3월 19일 사순절네번째주일설교

by 똑똑이채널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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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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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언젠가 개를 훈련시키는 사람이 쓴 글이 있었습니다.

그는 개를 훈련시킬 때 마룻바닥에 먹음직스러운 쇠고기 덩이를 갖다 놓는다고 하죠.

그런 후에 개를 그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죠.

 

그때 개는 쇠고기를 보고 재빠르게 뛰어가 고깃덩이를 뭅니다.

그러면 개를 훈련시킨 그는 개를 몇 차례 때려주고 고기를 빼앗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반복하면서 주인은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안돼. 가만히 있어.”하고 말이죠.

 

그렇게 길 들이면 개는 그때부터 고깃덩이를 먹고 싶어도 멈춰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훈련을 여러 번 하고 나면 개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죠.

나중에는 그 개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그때부터 개는 고깃덩이가 있어도 고깃덩이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주인만 바라본다고 하죠.

주인이 자신에게 뭐라고 명령하는지에 따라 행동할 자세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우리도 나의 생명되신 주님 앞에 그런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처럼 내가 뭔가를 갈망하고 앙망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안 돼’하시면 기꺼이 내려놓는 자세 말이죠.

이 세상에 취할 게 많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할 자세를 준비하면서 사는 모습 말입니다.

 

(적용)램비라는 의료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살면 물살이 급하면서도 다리가 없는 냇물을 종종 건너가야 할 때가 많다고 하죠.

그런 냇가를 건널 때 잘못하면 물살에 떠밀려 죽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램비 선교사는 원주민들로부터 그런 위험을 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냇물을 건너려면 무엇보다도 큰 돌을 찾아 어깨에 둘러메고 건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무거운 돌이 자신을 짓누르기 때문에 물살에 떠밀리지 않고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는 거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급류를 건너는 것과 같은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면 내 삶의 환경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탄의 세력이 뭐라고 속삭여 오겠습니까?

무거운 십자가와 같은 돌은 벗어던지고 이 세상 물살을 손쉽게 건너라고 유혹해 오지 않겠습니까?

그때 저와 여러분들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기보다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 물살을 승리하는 축복의 주인공들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예수님께서는 30살 전까지 갈릴리 나사렛 달동네에서 가정과 동생들을 책임지며 사셨습니다.

일찍 죽은 아버지 요셉 때문에 어머니 마리아와 네 명의 남동생과 두 명의 여동생을 먹여 살렸죠.

 

물론 예수님께서는 그런 삶만을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셨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코자 함이셨습니다.

30살이 되신 ‘그때로부터’ 가정을 박차고 갈릴리 주변의 더 많은 사람을 찾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친 이유가 그것이었죠.

각색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내 쫓고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 삶이 그 때문이었죠.

 

그렇게 3년의 공생애 사역을 끝마칠 즈음 ‘그때로부터’ 예수님게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죠.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낮고 낮은 곳에서 대도시 화려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3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듯,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이 되고자 함이셨습니까?

 

아니었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고자 함이셨죠.

그 길만이 이 땅에 죄로 물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실 수 있기 때문이죠.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놓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길이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 때문인 줄 믿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일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을 거라고 제자들 앞에서 선포하셨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지난 시간 살펴봤듯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서 항변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 일이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죠.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다’는 헬라어 단어는 ‘멱살을 잡았다’는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데리고 가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고자 하시는 십자가의 길에 베드로가 끼어든 것이었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에 순종하고자 하는데 베드로가 끼어들어 방해꾼 모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예수님을 향해 베드로가 ‘항변’했죠.

‘항변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꾸짖다 비난하다 책망하다는 뜻이었죠.

어른이 어린아이의 말과 행동을 꾸짖고 책망하듯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고 책망한 것이었죠.

 

베드로가 왜 그런 언행을 예수님께 보인 것이었습니까?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제자들 앞에서 베드로는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하고 고백했죠.

“네. 주님. 주님은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요 구세주이십니다.”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이요 곧 하나님이십니다.”하고 말이죠.

 

그토록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가 왜 그렇게 예수님이 가고자 하는 길목에 끼어들어 방해한 겁니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난받거나 십자가 죽음 없이도 얼마든지 메시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여태 3년간 보여준 기적과 능력이면 충분히 메시아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물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메시아는 십자가 죽음을 통한 부활의 메시아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로마 세력들과 예루살렘의 중심세력들을 모두 몰아내고 왕으로 등극하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꿈꾼 것이었죠.

그래서 예수님이 받들고자 하는 십자가의 길목에 베드로가 끼어들어 비난하고 책망한 것이었죠.

“주님. 그렇게 하지 마세요. 주님께 그런 일이 결단코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만일 그런 일일 일어난다고 해도 저희가 나서서 막을 것이니 염려치 마세요.”하고 말이죠.

