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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은 1절의 기록대로 예수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들어가신 행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기”란 이전의 5장에 나와 있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장소 곧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오가며 사역을 했는데, 그곳 가버나움에 오기 전에는 데가볼리의 거라사인 지역에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데가볼리 지역은 갈릴리 바다 동남쪽 방향으로 넓게 펼쳐진 10개의 도읍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서 예수님 사역 당시의 갈릴리 지역보다 훨씬 그 면적이 큰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데가볼리 지역에서 거라사인의 귀신을 쫓아내신 사역을 하시고, 이후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에 당도하셔서 사역을 하셨고, 그 뒤에 자기 고향인 나사렛 성읍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나사렛은 가버나움과 함께 갈릴리 지역 안에 있는 곳으로서,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볼 때 가버나움보다 아래쪽인 8시 방향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사역을 하실 때 갈릴리 바다 좌우편을 오가면서 쉴 새 없이 사역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오셨을 때는 2차 갈릴리 사역이 끝난 뒤였습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공생애 기간 중에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에서 고향으로 돌아오신 건 2차 갈릴리 사역의 마침으로서 휴식을 갖고자 하심인데,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3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본문 6절 하반절 입니다.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께서 한 사역의 기간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셔 쉼을 얻는 시간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총 3차에 걸쳐 갈릴리사역을 펼치셨는데, 매번 고향사람들과 형제들에게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1차 갈릴리 사역에서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나오지 않고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오는데, 누가복음 4장 16-30절에 기록된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듣던 자들이 분노하여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에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가 사역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고, 이에 대한 비슷한 내용이 마태복음 13장 53-58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역은 요한복음서에만 나와 있는데, 구체적인 지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형제들로부터 배척당하신 사건이 나와 있는데, 요한복음 7장 5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차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하시고 이제 고향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 사역과 치유 사역을 소문으로 듣던 고향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예수님을 환영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전박대 수준을 보입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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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가 이전에 읽었던 마가복음 3장 21절의 상황이나 마가복음 3장 31절의 상황과 비슷한 흐름일 것입니다. 그때도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그 친족들이 와서 예수님을 붙잡고자 하면서 미쳤다고 했는데, 그들로는 안 되자 예수님의 가족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말리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었죠. 예수님의 친족들과 예수님의 가족들조차 이런 상황이었으니,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인에도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을 가르치는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예수님께서 1차 갈릴리 사역 때는 공생애 초기에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는데, 그때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고향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지 못한 때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엘리야시대의 3년 6개월 가뭄으로 인한 흉년에 많은 사람들 중에 사렙다 과부만이 택함을 받은 것과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한센병 환자들이 있었지만 오직 수리아 사람 한센병 환자 ‘나아만’만 깨끗함을 받은 걸 말씀하시면서 배척자들을 책망하셨죠. 오늘 본문에서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예수님의 권능의 손에 감탄했다는 것으로 보아서, 그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또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감탄스러워하면서도 예수님이 자기 지역 출신임을 알고 배척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본문 3절에서 증언해주죠.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지혜로운 말씀과 권능의 손을 가졌어도, 한 낱 목수의 아들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신적인 권능과 권위를 지닌 분으로, 곧 하나님의 아들로는 생각지 않았던 것입니다. 목수란 그 어떤 지혜자가 될 수 없고, 목수는 그 어떤 권능을 베풀 수 없다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던 그 고향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전자책]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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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간은 편견에 사로잡힐 때 참과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출신 지역과 출신 학교를 사람의 평가 기준으로 삼을 때 결코 참된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 사람을 통해 얻고 누리는 참된 기쁨도 놓치게 됩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 감독을 외국인으로 선임했을 때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도 그 때문입니다. 히딩크와 같은 외국인 감독은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에 얽매이지 않고 박지성 선수 같은 선수 개인의 능력만 보고 선출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나라 축구감독은 각각의 혈연과 지연과 학연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더욱이 축구협회의 눈치를 봐야 하고요.
그런데 그런 편견이 축구선수 선발에만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편견은 가족 간에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죠. 항상 말썽을 일으키는 자식이 있을 때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잘 안 돼죠. 그 가족들의 편견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비난과 편견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는 소수의 병자들에만 안수하고 고쳐주셨고, 이제 3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열두 제자들을 보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까지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어떤 편견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1장 16절에 보면 어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부였기에 ‘나의 제자로서 너희들은 자격이 없다’하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로 뽑으실 때 자격 조건이나 학벌이나 가진 재산을 보고 뽑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직업군도 어부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증오의 대상인 세리도 있었고, 애국주의자인 열심당원도 있었죠. 더욱이 성격이 급하고 말투가 투박한 제자, 다소 과격한 제자, 사회적으로 소통이 힘든 제자, 그런 제자들의 자격조건을 따져 묻는 주님이 아니셨습니다. 오직 사람의 중심을 보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직업과 출신과 성격이 다양한 당신의 제자들의 부족함이 있었는데도, 그들을 믿어주고 귀신까지 제어하는 권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을 믿어주신 주님 앞에 얼마나 선하고 신실하게 사역을 했을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7절에 “둘씩 둘씩” 내 보내신 이유도 자신들의 부족함을 서로가 채워가며 사역하도록 하신 것이죠.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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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편견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일하는 제자로 삼으신 것 역시 자격 조건을 따져 물으시고 선택하신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연약함에도 당신의 일하는 제자로 삼아주신 주님이시기에, 함께 일하는 세상 속에서도 직장 동료에게 희망을 주는 자가 되고, 또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제자로서의 동료들에게도 서로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채워주는 주님의 제자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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