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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라 하는 시몬(마4:18-22)_20220522주일낮설교

by 똑똑이채널 2022.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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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라 하는 시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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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 우리가 아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린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이 특출해서 그런 건 결코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형편없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격려하셔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던 우상 장수였죠.

그런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려다가 그만 하란 땅에 눌러 앉아 6년을 넘게 살았죠.

그러다 205세에 죽었고, 그때 75세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찾아와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셨죠.

 

그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와서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처음에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먹을 게 없어서 결국은 애굽에까지 내려갔고,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여동생이라 속였죠.

 

그처럼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린 채 세상에 넘어진 일이 많았죠.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그에게 찾아와 말씀으로 격려하시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죠.

86세때에는 자식이 없자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 못해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죠.

그때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내팽개치거나 모욕을 주지 않고 그의 연약함을 품어주셨죠.

99세가 되었을 때는 천사를 보내 “내년 이 맘 때에 네가 자식을 낳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사라도 속으로 웃으면서 믿지 못했죠.

그런데 정말로 100세가 됐을 때, 처음 부름을 받던 75세로부터 25년이 흐른 그때 약속의 아들을 얻게 되었죠.

 

(깨달음)그만큼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특출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비록 세상에 넘어지고 쓰러질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부르시고 격려하셔서 믿음의 사람을 세워주신 것이었습니다.다.

 

(적용)이것은 우리 자신의 믿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처음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 내 믿음의 특출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아닙니다.

때로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진 우리 자신이지만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격려하시고 이끌어주셔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죠.

 

마치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지면 그 부모가 일으켜 세워주듯이 말입니다.

자전가를 타던 아이가 곧잘 쓰러지지만 그때마다 그 부모가 다가와 다시금 타보도록 격려해주듯 말이죠.

 

그만큼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믿음이 특출하기보다 주님의 부르심의 은혜, 주님의 격려하심의 은혜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우리가 아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실 때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데리고 다니셨죠.

더욱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언가 물을 때에도 베드로가 맨 먼저 나서서 대답하곤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주님의 애제자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특별한 믿음 때문이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주님의 특별한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이 특출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베드로는 어부 출신으로서 성격이 다혈질이고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할 때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는 믿음의 대답을 한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다고 말씀할 때에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하고 불같이 대들었던 베드로였죠.

 

그만큼 베드로는 앞뒤 제지 않고 자기 생각만 표출하는 다혈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킴벨 몰간 목사님은 그렇게 말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특출해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된 게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기 때문에 가까이 품어주셨다고 말이죠.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더 연약한 자식을 부모가 더 챙겨줘야 하듯이 말이죠.

 

오늘 본문의 말씀과 그 상황을 보면 왜 그런지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본문 말씀만 놓고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를 때 즉시 주님의 제자로 따라나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다음날 세례 요한이 외쳤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그러자 세례 요한을 스승으로 따르던 갈릴리 어부 출신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께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밀착하면서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요 세례 요한보다 훨씬 능한 스승임을 알게 되었죠.

 

그때 안드레는 그 형제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자신이 구주를 만났다면서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찾아온 걸 아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1:42)

 

그때 처음으로 시몬의 이름이 게바 곧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시몬’이란 히브리어로 ‘시므온’(שִׁמְעוֹן)으로 ‘듣다’(to hear) ‘귀를 기울이다’(listen to)는 의미입니다.

‘게바’는 아람어요 ‘베드로는 ‘페트로스’(Πέτρος)로서 그 뜻이 ‘반석’(a rock or a stone)입니다.

 

왜 주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지어주셨겠습니까?

귀가 얇아 이러저리 흔들리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반석과 같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라는 뜻이었죠.

 

그런데 그때 주님을 만났어도 베드로나 그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을 계속 따라다닌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태복음 4장은 요한복음 1장의 사건 이후에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뒤에 베드로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라 불러주셨는데, 그때 즉시 예수님을 따라나선 게 아니었죠.

 

그래서 베드로나 그 형제 안드레는 다시금 갈릴리 호수로 와서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도 마찬가지였죠.

그날 도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 그물을 씻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다가와 말씀하셨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이미 만난 적이 있던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봤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주님 말씀에 의지해 한 번 던져보겠습니다.”하고 대답했죠.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 깊은 데 그물을 던졌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죠.

그래서 두 배에 고기를 가득 실은 다음에 베드로가 주님께 고백을 하죠.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과연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주님, 시몬인 저를 보시고 베드로란 이름도 지어주셨는데, 제가 주님을 확신하지 못해서 이렇게 고기를 잡고 있는 죄인입니다.”

“주님, 이런 죄인인 제가 어떻게 주님의 제자로 따라나설 수 있겠습니까?”하는 의미죠.

