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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0일 토요일 오전 10시 교회창립 68주년을 맞이한 전남서지방회 자은서부교회가 임직자를 세웠다.
2005년 4월 4일 표용기 장로가 장립한 후 20년이 된 시점이다.
더욱 뜻깊은 건 그것이다.
당시 표용기 장로가 전도한 이들이 장로와 권사로 취임했다는 점이다.
그들을 교회로 전도해 장로와 권사로 취임토록 이끌어 준 표용기 장로는 이제 원로장로로 추대됐다.
얼마나 감개무량하고 신바람 나는 일이겠는가?
아울러 박정주 장로가 5대 장로로 장립했고, 김영환 손옥산 오현태 우영원 표상수 표성남 표하수 성만례 배추자 권사가 모두 명예권사로 추대됐다.


제 1부 예배는 지방회 부회장 김인홍 목사가 집례했다.
지방회 장로부회장 안상기 장로는 “오늘 임직하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고 주님 앞에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지방회서기 김장주 목사는 요한복음 12장 9-11절 말씀을 봉독했고, 전남서지방회 사모찬양단이 특별찬양을 했다.
지방회장 박연기 목사는 ‘그리스도인’이란 주제로 말씀을 전했는데 “임직을 받는 분들 모두가 그리스도를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선포했다.


2부 임직예식은 정정문 담임목사가 진행했다.
먼저 임직자들을 소개했고 임직자 일동이 서약식을 했다.
이어 표용기 장로의 원로장로 추대식을 맞이해 지방회 평신도부장 오영환 목사가 기도했고, 정정문 담임목사가 공포했다.
박정주 장로의 장로장립식을 맞이해 지방회 인사부장 오성문 목사가 기도했고, 지영태 박연기 이상조 황규태 목사와 최창식 조학현 장로가 함께 안수했다.
최성례 이윤순 김성순 정철선 권사의 권사 취임식에는 권성권 김창권 김성진 한열 목사가 각각 축복했고 정정문 담임목사가 공포했다.
김영환 손옥산 오현태 우영원 표상수 표성남 표하수 성만례 배추자 권사 명예권사 추대식에는 지방회 심리부장 김형근 목사가 기도를 했고, 정정문 담임목사가 추대했다.

3부 권면 및 축하의 시간이 진행됐다.
먼저 권면의 시간을 통해 영성교회 양성택 목사는 “임직자들이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이되 헌금생활에 본을 보이면 좋겠고, 하나님과 담임 목사님과 성도들에게도 충성하면 좋겠고, 어린 아이처럼 칭얼대기보다 어른답게 성도들을 두루 두루 살피면 좋겠다”고 권면했다.
압해남부교회 김영선 목사는 “임직자들이 담임목사님의 어떤 말씀이든 아멘으로 순종하면 좋겠고, 성도들을 대할 때 풀이 아닌 꽃으로 품고 살면 좋겠다”고 권면했다.
축하의 시간을 통해 압해대천교회 정택목사는 “명예권사로 임직하는 분들이 나이가 들었어도 임직을 사모하는 모습 같아서, 원로 장로로 추대되는 표용기 장로도 여태껏 지방회나 교회에서 큰소리를 쳤다거나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 묵묵히 순종하고 헌신을 해서, 그리고 임직을 받는 모든 분이 하늘의 상급을 받을 것을 믿기에” 축하한다고 했다.
삼양중앙교회 김군철 목사는 “20년 전에 제가 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곳이라 감회가 새롭고, 지금 임직을 받는 분들 가운데 20년 전에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던 분들이라 더욱더 감사해서”축하한다고 했다.
이어서 교회를 대표해 박정주 장로가 광고를 했고, 김현서 양과 박은성 목사가 축가를 불렀다.
끝으로 낙원교회 원로목사 김양 목사가 축도를 했다.


교회창립 68주년을 맞이해 여러 임직자를 세운 제10대 정정문 담임목사는 그런 말을 했다.
