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욥은 경건하고 구별된 신앙의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욥기서 1장 5절은 그렇게 증언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자녀들이 마음으로라도 죄를 지을까를 살피는 아버지의 모습 곧 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토록 욥은 가정과 일상사를 돌아보며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일관되게 엮어나가는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욥기서 29장과 31장에서 고백하듯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들을 배려하고 품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았던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욥의 삶과 가정사와 일상사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그 욥처럼 살고 있는지도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욥이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 빠지지 않았습니까? 비록 처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그의 시선도 하나님께 고정시켰는데, 점차 그의 세 친구들이 인과응보 식으로, 권선징악으로, 계속 비난하고 정죄하자, 욥도 의롭게 살아왔음을 계속 변론했습니다.
그렇게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는 욥, 그렇게 욥의 불의함을 꼬집고 정죄하려는 그 세 명의 친구들 간에 대화가 끝이 나고, 엘리후가 등장하여 중재하지 않았습니까? 이른바 고통은 꼭 죄악 때문에 당하는 게 아니라 교훈적인 목적에서도 얼마든지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고, 더 나아가 욥이 아무리 의롭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움 앞에는 인간의 의로움이 티끌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런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주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엘리후의 변론 이후에 곧장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큰 폭풍 가운데 임하셔서, 이 세상의 어떤 바람도 소리도 모두 잠재우시는 방법으로, 그 큰 폭풍 가운데서, 그 어느 누구도 항변할 수 없고 토를 달 수 없는 그 폭풍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죠. 38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욥아, 네가 거기에 있었느냐?”하고서 말이죠. 또 39장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능력과 지혜로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데 “욥아, 네가 그것을 아느냐?”하면서 말입니다.
이른바 내가 땅과 바다와 태양과 천체와 기후를 만들고 다스리는 그 세계에 대해서 너는 알고 있느냐? 짐승들과 날짐승이 새끼를 베고 그것들을 낳을 때 고통스러워하는데 너는 그들의 괴로움을 알고 있느냐? 들소가 힘이 세지만 너는 그것들을 외양간에 머물게 하며 네가 그것들에게 전부 맡길 수 있겠느냐?
그것이 38장과 39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으로 던진 말씀이며, 그처럼 우주와 자연계와 온갖짐승의 세계와 이치에 대해 욥의 무지함을 들춰냄으로서, 욥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에 대해서도 자신이 안다고, 자신이 의롭다고 항변하는 그 모든 주장에 대해 내세우지 말라는 뜻과 같은 것이죠.
오늘 읽은 40장에서는 좀 더 엄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이를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그렇게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과 다투는 욥아, 네가 나를 꾸짖을 셈이냐? 네가 나를 비난하니,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이 한 마디의 질문에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던 욥은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욥은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4~5절입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욥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크신 능력과 무한한 지식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지, 하나님의 초월성과 창조주로서의 절대성을 가진 분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그 크고 광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주관하는 분임을 욥이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고백입니다.
왜 그런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욥은 자신이 죄가 없는데도 고난을 겪고 있다는 생각에서 교만해졌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 명의 친구들이 계속 퍼부어대는 공격에 욥은 자신을 변호하느라, 더 크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보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욥은 자기 자신의 생각 속에 갇힌 채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놓쳐 버린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섭리나 계획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욥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 버리면, 다른 사람도 볼 수 없고, 심지어 하나님을 보는 시선도 놓쳐 버린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는 모든 가치와 판단을 자기 자신에게만 둘 뿐이죠.
그런 욥에게 하나님께서 세 가지 것을 바꾸길 주문하시죠.
첫째로 8절을 통해 말씀합니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하나님이 가장 큰 죄로 여기시는 죄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의’보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죠. 자기 의를 내세우고 옳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악하다고 여기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공로의 의’를 의지하는 자와 똑같은 격입니다.
둘째로 10~14절입니다. “너는 나와 같은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고 네 안에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찾아서 그를 낮아지게 하고 악인을 찾아 즉시 심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네가 너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하겠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교만한 자나 어떤 악한 자도 결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너도 인정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을 모셔 들이도록 하라는 주문입니다. 교만한 심령 속에는 하나님을 모셔둘 자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셋째로 15~24절입니다. “네가 ‘베헤못’을 보았느냐? 그것의 넘치는 힘과 위용과 강하고 큰 몸집을 가진 그 짐승을 네가 잡을 수 있느냐?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베헤못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보통 성경학자들은 ‘하마’로 생각합니다. 각주 1)에도 “하마로 볼 수도 있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상대하기에 대표적으로 크고 힘 센 동물을 상징하는 것이죠. 바꿔 말해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 하나도 잡지 못하면서 창조주 하나님께 어찌 대항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의 어리석은 행동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죠.
이런 변화를 주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욥이 어떻게 합니까? 결국 욥은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42장 2~6절에 이렇게 고백을 하죠. 표준새번역입니다.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말씀하실 때 욥처럼 부복하고 엎드려 회개하며, 변화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모셔들이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 욥처럼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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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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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하나님만이 우리가 섬길 진정한 창조주시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문제와 어려움을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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