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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질문대답BibleQ&A/디모데후서

데마와 누가, 북미로 향한 청교도와 남미로 향한 청교도

by 권또또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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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24절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함께 한 동료들 명단이 나온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그런데 골로새서 414절에서는 바울과 함께 마지막까지 동역한 두 사람을 소개한다.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초대교회 문서에는 이런 글귀가 담긴 편지가 나돌았다고 한다.

“로마의 거리를 걷고 있던 바울의 오른편에는 누가가 있었고, 왼편에는 데마가 함께 걷고 있었다.”

누가는 의사로서 바울의 주치의로 함께 동역한 것이다.

그만큼 누가는 바울의 오른편에 선 자였다.

그런데 왼편에는 데마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바울이 데마를 아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데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디모데후서 410절은 이렇게 전한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이것은 데마가 바울 곁을 떠났다는 뜻이다.

사람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데마가 바울을 떠난 시기와 동기가 중요하다.

 

디모데후서는 바울 사도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다.

이제 곧 로마의 메마르틴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할 그 직전에 쓴 편지다.

그것을 직감하기라도 하듯이 디모데후서 4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생까지 주님의 제단에 전제처럼 부어지길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시점에 데마는 바울을 떠난 것일까?

그런 사람을 칭해 보통 기회주의자 혹은 배신자라고 여긴다.

마치 단체가 신곡에서 가롯 유다와 부루투스를 꼽듯이 말이다.

그들 두 사람은 배신자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왜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 떠나버렸을까?

바울은 디모데후서 410절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 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사랑했다는 의미가 뭘까?

데마가 사랑한 세상이란 로마서 122절에 나온 이 세대와 같은 말이다.

그것은 요한일서 215절에 나와 있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들과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 곁을 떠났다는 의미가 과연 그런 세상을 말하는 걸까?

1세기 문서들을 읽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마가 바울 곁을 떠나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 그곳에 가서도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의 1세기 가장 유명한 도시가 데살로니가였다.

바울이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인 전도 결과를 얻은 곳이다.

그만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1:8)

 

바로 이런 관점 때문에 데마가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간 것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보다 쉬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떠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간 것은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 불신앙을 위해 떠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는 로마의 희생적인 신앙에서 보다 편한 신앙생활을 찾아 떠났다고 보는 게 낫다.

로마의 박해속에서 고통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좀더 편하고 유익함을 얻고자 데살로니가로 떠난 것 말이다.

이것은 주님을 위해 자신을 바치던 이타적인 신앙심에서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신앙인으로 이동한 것이다.

일꾼의 자리에서 구경꾼의 차리를 찾아 떠난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의 남미와 북미로 떠난 것과 같은 격이다.

그 당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다들 북미로 향했다.

그런데 그 당시 청교도들 중에 매스터라는 배를 타고 남미로 떠난 청교도들이 있었다.

둘 다 거의 같은 시기에 떠났다.

그들은 모두 교회에 출석하던 사람들이었고, 신앙인들이었다.

 

그러나 남미로 떠나가는 배와 북미로 가는 배는 그 동기에서 차이가 있었다.

남미로 간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동기가 있긴 했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동기는 신대륙에 가서 돈을 좀 벌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사람들은 보다 강한 신앙적인 동기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껏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묵상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북미로 간 사람들은 신앙의 르네상스를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에서 새로운 강국을 건설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남미로 간 사람들은 신앙도 지키지 못했고 돈도 벌지 못했고 끝나 버렸다.

 

 

야긴과 보아스

북팟

www.bookpod.co.kr

 

크리스천에게 동기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우리에게 있는 신앙의 동기가 무엇인가?

봉사의 동기가 무엇인가?

크리스천이 섬김과 봉사를 뒤로한 채 육신의 안일을 좇아 나가면 데마처럼 데살로가의 신앙인처럼 숨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바울처럼 주님과 사람들을 끝까지 섬기고자 하면 힘들고 고달파도 로마를 지켰어야 했다.

그 사람이 바로 누가와 같은 사람이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4:11b)

 

주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숨어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바울처럼, 그리고 그 곁의 누가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각자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주님의 나라를 받드는 것이다.

그것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북미로 향했던 청교들과 같은 모습이다.

그것이 훗날 하늘나라에서 가장 귀한 열매와 상급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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