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유머) 변기에 돈이 빠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1. 십 원짜리가 빠졌을 때? 수수방관
2. 오백원짜리가 빠졌을 때는? 자포자기
3. 천 원짜리가 빠졌을 때는? 우왕좌왕
4. 오천원짜리가 빠졌을 때는? 안절부절
5. 만 원짜리가 빠졌을 때는? 이판사판
6. 오만원짜리가 빠졌을 때는? 입수준비
7. 십만원짜리가 빠졌을 때는? 사생결단
8. 백만원짜리가 빠졌을 때는? 뽀싸삔다
9. 그렇다면 남편이 빠졌을 때는? 물을 내린다.
(발췌)전성수 교수의 〈말씀으로 키운 자녀가 세상을 이긴다〉는 내용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서울교대를 나와 10년간 초등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부천대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한 분입니다.
그분이 장로회신학대학원에 합격하고, 겨울 계절학기 때 히브리어 수업을 받을 때였습니다.
광주에서 학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중앙선을 넘어오는 차와 정면충돌한 사고였죠.
그때 내외가 입원한 병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원했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침대 건너편에 2년 넘게 장기 입원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며칠 지나 그 환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데, 기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분은 본래 유도 유단자였는데, 박정희 정권 시절 조폭 단속을 피해 미국으로 건넜습니다.
그러다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고, 공항 수출입물품을 관리하는 업무를 했죠.
어느날 업무차 공항에서 시내로 돌아오다가 자유로 근처의 나들목을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차에 부딪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때 목이 부러졌고, 온몸이 마비됐고, 갈비뼈가 부러져 허파와 내장이 파열됐습니다.
그로 인해 병안 영안실에 시체로 누워있게 되었죠.
왜냐하면 그분은 사망한 것으로 처리돼 비늘에 담긴 채 영안실에 방치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체를 씻는 봉사하는 권사님이 비늘지퍼를 열어 몸을 닦는데, 미세한 호흡이 있었죠.
그때 영안실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곧바로 중환자실로 그분은 옮겨갔습니다.
그 후에도 그 권사님은 매일같이 중환자실에 들어가 그 분을 뵀습니다.
짧은 면회시간 동안, 뇌사상태로 의식이 없는 그분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주기도문을 들려줬죠.
그때 의료진은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그분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죠.
그렇게 뇌사상태인 그 분은 몇 달째 그렇게 지냈고, 권사님은 계속 성경을 읽어줬습니다.
그러다 병원에서 한 번 수술을 시도해 보자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차례 목 수술을 비롯해 여러 수술을 했는데, 조금씩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의식이 돌아왔어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간신히 숨만 쉬는 상태였죠.
그런데 그때부터 놀라운 일이 펼쳐졌습니다.
한 번도 교회에 나간 적이 없는 그가, 의식이 돌아온 순간부터 하나님과 예수님이 믿어진다는 것이었죠.
더욱이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도 주기도문이었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워 본 적이 없는 그의 입에서 주기도문이 나온 것은 신기한 일이었죠.
(깨달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까?
뇌사상태에 있는 그분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분을 살린 것 아니겠습니까?
그 권사님이 읽어준 성경말씀과 주기도문을 통해, 그의 영혼과 육신을 치료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발췌2)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죽어버린 듯한 인간을 완전히 되살려 놓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 인간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가문까지도 완전히 뒤바꿔놓는 하나님의 말씀이죠.
김재헌 목사의 〈신앙 명문가의 자녀교육〉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총장을 지냈고 영적대각성기에 가장 영향을 끼친 조나단 에드워즈가 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가 가정 예배를 드리며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계를 연구하면서 그 후손을 추적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직계후손이 873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 대학총장을 지난 사람은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성직자 100명, 군인 75명이었죠.
또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하원의원 8명, 상원의원 2명, 미국 부통령 1명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260여 명은 평범한 신앙인으로 지낸 후손들이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어린 시절의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맥스 듀크라는 아이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주일학교를 다녔는데, 어느 날 듀크가 교회를 떠나 방탕한 삶을 살기 시작했죠.
더욱이 그는 신앙이 없는 여자와 결혼했고, 여러 자녀를 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계를 연구한 그는 맥스 듀크의 후손도 추적해서 연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듀크의 후손은 1,291명이나 됐습니다.
그 가운데 유아기때 사망한 아이들이 309명이 있었습니다.
직업이 거지인 자손은 310명, 불구자는 440명, 매춘부는 50명, 도둑은 60명, 살인자는 70명이었죠.