 

그러자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따르라. 그리고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후로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그때 비로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랐다고 오늘 본문에서 증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누가복음 5장에도 똑같이 나오는데 본문은 핵심만 기록하고 있다면 누가복음 5장에서는 보다 세세하게 기록해 준 말씀입니다.

 

(전개)그러니 그때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갈릴리 북쪽 벳새다가 고향인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 그리고 갈릴리 가버나움 출신의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은 그 전부터 어부로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죠.

그 무렵 나사렛 출신 예수님께서 60km가 넘는 가버나움, 목포에서 화순까지의 거리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신 것이죠.

그 모습을 안드레와 요한이 바라보다가 세례 요한의 말에 예수님께 따라 붙었고 졸지에 베드로까지 예수님께 소개한 것이었죠.

그때 예수님은 시몬을 보고 앞으로는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베드로’로 불러주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나 그 형제 안드레, 야보고나 그 형제 요한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 같았지만 다시금 고기잡이 어부로 돌아오고 말았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죠.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

 

(깨달음)그렇다면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신 게 한 번 뿐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전에도 베드로를 만나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불러주신 주님이셨죠.

그래도 안 되자 고기 잡는 현장에까지 친히 찾아오셔서 다시금 불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1대 1의 개인적인 체험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 앞에 다시금 따라나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믿음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도 베드로는 아브라함처럼 넘어졌고, 예수님의 길목을 가로막기도 했고, 주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때마다 아브라함처럼 찾아와 말씀으로 부르시고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신 것이죠.

 

(적용)이것은 우리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한 번에 불러서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 게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을 만나기 전부터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 우리를 수차례 불러내신 분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향해 더 큰 확성기로 불러내셔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죠.

 

(원성)그렇기에 성격도 급하고 믿음도 형편없던 시몬이 어떻게 반석과 같은 베드로가 될 수 있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불러내시고 격려하셔서 반석과 같은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62편 1-2절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62:1-2)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24-27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연약하기 짝지 없는 시몬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설 때 흔들리지 않는 베드로 곧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이 한 장은 너무나도 쉽게 찢어지지만 반석에 붙여놓으면 결코 찢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예수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 곧 반석으로 고쳐불러주신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저와 여러분들이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로록 하나님의 말씀에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으로 우리에게 친히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주님께서 너를 부르실 때 너도 아브라함과 베드로처럼 형편없는 믿음의 소유자였지 않느냐?”

하란 땅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믿음의 조상이 된 것도 그의 믿음이 특출해서 된 게 아니지 않느냐?”

아브라함도 25년간 세상의 유혹과 흔들림 속에 하나님을 불신한 채 넘어지고 방황하지 않았더냐?”

시몬도 주님을 만나 베드로로 이름을 불러주셨지만 곧장 주님을 따라나선 게 아니지 않더냐?”

주님께서 물고기 잡는 현장에서 죄인임을 깨닫는 11의 체험 이후에 베드로가 따라나서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믿음이 없다고 주저할 필요도 없고, 네 믿음이 크다고 너무 교만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너의 믿음도 반석과 같은 말씀에 뿌리를 내릴 때에야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네가 세상의 유혹과 근심에 넘어질 때마다 주님은 너에게 찾아와 말씀으로 격려하고 세워주시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해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수없이 찾아와 말씀으로 격려하고 세워주셨으니 말이다.”

시몬이었던 베드로가 참된 믿음의 반석과 같은 베드로가 된 것도 주님께서 끊임없이 말씀으로 격려하고 세워주신 까닭이지 않더냐?”

오늘도 주님은 너의 믿음의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너를 찾아와 격려하고 이끌어주지 않겠느냐?”

 

(찬양)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나의 곁에 항상 계셔 나의 맘과 모든 생각 지키시고 인도하네

나의 슬픔 위로하고 나의 멍에 함께 매어 주시는 사랑의 주 예수님은 영원하신 나의 목자

그의 품에 안기어서 영원토록 나 살으리

 

나를 축복하시는 주님 주의 성령 부으시사 나의 말과 모든 행실 주를 위해 이끄시네

세상이길 힘주시고 천성 향해 날 인도해주시는 능력의 주 예수님은 영원하신 나의 소망

그의 나라 가기까지 주를 위해 나 살으리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주의 말씀 내게 주사 나의 발과 모든 길을 비추시고 인도하네

푸른 초장 물가으로 나를 항상 인도하여 주시는 사랑의 주 예수님은 영원하신 나의 목자

그의 사랑 영원토록 감사하며 날 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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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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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이동원 목사님은 대학 입시에 낙방해서 선교사가 있는 교회에서 영어를 배워볼 요량으로 처음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에 나갈 때는 2년간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기도가 너무나 유치하고 기복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닌 지 2년 반 만에 정말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물질하고 있던 베드로에게 찾아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신 것처럼, 이동원 목사님도 1대 1로 주님을 만나 죄인임을 깨닫고 구주로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기도하는 마음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 무렵 친구가 선물 하나가 있었는데 고급 우산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만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어떻게 하지. 그 우산은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인데” 하면서 “기도해 볼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자마자 생각나는 하나 있었는데 다방 구석이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그 다방으로 달려갔는데 신기하게도 그 고급 우산이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이 볼 때는 아주 하찮은 것 같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흥분되는 일이었던 것이죠.

