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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그가 쓴 복음의 편지들

by 똑똑이채널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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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A.D.34년 곧 그의 나이 34살에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다.

그 전에 그는 유대 지도자가 되고자,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압제하는 역량을 발휘코자 결혼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뒤 아라비아 광야에 떠날 무렵 아내와 사별했든지 이혼을 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9:5)

 

그 후 바울은 아바리아 광야에서 3년간 경건훈련을 마치고 다메섹으로 왔지만 여의치 않아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곳에서 게바와 야고보를 만났지만 다른 사도들과 교우들이 그의 그리스도인됨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나서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바나바 나서서 바울을 고향 다소로 보냈다.

바울은 고향 땅 다소에서 7년간 칩거하며 묵상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37살 때로부터 7년이라면 44살까지였고, 그때가 A.D.44년이었다.
그 무렵 바나바가 다소에 와서 안디옥교회의 공동담임목회자로 초정을 했다.

바울은 그때부터 바나바와 함께 3년간 수리아 안디옥교회를 섬겼다.

 


A.D.47년 곧 바울의 나이 47살에 성령님의 강권하심 속에서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여행을 떠난다.
처음 선교팀장은 바나바였고 그의 고향 구브로로 떠났다.

그때 바나바의 조카 요한 마가를 수행원으로 동행케 했다.
그런데 바울은 버가에서 풍토병으로 힘들어 했다.

뿐만 아니라 요한 마가는 타우로스 산맥을 앞두고 도적떼와 두려움으로 그만 이탈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1차 선교여행의 팀장은 바울이 맡았다.
그때 바울 일행은 갈라디아 남부 지역 곧 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로 향해 나갔다.

안디옥교회를 출발점으로 치자면 오후 3시-6시-9시-12시가 되는 방향이다.

이후 다시금 그 길목을 되돌아왔는데, 그 여행길에 3년에 걸친 제1차 선교여행으로 2240km의 길이고, 그를 통해 갈라디아교회가 태동됐다.
그때가 그의 나이 50세 곧 A.D.50년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할례문제로 안디옥교회가 시끄러워졌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안디옥교회에까지 와서 영적으로 소란케 하고 혼미케 한 것이다.

그 일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로 나아가 해결코자 했고, 그때 제1차 예루살렘공의회가 열렸다.

그 당시 의장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전혀 주님으로 모시지 않던 그가 주님 부활 후에 완전히 변화된 것이었다.

그때 야고보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매듭지었다.

그만큼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막지 말라는 뜻이었다.

물론 유대인들을 위해 배려하는 지침도 마련했다.

우상과 음행과 짐승의 피에 관한 부분은 금하도록 한 지침이 그것이었다.

그만큼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한 것이었다.

그와 같은 내용을 토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써서, 제 1차 선교여행지인 갈라디아 남부교회에 보냈다.

그때가 A.D.50년 무렵이다.

 


이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그런데 1차 선교여행의 이탈자인 요한 마가를 데려가는 일로 바나바와 다툰다.
물론 '다투다'는 헬라어 ‘파록쉬스모스’(παροξυσμός)는 ‘선동’(an inciting)이란 뜻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단어는 ‘자극(incitement)을 주다'는 뜻도 있어서, '격려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부분(히20:24)도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다툼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었고, 그로 인해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브로로 떠났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온 실라와 함께 육로로 1차선교여행지인 수리아 위쪽 갈라디아 남부지역을 향했다.

그중 루스드라에서 17살의 청년 디모데를 만나 할례를 행하여 전도팀에 합류케 했다.
또 드로아 인근에서는 의사 출신의 누가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선교팀에 합류토록 했다.
바울은 그 당시 2차 전도여행의 목적지를 소아시아의 중심지인 에베소로 삼았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꿈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일로 바울은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유럽대륙의 첫 관문인 네압볼리 항에 도착했다.

이후 내륙을 따라 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아테네-고린도로 나아가 복음을 전했다.

빌립보에서는 상위1%만 이용하는 자주색옷감 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해 그녀의 집에서 빌립보교회가 태동됐다.

물론 그곳 빌립보교회에 의사 출신인 누가를 놔두고 그 교회 성도들을 돌보도록 했다.

이후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 베뢰아로 옮겨왔다.

그런데 베뢰아에서 쫓겨난 바울은 홀로 아테네에 와서 학자층과 논쟁을 벌였다.

많은 이들은 아테네에서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고 하지만 실은 그 속에서도 복음의 씨앗은 뿌렸다.

이후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미 로마에서 쫓겨난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천막을 만들면서 복음을 전했다. 
바로 그곳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써서 보냈는데, 그때가 A.D.51년경이었다.
그때 바울은 나실인의 서원기간이 끝나 고린도의 외항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배를 타고 바울은 소아시아의 에베소로 왔다.
그곳 에베소에 브리스길라 부부를 남겨 놓은 바울은 안디옥교회로 돌아왔다.

