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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마음에 새기어(눅2:15-20)

by 똑똑이채널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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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 20108월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서 700m 지하 갱도가 무너져 33명의 광부가 매몰된 사고가 일어났죠.

처음 사고가 난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을 했죠.

사람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구해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고 17일 만에 탐침봉 끝에 쪽지 하나가 올라왔죠.

우리는 살아 있다.”

그 쪽지를 보자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구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거대한 굴착기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69일 만에 33명 모두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구조되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구출된 마리오 세풀베다는 아주 감격스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땅 밑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우리는 그 분의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구조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마리아는 마음에 새기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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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700미터 갱도에 갇힌 자신들이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어떤 분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하고 거의 불가사의한 일로 단정해 버릴 숟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그것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일이야!’하고 믿음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적용) 왜 그렇게 생각이 나뉘는 것일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자기 자신의 의식과 삶의 환경에 겪은 바를 토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어떤 분은 그 사건을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단정해 버리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가볍게 생각는 것 말입니다.

어떤 분은 그런 일은 자기 삶에 한 번도 일어난 일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하고 단정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은 그것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이야!’하고 믿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예화2)이재철 목사님의 새신자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어떤 장로님이 겪은 소화기 사건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경험해보길 원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느날 밤에 갑자기 딸 방에서 불이났습니다. 전기 누전이었던 것이죠.

장로님이 방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불이 온 천장에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급히 소화기를 찾아 손잡이를 눌렀지만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소화기를 써 본 적이 없던 지라 사용법도 알지도 못했죠.

그때 장로님은 다급한 마음으로 주님, 도와주세요.’하고 외치면서 다시금 소화기의 손잡이를 눌렀습니다.

그 순간 소화액이 뿜어져 나왔고 덕분에 불은 꺼졌습니다.

 

뒤늦게 화재 사실을 알게 된 아파트 경비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아파트 경비원들은 어떻게 불을 껐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이 소화기로 불을 껐어요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비원들은 그 장로님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소화기의 안전핀이 뽑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그 장로님도 소화기의 안전핀이 뽑혀야 소화액이 뿜어져 나오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로님은 그 일이 성령님께서 하신 일임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깨달음)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생각들을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도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 그냥 뻥이겠지!’ 하고 말이죠.

그러나 그 일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야!’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적용) 그렇듯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저마다 다른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여러 생각들을 하지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것 말입니다.

한 부류는 그 일이 놀라운 일이라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부류는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며 사는 신앙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환경과 상황속에서 겪은 하나님의 일들이 있다면 충분히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 로마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호적령에 따라 이스라엘 땅에 사는 백성들이 저마다 고향으로 호적하러 갔죠.

그때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도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 땅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땅을 향해 올라가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세상 사람들처럼 호적하기 위해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요셉과 마리아의 관점은 세상의 흐름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마리아도 요셉도 천사 가브리엘이 하는 말을 이미 들었습니다.

너에게 잉태될 아들은, 너의 아내될 마리아에게 잉태될 아들은 이 땅의 그리스도 곧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다하고 말이죠.

그런 마리아와 요셉이었으니 그들이 만삭의 몸을 이끌고 호적하러 간 것은 실은 구약에 예언된 미가서 말씀이 성취도록 순종하고자 베들레헴까지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직선코스로 160km였지만, 보통 성인 남자 발걸음으로 8일이면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베들레헴은 해발 900m가 넘는 곳이요 만삭의 몸을 이끌고 간다면 족히 한 달은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도 요셉과 마리아가 그곳 베들레헴을 찾아 호적하러 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순종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인생 목적, 인생 방향도, 바로 그와 같아야 한다고 대림절 첫 번째 시간에 살펴봤었죠.

 

대림절 두 번째 시간에 나눈 말씀은 그곳 베들레헴 동네에 여관객실이 왜 없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들레헴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동굴을 파서 만든 집으로 1층은 짐승의 우릿간으로 쓰고 1층을 집으로 사용한 곳이라 했죠.

