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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데살로니가후서 마지막 장입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고 있죠. 그리고 왜 두 번에 걸쳐서 편지를 썼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마게도냐에 들어갔다가 빌립보에 이어 두 번째로 세운 교회였죠. 당시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였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고, 인구 20만 명이 넘는 도시였죠. 자연히 유대인들의 자치구가 있었고 회당도 있었죠. 바울은 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는데, 헬라인과 귀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유대인들은 절대다수가 거부하고 반발했죠. 오히려 그들은 바울 일행이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이고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 외에 또 다른 왕 곧 예수라는 왕이 있다고 떠들썩하게 다니는 자들이라고 고발했죠. 그 일로 바울 일행 대신에 야손의 집 사람들 몇 명이 관리당국자들에게 끌려갔고, 그 일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죠. 그걸 바라본 바울과 일행은 더 이상 피해를 줄 수 없어서 그곳을 빠져나오죠. 3주 곧 한 달도 채 못 미친 짧은 기간이었죠. 그래서 그 후에 베뢰아로, 또 아네테로 옮겨왔는데, 그때 젊은 제자 디모데를 보내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잘 있는지, 믿음에 굳게 서 있는지 확인하고 오도록 했죠.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까지 내려가 1년 6개월에 걸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그때 바로 데살로니가 후서를 써 보냈던 것이죠.
그렇기에 무슨 목적으로 그 편지를 써 보냈겠습니까? 영적인 신생아와 같은 그들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유혹과 핍박 앞에 쓰러지지 말고 오히려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도록 하라고, 더욱이 주님께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재림하실 때 영광으로 맞이하고 그 상급을 바라보도록 하라고 권면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었죠. 그런데 왜 두 번에 걸쳐 썼습니까? 처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주님의 재림 앞에 흔들리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는데, 그 중에 그릇된 재림론에 빠져든 이들이 이어서 그들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두 번에 걸쳐 쓴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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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장을 통해 바울은 데살로니가전후서의 마지막 부분을 써 내려가는 상황입니다. 1절에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바울은 기도를 당부합니다. 그런데 ‘끝으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단어가 헬라어로 ‘로이폰’(λοιπόν)인데 빌립보서 3장 1절과 4장8절에 또 데살로니가전서4장 1절에 쓰인 바 있었죠. 뭔가 ‘마지막’ 말을 할 때나 중간에 ‘중요한 부분’을 강조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요, 또한 강조점도 있는 셈이죠. 과연 바울이 마지막에 기도부탁을 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내용이 1절에서 5절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 사역의 아름다운 결실과 전파를 위해 기도부탁을 합니다. 1절 후반부에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고 확산된 것처럼 자신들이 복음을 전파하러 가는 곳마다 그런 역사가 계속되게 해 달라고 기도요청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우상숭배가 넘쳐나는 곳, 영적으로 악한 진을 치고 있는 그런 영적전투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 사역자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부탁을 합니다. 2절에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초대교회 당시에 박해가 심했죠. 악한 자들이 육체적으로 또 신앙적으로 나쁜 의도를 갖고 공격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런 흐름은 지금도 오지 선교사들이 많이 겪는 일들이죠. 그렇게 영적 전투의 최전방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영적으로 집중 포화나 공격을 받을 때 그 분들이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처럼 대단한 능력을 지닌 바울도 그렇게 기도요청을 했다면, 저도 여러분들에게 기도부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셋째로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기도 부탁한 내용은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의 일이 사랑과 인내로 지속할 수 있게 하도록 요청합니다. 5절에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어떤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잃지 않도록, 또 그리스도의 인내 속에서 행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6-15절까지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하게 밝혀줍니다. 본문 6절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당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안에 게으른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이들이 생겨난 것입니까? 이른바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 곧 바울의 목회 철학과 사역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종말이 가까이 올수록, 주님의 재림이 가까 올수록, 영적으로 깨어 있으되, 세상에 주어진 자기 신분과 지위에 걸맞게 충실하게 일하면서 맞이하라고 이미 첫 번째 편지 4장 11절에 권면을 했었죠. 그런데 그런 권면을 무시하고 게으르게 사는 자들과 어울려서 성도들과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11절에서도 그런 자들을 다시 한 번 언급하죠. “우리가 들은 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주님의 재림을 핑계대면서 도무지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지내면서, 일만 만드는 자들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은 그런 자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여기에서 “조용하게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하는 헬라어 원뜻은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하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자기 힘으로 일하여 소득을 얻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가라는 것이죠. 만약 그렇게 권면했는데도 듣지 않고 순종치 않는다면 14절에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 가르침에 순종치 않고 공동체의 신앙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고, 스스로 부끄럽게 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공동체 안에서 그런 자들에게 징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15절 말씀처럼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하고 덧붙이죠. 비판과 비난을 위한 징계가 아니라, 그를 세울 수 있는 징계 곧 사랑으로 권면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권면할 수 있는 이유가 있죠. 자신이 그런 삶의 본을 보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7-9절 말씀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무질서하게 행하지 않았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제 스스로 값을 치르며 살았고, 자신이 지닌 권리조차 제대로 사용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하고 말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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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평강과 은혜 안에 거하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16절에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감사와 기쁨의 안부도 물었고, 또 교훈과 권면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자들에게는 징계도 하라고 했죠. 하지만 바울의 마음 속에 근원적으로 담겨 있는 사랑입니다. 영적인 신생아와 같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랑 말입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도록 기도하고 있고, 18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을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어떤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바울이 영적인 갓난아이와 같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는 삶을 살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영적으로 깨어 있으되 자기 일을 하여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 자신들도 어떤 일을 하든지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사는 삶을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어 사는 삶을 살도록 성령님은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언약백성답게 하나님 나라의 킹덤 빌더로서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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