 

(깨달음)그런 제자들과 그런 베드로의 모습을 보고 깨닫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 앞에 내 고집만을 내세우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전락할 수 있다는 거죠.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하늘의 열쇠를 받아도 이 땅의 욕심을 앞세우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말이죠.

그러니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 뜻을 꺾지 않으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적용)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돼야 하죠.

내가 원하는 게 있어도 말씀과 감동을 통해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하신다면 기꺼이 내 뜻을 꺾는 것 말이죠.

만약 주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는다고 할 때, 베드로와 제자들이 기꺼이 동참했다면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셨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십자가 영광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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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말씀인데 본문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원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고 말씀하신 거죠.

왜죠?

예수님께서 걷고자 하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위한 길목에 베드로가 끼어들어 유혹하며 다가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그때 처음 하신 게 아니죠.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40일간 금식하고 있을 때 사탄이 다가와 세 가지 유혹을 했죠.

돌로 떡을 만들어봐라, 높은 데 뛰어내려 천사들이 네 발을 붙들어주도록 해라,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권세를 다 줄 거다, 하고 유혹했죠.

그때도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그 유혹들을 뿌리치셨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사탄의 꼬임에 빠져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하니까 “내 뒤로 물러가라”고 선포한 거죠.

 

물론 사탄을 향해 ‘물러가라’하고 선포한 말씀과 베드로를 향해 ‘물러가라’하고 말씀한 차원은 다르죠.

사탄을 향해 ‘물러가라’하고 선포한 말씀은 ‘썩 꺼지지 못해’ ‘내게서 당장 떠나가라’하는 뜻이죠.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가라’한 것은 헬라어로 ‘휘파고 오피소 모우’(Ὕπαγε ὀπίσω μου Σατανᾶ)입니다.

영어로 ‘Get you behind me’죠.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가라’한 말씀은 ‘썩 꺼져라’하는 게 아니라 ‘내 뒤로 물러서라’하는 겁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말고 그냥 뒤에 물러나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베드로에게 보란 듯이 말씀해 주셨죠.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하면서 곧바로 그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죠.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고 말이죠.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내 뒤로 물러나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고 다시금 내 뒤를 따르라는 말씀이죠.

너도, 너희들도, 너희들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도 그렇고 제자들도 그렇고 그들을 향한 긍휼을 잃지 않으셨던 거죠.

 

왜죠?

그것만이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하늘나라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것만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을 진정으로 누리는 길이기 때문이죠.

 

(전개)오늘 우리가 주목코자 하는 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신 말씀의 더 깊은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을 대표해 예수님께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고백했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셨고 주님의교회를 세울 거라고, 천국열쇠를 주겠다고 하셨죠.

 

그랬던 베드로가 그곳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고 할 때 끼어들어 사탄의 모습처럼 가로막았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자신들이 막을 거라고, 유혹하면서 말이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하시면서 ‘너는 사탄처럼 내 길에 방해하지 말고 내 뒤에 물러나 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라’고 하셨죠.

 

어떻게 그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그곳에서 천국열쇠를 받은 그곳에서 사탄의 모습으로 전락할 수 있냐는 겁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죠.

베드로에게 사탄의 세력이 찾아오는 환경이나 상황은 따로 정해 놓고 오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사탄의 세력이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겁니까?

사탄은 어렵고 힘들 때 찾아옵니까?

믿음이 약한 사람이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나 찾아옵니까?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힘들거나 어려울 때 사탄이 유혹한 게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할 때였습니다.

 

언제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며 다가왔습니까?

예수님이 광야에서 공생애 사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사탄이 찾아와 유혹했죠.

사탄은 죄악의 소굴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믿음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겁니다.

사탄은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도 다가오지만 신앙적으로 살고자 몸부림칠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우리의 심령에 교만을 심고자 우선을 가장한 채로 말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자 내 자아를 내세우도록 말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낙심할 때도 찾아오지만 우리가 성공하고 영광을 누릴 때도 찾아와 유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용)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봄철의 불청객인 미세먼지처럼 찾아오는 사탄의 세력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처럼 사탄에 걸려 넘어지는가, 사탄을 물리치고 이기든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탄의 세력에 넘어지지 않고 사탄의 세력 앞에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의 모습에서 보듯이 내 욕망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때만 사탄의 유혹 앞에 승리할 수 있죠.

내 고집과 자아를 부인하며 살 때만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는 겁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잖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사탄의 유혹을 이기게 하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주음성)그렇기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사탄의 세력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너의 삶 속에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사탄의 세력은 개가 그토록 먹고 싶은 것을 향해 달려가듯 세상에 취하고 싶은 것으로 너를 유혹한다는 걸 기억하려무나.”

아프리카의 다리 없는 급한 물살을 건널 때 무거운 돌을 매지 말고 건너도록 사탄이 유혹하듯 지금도 너를 그렇게 유혹하니 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걷겠다고 할 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베드로가 주님의 길을 막아서지 않았더냐?”