그런 동굴집에 객실이 둔다는 것은 보다 더 큰 동굴을 파서 만든 집이여야만 하는 것이었죠.

 

바로 그런 객실을 소유한 집들이 많지 않아서 만삭의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누일 곳이 없었습니까?

다들 고향 땅 베들레헴을 찾아 일찍 도착한 까닭에 뒤늦게 찾아 온 요셉과 마리아는 그래서 방을 얻지 못한 것이었습니까?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을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내 아이를 낳으면 33일간 정결례를 거치는 유대 율법 때문이라고 했죠.

만약 자신의 객실에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집은 33일간 부정하게 여기고 집밖을 출입도 못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에 말이죠.

그 때문에 다들 만삭의 아내 마리아를 향해 집의 객실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내 집에 들였다가는 내가 부정하다고 여길 게 뻔하니 도저히 문을 열어줄 수 없어요하고 말이죠.

그러자 요셉과 만삭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어느 가난한 동굴집의 1층 마굿간에 돌로 된 구유통에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죠.

 

그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의 심령 속에는 두 개의 방 곧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심령의 방과 더불어 이웃을 향해 나누고 베푸는 방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 아이가 이 땅의 구세주인 예수님 곧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심을 알았다면 다들 자기들 집으로 초청했겠죠.

만약 그 아이를 벤 마리아의 모습이 자기 모습이라면 다들 문을 열어주며 자기 집으로 들어오도록 했겠죠.

그만큼 부지 중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게 천사를 대접하는 일이자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주 곧 대림절 세 번째 주에 살펴본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기억이 나십니까?

아기 예수님이 돌로된 구유통에 누인 상태 속에서, 그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 가브리엘이 맨 먼저 알려준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하는 점이었죠.

바로 베들레헴 지역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목자는 양과 염소를 자기 소유로 거느린 목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품삯을 받고 목자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러니 삯을 받고 목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인의 양과 염소를 1년이면 몇 십 마리씩 빼돌릴 수 있었죠.

그로 인해 그 당시의 목자들은 세리와 창기들처럼 부정한 사람들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맨 먼저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의로운지 부정한지, 그들이 정결한지 더러운지,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지 그렇지 않는지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선택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신 섭리도 그와 같다는 것이죠.

우리가 남들보다 잘 나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남들보다 좀 더 의롭고 정결해서, 율법을 잘 지켜서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요, 도덕적으로 법을 잘 지키다고 할지라도 오십보 백보일 뿐이요, 모두가 죄 아래에 있는 인간이죠.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신 것인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긍휼어린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답게 모든 일에 전적인 순종,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은혜를 받은 자의 온전한 응답의 삶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그 지역의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주면서 구주가 나셨으니 그것이 표적이라고 일러줬죠.

그때 수많은 천군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소리가 들렸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천군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갔고, 그곳에 남은 목자들은 곧바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보러 갔죠.

그런데 정말로 그곳에 가보니 강보에 쌓여 있는 아기 예수를 보게 되었죠.

그때 그 목자들에게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와우, 방금 전에 말한 천사 가브리엘의 소식이 정말인데!’

그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습이 진짜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축하는 모습이었네!’

 

그리고는 뭐라고 말하는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 반응이 어떠한지,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한지 본문 17-20절이 일러주죠.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원해)그 목자들이 하는 말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에 대해 말한 것을 그곳에서 이야기하자 듣는 자들이 보인 반응과 마리아가 보인 반응이 그것이죠.

 

듣는 자들은 목자들이 한 말을 놀랍게 여기되라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놀랍게 여기다는 헬라어 타우마조’(θαυμζω)놀라운 일’(a wonderful thing), ‘기적’(a marvel)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그곳의 사람들이 모두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겠습니까?