섬 지역 교회에 일꾼을 세우는 것은 예전과 달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성도들이 고령화되고 있고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천국으로 소천한 분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이번에 임직식을 거행한 것은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정정문 목사는 앞으로도 현세대가 지닌 믿음을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물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성실한 마음과 자세로 자은서부교회를 섬길 것을 다짐했다.
자은서부교회는 자은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8km 떨어진 백산 마을에 위치한다.
백산(白山)은 흰 모래가 많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1919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와우리와 분계리 모두 백산리에 편입됐다.
자은면은 총면적이 52.73㎢인데 백산리는 11.15㎢로 자은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넓다.
백산기도처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시작됐다.
암태도 소작쟁의 주역 중 하나였고, 상해임시정부 자금모집책이었다가 경무부 경무주임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 신안군과 나뉘기 이전의 무안군 건국준비위원장도 역임한 애국지사이자 선각자였던 박복영 선생이 그곳으로 피신해 백산학당을 세우면서 젊은이들을 모아 예배를 시작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후에는 새터멀 빈집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청년 김천식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의 모습을 갖췄다.
그 후 몇몇 신자들의 헌금과 독지가의 헌금으로 큰멀의 한옥을 매입해 예배당으로 개축했다.
그때 박복영 씨가 예배를 인도했는데 설교는 성경을 읽는 정도였다.
그것이 백산기도처의 출발점이다.
한편 와우리에서는 이정호와 함께 여러 청년이 자은제일교회까지 나가 출석했다.
숫자가 많을 땐 20명이 넘었다.
그들은 와우리에도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했다.
전남지방회에서 그 소식을 듣고 1957년 와우리의 헌 가옥을 매입해 와우기도처로 삼게 했다.
이정호, 표정애, 고정자, 표미순, 표춘자, 조평란 등은 가마니를 구해 바닥에 깔고 앞마당을 단장했다.
주일 낮 예배는 물론 주일밤과 수요일밤, 심지어 새벽기도회까지 포탄껍질로 만든 종을 치면서 열심히 모였다.
당시 교회는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예배를 인도하던 이정호가 군대에 들어간 후에 성도들은 하나둘 흩어졌고 남은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예배처를 지키며 신앙생활했다.
당시 자은제일교회의 담임교역자 이만성 전도사는 와우기도처는 물론 백산기도처까지 돌봤다.
그는 와우기도처에 최장원과 이경삼 집사를 보내 예배를 인도하도록 했다.
그는 가끔 백산을 방문해 박복영 씨와 교제를 나눴다.
그는 서부지역에 두 개 교회가 설립된다면 둘 다 자립이 힘들 걸 내다보고 합병을 논의했다.
결국 1957년 두 기도처는 합병을 결의했다.
아울러 지방회에 교회설립을 청원했고 임자도 재원교회를 섬기던 조윤택 전도사를 담임교역자로 청빙했다.
1958년년 2월 12일에는 서울신학교에서 공부한 조윤택 전도사가 부임했다.
2월 17일 자은서부교회 설립허락이 나왔다.
정식명칭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자은서부교회였다.
담임교역자 조윤택 전도사는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오래된 화장실을 헐고 새로 지었고 산에서 돌들을 주워 담장을 쌓았다.
담장공사에 협력한 주민들도 하나둘 교회에 나왔다.
그 후 5년 만에 장년신자 60명 어린이신자 60명이 모여 예배했다.
당시 교회통계표에는 120명의 신자가 모였는데 집사는 2명뿐이었다.
1962년 9월 13일 한참 부흥하던 그때 조윤택 전도사는 자은동부교회로 임지를 옮겼다.
그때부터 교회예배는 군대에서 전역한 이정호와 활동가였던 김천식과 이상주의자 최종철이 돌아가며 인도했다.
1964년 봄이 지나고 농번기철인 5월10일 수치에서 문병식 전도사가 부임했다.
박복영 옹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그 전도사를 맞이했다.
그 무렵 자은서부교회 기도 용사인 김이월 집사도 문평에서 신성으로 이주해왔다.
문병식 전도사는 설교시간에 불을 토했고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기도했다.
