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의 편지는 외롭고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이었다. 편지로 고민을 말씀드리거나 어려운 일을 전하면 그 답도 잊지 않고 해주셨다. 바쁘게 사시는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나의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까지 해 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전은애의 〈민들레 홀씨처럼〉에 나온 내용이다. 18살 때 조산파(Midwife)로 독일로 떠난 그녀가 그곳에서 장기려 박사에게 받은 편지를 떠올린 장면이다. 당시 부산복음병원 원장이던 장기려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 간 절제수술을 성공한 분이고,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설립자였다. 그토록 바쁜 분이 독일 땅에서 외로워할 그녀를 향해 지극정성으로 편지를 보내며 격려한 것이었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온 전은애도, 그 당시 아내와 자녀들을 북에 두고 온 장기려 박사도 그랬다. 그 당시 전은애는 병원에서 예배하며 말씀대로 사는 장기려 박사를 아버지처럼 따랐고, 장기려 박사도 전은애는 물론 병원 간호사들을 가족처럼 보살폈다.
어디 그뿐이랴? 장기려 박사는 혈액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서는 자기 피도 내줬고,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걸인에게 주기도 했고, 가난해서 병원비를 낼 수 없는 환자를 뒷문으로 몰래 보내기도 했고, 행려병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줬다. 그와 같은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를 어린 전은애는 왜 기대려 했을까? 그것은 자신과 같은 작은 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허투루 대하지 않고 진정으로 대해준 까닭이었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4-5)
솔로몬은 다윗이 낳은 19명의 아들 중에 10번째 아들이고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는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대상3:1-5). 그만큼 그는 다른 형제들에게 밀려도 많이 밀린 상태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여디디아’(삼하12:24-25)로 여기며 사랑으로 품어주셨다.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그는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다윗과 같은 모습이었다. 배다른 형제들 틈바구니 속에서 막내 아들로 태어난 다윗은 양치기로 내몰렸다. 하지만 불평이나 원망없이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며 자립심을 키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신 중심(לֵבָב, authority inside)1)이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준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도니야 대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뜻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20살에 왕위에 오른 솔로몬2)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대로 상벌을 내렸다.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베냐민 족속 시므이에겐 벌을 내렸다. 그들은 아도니야처럼 기회주의자요 욕망의 숭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브나야와 사독은 각각 군대장관과 제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들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프로세스를 바라보며 주어진 일에 성실을 다한 까닭이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 천하에 보여준 솔로몬이었다.
그 후 솔로몬은 애굽의 파라오와 정략적인 혼인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하나님께 ‘일천번제’(왕상3:4)를 드렸다. 물론 그것은 1000일 동안 번제물을 드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천 마리 희생제물을 드렸다”(대하1:6)는 뜻이다.
다만 ‘천(千)’이라는 숫자를 정확한 정수로 바라보기보다 ‘매우 많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창24:6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신5:10),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신1:11)하는 표현처럼. 물론 성전봉헌식 때 솔로몬이 드린 제물은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왕상8:63)였다고 정확한 정수를 밝혔다.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일천번제는 하나님께서 요구한 게 아니라 솔로몬의 자발적인 헌신이었다. 더욱이 이때는 솔로몬의 왕권 초기였다. 37살에 온 이스라엘의 왕권을 잡은 아버지와 달리 20대 초반의 솔로몬은 어린아이와 같았고(왕상3:7), 그야말로 홀로였다.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기댈 것이라곤 하나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런 중심으로 일천번제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귀하게 받으셨고, 그에게 지혜는 물론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귀와 장수까지 허락해주신 것이었다.
독일 땅에서 외롭고 힘든 상황을 극복해가야 했던 전은애는 그 구보다도 장기려 박사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그녀는 독일 땅을 출입할 줄 모르는 작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기려 박사의 편지를 더욱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다윗이 죽고 20대에 왕권을 물려받은 솔로몬도 마찬가지였다. 홀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수밖에 없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처지였으니 말이다.
어떤가? 그대와 내가 전은애와 같은 처지라면, 솔로몬과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지 않았을까? 외롭고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니 말이다. 그때 누구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이랴! 하지만 솔로몬처럼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은 나이가 많든 적든, 대단한 능력이 있든 없든, 상관치 않기 때문이다. 그 분은 자기 자신을 어린 아이처럼 여기며 나아오는 자들을 더욱 기뻐하시니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일천번제물과 같은 소원예물을 드릴 때 어찌 귀하게 응답해주지 않으시랴?
1)https://www.studylight.org/lexicons/eng/hebrew/03824.html
2)https://hermeneutics.stackexchange.com/questions/51218/how-old-was-solomon-when-he-became-king
A thousand burnt offerings were not burnt offerings for a thousand days, but a thousand burnt offerings.
It was at the beginning of his twenties that Solomon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God is pleased with those who count on him as little children and depend on him, whether young or old, with or without a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