요한복음 3장에 보면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은 유대 관원 니고데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밤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은 것은 영생의 도에 관해서 듣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하고 놀랐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하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바로 그 상황에서도 놀랍게 여긴다는 본문의 단어 타우마조가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것처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 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그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부정한 당신들에게 천사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이오?’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천군 천사가 더러운 당신들에게 그런 고귀한 소식을 전해줄 수 있단 말이오?’

어떻게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지금 말구유통에 누일 수 있단 말이오?’

그렇듯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이 죄다 불신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뜻입니다.

 

(원해2)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달리 또 한 부류의 사람 곧 마리아가 보인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본문 19절에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하고 증언합니다.

 

여기에 새기다는 말은 헬라어로 쉼발로’(συμβλλω)로서 함께 던지다’(to throw together) 하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목자들이 한 말에 자기 자신을 함께 던졌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마리아는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전적으로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깨달음) 그렇다면 왜 그런 차이를 낳는 것이겠습니까?

목자들이 천사의 소식을 듣고 천군 천사가 찬양하는 소리를 듣고서 지금 와서 이야기하는데, 왜 한쪽 부류는 믿지 못하고, 왜 마리아는 온 마음과 뜻을 던지면서까지 믿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이치죠.

한 부류는 자기 자신의 삶의 환경과 상황속에서 그런 일을 경험한 바가 없기에 믿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자기 삶의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경험한 이들은 분명히 믿을 수밖에 없는 것 말입니다.

 

마리아는 이미 천사 가브리엘의 전한 소식도 들은 경험이 있고 사촌의 집에서 확인한 바요, 실제로 자기 몸에 그 증거가 있지 않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마굿간에 있던 사람들, 목자들의 소식을 전혀 생뚱맞다고 생각한 그들은 천사의 소식도 하나님의 능력도 경험한 바가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죠.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은혜)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체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 자가 되도록 하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의 능력 앞에 놀랍다면서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라면서 믿는 자가 있는데, 넌 어떤 부류에 속하느냐?”

“700 지하 갱도에서 69일만에 구출받은 그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어요하고 말했는데 너는 그 말을 믿고 있느냐?”

그 장로님의 딸 방에 불이 났을 때 소화기 안전핀을 뽑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소화액이 품어져 나왔다고 고백하는데 너는 믿고 있느냐?”

천사 가브리엘이 목자들에게 구세주 탄생 소식을 알려줬고 천군천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걸 들었다는데, 너는 믿고 있느냐?”

그런데 그 마굿간에 둘러쌓여 있던 사람들은 도무지 믿지 못하는데, 마리아는 왜 전심을 다해 믿었다고 하는지,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너의 삶 속에 경험하면 좋지 않겠느냐?”

너도 그 장로님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경험하고자 간구하고 기도할 때 어찌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마리아에게 보내 놀라운 소식과 체험을 경험케 했는데, 너에게도 그런 은혜를 베풀지 않겠느냐?”

이미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체험한 마리아는 그 목자들이 하는 말을 온 몸을 던지듯 믿지 않았더냐?”

주님은 시퍼렇게 살아계셔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주님이심을 믿도록 하는 분이지 않더냐?”

 

(찬양)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예화) 이윤재 목사의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에 담긴 이야기입니다.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의 담대한 삶을 담은 백 투 예루살렘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 허난성의 가정교회 지도자 중에 챵 자매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기도하는 데 어느 날 주님께서 그녀에게 그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경찰서 앞에 가서 복음을 전해라.”하고 말이죠.

 

전도를 금한 중국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면 즉각 체포되고 처벌된다는 것을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죠.

그런데 그 자매가 기도하면 할수록 그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분명한 음성과 감동을 들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경찰서 앞에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해라.”하고 말이죠.

 

결국 그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로 하고 경찰서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더욱이 경찰서 계단 위에 서서 청중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죠.