그리고 별 볼 일 없이 산 사람은 53명이나 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적용) 이와 같은 사실이 왜 중요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가정과 후손들에게도 영향력을 끼치는 살아있는 말씀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모른 채 뇌사상태에 죽어가는 그를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심령과 골수를 살려내셨죠.
더욱이 하나님을 체험한 에드워즈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후손이 복을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계셔서, 말씀으로 역사하신 분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죠.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자녀와 후손들도 그 살을 본받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알도록 해 주신다는 사실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비롯한 12 제자를 데리고 제자훈련을 시키셨죠.
그렇다고 따로 시간을 갖고 제자훈련을 가진 것은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 자체가 제자훈련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죠.
자식은 부모의 삶을 통해 닮아가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제자들과 살면서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다만 군중들이 없거나 따로 한적한 곳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천국복음을 직접 가르쳐주기도 하셨죠.
마치 부모가 밥상머리에서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귀중한 것을 일깨워주듯이 말이죠.
그런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부활 후 40일 후에, 천국으로 떠날 걸 염두에 두고 따로 시간을 가졌죠.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을 불러모아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고 성찬식을 가지면서 나눈 시간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때 제자들과 함께 살과 피를 나누며 제자로서의 결의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마치 세상을 떠나는 부모가 자식들을 앞에 최후 유언을 하는 시간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3장-17장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자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그들에게 강조한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내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갈 때가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너희들도 머잖아 나 있는 곳으로 올 처소를 예비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 살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하고 당부하셨죠.
물론 너희가 내 제자답게 살 때 마귀의 영에 속한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 하죠.
심지어 너희를 박해하며 죽이려 드는 자들도 있을 것이니,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너희들은 내 제자답게 어느 누구든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셨죠.
물론 주님의 제자답게 끝까지 사랑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의지만으로는, 제자들의 결단만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 안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제자들이 연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주님은 보혜사 성령을 아버지께 보내 달라고 간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너희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말이죠.
예수님은 육신 때문에 제약이 많지만 영이신 성령님은 언제라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와 같은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면, 어떤 유혹과 핍박도 이길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전개) 그와 같은 내용이 요한복음 13-16장에 나와 있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께서 세 가지 차원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내용이 나오죠.
먼저는 당신 스스로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린 내용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 세상이 저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오니, 그렇게 영화롭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죠.
마치 자식이 부모의 기쁨과 영광이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중보기도 드린 내용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 같이 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서 지켜주심 같이 제자들도 아버지께서 지켜주시길 원하옵니다.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기도한 내용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 될 이 땅의 모든 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라고 했습니다.
본문 20-21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깨달음)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비옵는 것, 곧 기도하신 것은 누구를 위함이라는 것입니까?
이 사람들 곧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든 제자들만을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제자들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게 될 사람들, 이 땅에 모든 이들 곧 우리 자신들을 위해 비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을 위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우리 안에 있게 해 달라는 것이죠.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중보기도입니다.
(원해) 그래서 지난 시간에 이 부분에서 가장 강조하는 게 있다고 했죠.
세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 말입니다.
‘안에’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우리 ‘안에’.
‘안에’라는 말이 헬라어로 ‘엔’(ἐν)이라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라는 말이 헬라어로 ‘엔 크리스토스’(ἐν Χριστός)라고 말이죠.
그게 영어로는 ‘예수님 안에’(in), ‘예수님과 함께’(with), ‘예수님에 의해서’(by)라는 뜻입니다.
(원성)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도 그 ‘엔’(ἐν)이란 단어가 기록돼 있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우리가 거해야만 예수님의 뜻을 좇아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권고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이미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권하고 있는 것이죠.
(원성2) 그것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밝히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하면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당신 자의로 행하신 적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모든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깨달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신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죠?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제자들과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하도록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이 주님 안에 거하는 걸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해 달라는 것이죠.
(적용)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무엇보다도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점이나 굿판을 벌이지 않고, 탐욕이라는 우상을 좇지 않고, 하나님만 경외하는 모습이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갖다 붙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행위를 하지 않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 곧 주일을 구별하여 주님께 경배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더욱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나보다 연약한 이들의 소유를 약탈하거나 갑질하는 행위를 금하며, 사는 것이죠.
그것이 십계명의 말씀이요,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아래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사는, 주님의 말씀을 좇는 삶이죠.
그런 삶을 좇아 살 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세상 사람들은 알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문)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주님 안에 사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시죠.