그는 무인도에서 15일간 금식기도했고 신유 은사가 나타나자 다른 지역에서도 몰려왔다.
더욱이 청년들과 운동을 좋아해서 청년들이 많이 나왔다.
그 전도사의 부임 1년 후 장년신자 100명 2년 후에는 장년신자 150명 어린이신자 180명이 출석했다.
당시 성령의 능력은 자은지역에 불어왔는데 자은동부에서는 김양 전도사가, 자은서부에서는 문병식 전도사가 쌍두마차로 자은지역의 부흥을 이끌었다.
1973년 자은서부교회는 400명이 넘었고 1987년까지 15년 동안이나 놀라운 부흥을 이어나갔다.
한편 1969년 와우에 있던 자은서초등학교가 백산의 염동으로 이전했다.
문병식 전도사와 이정호 집사는 목포 교육청을 찾아다니며 학교건물과 운동장을 매입하고자 했다.
결국 당시에 반값도 안 되는 18만원에 학교를 매입했다.
비록 낡은 건물이었지만 여러 개의 교실이 있어서 예배공간으로 넉넉했다.
더욱이 1,200평의 넓은 운동장까지 있어서 드넓은 교회가 되었다.
학교 매입 후 교회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자은서부교회 온 성도는 1969년 12월 성탄절을 감격 속에서 맞이했다.
1973년 12월 19일 이정호 장로가 처음으로 장로로 취임했고 초대 권사로 김이월 권사가 취임했다.
1974년 46평의 새 성전을 건축했고 1976년 7월 제3대 교역자 윤행섭 목사가 부임했다(∼1989년 10월).
1982년 4월 새 성전을 봉헌했고 2대 장로 표성주 장로가 장립했다.
1983년 9월 18일 신광교회를 분립했다.
1989년 11월 제 4대 교역자 장학준 목사가 부임했다(∼1993년 1월).
1993년 2월 제 5대 교역자 이윤택 목사가 부임했다(∼2000년 5월).
그해 30평의 교육관을 건축했다.
1996년 5월 3대 장로로 장명호 장중달 표문철 장로가 장립했다. 아울러 2대 권사 고정자 김연매 김영자 김창규 명덕례 박순덕 박순안 우윤심 윤복순 이길단 이정매 장금단 조평란 주복덕 최복매 최부례 최정님 표부실 표영개 표화룡 권사가 취임했다.
2000년 7월 제 6대 교역자 김주범 목사가 부임했다(∼2002년 6월).
2002년 7월 제 7대 교역자 김군철 목사가 부임했다(∼2006년 3월).
그해 사택 내부를 리모델링하고 증축했다.
2004년 종탑을 신축하고 교회 내부를 리모델링했다.
2005년 식당을 신축했다.
그해 4월 4대 장로 표용기 장로가 장립했고, 명예권사로 김연매 외 9명이 추대됐고, 3대 권사로 고문심 외 18명이 취임했다.
2006년 5월 12일 제 8대 교역자 한상섭 목사가 부임했다(∼2017년 12월 8일).
그해 7월 당회실과 식당을 리모델링 했고 식탁을 구입했다.
그해 12월 10일 표남애 표재술 표재환 권사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2007년 12월 5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장동욱 목사를 강사로 기념 부흥성회를 열었다.
2008년 2월 교회 주차장을 확장하고 포장했다.
2009년 1월 4일 이정호 장중달 장로를 명예장로로 추대했다.
2011년 1월 허옥선 양순애 최동님 한옥희 권사를 명예권사 추대했다.
2013년 1월 표판님 권사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그해 9월 사택과 교회식당 지붕공사를 했다.
2014년 12월 7일 윤봉희 김계심 권사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2015년 12월 6일 김영욱 최옥금 권사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2016년 12월 4일 김준순 권사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2017년 6월 5일 교회창립 60주년을 맞이했고 표문철 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했다.
그해 12월 21일 제 9대 교역자 백인원 목사가 부임했다.
2020년 12월 2일 제 10대 교역자 정정문 목사가 부임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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