그때가 3년에 걸친 5,000km의 여행길이고, A.D.53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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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울은 곧바로 3차 전도여행을 나선다.
2차 전도여행지였던 수리아의 위쪽 더베-루스드라-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에 이어 소아시아의 중심지 ‘에베소’로 갔다.

그곳 에베소에서는 이미 터전을 잡고 있는 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에서 천막을 만들며 복음을 전했다.
3개월은 유대인 회당에서, 2년 넘는 기간은 두란노 서원 곧 ‘티란노스의 스콜레’에서 오수시간에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 천막 만들때 땀닦던 천조각과 앞치마격의 보자기로 귀신들린 자의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병에서 놓임받는 주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자 제사장 스와게의 7아들도 흉내를 냈지만 도리어 귀신들린 자에게 모두 제압당하고 쫓겨난 일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에베소의 마술사들도 은전 5만이나 되는 책값을 모두 불태우며 주님께 돌아온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을 목격한 데메드리오 은장색이 동종업자들과 함께 에베소 시민들을 선동해 연극장으로 몰려가 2시간 넘게 아데미 신을 열광한 일이 있었다.

다행이 서기장이 군사들을 동원해 그들의 집회를 해산시켰다.

물론 그 와중인 A.D.56년 무렵에 그곳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의 여러 문제를 듣게 된다.

이른바 고린도교회 내의 음행의 문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하는 파벌의 문제, 은사 문제, 그리고 비너스 신전 앞에 드려진 음식을 시장에 내다파는데 그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는냐 하는 제사 음식 문제 등이 그것이었다.

그때 바울은 그곳 에베소에서 네 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우리에게는 두 개의 편지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바울은 첫 번째 편지를 통해 고린도교회를 직접 방문할 계획을 알린다(고후1:15-17).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편지는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다.

그 뒤 바울은 젊지만 온순한 디모데를 파송해서(고전4:17)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면서 한통의 편지를 곧바로 써서 보내는데, 그 편지가 오늘날의 고린도전서가 된 것이다.

물론 그 편지도, 그리고 디모데도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을 알게 된 바울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정리하고자 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전격적으로 방문 하는데(고후2:1-2), 문제는 바울이 눈물로 호소를 하고 권면을 해도 성도들은 외면해 버린다.

그러자 바울은 괴로운 심정으로 에베소에 돌아왔는데, 그래도 다시금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 번째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디도 편으로 발송(고후2:3-5)하는데, 그것 역시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나이가 많고 강단있는 성격의 소유자인 디도가 고린도교회에 가서 그 문제를 잘 매듭을 짓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네 번째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고린도후서가 된 것이다.

물론 바울은 그 편지를 보낸 후에 정말로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잘 매듭되었는지 그  여부를 확인코자 했다.

바로 그 무렵에 바울은 3년이 넘는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 드로아 항구에서 배타고 마게도냐의 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를 거쳐 고린도까지 갔다.

그곳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만나 기쁨으로 격려했고, 3개월간 섬기면서 로마서를 썼다.

당시 로마교회는 베드로나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라 사도행전2장의 오순절날에 로마에서 온 이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로마에 돌아가 로마교회를 세운 자생적인 교회였다.

다만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 중심축이 되어 로마교회를 세웠고 이방인들은 소수였다.

그로 인해 유대 율법주의 문제나 할례와 같은 의식의 문제가 기승을 불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A.D.50년 경에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그 일로 로마교회 내 로마시민권이 없는 유대인들이 대거 로마를 떠나야 했고, 그 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수가 균형을 찾게 되었다.

바로 그런 로마교회의 형편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믿음과 실천편에 해당하는 로마서를 써 보낸 것이다.

바울은 그 편지를 겐그레아 출신의 젊은 여집사 뵈뵈 편으로 보냈는데 그때가 A.D.56년경의 일이었다.


바울이 이제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인근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한 사실을 알고서,  빌립보로 이동해 배를 타고 아시아의 ‘밀레도’ 섬까지 왔다.

바울은 그곳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격려한 뒤에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고스-바다라-베니게를 향했다.
그때 큰 상선을 타고 구브로 섬을 지나갔는데, 13년 전 첫 선교지의 감회를 그때 누렸을 것이다.

이후 바울이 탄 배가 두로에 정박하자 주님의 제자들을 격려하고 가이사랴로 이동해 전도자 빌립의 집에 묵었다.
그런데 ‘아가보’라는 대예언자가 바울에게 다가와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막았다.
하지만 바울은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자신이 가야 할 사명의 길이라면서 끝내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것이 총 4년에 걸친 3차 전도여행으로 5,500km의 전도여행길이다.