부모인 내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좇아 살 때, 내 자녀가 그런 영향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좇아 순종하며 살아가는데, 어찌 세상 사람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주음성)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세상이 너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도록 했으면 좋겠구나.”
“영안실에서 뇌사상태로 죽어가던 그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생케 하고 살리지 않았더냐?”
“네가 하나님 말씀을 좇아 살 때, 너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살리지 않겠느냐?”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씀대로 살 때, 그 가문을 통해 세상에 영향력을 펼치게 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굿과 점, 세상 우상을 좇기보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면 좋겠구나.”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 대나 갖다 붙여 망령되게 하지 말고 신실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일을 구별하여 너와 네 가정을 온전히 주님 앞에 드렸으면 좋겠구나.”
“부모님을 공경하고, 인격을 살인치 말고, 간음이나 음란한 행위를 좇지 말고, 도둑질도 거짓말 하지 말고, 살도록 해라.”
“그처럼 위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아래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며 살 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게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어떤 환경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하도록 해라.”
(찬양)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화) 앞서 말씀드린 김재헌 목사님이 미국의 뉴욕에 가서 자녀교육 세미나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황경애 사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하죠.
황경애 사모님은 20여 년 전에 남편 목사님과 함께 미국 이민교회를 개척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개척을 하다가 슬픈 일을 당한 분이었습니다.
그 일을 겪기까지만 해도 그 사모님이 섬기는 교회, 그 목사님이 섬긴 교회가 조금씩 부흥을 했습니다.
이제 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고자 건축헌금을 모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케 아프리카에서 목회한다는 흑인 목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자기 고향 아프리카의 광산에 투자하면 수백 배를 벌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황경애 사모님의 목사님은 아프리카 흑은 목사님의 말에 현혹돼 건축자금을 몽땅 투자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사기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때는 이미 사기를 당한 뒤였습니다.
그 일로 목사님은 집을 떠나 기도원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그 사모님이 홀로 세 아이를 키워야 할 운명에 놓였습니다.
외로운 미국 땅에서 이민자 부인이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어느 날은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더 울어야 합니까?”
“제가 너무너무 힘들어요.”
“제가 남편을 잘못 만난 것입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남편 아닙니까?”
“제가 버틸 힘이 없어요. 그래도 저를 믿어주시고, 세 아이들을 맡겨주신 것 아닙니까?”
“제가 힘들어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세요.”
그렇게 울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큰아이는 미국 10대 로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곧 외무관이 될 것이라고 하죠.
그리고 막내딸은 하버드 대학교 4년 전액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 중일이라고 합니다.
빌게이츠 재단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10년 동안 받기로 했다고 하죠.
그 돈은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준 것이라고 합니다.
(깨달음) 어떻게 그런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가정을 친히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남편이 코너에 몰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집을 나갈지라도, 어머니가 믿음으로 굳게 서 있는 한, 그 가정을 회복시켜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 아이들의 어머니가 그렇게 고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낯선 미국 땅에서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끈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요, 기도뿐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고 세 아이를 키우는 것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았지만, 가정과 세 아이들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며 살았어요.”
(적용) 어떻습니까? 그 분의 삶과 기도가 우리의 삶과 기도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과 자녀들을 위한 버팀목이 되고자 말씀을 좇아사는 것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방법으로 선한 길을 열어주시고, 세상에 영향력있는 삶을 펼치게 해 주셨습니다.
(내적음성)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죠.
“그래요, 주님, 저는 연약한 자예요.”
“내 힘, 내 능력, 내 건강도 유한하기 짝이 없는 연약한 자예요.”
“그러니 주님, 이 세상의 힘과 능력과 재물보다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살게 해주세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제 자녀들 앞에 보여주며 살게 해주세요.”
“황경애 사모님처럼, 그런 위기가 가정에 찾아올 때,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키며 주님께 더욱 기도하며 살게 해 주세요.”
“제게 맡겨준 자녀들을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하지 않게 해 주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 붙잡고 기도하며 살게 해 주세요.”
“주님 말씀하신 곳, 주님의 뜻하신 곳에, 저와 제 가정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아버지와 어머니이겠습니까?
가정이 깨지기 쉬운 이 때, 말씀 앞에 깨어 기도하며 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겠습니까?
설령 아버지가 실수해서 고개를 못들고 다닐지라도, 어머니가 믿음의 버팀목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그 가정과 자녀들을 친히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말씀을 좇아 살 때,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에게도 복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황경애 사모님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버팀목이 되고자 기도하며 살 때 세상에 영향력 있는 자녀들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인 줄 알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로운 역사를 주님께서 친히 베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