아니나 다를까,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경찰이 나타났고, 그녀는 곧장 끌려갔습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수치를 당하는 일이요 고통스러운 감옥에 처해질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섭리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챵 자매가 구속되어 갇힌 그 교도소는 수 천 명에 달한 여성들이 수감된 여성 교도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도소는 말썽이 많은 교도소였죠.

그곳은 허구헌 날 싸움에, 고성에, 욕설에 몸서리를 앓는 곳이요, 그 때문에 교도소 소장조차 포기한 교도소였습니다.

 

그런데 챵 자매가 들어가면서부터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복음의 불길이 급속도로 번져 3개월 만에 800명에 달하는 여성 죄수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감옥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죠.

싸우고 괴성을 지르는 교도소 안에서 찬양하는 소리와 예배하는 소리가 울러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누구보다도 고마워할 사람은 교도도 소장이었죠.

교소도 소장은 교도소가 변하자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원인이 바로 챵 자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교도소 소장은 챵 자매를 집무실로 불러 칭찬을 했습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하는 일이 무척 수월해졌소.”

이제는 죄수들이 싸우지 않고 하나같이 온순하게 말을 잘 듣고 있으니 놀랍소.”

이곳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오늘 석방시켜 줄테니 이 교도소에 취직해주시오

월급은 한 달에 3천원을 주겠소.”

 

3천원이면 60만원 정도 되는 돈으로 중국 농촌 지역에서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당신에게 운전기사가 딸린 차도 주고 편안한 집도 마련해주겠소.”

정말 놀라운 일이었죠.

일개 범법자에 지나지 않는 자매에게 교도소 직원이 되어 달라고 교도소장이 머리를 숙인다니 말입니다.

 

(깨달음)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에 언제 어디서나 순종하면 이런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순종할 때는 힘들고 고달프지만 순종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높여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말입니다.

 

(적용) 그런데 그때 교도소 소장의 말을 들은 챵 자매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챵 자매는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 순간 가난한 자기 가족들이 생각났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계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딸아. 너는 계속해서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라. 이를 위해 내가 너를 이곳에 불렀다.”하고 말이죠.

 

그때 챵 자매는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로 하고 이렇게 교소도 소장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2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지금도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소장님이 주시겠다는 차나 운전사나 집은 예수님이 제 인생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비전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이곳에서 주님의 복음만을 전할 것입니다.”

 

(내음성) 어떻습니까?

챵 자매는 그 무엇보다도 그녀 안에 계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길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죠.


그래요, 주님. 제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저를 통해서도 주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펼쳐보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챵 자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감동을 주시는 것처럼, 저에게 말씀하시고 감동을 주실 때 온전히 순종하게 해주세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지금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펼쳐보여주시는 줄 믿어요.”

주님께 순종하는 게 힘들고 어렵지만 순종하고 나면 놀라운 기적과 역사를 베푸시는 주님이신 줄 믿어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순종하는 게 어려웠지만 순종하고 나니 놀라운 은혜의 주인공으로 삼아주셨잖아요.”

목자들이 천사 가브리엘의 이야기와 천군천사들의 경배소리를 전할 때 마리아만은 온 몸을 던지듯 믿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네요.”

주님, 저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그 능력을 저의 삶에도 친히 베풀어주세요.”

그리하여 앞으로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 증인이 되게 해 주세요.”

 

(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하나님의 시간표 - YES24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www.yes24.com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 곧 대림절 마지막 째주로, 이제 25일 성탄절을 맞이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게 되죠.

대림절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맞이하는 날입니다.

누가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여 누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 사실을 온전히 믿는 자들 아니겠습니까?

목자들이 주님의 기쁜 탄생의 소식을 전해줄 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리아는 온 몸을 던져 믿었듯이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님의 놀라운 역사와 능력을 믿게 하시고 간증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마리에게 베푸셨던 그 능력, 그 장로님에게 베푸셨던 그 능력, 챵 자매에게 베푸신 살아계신 그 능력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친히 베푸시길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셔서 기쁜 성탄을 맞이하시고 주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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