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그 일을 잊은 듯 아내는 아무 눈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29쪽)
조정래의 〈홀로 쓰고, 함께 살다〉에 나온 내용이다. 글쓰기 50년 동안 독자들에게 받은 사랑을 나누고자 독자의 질문에 답을 한 책이다. 그 중에 “오늘의 조정래를 있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하는 어떤 독자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유신 때문에 사표를 내고 어느 이름난 소설가 부부와 자기 부부가 산정호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객기를 부렸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관계는 엉망이 됐는데, 방에 들어온 아내는 그렇게 아무런 핀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가 뭐였을까? 실은 그 당시 그 아내 김초혜는 꽤 유명한 시인이 돼 있었다. 그에 비하면 그는 등단도 못하고 돈 한 푼 없는 가난뱅이였다. 그런 그의 아내가 과연 무엇을 보고 결혼을 생각했던 걸까? 당시에 조정래가 품고 있던 ‘100년 단위의 문학사와 싸울 끈기’를 바라봤던 것이었다. 바로 그 ‘끈기의 여백’을 내다봤기에, 그날 소설가 부부 앞에서 객기를 부린 만용조차도 아내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무언으로 격려했던 것이었다.
서울에 개척한 친구 목사도 가끔 그런 객기를 부릴 때가 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주춤해. 하지만 백신 맞고 면역이 생기면 다들 열심히 하자고 했어. 그러면 금방 부흥해서 우리도 선교하는 교회가 될 거야.” 그렇게 말할 때면 나도 무언으로 격려하기도 한다. 그에게 드러나지 않는 성실함도 있지만, 그 너머에 역사하실 ‘하나님의 여백’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삼하17:23)
다윗은 3년 만에 외가에서 온 압살롬을 가택연금 처하듯 2년간 냉대했다.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가까스로 다윗을 알현했다. 하지만 관계회복은 없었다. 그때부터 4년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훔친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왕정 출정식을 갖고서 다윗을 죽이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때 다윗은 후궁 10명을 남긴 채 예루살렘 궁을 빠져나갔다. 물론 그의 피난길에 따라붙은 이들도 있었다. 블레셋의 가드에서 망명한 600명의 군사와 지도자 잇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법궤를 멘 레위인들, 다윗의 친구요 책사인 아렉 사람 후새가 그들이었다(삼하15:17-37).
다윗은 그때 잇대와 함께 한 군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왕궁으로 돌아가 제 역할에 충실토록 했다. 후새에게는 압살롬의 책략가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효케 하도록 했다. 그 사이 압살롬은 아마사 군사령관을 대동해 방백들과 함께 예루살렘 궁을 장악했다. 그때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 10명을 모두 범하도록 했다. 더욱이 군사 12,000명을 자신에게 내주면 당장 다윗을 좇아가 다윗의 목을 가져오겠다고 했다(삼하16:15-17:3).
그런데 압살롬은 다윗의 지략가였던 후새의 의견도 듣자고 했다. 그때 후새는, 다윗이 전쟁경험이 많아 어디에 매복해서 어떻게 칠지 모르니, 차라리 날이 밝으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다윗을 공격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러자 압살롬과 방백들은 이구동성으로 후새의 계략이 낫다고 입을 모았다(삼하17:5-22).
그때 아히도벨은 자기 계략이 무효케 된 걸 알고 고향에 돌아가 자결한 것이었다. 왜일까? 길로 출신인 그는 갈렙의 후손으로 갈멜 출신의 나발과 가까웠다(수15:51-55). ‘나발’(נָבָל)은 ‘바보’(fool)를 뜻하고 ‘아히도벨’(אֲחִיתֹפֶל)은 ‘바보의 형제’(my brother is foolish)를 뜻한다. 그런데 나발이 죽자 그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의 아내로 들어갔는데, 어쩌면 그때 아히도벨도 다윗의 책사로 발탁됐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엘리암이 다윗의 30명 용사로 발탁될 때 그때 ‘엘리암의 아버지 아히도벨’(삼하23:34, 대상3:5)이 다윗의 책사가 됐을 수 있다.1)
중요한 건 30살의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될 때부터, 37살에 예루살렘에서 12지파의 왕이 되고, 그 후 10년간 정복전쟁을 벌인 그때까지, 아히도벨은 줄곧 다윗의 책사였다. 하지만 47살의 다윗이 밧세바를 범할 때 '밧세바의 친할아버지 아히도벨'(삼하11:3)은 마음 속에 울분의 칼을 갈았다. 압살롬이 쿠데타를 벌일 때 적극 가담한 것도, 다윗의 목을 자신이 가져오겠다고 한 것도, 그 연유였다. 하지만 자기 책략이 짓밟히자, 뼛속까지 다윗을 알고 있던 그로서는 다윗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판단에, 스스로 신변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런 아히도벨을 바라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다윗과 압살롬에게 인정받는 책략가였지만(삼하16:23) 더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자기 생을 하나님께 맡겼다면 원수 갚은 것도 하나님께 의탁했을 것(히10:30)이다. 그 속에서 화평과 거룩함을 좇았다면(히12:14) 10년 뒤에 증손자 솔로몬이 왕이 된 것도 바라봤을 것이다. 모든 걸 자신이 주도한 채 ‘하나님의 역사’에 내어맡기지 못한 그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다윗은, 압살롬이 죽은 뒤, 예루살렘으로 환궁코자 할 때 화해의 손짓을 내밀었다. 압살롬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한 ‘유다 지파 장로들’, 압살롬의 추종자들 가운데 선봉장을 맡은 ‘아마사’에게. 더욱이 자기 피난길에 티끌을 날리며 저주한 ‘시므이’도 요단강 나루턱까지 나와 자신을 죽이지 않도록 당부할 때 기꺼이 약조한(삼하19:23) 다윗이었다. 원수와 같은 이들을 '하나님의 여백'에 내어맡긴 모습이다.
어제 밤에는 희한한 꿈을 꿨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뭔가를 발버둥치려 했는데 그날은 성령님께서 나서서 해결해주는 모습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최근에 뭔가를 할 때마다 “성령님, 어떻게 하길 원하세요?” “성령님, 제가 그 집사님을 위해, 그 가정을 위해 무슨 기도를 드리길 원하세요?” 하면서 수시로 묻곤 한다. 아마도 그 때문에 꿈 속에서조차 성령님께서 나를 대신해 역사해주시지 않나 싶다.
어떤가? 우리는 내가 뭔가를 다 하려고 한다. 왠지 답답하면 내가 나서서 주도해야 직성이 풀린다. 누군가 미적대거나 잘못을 행하면 내가 소리쳐서 바로잡고자 한다. 심지어 부부지간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하지만 누군가 끈기를 보여주고, 부단히 애를 쓰고, 화해의 손짓을 내민다면 어떨까? 그 나머지는 하나님의 여백에 맡기는게 좋지 않겠는가? 아니, 뭔가를 하기 전부터 성령님께 묻고 나가자. 성령님께서 여백의 역사를 이루실테니 말이다.
1)https://journeyonline.org/lessons/ahitophel-the-wise-man-who-committed-suicide/?series=8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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