그때 주님께서는 뒤로 물러나서 하나님의 일을 먼저 바라보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도록 말씀하지 않았더냐?”

그 길만이 사탄의 세력에게 굴복당하지 않고 매일매일 자기를 부인하며 승리하며 사는 길이니 말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사탄의 세력은 네가 믿음이 없거나 세상에서 실패할 때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

베드로처럼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하늘의 열쇠를 받았을 때도 곧바로 찾아와 유혹하는 게 사탄의 세력이니 말이다.”

사탄의 세력은 네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그 순간에도 너의 교만한 마음을 파고들어 너를 넘어뜨리려고 유혹하는 세력이니 말이다.”

그러니 네 삶의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이 세상 유혹을 물리치며 승리하는 길이지 않겠느냐?”

봄철 먼지처럼 사탄의 세력은 순식간에 너에게 달라붙는 존재이니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 발자취를 따라 네 자아를 부인하며 살도록 해라.”

사탄이 네게 다가와 이 세상 먹거리로, 이 세상 숭배자로, 이 세상 권세로 유혹할 때 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길 원한다.”

 

(찬양)내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에 주가 주신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손에는 주를 향한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자에게

순교자의 삶의 사는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생명 주님께 드리리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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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목포 씨월드고속훼리 이혁영 회장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분이 양동제일교회를 다니는지 모르지만 그분이 목포와 제주를 운항하는 페리호 목포 지점장일 때의 일이었죠.

그 무렵 회사의 부실로 인해 회사 운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선 어느 날 회사 사주가 그 당시 집사였던 그를 불렀습니다.

“내일 아침 회사의 번영과 무사고 항해를 위해 고사를 지냅니다”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지점장도 나와서 함께 절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때 ‘꼭 절을 해야 할까?’하면서 머뭇거렸습니다.

그걸 알게 된 회사 사주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죠.

“만약 내일 아침 고사장에 나와 절을 안 한다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시오”하고 말이죠.

 

그러니 그날 밤에 그 집사님에게 잠이 왔겠습니까?

밤새도록 고민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사탄의 세력이 다가와 속삭였습니다.

“그냥 눈 찔끔 감고 돼지머리에게 절하는 거야. 누가 알겠어?”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성령님께서 말씀하는 음성이 들려왔죠.

“아니야. 지금 돼지머리에게 조아리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계속 끌려다녀야 해.”

“네가 이 거센 물결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믿음으로 결단하면 좋겠다.”

 

다음날 그분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사탄의 유혹 앞에 고달프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의 길을 좇기로 한 거였죠.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8개월 만에 그 회사가 망하고 새로운 사주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책임질 사람을 찾던 중에 이혁영 집사의 소문을 듣고 다시금 회사를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지점장의 자리까지 맡기면서 말입니다.

그때 이학영 집사님은 그렇게 고백을 했다고 하죠.

“만일 그때 내가 돼지머리에 절을 했더라면 8개월 뒤에 함께 망했을 것이다”하고 말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오늘도 사탄의 세력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고자 많은 유혹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이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력과 욕망에 눈이 멀게 하는 것들로 말이죠.

눈 한 번 찔끔 감고 삼키면 아무도 모르는 달콤한 것들로 우리를 유혹해 옵니다.

 

그때 저와 여러분은 이학영 집사님이 주님의 음성을 좇아 순종했던 십자가의 길을 좇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고통이요 무거운 십자가지만 8개월 뒤 더 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채워주셨듯이 말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저도 제 믿음이 안 좋을 때 뿐만 아니라 제 믿음이 좋고 잘 나갈때도 사탄은 나를 유혹한다는 걸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이학영 집사님이 페리호 지점장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도 사탄의 유혹은 더 교묘하게 파고드는데 나에게도 그렇게 유혹하며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게 해주세요.”

사탄의 세력은 주님께서 걷고자 하신 십자가의 길을 베드로로 하여금 막아서게 했는데 저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길을 막아서지 않게 해주세요.”

힘들고 고달픈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이 세상의 물결이나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생명을 지키는 길인 줄 믿습니다.”

제 믿음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제가 힘들거나 성공하거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십자가를 부여잡고 순종하며 사는 길을 택하게 해 주세요.”

 

(찬양)약할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주 주나의 모든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수 없네 주 나의 모든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나의 모든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주나의 모든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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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것만이 이 세상 파도와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승리하는 길이니 말입니다.

 

사탄의 세력은 우리의 믿음이 약할 때든지 강할 때든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그때도 우리 심령을 흔들며 파고드는 존재입니다.

베드로에게 유혹하듯이 우리들도 주님의 십자가를 내팽개치며 세상 욕망을 붙잡고 살라고 유혹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더욱 붙잡길 바랍니다.

이학영 집사님이 이 세상 돼지머리에게 머리 숙이고 더 큰 성공을 붙잡기보다 주님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갈 때 새로운 은총의 선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우리를 속삭이는 사탄의 유혹들을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능히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통송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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