그의 나이 57세때의 일로 A.D.57년의 모습이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때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에 의해 붙잡히게 된다.
그로 인해 가이사랴에 이동해 2년간 구금된다.
그 후에 신임총독 베스도가 부임하자 바울은 로마 황제 카이사르 곧 제5대 황제인 네로의 법정에 상소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로 이송되는데 그 배에는 276명이 타고 있었고 백부장 율리오가 총책임자였다.

평상시 같으면 한 달이면 도착할 그 뱃길이 유라굴라 광풍으로 인해 14일 동안 떠밀렸다.
더욱이 뜻하지 않는 멜리데섬에 도착해 3개월을 보내야 했고, 로마의 외항인 보디올에서도 7일을 지냈다.
그렇기에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로마의 뱃길로 이동한 기간은 총 4개월 11일이 걸린 셈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바울이 로마에 당도했는데, 그 때가 그의 나이 60살 곧 A.D.60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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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그곳 로마에서 2년간 가택연금 상태에 처했는데, 자기 셋집에 살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때 바울은 옥중서신으로 알려진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써 보냈다.

그대 에베소는 몇 가지 목적을 갖고 쓰긴 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universal church)가 돼야 함을 일깨우고자 썼죠.

에베소서는 에베소교회를 넘어 소아시아의 7교회 모두가 함께 회람하면서 읽기를 원했죠.

그러니 그 소아시아의 7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주님 안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하나가 되라고 했던 것이죠.

그렇게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며 교회를 세우는 것 뿐이죠.

바로 그 사랑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죠.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하나님의 경륜을 알려주고자 쓴 것이죠.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것은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1:5, 1:11) 가운데 있는 은혜라고 말이죠.

그러니 누구든지 자기 구원을 자랑치 말고 그 분의 은혜안에서 서로가 성전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라고(2:22) 말하죠.

그래서 썩어져가는 옛 구습을 따르지 말고 의와 진리의 새 사람을 입으라고(4:24) 말이죠.

그것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영적인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들과 영적인 싸움을 통해 가능하다고 권면하죠.

바로 그런 점들을 일깨우고자 이 편지를 쓴 것이죠.

그를 위해 바울은 쇠사슬에 갇힌 사신이 된 심정으로(6:20) 이 편지를 너희들에게 쓰고 있고, 두기고(Tychicus) 편으로(6:21) 이 편지를 보낸다고 알려주고 있죠.



그 뒤 바울은 무죄가 판명나자 A.D.62년에 자유의 몸이 됐다.
그때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크레타섬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담임목회자로 그를 세운다.

그리고 아들 뻘 되는 디모데를 데리고 에베소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세운다.

그리고 자신은 골로새서를 써 보낼 때 약속한 것처럼 에베소에서 150km 떨어진 골로새교회로 가서 성도들의 안부를 묻고 격려한다.

이후 바울은 이전에 세웠던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 곧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그리고 아가야 지역의 고린도교회까지 가서 성도들을 위로하고 복음으로 격려한다.

그 다음에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웠던 그 2차 전도여행 때 세우지 못한 고린도 위쪽 지역 곧 니고볼리(Nicopolis)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그것이 디도서 3 12절에 기록돼 있다.

물론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그 이전에 쓴 편지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드로아 항구나 밀레도나 고린도에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찌됐던 바울은 드로아와 밀레도와 고린도를 거치면서 니고볼리를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고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 무렵 문제가 터졌다.

바울이 니고볼리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무렵인 A.D.64 7월 로마에 대화제가 발생했다.

당시 로마의 제 5대 황제인 네로는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 채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이고 처형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역사를 썼던 타키투스는 그 당시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모욕하며 죽였는데,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개들에게 물려 죽게 했고, 십자가에 매달아 해가 지고 나면 어둠을 밝히는 산 횃불로 썼다고 기술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불꽃 가운데 고문 받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신음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고 어떤 말대꾸도 하지 않고 죽음에 처했다고 기록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짐승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불을 밝히는 횃불로 사용될 때 바울은 어떠했을까?

바울도 그 무렵에 집시법 위반의 정치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그래서 로마의 네로 황제가 자살하던 A.D.68년 전인 A.D.67년 봄에 참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그 감옥은 1차 감옥처럼 가택연금에 처해진 게 아니었다.

반은 지하에 묻힌 상태요 반은 지상에 노출된 메마르틴 감옥으로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만 볼 수 있는 감옥이었다.

그만큼 살아날 수 있는 소망이 희박한 곳이었죠.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죽기 직전에 쓴 편지가 디모데후서다.

바울은 64살의 나이 곧 A.D.64년에 참수형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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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가?
34살에 주님을 만난 이후 참수형을 당하기까지 무려 30년간 복음을 전한 바울이다.
물론 복음만 전한 게 아니라 그 중간 중간 편지를 썼다.
총 13편의 편지를 썼는데 히브리서까지 합한다면 14편의 편지다.
우리가 갖고 있는 27권의 신약성경 중에 13권이 되는 것이다.

 

2022년 4월 6일 현재까지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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