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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음에 평안을 알지 못하니(욥20:1~29)

by 똑똑이채널 2022.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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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두 번째 친구 빌닷이 내 뱉은 말들은 욥이 당한 고난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습니다. 고통으로 죽게 된 욥의 인격까지 사살하는 듯한 말이었죠. 그런 빌닷에게 욥이 대답한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그 대답을 깊이 음미하면 욥이 부활신앙을 고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욥의 부활신앙이 아름답고 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더욱 엎드리는 자세가 필요했죠. 친구들 앞에 말로 부활신앙을 노래할 게 아니라, 비록 친구들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비난하고 정죄할지라도, 그 속에서 죽는 모습을 보이는 것 말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모습 말이죠. 내 혈기와 고집이 죽어야만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 말이죠. 그것이 온전한 부활신앙의 자세죠. 하지만 욥은 온전히 죽지 못한 채 덜 죽은 부활신앙을 이야기한 것이었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삶 속에서 혈기가 나올 때 그 때도 내가 죽는 삶을 살아갈 때 참된 부활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욥처럼 사방이 막히고 답답한 지경에 처해도, 나를 아는 사람들마저 나를 조롱하고 비웃고 비난할지라도, 그를 향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기보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고 온전히 죽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부활의 역사를 써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욥의 친구 소발이 욥의 대답을 듣고 반박하는 내용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소발이 욥에게 대답한 그 동기가 무엇입니까? 본문 1~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

이에 대해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그렇게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려 했으나, 네 말을 듣고 있자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분노라고 하는 자기감정에 휩쓸리면 사람은 누구든지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나라 아닙니까? 사업을 하시는 분도 헤쳐나가기가 어렵다고 하죠. 공직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도 업무나 관계 면에서 쉽지 않다고 하죠. 그만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다들 무언가 짓누르는 압박감을 느끼며 사는 형국이죠. 그 압박감이 초조함으로 나타나고, 초조하면 결국은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죠. 그래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죠.

이 새벽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것, 그를 통해서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삶을 돌아보는 것은 그런 짓눌림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아침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기 위해 오신 분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은 분들입니다.

 

소발은 초조함 때문에 강한 표현들을 사용하면서까지 욥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가 쏟아붓는 말들이 욥에게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욥의 마음을 찌르고 있는 형국이죠.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욥에게는 얄밉게 들리고 그래서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논리가 맞고 바른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설정돼 있지 않으면 오히려 그 논리가 더 큰 상처로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소발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습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악인은 벌을 받았고 의인은 결국 승리했죠. 본문 4절 말씀도 그렇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생긴 때로부터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본문의 마지막 부분인 26~29절을 통해 말한 소발의 말도 그렇죠. 큰 어둠이 그를 위하여 예비 되어 있고 사람이 피우지 않은 불이 그를 멸하며 그 장막에 남은 것을 해치리라.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그를 대항하여 일어날 것인즉 그의 가산이 떠나가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끌려가리라.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

어떻습니까? 소발의 말은 놀라운 통찰력을 지닌 말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끌려갈 것이라는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는 그 말씀의 적용 대상을 잘못 고른 형국입니다. 그 말씀을 욥에게 적용할 게 아니라 그 시대에 악한 일을 도모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적용해야 할 말입니다. 하지만 소발은 그것을 욥에게 퍼붓고 있는 상황입니다. 욥에게 일어난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형국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결과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 말이죠.

 

오늘날 현대 한국 사회에도 무슨 일을 해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얼마 전에 그런 기사를 뉴스에서 봤습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최근 고등학생 2천명을 대상으로 윤리의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만약 10억 원이 생긴다면 감옥행도 무릅쓰겠습니까?”하는 물음이었죠. 그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무려 44%나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성인을 대상으로 했다면 더 많은 응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결과는 상관없이 행해나간다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가득하게 된 것이죠.

소발도 그와 똑같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욥아, 너는 악인이야. 너는 더 이상 안 돼. 재산 잃고 가족 잃고 네 몸이 악창이 들끓는 것, 바로 그것이 증명하고 있잖아!” 그런 편견을 갖고 말하는 소발이었으니, 어찌 그 말이 욥에게 상처가 되고 욥을 공격하는 발언들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가졌던 경험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속단하는 것, 사건들이 일어나는 과정을 모른 채 그 결과만 갖고 짐작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소발은 명쾌한 논리와 영적인 지식을 가졌지만, 엉뚱한 대상에게 그걸 적용했기 때문에, 욥을 향한 위로는커녕 오히려 화를 돋우고 감정만 상하게 한 꼴이었죠.

안타까운 일은 우리도 이런 논리에 빠져들어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쉽게 말해버리고, 당사자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말을 하는 경우 말이죠. 그래서 관계를 깨뜨리게 되고, 서로에게 힘든 관계가 돼 버리게 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가족은 사랑과 격려의 대상이지 비교와 정죄의 대상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발이 욥을 가족처럼 아껴줬다면, 결코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면에서는 너무나도 아쉬운 모습입니다. 소발이 가족처럼 욥을 아껴줬더라면 함부로 정죄하기보다 오히려 욥을 감싸줬겠죠.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욥의 처지에 있을 때, 누군가 친한 친구나 아는 사람이 소발처럼 이야기했다면,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고통을 당할 때 나의 죄 때문이라고 누군가 조롱 섞인 말을 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온전히 죽는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죠. 내가 잘 못 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하나님께서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이겠죠.” 그렇게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평정심을 찾는 게 우리가 취할 자세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곧 앞서 말씀드린 부활신앙을 소망하는 믿음의 자세죠.

그런데 이런 면이 부족하기 때문에 욥은 계속해서 그의 친구들의 조롱과 비난 앞에 맞받아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우리라고 결코 다르지 않는 일이죠. 우리도 욥의 처지라면 어쩌면 더 큰 화를 내고 친구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정말로 화가 나는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는 주님의 은혜, 참된 부활의 은혜를 덧입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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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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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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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극심한 고통에 처한 욥에게 소발이란 친구는 더 큰 아픔과 상처만 주고 있습니다. 논리는 분명히 맞지만 사랑이 없고 자기 감정은 충실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때 욥도 자기 생각과 자기 감정으로 맞받아 치는 모습인데, 오늘 저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일깨워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떠올리며 그 상황에서 죽는 삶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부활의 은총을 바라보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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