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갈3:1-14)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갈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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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제 1차 선교여행 때 갈라디아 지역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죠.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그리고 더베 지역의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교회 내부의 갈등의 문제를 제1차 예루살렘공의회를 통해 매듭지을 무렵에, 갈라디아교회들로부터 좋지 못한 소식을 듣죠.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이외에 할례와 같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된다는 유대 율법주의 교사들이 침투해서 교회 성도들을 흔드는 것 말이죠. 더욱이 바울은 사도로 위임받은 적이 없다고 공격을 해 왔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두 가지 큰 흐름을 바로 잡고자 갈라디아서를 쓰게 되었다고 1장에서 주로 밝혔죠. 2장에서는 자신이 사도로 위임받은 것에 대해 써 내려갔습니다.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은 것은 사람에 의한 일이 아니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고 말이죠. 더욱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경건훈련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 사도와 15일간 교제했지만, 예루살렘교회의 다른 사도들이나 유력자들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그래서 고향 땅 다소에서 7년간 칩거하면서 지냈고, 그 무렵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수리아 안디옥교회의 담임목회자로 파송한 바나바가 자신을 초청해 함께 안디옥교회를 3년간 섬겼고, 성령님의 이끄심에 의해 1차 선교사로 나가 갈라디아 교회들을 세웠는데, 1차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 그 시점 곧 14년 만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다고 이야기를 했죠. 그때도 자신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언했고, 예루살렘교회의 유력자들 곧 지도자들이 헬라파 사람 디도를 데려갔는데 그에게 할례를 시행토록했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죠. 바울이 그토록 당당했던 것은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 주님께 위임받은 일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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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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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후반부에서는 자신과 같이 당당하지 못한 베드로와 바나바의 외식에 대해 일침을 놓죠. 사도행전 7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12제자요 12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사도행전 8장에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더불어 초대교회에 대대적인 핍박과 박해가 일어났을 때 그때 최초로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까지 넘어간 사람이 빌립 집사였죠. 여전히 12사도들은 우물 안 개구리였죠. 그런데 유대와 사마리아 땅에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놀라운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이 들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해 확인하죠. 그런데 정말로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까지도 놀라운 생명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목격하죠. 그 무렵 주님께서는 바울을 찾아오셨고, 그 무렵 베드로는 사마리아 아래쪽에 위치한 룻다 지역의 중풍병자 애니아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쳐주고, 욥바의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죽었을 때 그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려내게 되죠. 그리고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먹고 유숙했죠. 놀라운 것은 사도행전 11장에서 베드로가 그곳 욥바에서 가이샤라로 올라가 로마 장교 백부장 고넬료의 집안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와 같은 일들은 유대인이라면 율법으로 철저히 금한 일이었기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그 일을 주도하신 일이라 베드로는 막을 수가 없었죠.

그것은 베드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통파 유대인인 바나바 역시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의 파송에 의해 안디옥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되었지만,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의해 바울을 데리고 1차 선교여행을 누비면서 갈라디아 지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먹고 유숙하면서 교회를 세웠죠. 바울이 그런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2장 후반부에서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ㅎ죠. 베드로와 바나바가 이방지역에서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이 왔다고 해서 왜 허겁지겁 자리를 떠나냐는 것이었냐고 말이죠. 그때 내가 비난한 일이 있찌 않았느냐고 말이죠. 그런 모습이 과연 복음 안에서 자유를 얻는 모습이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런 모습은 주님의 복음을 외식하는 것이고, 복음의 이중적인 모습, 곧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이지 않더냐, 하는 것이죠. 그에 비해 바울은 결코 나는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외식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여, 너희들도 결코 흔들리지 말고, 외식하지 말고, 복음 앞에서 당당하라는 뜻이죠.

 

오늘 읽은 3장은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예를 들어주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의롭게 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1-5절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바울은 ‘어리석도다’하는 말을 1절과 3절에서 두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하는 헬라어 ‘아노에토이’(ἀνόητος)는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대해 책망’하는 게 아니라 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걸 질책하는 뜻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구원받은 것인 율법의 행위로 된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은 것인지, 너희들이 분별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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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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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절을 통해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은 시점이 언제냐 하는 것이죠. 그가 할례를 받은 시점이냐? 아니죠. 하나님의 부르신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그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할례를 시행한 것은 100세 아들 이삭을 낳은 후였죠. 그가 부름받은 것은 75세였죠. 그만큼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강조한 할례와 같은 행위 자체가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아브라함과 같은 유대인의 혈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든 그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13-14절을 통해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구약의 레위기 율법에 근거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일이요,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구원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15절의 새번역을 보면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사람의 관례를 예로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적법하게 유언을 작성해 놓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생명의 복음 이외에 다른 것들로 무효화하려고 하거나 다른 것들을 덧붙이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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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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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과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과 동일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모두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일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 구원받은 것도, 성령을 받는 것도 아니요,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백성답게 오늘도 우리를 보내신 삶의 자리를 믿음의 자리로 받드는 순종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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