 

그때부터 그의 기도가 터졌고, 그때부터 그의 기도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담대하게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도 수많은 기도 응답을 받았는데 실로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깨달음)왜 그렇게 주님께서는 그분에게 수많은 기도 응답의 역사를 베풀어주신 것이겠습니까?

어쩌면 의심많고 세상에 넘어지기 쉬운 베드로와 같은 성격 때문에 주님께서는 기도 응답을 통해 이동원 목사님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도 결코 다르지 않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기도 응답을 베풀어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특출해서가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예화2) 미국에 ‘조니’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생님의 전도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일은 물론이고 학교를 오가는 길목에 늘 교회 예배당에 들러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물론 그가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에 아주 짧았습니다.

예배당 제일 뒷좌석에 앉아 이렇게 한 마디씩 기도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저에요 조니”

그렇게 짧은 기도를 드리고 예배당을 나오곤 했습니다.

그 후에도 힘든 일이 있거나 아플 때도 잠시나마 그렇게 주님께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교통사고로 그만 천국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그날 그는 병원에 입원해서 생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모가 물었죠.

“조니야, 무슨 일이 있니?”하고 말이죠.

그때 조니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그 부모가 조니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조니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조니, 나야 네 하나님”

 

그리고는 잠시 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는 것입니다.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조니는 비록 주님께 짧은 기도를 드렸지만 주님은 늘 그의 기도를 기억하고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주님은 그의 믿음을 한 걸음 한 걸음 굳게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때가 되었을 때, 그가 불안할지도 모를 심령을 달래주시려 그에게 친히 나타나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조니, 나야 네 하나님”

 

(적용) 우리도 때로 조니처럼 바쁘거나 힘들 때 아주 짧은 기도를 주님께 드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 주님은 그런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고, 그런 기도를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씩 세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그렇게 약해 있을 때에도 내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오히려 내 연약한 기도에 친히 응답해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의 유혹과 시험 앞에 넘어진 아브라함이나 베드로도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굳게 세워주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를 우습게 여긴 이동원 목사님을 향해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해서라도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이끄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조니의 그 연약하고 짧은 기도라 할지라도 친히 응답하셔서 그의 가냘픈 믿음을 더욱더 굳게 세워주신 분이십니다.

 

(내음성)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기도가 뭔지 몰라도 조니처럼 짧은 기도를 드릴지라도 주님은 저의 기도를 받아주실 줄 믿어요.”

구원의 확신이 없던 이동원 목사님도 주님께서 찾아와 11로 만나주셔서 기도 응답을 통해 그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셨잖아요.”

아브라함도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수 없이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주님께서 그때마다 아브라함의 믿을 굳게 세워주셨잖아요.”

귀가 얇아 흔들리기 쉬운 시몬에게 주님께서 베드로란 이름도 지어주시고 세상에 흔들린 베드로를 말씀으로 붙잡아 주셔서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셨잖아요.”

주님, 저도 세상의 유혹과 시험 앞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예요.”

그때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으로 이끌어주시고, 기도의 응답을 통해 제 믿음을 더욱더 굳게 세워주시길 원해요.”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언제나 은혜로 지켜주셔서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찬양)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주 오 신실하신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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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BR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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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본래부터 믿음이 특출했거나 그의 결단력이 뛰어나서 주님의 수제자가 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다혈질적이고 성급한 사람도 없었고 그보다 더 귀가 얇은 연약한 자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3년간 주님을 따라다녔어도 주님께서 체포당할 때 줄행랑치고 주님을 부인한 자였지 않습니까?

 

그런 그가 반석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끊임없이 말씀으로 불러주시고 격려해주신 까닭 아니겠습니까?

연약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도 주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말씀으로 격려하시고 세워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기도에 주님이 수없이 응답해주신 것도, 어린 조니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도, 그들의 믿음이나 그들의 기도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반석과 같은 믿음으로 세워주시고자 함이었죠.

 

주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자 하신 줄 믿습니다

연약한 내가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질 때, 주님은 그때마다 내게 다가와 말씀과 기도 응답으로 우리의 믿음을 반석과 같이 세워주실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을 누리를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8)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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